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이용해 서촌(경복궁 서쪽 일대에 자리잡은 마을) 나들이를 다녀왔다. 통인시장에서 엽전으로 기름떡볶이도 사먹고, 옛 한옥의 흔적이 남은 골목길을 걸으며 잠시나마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서촌의 명소인 '통인한약국'을 방문했는데, 여기에서 참 좋은 시간을 보냈기에 소개해보려 한다.


통인한약국은 말그대로 '한약'을 전문적으로 제조해서 파는 약국이다.


통인시장에서 남쪽 방향으로 내려오다보면 대오서점 맞은 편에 작은 샛길이 하나 있는데, 그 샛길 바로 앞에 '통인한약국'이라는 간판이 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난 이 약국이 어딨는지 몰라 빙 돌아 한참을 헤매다 뒤늦게서야 가까운 데 있었다는 걸 알고 찾아갔다.



(사진: 통인한약국 외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서촌의 명소라고 소문이 나 있기도 하고 요새 내가 한의학에 부쩍 관심이 많아져서이다. 실제로 얼마 전부터 장이 안 좋아 휴가 때마다 틈틈이 한의원에 가서 침, 뜸치료를 받고 한약도 3개월째 복용 중이다. 군 병원인 서울지구병원에도 한의학과가 있어 부대에서도 매주 1회씩 외진을 가 침을 맞기도 했다.


그래서 과연 '한약국은 어떤 곳일까' 하는 궁금증에 이곳을 찾았다. 사실 서촌 나들이를 계획할 때부터 이미 내 마음은 여기에 쏠려있었다. 


이곳은 한옥 건물로 이루어진 한약국이었는데, 처음에 어떻게 들어가야 하나 입구에서 괜히 쭈뼛거리며 망설이고 있었다. 때마침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기에 용기를 내서 입구에 들어서니 마침 문이 열리면서 안에 있던 약국 실장님이 어서 오라고 반겨주셨다. 해맑게 웃으시면서 자리를 안내해주셔서 처음의 긴장은 풀리고 나도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다.


이곳은 약국이기도 하지만 몸에 좋은 한방차와 허브차를 파는 카페이기도 했는데, 뭘 먹을까 고민할 새도 없이 "장이 안 좋아서 한약을 먹고 있다"고 하니, 실장님이 십전대보차를 추천하셔서 그걸로 주문했다. 이곳에서는 갖가지 약재를 넣어 쌍화차와 십전대보차를 직접 가마솥에 넣고 끓이는데, 다량으로 끓인 뒤에 팩에 보관하고 있다가 이렇게 데워서 내준다고 한다. 확실히 한약 맛이 진하게 나는 것이 몸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사진: 통인한약국 입구의 돼지 모형과 내부 전경)


개인적으로 한약의 매력에 푹 빠진 것도 바로 이 향과 맛 때문이다. 알약 혹은 가루 형태인 양약은 냄새에서부터 특유의 병원냄새(?)가 나고, 맛은 당연히 없다. 맛을 느낄 새도 없이 물 한 모금에 꿀떡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한약은 은은하게 퍼지는 구수한 향이 있고, 한 모금 마시면 입 안에 향이 퍼지는 것이 느낌만으로도 이미 몸이 좋아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약은 갖가지 약재를 넣고 오랜 시간 달여야 하기 때문에, 달이는 사람의 정성이 들어간다. 형이상학적인 이야기일 수는 있지만, 달이는 사람의 기(氣)도 담기기 때문에 더 몸에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전에 읽었던 <식탁의 영성>이란 책에서도 한 그릇의 쌀밥을 먹더라도, 그 쌀밥에는 쌀을 자라게 하는 하늘과 땅의 기운, 쌀을 수확해서 탈곡하는 농부의 정성, 짓는 어머니의 정성이 담겨 내 몸에 조화를 가져다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본론에서 너무 벗어났는데, 여하간 고풍스러운 한옥에서 차를 마시고 있자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때마침 완연한 봄 날씨여서 그랬는지 창 밖으로 비치는 햇살도 따사로웠다. 거기에 실장님께서 입가심하라며 허브차까지 내주셔서 입이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환자가 한약사님과 상담하는 모습을 슬쩍 봤는데, 맥도 짚고 한의사가 하는 웬만한 진찰은 똑같이 하시길래 신기했다. 침만 안 놓는다 뿐이지 한의원과 크게 다를 것도 없어 보였다.


아무튼 차를 마시며 실장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내가 현역 군인이란 이야기도 나오게 되고, 진로 문제로 고민이 많다고 하니 실장님도 당신의 아들이 나와 같은 말년 병장이라며 전문하사로 말뚝을 박는다고... 나에게도 말뚝 박는 게 어떻냐는 권유를 하셨다... ^^;;; 그리고 직접 간부 모집 관련 연락처까지 주셨다.... ^^;;;;;; 


(사진: 메밀과 귤피를 혼합해서 제조했다는 허브차)


'찻잔이 비워지면 일어서야지' 했는데 찻잔이 비워질 때마다 계속해서 차를 채워주시는 데다가, 이렇듯 서로 간에 이야기를 주고받다보니 어느새 3~40분이 훌쩍 흘러버렸다. 나중에는 한약사님도 올라오셔서 간단한 상담을 받았는데, 평소 다니고 있던 한의원보다도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셔서 진찰 받으러 온 건지, 카페에 차 마시러 온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5천원짜리 차를 마신 것치고는 너무나 과분한 대접을 받은 느낌이었다. 


차를 다 마시고 나가려고 하니, 실장님이 악수를 청하며 "나중에 또 와서 한약사님하고 더 얘기 많이 해봐라. 한약사도 괜찮은 직업이다"라고 또 새로운 진로를 소개시켜주셔서 솔깃했다. (귀가 너무 얇아서....) 아무튼 관심 속에서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어 훈훈한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여기 단골이 될 것만 같다. 가끔씩 사람이 그립고, 정이 그립고, 한약의 향기가 그리워질 때면 이곳을 찾아 몸과 마음을 치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소개시켜주고 싶다는 생각도...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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