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1박 2일로 친구들과 서울 시내 박물관 답사를 다녀왔더랬습니다. 


이번에 다녀온 곳중에 용산 국립중앙박물관도 코스로 포함이 되어있었는데요, 그곳에서는 마침 '쇠, 철, 강 - 철의 문화사'라는 기획전시가 지난 26일부터 열리고 있었습니다.


인류가 가장 오래 사용한 금속이라는 '철'의 역사를 통해 인류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고 있는 전시였습니다. 동, 서양에서 철이라는 금속을 어떤 방식으로 운용해왔는지 살펴볼 수 있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시된 유품의 종류나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역시 제 눈길을 사로잡은 유품들은 '칼'들이었습니다. 한국과 일본, 중국 그리고 이란까지 다양한 나라의 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그러다보니 세계적으로 어떤 형태의 칼들을 운용했는지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도'(실제 유물은 남아있지 않아 복제품으로 알고 있습니다)라던가 의병장들이 쓴 칼, 청나라 군인들이 쓴 칼(현재 중국무술에서 사용하는 연검의 형태와 동일합니다)들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요새 일본드라마 <신선조> 시리즈를 애청하고 있는 관계로 계속 일본도에만 눈이 가더군요. 보면 볼수록 멋있습니다.


아예 도검 전시회였다면 더 많은 칼들을 볼 수 있었을텐데, 주제가 그렇지 않다보니 전시된 칼의 종류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짧게는 몇 백 년에서부터, 길게는 천 년 이상 오래된 실제 유물들을 볼 수 있는 기회인만큼 연휴 때 한 번 들러서 관람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시는 11월 26일까지. 성인 6천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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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링크: http://omn.kr/nojs


지난 6월 27일부터 7월 1일까지 독립기념관 주최로 4박 5일 간 열린 '2017 대학생 나라사랑 역사탐방'에 참여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일본 가나자와·도쿄 지역 일대의 독립운동사적지 등을 둘러보는 내용으로 구성됐습니다. 탐방하는 동안 보고 들으며 느꼈던 경험을 탐방수기로 묶어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블로그에 전문을 옮겨오기에는 다소 번거로운 것 같아 앞으로는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뒤, 기사로 깔끔하게 정리된 내용을 블로그에 링크로 첨부하기로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많은 열람과 공유 부탁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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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위협받는 국가유공자들의 삶, 국가무한책임은 어디로?



링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449&aid=0000132522&sid1=001


2007년 창설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6.25 전쟁 당시 전사한 호국영령들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된 부대다.


국유단은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추진하는 목적에 대해 그것이야말로 '국가무한책임'을 완수하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은 국가가 마지막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백 번 옳은 말이다.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꽃다운 청춘을 불살라가며 희생한 모든 국가유공가자들은 그에 걸맞는 대우와 보상을 받아야만 한다. 여전히 이름 모를 산야에 묻힌 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리는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일을 영구 지속사업으로 국가가 주도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국가무한책임의 범주에는 지금 당장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는 생존 국가유공자들도 포함되어야만 한다. 우리나라에는 '국가보훈처'라는 기구가 있어 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모든 국가유공자들에게 그에 걸맞는 대우와 보상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제1연평해전에 참전해 우리 해군의 승리를 이끌었고, 그 댓가로 자신의 소중한 삶을 잃은 한 참전용사가 편의점에서 콜라를 훔치다 적발됐다는 사연은 보훈처가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품게 한다.


물론 보훈처에서도 국가유공자를 보살피기 위해 연금을 지급하는 등 나름대로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살 곳이 없어 고시원을 전전하거나 당장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해 폐지를 줍는 등 생계에 위협을 받는 국가유공자들의 이야기가 매년 들려오고 있으니, 과연 이들을 위한 보훈처의 역할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국가유공자를 위한 제도가 형식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보훈처가 미처 살피지 못한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고위공직자 중 '적폐청산' 1호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을 전격 경질하고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국가보훈처의 위상을 '장관급'으로 격상하겠다는 등 보훈사업에 적극적인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이제 그 의지에 걸맞는 실천이 필요할 때다.


2017년 6월 24일


역사독서모임 독사신론(讀史新論)

(http://facebook.com/suhistory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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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저녁 신촌 미플에서 열린 독사신론 창립 기념 오픈특강 <문재인 마크맨이 본 인간 문재인>이 몽양역사아카데미 회원 등 20여명 넘는 청중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이번 강의는 지난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밀착취재했던 MBN 윤범기 기자님(現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및 청와대 출입기자)을 연사로 모시고 대선 기간 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세히 청해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8시에 시작된 강의는 예정된 종료 시간을 훌쩍 넘긴 10시가 되어서야 마무리할 수 있었을 정도로 강의는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됐습니다. 특히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강사님께서 펼쳐놓은 인간 문재인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들, 청와대 출입기자의 냉철한 시각으로 분석한 대통령 문재인의 공약과 강·약점들은 어디 가서도 들을 수 없는 알찬 내용들이었습니다. 강사님의 열강에 못지 않게 청중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는데요, 청중들은 "보다 객관적인 관점으로 문재인 정부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호평했습니다. 


행사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저희는 "학생들이 열정만 갖고 시작한 일이라 서투르고 미숙한 점이 많다"며 "지속적인 기반 구축과 정비를 통해 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여러분께 다가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어 "현재는 수원대 내의 사학비리를 해결하기 위한 학내투쟁에 집중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에서도 사학비리 척결에 적극적 의지를 보이고 있는만큼, 청중 여러분들께도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습니다.


저희 독사신론은 지난 4월 수원대 학우들이 모여 창립한 역사독서모임으로 한국사는 물론 동·서양사를 공부하는 순수 학술토론모임입니다. 저희는 '지금 이 순간도 내일이면 역사가 된다'는 표어 아래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의 당대사를 공부하며 현실참여운동에도 앞장 설 계획입니다. 올 하반기부터 일반회원을 받을 예정이며 남녀노소 누구나 회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열린 모임'을 지향합니다. 앞으로도 이번 특강과 같은 기획특강을 정기적으로 개최할 예정이오니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 독사신론 페이스북 주소: http://facebook.com/suhistory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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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항일영화' 전성시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줄지어 개봉하고 있는 요즘이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암살>을 시작으로 2016년 작년 한 해에만 <동주> <귀향> <덕혜옹주> <밀정> 등 무려 네 편의 영화가 잇달아 개봉한 것이다. 올여름에도 벌써 <박열> <군함도> 등 두 편의 항일영화가 개봉을 앞둔 가운데, 28일 개봉 예정인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이 13일 언론 및 일반 시사회를 통해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였다.


1920년대 아나키스트 부부의 이야기


영화 <박열>은 1920년대 일본을 무대로 활동했던 아나키스트 항일운동가 박열(1902~1974)과 그의 아내이자 동지 가네코 후미코(1903~1926)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1923년 일본 열도를 뒤흔든 '관동대지진' 사건을 역사적 배경으로 한다. 유례없는 대지진으로 일본 전역이 혼란에 휩싸이자 수습책을 논의하던 일본 정부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살포한다. 


광기에 휩싸인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만들어 조선인들을 보이는 족족 학살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일본 정부 역시 본토 내 불령선인(일제가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조선인들을 얕잡아 부르던 말)들을 대대적으로 잡아들인다. 이 과정에서 아나키스트 조직 '불령사'를 이끌며 '일본 황태자 폭탄 암살 작전'을 준비하던 박열(이제훈 분)과 가네코 후미코(최희서 분)가 체포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사진: 영화 <박열> 스틸컷 - 출처: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이준익 감독, 마침내 <동주>를 뛰어넘다


영화는 대역죄 혐의로 체포된 박열 부부의 옥중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공간적 배경은 대부분 좁은 감옥과 재판정에 국한된다. 영화 <암살>과 <밀정> 속에서 묘사된 아슬아슬한 총격전이라든지 스크린을 뒤흔드는 폭파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실제 박열은 황태자 암살 계획을 실행하기도 전에 체포된 탓이다. 2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 동안 이렇다 할 액션 장면이 없다는 점은 자칫 관객들이 지루함을 유발케 할 우려도 있었다.


실제로 이준익 감독의 전작 <동주>가 그랬다. 윤동주 시인의 삶이야 그 자체로 흠잡을 데 없이 고귀했고, 시인의 역할을 맡아 달콤한 목소리로 시(詩)를 읊었던 배우 강하늘의 모습은 팬심을 사로잡을 만했다. 그 결과 입소문을 타고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선전했다. 그러나 영화적 재미가 있었던 작품이라고 말하기엔 선뜻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장면 없이 시종일관 느릿하고 조용한 템포로만 흐르던 <동주>의 전개는 다소 밋밋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실화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극의 한계일 수도 있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시를 무기로 독립운동을 했던 윤동주 시인에게 총을 쥐여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나 <박열>은 전작 <동주>의 한계를 뛰어넘는 데 성공했다. 관객들의 눈을 현혹하는 자극적인 전개 없이 역사적 고증에만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영화적 재미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인 것이다. 그 열쇠는 바로 '해학'에 있었다.


한국인 특유의 해학적 정서로 그려낸 암울한 시대


실제 역사가 그랬듯이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시대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시대다. 주권을 잃은 채 노예적 삶을 강요받는 식민지 백성들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일 수가 없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항일영화는 시종일관 진지함과 엄숙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늘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왔던 게 사실이다.


반면 <박열>은 한국인 특유의 해학적 정서로 암울한 시대를 경쾌하게 그려냈다. 일제에 의해 피체되는 험악한 상황에서조차 박열 부부를 비롯한 불령사 회원들은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즐기는가 하면, 다 함께 '인터내셔널가'를 합창하며 유치장을 뮤지컬 무대로 둔갑시킨다.


취조가 시작되자 박열 부부는 오히려 자신들이 검사를 심문하는가 하면 일본인 간수를 통해 서로 간의 '러브레터'를 주고받는 등 한마디로 이들을 '가지고 논다'. 상대적으로 일본 내각의 고위 대신들은 박열에게 휘둘리는 어리숙한 캐릭터들로 묘사된다. 캐릭터들의 해학적 묘사에 맞춰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들조차 경쾌하기 짝이 없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박열이 조선의 관복을 입고 재판정에 나타났을 때다. 박열을 지켜보는 영화 속 법정의 방청객들이 폭소를 터트리는 동시에 스크린 밖 객석에서도 폭소가 터져 나왔을 정도로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 속에 흘러간다.



(사진: 영화 <박열> 스틸컷 - 출처: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물론 해학도 정도를 넘어서면 자칫 가벼워 보일 우려가 있다. 시사회에 앞서 열린 무대인사에서 이준익 감독 역시 "영화의 교훈적 의미와 재미 둘 중 하나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게 고민이었다"고 고백했다. 재미를 잡으려다 자칫 그 시대를 너무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열>은 영화적 재미와 교훈적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박열 부부의 유쾌한 투쟁에 웃음을 짓다가도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라며 일갈하는 박열의 모습에 짐짓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시쳇말로 '웃픈 영화'인 셈이다. 일본 제국주의와의 투쟁을 한국인 특유의 해학적 정서로 풀어낸 <박열>은 그래서 항일영화의 새로운 전기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까닭이다.


빛을 발한 배우들의 연기... 배우 최희서의 발견


물론 이 역시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가 뒷받침해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박열 역으로 배우 이제훈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영 미덥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실제 박열의 사진을 보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험상궂은 그의 외모를 표현하기에 이제훈은 너무나도 곱상한 외모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의 우려를 깨고 이제훈은 역사 속의 박열을 현실에서 되살려냈다. 연인 가네코를 향해서는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동자를 하다가도 일본 제국주의를 향해 분노를 쏟아낼 때 눈동자에 서리는 광기는 영락없는 박열 그 자체였다. 타임머신이 있어 그 시대의 박열을 마주했더라면 이제훈의 눈빛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단언컨대 영화 <박열>의 최대 수혜자는 가네코 역을 맡은 배우 최희서라고 하겠다. 이미 <동주>를 통해 이준익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바 있던 그녀는 <박열>을 통해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매력을 마음껏 뽐낸다. 어설픈 조선어를 구사하는 일본 여인의 억양은 사랑스럽게 느껴졌고,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에 맞서 분노의 포효를 쏟아낼 때는 그 서슬 퍼런 광기에 소름마저 돋을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최희서는 역사의 뒤편에 가려진 채 주목받지 못하던 가네코 후미코라는 여인을 성공적으로 되살려냄으로써 대중들에게 그 이름을 알리는 데 톡톡한 공을 세웠다.


역사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주인공을 내세워 비교적 덜 알려진 숨은 주인공을 발굴해내는 기법은 이미 이준익 감독이 전작 <동주>에서도 효과를 톡톡히 본 방식이었다. <동주>를 통해 관객들은 주인공 윤동주(강하늘 분)보다 친구였던 송몽규(박정민 분)라는 존재에 더 주목했다.



(사진: 영화 <박열> 스틸컷 - 출처: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잊혀진 이들을 만나 반갑고 고마웠던 <박열>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 시인은 알아도 박열은 잘 모르지 않느냐"며 개봉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쏟아져 나온 항일영화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역사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익히 알려진 사실들을 재구성한 사례가 많다. 그러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라는 이름은 그 짧은 항일독립운동사에서조차 비중 있게 다뤄진 이름들은 아니었다.


우리가 몰랐던 그들의 삶을 만나는 것은 관객들의 입장에서도 무척이나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역사 속 숨은 영웅들을 발굴해 오늘에 되살리고자 노력하는 이준익 감독의 시도는 그 자체로 박수받아 마땅할 일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시대, 암울했던 삶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며 싸웠으나 역사에서마저 잊힌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영화 <박열>은 더욱 반갑고 고마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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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베치


안녕하십니까. 역사독서모임 독사신론(讀史新論)입니다.


독사신론은 지난 4월, 수원대 사학과 학생들이 모여 만든 작은 역사독서모임입니다. 한국사를 비롯 동·서양의 세계사를 아우르며 역사서적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모임입니다. 수원대 사학과 학생들이 모여 시작했지만 '열린 모임'을 지향하고 있으며 대학생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다양한 시민들의 참여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모임 역시 서울의 한 독립서점에서 격주 금요일 저녁마다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저희 모임에서 창립 기념 오픈특강을 마련했습니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밀착취재했던 기자, 일명 '문재인 마크맨' 중 한 분이신 MBN 윤범기 기자님(청와대 및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출입기자)을 모시고 옆에서 지켜본 인간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까 합니다. 


카메라 밖 인간 문재인의 사소한 습관과 일상,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진솔한 이야기들을 솔직담백하게 들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또 평소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궁금했던 점들에 대해 기탄없이 질문하고 답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별도의 참가자격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마시고 관심 있으신 분들은 서둘러 신청해주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일정과 신청방법은 포스터를 참조하시고, 신청은 아래 링크로 부탁드립니다. 

(꼭 신청하고 오셔야 인원파악이 가능합니다!) 


구글독스 신청 링크: https://goo.gl/forms/0mt4PHEXFDFw7uR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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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가 제37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었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일성으로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라"고 지시하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후 9년 만에 공식 석상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진다고 해서 국민 모두가 들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이날 기념식만큼은 생중계로 지켜보고 싶었는데, 하필 수업시간하고 겹치더군요. 아쉬운대로 같이 수업을 듣는 후배에게 "생중계 하는 동안만 잠깐 강의실 밖에 나가서 보고 와야겠다"고 했는데, 제 후배가 "그러지 말고 교수님께 양해를 구해서 다같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는 게 아닙니까.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는데 그렇게 제안해준 후배가 기특하고 대견했습니다.


교양 수업이었다면 엄두도 내기 힘들었을텐데, 전공이 전공이다보니 교수님 양해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도 흔쾌히 동의를 해주셨고 3시간 수업 중 무려 1시간 넘는 시간을 할애해 강의실에 설치된 빔프로젝터로 5.18 기념식 생중계를 다같이 볼 수 있었습니다. 생중계 전후로는 교수님께서 5.18에 관한 즉석 강의도 해주셨고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사학과 학생들이면 광주의 진실을 알아야 한다"며 "주위의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진실을 널리 알리라"고 당부하기도 하셨습니다.


나중엔 다같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다른 학생들은 그닥 관심도 없고 따라 부르지도 않습니다. 교수님조차 무안해할 정도였습니다. 이번 이벤트를 제안한 저와 제 후배만 열심히 따라 부른 것 같군요.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원래 저희 학교는 연례 행사로 5.18을 즈음해 학술세미나도 개최하는데 올해는 어찌된 게 그런 행사를 한다는 소식도 없습니다. 우리가 왜 역사를 배우는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학생들이 고민을 좀 할 필요가 있는 듯 합니다.


아무튼 생중계를 보는 중간 눈시울도 붉어지고 가슴도 벅차올랐습니다. 정말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뀌니 세상이 바뀌는 느낌입니다. 유가족들은 또 얼마나 가슴이 먹먹했을까요. 37년 전 자신의 생일날 아버지를 잃은 딸이 유족대표로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송할 때, 문 대통령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나중엔 그분을 꼭 끌어안는 모습을 보고 참 멋진 대통령을 만났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제 국가로부터 상처를 받은 이들을 위로하고 힘을 주는 그런 대통령이 우리에겐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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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에게 살면서 제일 무서운 꿈은 군대 꿈이라고 한다. 2년 가까이 폐쇄된 공간 속에서 숨 막히는 위계질서 아래 억눌려있던 기억이 마냥 즐거웠던 추억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강렬했던 기억은 잔인하게도 무의식 속에 차곡차곡 쌓여 가끔씩 꿈의 형태로 다시 드러나곤 한다. 


전역한 지 꼭 1년이 되는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군대 꿈이라고 해서 전부 악몽은 아닌가보다. 가끔씩 꾸는 꿈 중에는 깨고 나면 왠지 모를 애틋함과 아련함을 품게 만드는 꿈도 있기 때문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 가려진 봉우리, 아슬아슬한 절벽으로 이뤄진 길.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나. 생각만 해도 아련해지는 이 풍경은 군 시절 나의 추억이 깃든 한 산에 대한 이야기다.


유해발굴병으로 복무했던 나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6.25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작전을 수행했다. 경북 영천, 경기 포천, 강원 고성, 강릉...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유난히 인상 깊은 지역이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내겐 강원도에 위치한 설악산 상봉이 그랬다.


설악산의 한 봉우리인 상봉은 해발 1,243m가 넘는 험준한 산이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월 당시 이 봉우리에서는 국군과 북한군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 워낙 치열한 전투였던 탓에 이곳에서 전사한 호국영령들 중에는 아직까지도 그 군번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명용사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아직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던 이등병 당시, 나는 상봉을 작전구역으로 배정받았다. 워낙 높고 험한 산이었던 탓에 베테랑 발굴병들조차 쉬쉬하던 그 산에 오르게 된 것이다. 어리바리 이등병에게 첫 과제치곤 매우 버거운 과제였던 셈이다.


등산로 초입이었던 옛 미시령 휴게소 터에 도착했을 때부터 이미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자욱한 안개로 인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등산로와, 몸이 흔들릴 정도로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오르는 길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오르기 시작한 지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주저앉고 말았다.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 다리의 힘이 풀려서 더 이상 오를 수가 없었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마음과 달리 몸은 움직여주지 않았다.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린 나를 보며 혀를 차던 선임들은, 내가 메고 있던 무거운 발굴장비마저 대신 짊어지고 앞장서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여느 산과는 달리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험준한 산이었기에, 바위틈을 손으로 비집으면서 간신히 올라가야만 했다. 발을 헛디디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지만, 너무 힘든 나머지 무섭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이처럼 이등병이었던 내게 해발 1,200m가 넘는 험준한 상봉과의 첫 만남은 ‘끔찍한 악몽’이자 ‘가혹한 시련’이었다.


그렇게 온 몸으로 기다시피해서 간신히 정상에 도착하니 동해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절경이 펼쳐졌다. 성인 남성의 몸이 흔들릴 정도로 강한 바람, 발걸음 하나 옮기는 것도 조심해야 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구간들이 끊임없이 펼쳐진 이곳. 정상에 올랐다는 뿌듯함에 앞서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단 말인가’


산에 오른 발굴병력들은 저마다 작은 손전등과 집게 하나씩만을 휴대한 채, 전 사면을 뒤덮고 있는 바위틈 사이사이로 손전등을 비춰가며, 긴 집게로 바위틈 사이의 유해를 찾는 식으로 발굴작전을 수행했다.


작전이 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위틈 사이로 시레이션(전투식량), 칫솔, 탄피 등 유품들이 쏟아졌다. 아, 이런 곳에서도 전쟁이 있었구나. 눈앞에 펼쳐지는 전쟁의 흔적을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며 나는 놀라움과 숙연함을 동시에 느꼈다. 높은 산을 오르느라 죽상이던 발굴병력들 역시 탄성을 내질렀다. 책으로만 접하던 전쟁의 기억을 두 눈과 양 손의 살갗으로 직접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마침내 바위틈 사이에서 첫 유해가 식별됐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묘사된 완전한 형태의 유해를 생각하던 내게 그곳에서 드러난 유해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워낙 작아 부위조차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의 조각유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상관은 저 멀리 동해바다에 떠있던 적의 군함들의 이곳 상봉을 향해 무차별 함포사격을 실시하면서 아군들이 형체를 알 수 없는 형태로 산화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유해들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이 험준한 산의 바위틈 사이에서 풍상을 맞아가며 60년의 세월을 기다려왔던 것이다.


유해들을 수습하고 입관한 뒤 태극기로 고이 덮어 봉송했다. 봉송병에 의해 운구되는 유해를 뒤에서 바라보는 그 잠깐 사이로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맨 몸으로 버티고 서 있기도 힘든 이 험한 봉우리에서 싸우다 스러져갔어야 할 젊은 청춘들... 6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우리의 손길만을 기다리며 외롭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야 했던 그들을 생각하니 산이 너무 높다며 마냥 투정부렸던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가족과 청운의 꿈을 가슴에 품은 채 상봉의 넋으로 스러져간 그들을 생각하며 나는 나의 지난 날을 돌이켜볼 수밖에 없었다.


전역한 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때때로 상봉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어쩌다 꿈속에서 그 험준한 봉우리를 마주할 때면 다시 한 번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설악산을 오르던 기억, 치열한 전투의 흔적과 바위틈에 드러난 유해들을 지켜보며 지난 날을 돌이켜보던 기억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내게 주어진 청춘의 시간을 얼마나 치열하고 올바르게 살고 있는지 또 한 번 스스로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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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베치

기사 링크: http://omn.kr/m1ap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 및 서평은 링크를 참조)


이번에 출간된 <동경삼재>를 읽었다. 동경삼재(東京三才)는 일본 동경(도쿄)으로 유학 간 조선인 유학생들 중 세 명의 인재를 아울러 부르는 말이다. 바로 당대 문필가로 이름을 날렸던 홍명희, 최남선, 이광수를 뜻한다.


3.1운동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독립을 부르짖었던 최남선과 이광수는 1920년대 이후 친일의 길을 걸었고, 1940년대에는 동포 청년들에게 전선으로 나가 천황을 위해 죽을 것을 독려했다. 지조를 지킨 이는 홍명희 한 사람 뿐이었다.


해방 후 홍명희는 월북하고, 최남선과 이광수는 반민특위에 체포됐으나 무혐의로 풀려나왔다. 기회를 놓칠세라 그 둘은 스스로의 반민족행위를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제 몸을 팔아서 아버지의 고난을 면케 하려는 심청의 심경밖에 있을 것이 없었다. 다른 친일파는 어떠한지 몰라도 내가 하려는 친일은 돈이나 권세나 명예가 생기는 노릇은 아니었다. (…중략…) 민족을 위해서 산다고 자처하던 나로서 마지막으로 할 일이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 이광수, <나의 고백>


"내가 친일파인가 아닌가는 나의 저서가 굉장히 잘 팔리는 것으로 보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 최남선


해방 후 이들이 내뱉은 정교한 변명을 보면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들이 한때마나 민족지도자랍시고 독립만세운동을 독려하고 청년들에게 민족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단 말이던가. 뻔뻔하기까지 한 저들의 행태를 보며 오늘날 양심을 잃고 표류하는 지식인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들을 단죄하지 못한 역사가 오늘날 지식인들의 변절을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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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베치

오늘 영화 <덕혜옹주>를 보고, 용산까지 간 김에 근처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렀습니다. 때마침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이라는 주제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유료 입장이지만 지인으로부터 초대권을 받아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1323년(고려 충숙왕 10년) 원나라 경원항(현재의 절강성 영파)을 출발해 일본의 하카타로 가던 무역선이 제주도 인근에서 풍랑을 맞아 표류하던 끝에, 신안 앞 바다에 수장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75년 8월. 전남 신안에서 어업을 하던 한 어부의 그물에 청자 화병이 걸려 올라오면서, 본격적으로 정부 차원의 수중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요, 이를 통해 그 무역선의 존재가 650여년 만에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신안 앞 바다에서 발굴했다하여 '신안선' 혹은 '신안해저선'이라고 명명되었다고 하네요.


 

당시 정부는 1976년부터 1984년까지 9년 동안 무려 10차에 걸친 발굴 조사 끝에 2만 4천여 점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수중문화재를 발굴했다고 합니다. 14세기 당시 중국과 고려, 일본을 거쳐갔던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무역선이었기 때문에 신안선의 발굴은 당대 동아시아 교류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결정적인 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하카타로 가는 이 배 안에는 주로 향로, 찻잔, 화병과 같은 값비싼 감상품들이 주로 실려있었다고 해요. 이를 통해 당대 일본 상류층이 어떤 취미를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복고풍이 유행하던 중국의 영향을 받아 방고동기(仿古銅器: 중국 고대 하, 은, 주 삼대(代)의 청동기를 본따 만든 도자기 및 금속기)를 수집했고, 고급 무사와 같은 상류층 사이에서는 화병에 꽃을 꽂아 감상하고, 향로에 향을 피우고, 차(茶)를 마시는 등의 호화스러운 취미생활이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취미생활 자체가 상류층만이 즐길 수 있는 특권처럼 받아들여졌다는군요.



특별전시 규모가 그렇게 크진 않고, 대부분 비슷한 모양의 도자기와 금속기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그래도 흥미롭게 봤습니다. 특히 신안선에서 발견된 동전은 무려 28톤 규모라는 점도 인상 깊었습니다. 2전시실에 가면 도자기들을 대형 진열장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점이 이색적이었습니다. 마치 박물관이 아니라 창고에 온 느낌이었습니다. 전시품들 중에는 저렇게 쓰러져있는 도자기도 있던데... 일부러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쓰러졌는데 바로 세우기는 번거로웠던 걸까요.



동전하고 금속기도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문화재들이 600여년 동안 바닷 속에서 잘 보존되어온 것도 신기한 것 같아요. 당시 공예품들의 수준이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그리고 후추와 같은 향신료나 열매씨도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신석기시대 탄화된 쌀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후추와 같은 향신료가 바닷 속에서 발굴되었다는 건 처음 들어봤어요. 이렇게까지 잘 보존되어온 게 참 미스터리한 일이죠.



개인적으로 전시품들보다는 신안선에 타고 있었을 사람들의 생사가 참 궁금하더군요. 물론 거의 다 수장되었겠지만,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들이 전시품의 화려함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신안선에 타고 있었을 이들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 중에는 신안선에서 발굴된 문화재들로 당시 신안선에 타고 있었을 사람들의 선상생활을 재구성한 코너도 있었습니다. 배고플 때는 밥을 해먹고, 심심할 때는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두면서 무료함을 달랬을 그들의 손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전시품들이었습니다. 개중에는 얼른 고향 땅으로 돌아가 그리운 가족의 품에 안기고 싶은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값비싼 무역품을 팔아 큰 이윤을 남길 생각에 부풀어있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신안선에 탔건, 그 사람들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차가운 바닷 속에 잠들어야만 했던 그들의 최후가 안타까운 건 매한가지입니다. 



이번 전시를 주관하는 박물관 측도 신안선에 타고 있었을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전시개요와 에필로그를 꾸며놓았더군요. 참으로 명문장입니다. 누가 이 문구를 기획하고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박물관 전시개요와 에필로그 문구를 보고서 감동을 받은 건 처음입니다. 이런 '인간적인' 전시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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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베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