어느덧 2017년이 저물어갑니다. 올해 초에 세워둔 목표가 뭐였는지 가물가물합니다만, 돌이켜보면 그닥 성취한 것은 없는 듯 합니다. 


사람의 인생이란 게 늘 계획대로 이뤄지는 게 아니어서, 올 한 해도 온갖 변수를 맞닥뜨려야만 했습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변수들 앞에서 제가 했던 선택들이 늘 긍정적이고 행복한 결과만 가져왔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즐거웠던 날들도 많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선택으로 후회와 좌절, 고통의 시간도 길었습니다. 이제 올해를 보내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런 힘들었던 기억들도 같이 보내고자 합니다.


내년에도 어떤 변수가 또 저를 괴롭히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올해보다는 좀 더 행복한 날들이 많았으면 하는 게 바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018년 새해를 앞두고, 내년 목표를 한 번 정리해봤습니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현실적인 고민들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목표 순서는 우선순위와 상관없이 생각나는대로 매긴 것입니다)


1. 형의권 수련


형의권 수련을 시작한 지 딱 1년이 됐습니다. 혼자 권가만 치다가 최근 발력 단계에 들어서면서부터 쏠쏠한 재미를 맛보고 있는 중입니다. 사형들과 발력을 주고 받을 때마다 느끼는 손맛(?)에 푹 빠졌습니다. 발력이 잘 안될 때마다 답답하고 고민도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련에 대한 회의감이나 슬럼프에 빠져본 적은 없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여러모로 정신적으로 힘들고 바쁜 가운데서도 수련의 끈은 결코 놓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취업준비생이 된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취직 준비를 해야해서 오히려 지난 1년보다도 시간을 내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형의권 수련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건 제가 생각해도 철 없는 행동 같기도 합니다. 사형들도 누누이 '생활이 먼저 안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그래서 지난 1년처럼 수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는 어렵더라도, 수련의 끈만은 놓지 않겠노라 다짐해봅니다. 적어도 하루 30분,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하루 5분씩은 꼬박꼬박 수련을 하겠노라 목표를 세워봅니다.


2. 해금 재시작


전역한 직후에 배우기 시작한 취미활동 중 하나가 해금이었습니다. 형의권 다음으로 가장 큰 애정을 갖고 열심히 배웠던 악기인데, 주머니사정도 여의치 않고 시간 여유도 없다보니 지난 11월부터 학원을 잠깐 관둔 상황입니다. 집에 악기가 있긴 한데, 학원을 안 나가니 연습조차 게을리하게 됩니다. 이러다간 아예 감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요새 조바심이 좀 납니다. 


남자라면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악기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탓에, 해금 연습의 끈도 놓고 싶지 않습니다. 내년 초에 상황이 좀 안정되면 다시 학원에 등록해서 연습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이대로 중단하기엔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돈, 열정이 너무 아깝네요.


3. 독서량 100권 달성


올해 초부터 읽은 책들의 목록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60권 정도의 책을 읽었네요. 등하굣길이나 여행갈 때나 항상 책 한 권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 틈틈이 읽었음에도, 워낙 이해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져서 겨우 이 정도에 그쳤네요. 


무작정 많이 읽는 게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굳이 책을 많이 읽으려는 까닭은 그냥 책 욕심이 많은 성격 탓입니다. 읽지도 않은 책들이 방에 쌓여가는데도, 좀 흥미롭다 싶은 책들이 보이면 일단 사고 봅니다. 그러다보니 집안의 서가가 부족할 지경입니다. 그래서 요즘 들어 부쩍 사놓은 책들부터 일단 후딱후딱 해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 내년엔 100권 달성을 목표로 열심히 읽으려고 합니다. 서가에 꽂혀있는 책들부터 얼른 해치워야겠지요. 특히 이문열의 <삼국지>는 꼭 통독하려고 합니다. 여러 차례 통독에 도전해봤지만, 매번 흐지부지됐기 때문입니다. 6권까지 읽다가 흐름이 끊어졌는데, 내년에는 다시 1권부터 시작해서 10권까지 통독에 성공하는 게 목표입니다. 


4. 일본어 공부


최근 들어 일본드라마를 열심히 챙겨보다보니 일본어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지난 학기 일본어 수업을 듣기도 했습니다. 일본어는 국어와 어순이 비슷해서 쉽다고 하는데, 저한텐 중국어보다 오히려 더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져서 버겁더군요. 알파벳이라고 할 수 있는 히라가나, 가타가나 외우는 것도 머리에 쥐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도 흥미가 있기에 끈기를 갖고 꾸준히 하면 성취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장 내일 근처 서점에 가서 일본어 독학을 위한 교재를 한 권 살 생각입니다. 토익이나 다른 자격증 취득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는 못하겠지만 취미 수준으로 가볍게 한 번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그러다 기회가 되면 자격증 시험에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5. 졸업


현재 4학년 2학기까지 다 마치고 졸업 논문도 제출한 상태라서 정상적이라면 내년 2월 졸업입니다만, 졸업요건 중 하나인 '토익' 통과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수료'로 걸어놓고 졸업을 유예하게 됐습니다.  


졸업 요건 자체가 요식행위에 가까워서 학교에서 요구하는 기준 점수는 낮습니다만, 이번 학기는 학생운동한다고 바빠서 아예 시험 자체를 응시할 생각도 못했습니다. 하루 빨리 학교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터라, 우선 다른 건 다 제쳐두고라도 토익 공부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내년 8월에 후기 졸업장은 받아야하니까요.


6. 취직 준비


아마 이게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될 듯 합니다. 이제 정말 명실상부 취업준비생이 됐는데, 더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까지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고민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평소 관심 있던 분야들을 중심으로 진로 탐색과 취직 준비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특히 요새 정부에서 알선하는 '취업성공패키지'란 프로그램이 있더군요. 정부에서 청년들에게 취업장려금을 지급하면서 진로 탐색과 취직을 위한 직업훈련까지 컨설팅해준다고 합니다. 제 또래 친구들도 많이 하고 있던데, 일단 저도 이 프로그램을 신청한 상태입니다. 프로그램과 별도로 토익, 워드 같은 자격증 취득에도 도전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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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을 배우기 시작한 지 7개월 만에 드디어 나만의 해금을 장만했습니다. 사전에 해금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했는데 "직접 가서 하나씩 만져보고 곡도 연주해보면서 자기한테 맞는 악기를 골라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시더군요. 선생님께서 미리 악기사에 연락해서 제게 맞는 악기들을 몇 대 준비해놓으라고 부탁도 해놓으셨습니다.


오늘 악기사에 갔더니, 사장님께서 아마추어용 해금을 여러 대 내놓고 '2대만 고르라'고 하시더군요. 그 자리에 앉아서 일일이 조율 확인도 해보고, 스케일 확인도 하고 즉석에서 '오나라', '아리랑' 같은 곡들도 연주하면서 괜찮은 놈을 탐색해봤습니다. 솔직히 아직 초보라서 잘 모르겠더라고요. 꽤나 오랫동안 결정을 못하고 망설이고 있으려니, 사장님께서 한 말씀 하시더군요.


"촉이 오는 걸로 잡으세요. 그게 본인한테 맞는 악기인 겁니다"


그 촉이란 게 뭔지 모르겠지만, 켜봤을 때 느낌이 좋은 놈으로다가 두 대 골랐습니다. 사장님이 하나씩 직접 테스트를 해보더니 한 놈을 골라 제게 건네시더군요. 그리고 또 한 마디 하십니다.


"해금은 가르치는 선생님의 스타일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쪽 선생님한테 배우려면 이 악기가 낫겠네요"


악기면 다 같은 악기지, 촉이 온다는 것도 신기하고 지도하는 선생님 성격에 맞는 악기가 따로 있다는 것도 얼핏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저야 초보고, 이분은 국악 전문가이니 그러려니 했지요. 내심 신기했습니다. 누가 보면 해리포터가 요술지팡이 사러온 줄 알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금을 샀습니다. 프로용에 비하면 매우 저렴하지만, 아마추어용도 무려 55만원이나 하네요.


그동안은 대여 방식으로 중고 해금을 빌려 연습을 해왔습니다. 큰 맘 먹고 시작했지만, 언제까지 배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선뜻 고가의 해금을 산다는 게 내키지 않았던 탓입니다. 기간이 만료될 때마다 연장을 해오다가 어느새 또 추가 연장을 결정해야 할 시기가 왔더군요. 고민하다가 이젠 그냥 한 대 사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변이 없는 한, 꽤나 오래도록 배울 것 같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매주 해금을 배우러 서울-부천을 왔다갔다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시간도 투자해야 하고, 돈도 투자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별 불만 없이 꾸준히 다닐 수 있었던 건, 그 과정을 즐겼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해금을 배우는 건 여전히 녹록치 않습니다. 반 년 이상 배웠지만 아직도 기본기를 완벽하게 숙달하지 못해 고생 중입니다. 몇 개월 전에 배운 '오나라'와 '아리랑'을 아직도 반복해서 연습하고 또 연습합니다. 그럼에도 지루함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단계를 밟아나가는 과정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부단히 연습해서 간신히 칭찬 받을 정도가 되면, 선생님은 여지없이 새로운 단계를 보여주십니다. 그럴 때면 또 한숨이 나오죠. 다시 그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연습합니다. 어느 정도 연습해서 이제 좀 된다 싶으면 얼른 선생님께 가서 검사를 받고 싶습니다. 마치 칭찬을 갈구하는 어린아이처럼요. 


해금은 정직합니다. 연습을 안 하면 남들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못 따라가 쩔쩔 매는 쪽팔림을 감수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노력을 해야합니다. 선생님 앞에서 검사를 받을 때, 적어도 내가 뒤처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면 안도합니다. 혹여 칭찬이라도 받게 되면 날아갈 듯 기쁘고요. 그런 맛에 해금을 배우러 다니는 것 같습니다.


진도 욕심을 버린 것도 해금을 즐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일 듯 합니다. 스스로 둔재임을 인정한 탓에 오히려 기본기의 완벽한 숙달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오히려 지금 하고 있는 곡도 벅찬데, 선생님께서 새 곡을 나가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마음 같아선 선생님께 기본기 교정만 집중적으로 부탁드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제 와서 음대 입시를 준비할 것도 아니고, 어디 가서 해금 공연으로 먹고 살 것도 아니고 그저 취미로 즐긴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니 배움이 그 자체로 즐겁습니다.


생각해보면 무예랑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네요. 예전엔 초식 하나라도 더 빨리 배우고 싶었습니다. 만약 사부님께서 안 가르쳐주시면 크게 실망스러워 하기도 했었죠. 지금은 그런 마음을 모두 버렸습니다. 그래서 형의권을 수련하면서도 지루함을 별로 못 느끼고 있습니다. 질보 한 걸음을 내딛더라도,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돌아보며 완벽하게 숙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올바른 길로만 걷자는 게 제 신조가 됐습니다. 스스로 둔재임을 인정하니까 마음도 저절로 비워지더라고요.


여하간 올해 전역하기 전에 이런 저런 버킷리스트를 적어봤는데, 해금 배우기는 바로 그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버킷리스트를 스스로 실천했고,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느낍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형의권 배우기'라는 새로운 버킷리스트도 실천했네요. 둘 다 꾸준히 배워서 내년 이맘때쯤 스스로에게 또 한 번 대견함을 느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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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해금 연습 영상을 올려봅니다.


요새 무예 수련하면서 셀프 동영상 모니터링 하는 재미에 맛들렸는데, 해금도 한 번 동영상 모니터링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급하게 촬영해봤습니다. 급하게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계속 연습해왔던 곡이고, 영상 촬영 전에도 몇 번 연습해서 손을 풀고 촬영한 결과물입니다. 


아리랑 이 곡만 몇 개월째 연습 중인데도 아직까지도 삑사리도 나고 완벽하지 못한 것을 보면 무예 뿐만 아니라 음악에 있어서도 심하게 둔재라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도 뭐 특별히 자괴감이 들거나 스트레스 받고 하진 않아요. 무예 수련하면서 '기본에 충실하라', '슬럼프가 오더라도 우직하게 그리고 꾸준히 연습하라'는 교훈을 체득한 뒤라서요. 요근래 들어서 꾸준히 개인연습을 하는 통에 진도에 뒤쳐질 정도도 아니고요. 사실 진도 욕심도 별로 없습니다. 남들보다 앞서 나갈 생각도 없고, 그저 선생님이 가르쳐주실 때 뒤쳐지지만 않을 정도면 충분합니다. 모두 무예를 수련하며 깨달은 교훈들이죠. 아직은 화려한 곡에 대한 욕심은 없고, 삑사리가 나는 등 부실한 기본기나 확실히 극복하는 게 1차 목표입니다.


생각해보면 해금을 배우기 시작한 지 벌써 8개월 째입니다. 좀 있으면 1년이 되네요. 이제는 그냥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고나 할까요. 처음엔 서울에서 부천까지 다니는 게 귀찮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배울 지는 모르겠지만, 스승이 더 이상 필요 없이 혼자서 교정하고 연습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꾸준히 다니고 싶습니다.


아래는 제가 다니는 부천 해금소리 교습소 약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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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해금 조율을 무리하게 시도하다가, 그만 주아가 부러지고 말았더랬습니다. 이 주아라는 건 해금의 현(줄)을 조이고 푸는 역할을 하는데, 워낙 뻑뻑해서 돌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도 안 돌아가는 바람에 홧김에 힘을 줘서 돌리다가 그만 부러지고 말았는데요, 이게 부러졌을 때는 눈 앞이 정말 캄캄했습니다.



일단 해금이 제 악기도 아니고, 대여한 악기인 데다가 아예 나무가 부러진 거라, 수리비로 얼마나 나올지 감이 전혀 오질 않았기 때문이죠. 돈 많은 귀족도 아니고, 가난한 휴학생 신분인지라 해금이 부러지자마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역시 '수리비' 걱정이었습니다.


거의 울상이 되어서 악기를 대여한 '류충선국악기연구원'에 연락을 했는데, 사장님이 시간 될 때 와서 수리하라고 하시더군요. 이거 뭐 걱정이 되어서 며칠씩 기다릴 수가 있나요. 당장 다음 날 가겠다고 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악기사로 갔습니다.


도착해서 사장님께 보여드리니 "누가 돌렸나요"라고 물어보시더군요. 저라고 대답하기가 참 민망했습니다. 그래도 사장님께서 "대여기간 연장하자마자 부러졌으니, 이건 계속 해금을 배우라는 계시인 것 같다"고 농담도 하시고, 제 마음을 많이 풀어주셨습니다. 게다가 "멀리서 오셨는데 그냥 가세요"라며 무상 수리까지. 수리비 걱정이 가장 컸는데, 사장님의 통큰 인심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장님 말씀이 "주아는 요령이 있으면 초등학생도 쉽게 돌릴 수 있지만, 요령이 없으면 천하장사 이만기가 와도 절대 못 돌린다"고 하시더군요. 실제로 사장님은 쉽게 잘만 돌리시던데... 도대체 왜 안되는 걸까 싶어서, 수리 끝나자마자 근처 공원 가서 30분 동안 낑낑거리며 계속 요리 돌리고 조리 돌리고 해봤지만... 오히려 더 풀리기만 할 뿐, 조여지지가 않더군요. 계속 주아를 잡고 씨름하다보니 양 손바닥은 물집이 잡히다못해 다 벗겨져서 지금까지도 쓰라릴 지경입니다. 아무튼 그러고 있자니 '이러다 또 부러지는 거 아닐까' 겁이 덜컥 났습니다. 당장 다음 레슨까지 연습을 못해가는 게 속상한 일이긴 하지만, 차라리 안전하게 선생님께 조율을 맡기고, 주아 돌리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냥 포기했습니다.


주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니까, 전문가들조차도 주아로 미세한 음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아서 개량 주아를 쓰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여름철일수록 습기를 머금어 뻑뻑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틈과 틈 사이가 꽉 아물려 더 안 돌아가게 되는 것이고요. 이럴 때 무리하게 힘을 주면 안되고, 선풍기 바람도 쐬어가면서 살살 달래줘야 한다고...


다음 주 레슨 때는 주아 돌리는 요령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배워봐야겠습니다. 아무튼 한바탕 악기가 부러지는 난리 끝에 좋은 교훈을 얻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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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속상하네요.


국악사에서 대여한 해금인데, 어제부로 2개월 약정기간이 끝나서 연장 계약을 했더랬습니다. 연습하려고 켰는데... 이 지경이 되어버려서 무진장 속상하네요.


박살난 부분은 해금의 '주아'라는 부분인데, 해금의 현(줄)을 팽팽하게 감거나 느슨하게 푸는 역할을 하는 부위입니다. 약간 레버 같은 느낌인데, 오늘따라 유난히 뻑뻑해서 잘 안 돌아가더라고요. 있는 힘껏 누르면서 돌리는데 '뚝' 하고 부러져버렸습니다.


머릿 속이 하얘졌습니다. 대여 악기를 박살냈으니... 당장 연습을 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수리비 걱정부터 들더군요. 바로 국악사에 전화해보니 "요령으로 돌려야하는데 너무 힘주면 부러질 수 있다"고 하네요. 일단 내일 당장 가서 수리하기로 했습니다. 수리비가 얼마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속상하네요. 안그래도 돈 없어서 쪼들리는 상황에... 왜 이리 되는 일이 없는지.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원래 주아 부분은 여름철에 쉽게 뻑뻑해진다고 합니다. 그럴 때는 선풍기 바람도 쐬어주면서 느슨하게 만들어준 다음에 슬슬 돌려야 한다는데, 모르고 완력으로만 돌리려고 했으니... 이번 참에 좋은 교훈 얻었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속상한 건 어쩔 수 없네요.


수리비가 많이 들지 않기만을 기도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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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포스팅한 바와 같이 요즘 해금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링크: http://gabeci.tistory.com/169)


배우기 시작한 지 2개월 정도 되었는데, 실력 있는 선생님의 친절한 지도 덕분에 꽤나 진도가 빠른 편이다. 내가 느끼기에도 진도가 참 빠르다고 느꼈는데, 우리를 지도하시는 선생님도 다른 수강생들에 비해 우리 반이 진도가 빠른 편이라고 하신다. 다들 잘 따라와서 그런거라고 하니 내심 다행이다.


참고로 내가 수강하는 반은 취미반으로, 나를 포함해서 총 3명이 1주일에 1회, 1시간씩 교습을 받아왔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같이 교습 받던 한 분이 '진도를 따라가기 벅차다'는 이유로, 1:1 개인레슨으로 갈아타는 바람에 지금은 2명이서 교습을 받는 상황이다. (그래서 비용은 고정이지만, 교습시간이 40분으로 줄었다)


아무튼 해금을 배우러 부천까지 왔다갔다 하느라 생각보다 오가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데, 워낙 선생님의 실력도 믿을 만하고, 친절하게 지도를 해주셔서 만족스럽게 다니고 있는 중이다. 나날이 배우는 재미가 있어서 40분이라는 시간이 정말 짧게 느껴질 정도다. (사실 오가는 시간에 비해 40분은 정말 짧긴 짧다)


아무튼 요즘 해금을 배우면서 느끼는 게 많다.


첫째,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우리 반이 유독 진도가 빠르다보니 벌써 '오나라'와 같은 간단한 곡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곡을 따라가는 것에만 집착하다보니, 기본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른 수강생의 속도에 맞춰 곡 연주하는 것에만 계속 신경쓰다보니, 결국 제일 중요한 자세에서부터 잘못된 버릇이 들어버렸다. 


해금은 왼손으로 입죽(해금의 몸체)의 중현(안줄), 유현(바깥줄)을 잡은 상태로 연주해야한다. 이때 손가락 사이는 절대 벌어져서는 안된다. 음이탈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목이 계속 떨어지고, 손가락이 벌어지는 잘못된 버릇이 계속 나왔던 것. 자세가 잘못되었다보니 제대로 된 음이 나올 리가 없었고, 결국 나는 집에 가서 다음 수업 전까지 계속 손가락을 붙이며 줄을 잡는 연습만 했다. 그렇게 기본을 다시 잡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수업을 따라가기가 훨씬 수월했다.


둘째, 일희일비하지 말 것.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본 자세가 제대로 안 잡힌 상태에서 수업을 듣다보니 당연히 다른 수강생의 속도에 맞춰갈 수가 없었다. 결국 교습 시간 내내 지적을 받았고, 자격지심까지 느꼈더랬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우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약간 부아가 치밀기도 해서, 앞서 말한 것처럼 계속 연습을 해갔더니, 일주일 만에 "손모양이 훨씬 좋아졌다", "손모양이 예쁘게 잡혔다"고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우울한 마음은 가셨지만, 다시 한 번 일희일비 해서는 안되겠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무예를 수련할 때도 슬럼프가 올 때마다 늘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생각이었음에도, 어쩌다 한 번씩은 꼭 이런 감정을 느끼곤 한다. 결국 이런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도 자기 자신과의 부단한 싸움인 것 같다.


셋째,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 교습은 일주일에 하루 뿐이지만, 다른 날에도 언제든지 와서 학원의 공용 해금을 가지고 개인 연습을 해도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개인 연습을 위해 주말쯤에 한 번 더 학원을 방문하곤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거리가 멀다보니 계속 가기가 힘든 것이 사실. 처음에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더 가서 연습할 수도 있었지만, 진도를 나가면 나갈수록 일주일에 하루 더 연습한다고 해서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란 걸 느꼈다. 


결국 집에서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런데 해금을 사자니, 비용도 만만찮고, 솔직히 해금을 계속 배울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도 없어서 일단은 악기사에서 2개월 기간 약정으로 대여했다. 덕분에 지금은 학원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매일 매일 개인 연습을 할 수 있다.


처음 몇 번은 오히려 악기를 빌려놓고도 내팽개쳐두고 연습을 게을리했는데, 연습을 안 하면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뒤로는, 가급적 하루에 30분 이상은 연습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 한 30분 정도 쉬지 않고 계속 연습하다보면, 줄을 잡고 있는 왼손가락 첫째마디가 끊어질 듯 아프다. 줄이 워낙 팽팽한 데다가, 높은 '도' 음을 내기 위해서는 줄을 있는 힘껏 쥐어야해서 손가락이 아플 수밖에 없는 것. 그러나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하질 않았나. 아파도 참고 계속 연습하다보니, 엊그제 수업 때는 "집에서 정말 열심히 연습한 티가 난다"는 칭찬까지 받았다. 이제는 오히려 왼손가락에 느껴지는 고통이 '그만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져서 즐겁다.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꼭 해금 뿐만이 아니라 세상 어떤 일에건 해당되는 말이다. 무예든, 커피든, 공부든... 위에서 열거한 교훈들은 이미 무예를 수련하면서 깨달은 바들이기도 하다. 


아마 무예를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해금을 비롯해 어떤 일을 하건 간에, 슬럼프나 위기가 왔을 때 극복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이건 나랑 안 맞아" 하고 일찌감치 때려쳤을지도 모를 일. 하지만 이미 무예 수련을 통해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는 것',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중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 있어 무예 수련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큰 지혜를 주는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배운 대장금 OST '오나라'를 연주해보았다. 아직은 실력이 부족해서 음이 삐걱거리고, 음이탈 현상도 잘 일어난다. 해금은 '절대음감'을 요구하는 쉽지 않은 악기라고 하는데, 원체 음악적 소양이 없는 관계로 아직도 어렵기만 하다. 개인 점검 차원에서 찍은 영상이니, 무단 불펌 금지!!!)


PS. 참고로 내가 배우고 있는 곳은 부천시청역 1번 출구 근처에 있는 '해금소리'라는 학원으로, 원장 선생님이 퓨전국악그룹 연리지의 멤버이기도 하다. 실력도 있고, 꽤나 친절하게 가르쳐주셔서 만족하며 다니는 중이다. 관심 있는 분들은 상담 받아보시길... (부천 해금소리 블로그 링크: http://blog.naver.com/dibrlv)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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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해금학원에 등록하고서 첫 수업을 듣고 왔다.


부천에 위치한 '해금소리'라는 작은 교습소인데, 원장님이 퓨전국악걸그룹 '연리지'의 리더로, 실력이 있는 분인 것 같았다. 



처음에는 학원이 집과 거리가 좀 있어서 망설여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일반 국악학원보다는 해금 전문 학원에서 배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어서 고르게 되었다. 또 원장님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니, 믿고 배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이곳을 선택했던 것이다.


해금과의 첫 인연


사실 옛날부터 해금은 국악기 중에서도 나에게 매우 매력적인 악기였다. 


해금의 매력을 알게 된 건,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던 때였다. 노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해금연주가 강은일 씨가, 생전에 노 대통령이 즐겨 불렀다는 '아침이슬'을 해금으로 독주했는데, 그 소리가 그렇게 구슬프게 들릴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해금의 소리에 반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아마 은연 중에 해금을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었나보다. 오늘 친구에게 해금을 배운다고 얘기했더니, 그때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드디어 꿈을 이루는 모습이 멋지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기억 못하는 걸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신통방통하다만...)


전역 전 작성한 버킷리스트


하지만 본격적으로 해금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못 하고 있었는데, 전역하기 직전에 해금을 배워야겠다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생겼다.


말년 휴가 때, 우연히 유튜브에서 해금연주가 조혜령 씨의 '이등병의 편지' 해금 연주를 듣고서, 큰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그 당시의 나는 나가서 뭐 먹고 살아야할지에 대한 고민이나, 좀 있으면 떠나야 되는 부대에 대한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인해 한동안 싱숭생숭하던 때였는데, 안그래도 구슬픈 '이등병의 편지'를 구슬픈 소리를 내는 해금으로 들으니 마음이 크게 동했더랬다.



그래서 부대 복귀하자마자, '전역 후 꼭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목록에 '해금 배우기'를 넣었는데, 전역하고 딱 한 달 조금 넘어서 해금 배우기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느리지만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사실 제일 걱정되는 건, 내가 음치에 박치라는 것. 어느 악기가 안그러겠느냐마는 특히나 해금은 연주자의 섬세한 손길과 절대음감이 요구되는 매우 어려운 악기라고 해서, 지레 겁부터 먹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내가 음악에 대해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쪽으로는 완전 둔재에 가까우니... 


하지만 '재능이 없더라도 꾸준히 즐기면서 열심히 하면 대성할 수 있다'는 무예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얻은 교훈이, 해금에도 적용되리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수업에 참여했다. 


내가 등록한 취미반은 원래 4명의 소그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명이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세 명으로 줄어서 더 단촐하게 수업을 받게 되었다. 인원이 적어서 원장님의 세심한 지도를 받기에는 적합하나, 덕분에 비용이 예상치 못하게 1만원이나 늘어 부담이 좀... 정말 뭔가 배우려면 투자를 해야하는데, 그러려면 역시 돈이 많이 드는 것 같다. 이래서 사람은 돈을 많이 벌고 봐야 하는 건가.



강의 시간이 1시간으로 짧기도 하거니와, 멀리서 와서 어렵게 배우는 악기이니만큼, 원장님의 설명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경청하고, 또 열심히 줄 당기기 삼매경에 빠져있다보니 어느새 '수고하셨습니다'하고 수업이 끝나버렸다. 이제서야 조금 감이 잡히기 시작한 것 같은데, 이대로 가버리면 다음 주에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릴 것 같아, 수업이 끝나고도 혼자서 20분을 더 연습하다가 문을 나섰다.


진도를 나가려면 평소에도 열심히 연습을 해주어야 한다고 하는데, 악기가 없으니... 아무 때나 와서 연습해도 된다고는 하는데, 거리가 거리인만큼 자주 오는 건 힘들 것 같고... 가끔 바람 쐴 겸 들러서 연습을 해야겠다. 재능이 없으면 열심히라도 해야지... 무예나 악기나.. 결국 모든 건 일맥상통하는 법이다.


아무튼 아직은 '끼긱끼긱' 거리며 칠판 긁는 소리나 내는 형국이지만, 어찌 첫 술에 배부르랴. 꾸준한 연마로 나 홀로 멋진 곡 한 곡을 독주할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해본다. 어쨌든 이렇게 버킷리스트를 실천했다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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