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덩케르크

저자: 에드워드 키블 채터턴

출판사: 교유서가


올여름 개봉한 영화 <덩케르크>가 한국영화들의 스크린 장악에도 불구하고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타며 좋은 성적을 거둔 바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특유의 휴머니즘을 잘 녹여낸 영화라는 평가와 함께, 우리의 기억 속에서 생소한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잘 표현해냈다는 후문이다.


비록 나는 영화를 보지는 않았으나, 서양사에 대해 무지한 관계로 우선 영화보다 앞서 전문 서적을 통해 사전 지식을 습득하고 영화를 감상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게 집어든 책이 바로 <덩케르크>다.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덩케르크가 사람 이름인지, 지역 이름인지조차 몰랐던 게 사실이다. 그러한 나의 무지함을 탓하며 책장을 펼쳐드니 덩케르크는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항구도시 이름이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에 맞서 영국군이 덩케르크 항구를 통해 대거 철수했던 일이 있었다. 바로 이 작전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가 <덩케르크>였던 것이다.


그러나 작전의 정식 명칭은 따로 있었다. 바로 '다이나모' 작전이다. 이렇듯 책은 덩케르크와 얽힌 역사적 연원에 대해 배경지식이 없는 이들을 위해 아주 친절하게도 정확한 용어(예컨대 덩케르크는 정확히 말해 됭케르크라고 발음해야 한다는 사실)들부터 바로 잡아주고 있다. 


사실 이 책은 1940년 다이나모 철수 작전 직후에 쓰여진 책이다. 그래서 장점과 단점이 혼재하고 있는데, 장점으로는 그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 당시 상황을 두 눈과 귀로 지켜본 저자에 의해 당시의 전장 상황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특히 작전에 참전했던 장병들의 증언은 이 책의 몰입도를 높여주고 있다.


다만 영국의 입장에서 쓰여졌기에 객관적인 역사적 평가가 조금 아쉽다는 점이 유일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국군의 용맹성과 충성심, 용기에 대한 과찬이 때론 지나치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특히 영국군의 사기를 드높이기 위한 의도로 저술됐기에 영국군 외 다른 연합군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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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베치

<일상이 되어버린 차 생활>

그저 몸에 좋다 해서 마시기 시작한 보이차. 언제부턴가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을 끓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자사호에 찻잎을 넣고 끓는 물을 부어 진하게 우려낸 보이차 한 모금을 들이켜면 잠들어있던 육체와 정신이 모두 깨어난다. 그렇게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비 오는 날엔 가만히 앉아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뜨거운 차 한 잔 마시는 것도 낭만적인 일이다. 차 마시는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간섭받고 싶지 않은 게 내 심정이다. 바삐 살아가는 와중에도 차 한 잔 하면서 잠시 쉬어가는 틈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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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베치

[논평] 지금 다시 장준하와 <사상계>를 읽어야 하는 이유


지금으로부터 꼭 42년 전인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의 약사봉 기슭에서 잡지 <사상계>의 발행인을 지냈던 장준하가 의문의 죽음을 맞은 채 발견됐다. 평소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암살의 배후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권 차원의 암살 의혹이 제기될 만큼, 당시 박정희 정권에게 장준하는 매우 두려운 존재였다. 그것은 한평생 조국의 독립과 독재 타도를 부르짖어온 그의 일생이 말해주고 있거니와, 특히 권력자들은 장준하의 분신과도 같은 잡지 <사상계>를 두려워했다.


1953년 장준하에 의해 창간된 <사상계>는 1975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강제 폐간될 때까지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을 신랄하게 규탄하고, 시민들에게 민주화의 열망을 심어줬다. 4.19 혁명의 불꽃을 피워 올림으로써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잡지 역시 <사상계>였다.


장준하가 <사상계>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주권을 가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어설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주권자의 관용은 미덕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교살"이라고 부르짖었다. 집권층의 폭주에는 그를 수수방관하는 시민들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이었다.


"왜, 어찌하여 오늘의 질곡을 용납하고 이 현실을 초래한 원인을 우리 주권자는 방관만 하였던가? 언제나, 오직 주권자의 권능만이 조국의 진로를 가리키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그러하거늘, 집권층은 조국의 진로를 오도하면서 주권자의 나침반의 평형을 교묘히 교란시키고 있다. (···중략···) 주권자의 우(愚)는 조국을 난파선으로 침몰시키고 말 것이다" - <주권자의 관용이 민주주의를 교살한다> (<사상계>1967년 4월 호 권두언)


모든 권력을 틀어쥔 채, 우리의 권리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 앞에서 체념하고 방관한다는 것은 스스로 노예되기를 자처하는 꼴이다. 장준하는 "당연한 권리도 주장하지 못하는 것을 예로부터 노예라고 했다"며 노예정신에서 벗어나라고 일깨운다. 우리에게는 불의한 권력을 물러나게 할 수 있는 의무와 권리가 있다는 사실도 상기시킨다.


"군정을 부인하고 번의와 의혹의 집권을 비판하고 부정부패와 폭력에 항의한 민중의 소리가, 체념 속에서 침묵과 굴종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 오늘 이 집권체제의 정체를 정확히 직시하고, 민족사의 전진은 민중이 악한 집권에 대하여 준엄한 저항과 심판을 내리려는 결단을 선택할 때만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저항의 자세를 적극화하자> (<사상계>1967년 2월 호 권두언)


오늘날 <사상계>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이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수원대 학생들이다. 각종 언론보도와 1심 판결로 드러났다시피 지금의 학교는 “이게 학교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학내 민주주의가 크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총장 일가가 교내의 모든 권력을 틀어쥔 채, 교수들을 부당 해고하고 학생들의 권리를 우롱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 스스로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수원대가 2015~2016년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연속 D등급을 맞으면서 부실대학으로 전락하는 동안, 우리 학생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비리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총장이 이사회의 만장일치로 총장 연임에 성공했을 때도 그 넓은 캠퍼스 어디에서도 총장의 연임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한 번 찾아보기 어려웠다. 보다 못한 몇몇 학생들이 뛰쳐나와 부착한 대자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뜯겨나가고, 학우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의무가 있는 총학생회는 앞장서 싸울 것을 요구하는 학우들의 호소에도 끝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러서도 분노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지성’이라 불리기를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불의 앞에 분노할 줄 알고, 분노하면 일어설 줄 아는 이들이야말로 지성의 자격이 있다. 눈앞의 불의에 항거할 줄 모르면서 어찌 우리의 권리를 회복하기를 바란단 말인가.


‘권리 위에 잠자는 자 결코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처럼 우리의 권리회복을 위해서는 학교의 주인인 우리 학생들부터 먼저 정신 차리고 깨어나야만 한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게 장준하와 <사상계>의 교훈은 유효하다. 그가 남긴 <사상계>는 여전히 강한 생명력을 내뿜으며 우리 학생들에게도 권리회복을 위해 각성하고 투쟁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참다운 민중세력은 언제나 역사에서 승리한다. 겨울이 영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낙관을 지니고 우리는 지칠 대로 지친 이 암흑에서 그래도 지금 일어나야 한다. 봄이 온다. 꽃이 핀다. 저항의 계절에 우리는 민중의 새로운 승리, 민족사의 거대한 긍정을 다짐하자" - <저항의 자세를 적극화하자> (<사상계> 1967년 2월 호 권두언)


체념하고 방관함으로써 학생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는 그 순간, 우리는 지금보다 더 큰 시련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시련을 청산하는 것은 고스란히 우리 후배들의 몫이다. 우리 스스로 후배들에게 적폐사학의 유산을 떠넘기는 못난 선배가 될 수는 없다. <사상계> 권두언의 행간 속에서 "어서 광장으로 나가 촛불을 들라"는 장준하의 준엄한 외침이 들리는 것만 같다.


2017년 8월 17일

수원대 권리회복 민주학생운동(URD)

(http://www.facebook.com/urd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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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베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