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정도전을 위한 변명

저자: 조유식

출판사: 휴머니스트

출편년도: 2014년



<책 소개>


정치란 무릇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 혁명가 정도전, 민본주의 국가 조선을 설계하다


조선의 건국은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라 고려 말의 구습을 청산하는 혁명적 사건이었다. 이때 세대교체를 이룬 주역이 바로 삼봉 정도전이다. 그러나 그는 태종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500년을 만고역적의 대명사로 낙인찍혀왔다.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고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인 혁명가 정도전은 '나라는 백성이 근본이고, 백성은 먹을 것이 하늘'이며, '정치란 무릇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민본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나라 조선의 문물제도를 만들었으며, 경복궁을 비롯한 서울 도심의 기본을 설계하는 등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다져놓았다. 그럼에도 그는 왜 역적의 누명을 쓸 수밖에 없었는가? 여기 정도전의 삶과 죽음을 집요하게 파고든 파란만장한 기록이 그의 목소리를 대신해 역사의 진실을 들려준다.


<책 리뷰>


입대 전에 정말 재미있게 본 드라마 중 하나가 바로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이었습니다. 사실 그 전에도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일생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했고, 따라서 그의 캐릭터에서 큰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정도전>이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면서, 이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공부하면 할수록 참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조선왕조를 태조 이성계가 세운 것으로 생각하지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조선을 세우고, 조선을 설계한 이는 바로 '삼봉 정도전'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부패한 고려왕조를 뒤엎고 새 왕조를 세우겠다는 야심으로 변방 호족인 이성계를 설득해 왕위에 올린 이가 바로 정도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도전이 없었더라면 조선 역시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성계는 그 자신 스스로가 왕조를 세울 야심을 갖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일생을 보면 스스로 무언가를 쟁취하기보다는, 누군가 부추기거나 추대하면 마지못해 수락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물론 창업군주이니만큼 겸손의 미덕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미화일 수도 있겠지만, 기록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살펴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도전이 조선을 세우기 위한 설계도를 가지고 이성계를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함주막사에서의 운명적인 만남이 없었더라면... 이성계는 그저 그런 변방의 무장으로 남았으리라 봅니다. 설사 중앙에 올라서더라도, 이인임과 같은 권신이 되었지 새 나라의 창업군주까지는 넘보지 못했을 겁니다.


여하간에 이 드라마가 한창 방영되던 시기에, 정도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주문했던 책입니다. 하지만 읽어보기도 전에 군대에 가느라... 전역하고서야 비로소 책을 펼치게 되었군요. 그래도 평생 서고에 묵혀두지 않고, 읽게 되었으니 다행한 일 아니겠습니까.


이 책은 정도전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국내 최초의 대중역사서라고 해도 틀린 표현이 아닐 것 같습니다. 1997년에 초판이 나왔는데, 실제로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정도전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촉발되었다고 하니까요. 정도전에 대해 많이 알려진 오늘날까지도 정도전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이 책이 단연 독보적으로 우선순위에 노출됩니다. 그만큼 정도전에 대해 자세하게 다룬 책이라는 뜻이겠지요. 아무튼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도 정도전에 대해서는 다들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고 하니, 정도전은 자신을 역적으로 규정한 조선왕조가 무너진 뒤에도 꽤 긴 시간 동안 역사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책은 정도전 정권이 무너지는 '왕자의 난'부터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이방원의 칼날 앞에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한 정도전의 모습과,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정도전의 모습... 실제 기록에 있는 대조적인 두 장면을 언급하면서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가 의문을 던집니다. 저자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전제를 언급하며, <실록>과 같은 곳에 언급된 정도전의 행적은 많이 왜곡되었을 거라 추정합니다. 그리고 책 제목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바지만, 저자는 승자(이방원)에 의해 왜곡된 모습으로 알려진 패자(정도전)의 올바른 모습을 복원하고자하는 시각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그러기 위해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상당히 논리적으로 상황을 추론하고 있습니다. 정도전이라는 인물을 신원하기 위해, 과도한 상상을 동원한다거나 억지 추리를 하는 무리수는 두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기록의 허술함(진실의 여지를 남겨두기 위한 사관의 의도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만)을 바탕으로 조각난 역사의 진실을 퍼즐 맞추듯이 끼워나가는 방식이 흥미진진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느낀 것이지만, 정도전은 정말 천재적인 인물인 것은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국방 그리고 음악까지... 그가 발을 걸치지 않은 분야가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얕게 알고 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성종 때 완성되는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의 모티브가 되는 <조선경국전>을 지었으며, 요동정벌을 준비하면서 군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진도>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만든 <진도>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라이벌이었던 태종 이방원이 훗날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데 적용합니다. 웬만해선 그의 흔적을 부정하고 싶었을텐데, 그만큼 뛰어난 병법이었다는 뜻이겠지요) 조선왕조 개국을 찬양하는 노래도 스스로 지었고요. 이 모든 것을 정도전 혼자서 했다고 하니, 세종대왕 못지 않은 천재가 바로 정도전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요. 오히려 그런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을 타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울 수 있었죠. 다만 사람을 잘못 만났다고 해야할까요, 아니면 그것이 그의 한계였다고 봐야할까요. 


어느 시대가 되었건 간에 정도전 같은 인물은 살아남기 힘듭니다. 천재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독주하는 인물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집단에서도 눈총을 받기 마련입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요.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정도전과 이성계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그래서 '왕자의 난'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더라면, 정말 지금과는 다른 역사가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쉬움도 있고요. 그래도 태종 이방원이 집권했기에 '세종대왕'이라는 걸출한 위인을 만날 수 있었고, 오늘날 우리가 한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볼 따름입니다.


아무튼 정도전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그의 삶과 철학은 알기 힘들었는데, 이 책을 통해 좀 더 그의 삶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도전이라는 캐릭터에는 큰 감흥을 못 느꼈었는데, 이제는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대해 상당히 흥미를 느낍니다. 


그의 천재적 능력을 따라가기에는 제 자신의 능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민본'을 위한 그의 지고지순한 이상과, 권력에 도취하지 않고 젊은 시절 품었던 꿈을 실현하고자 했던 뜨거운 열정... 여러모로 삶을 살아가는 자세나 태도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정도전, 어쩌면 이런 인물이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계에 꼭 필요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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