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 <미생>을 다시 보고 있다. 처음부터 '정주행'을 하는 것까지는 아니고, 간간이 주요 장면만 돌려보는 정도다.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는데 드라마도 마찬가지인 듯 싶다. 같은 장면을 보고, 같은 대사를 들어도 그때 그때 다가오는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미생>은 고졸 출신 비정규직 주인공의 고군분투를 담아낸 드라마다. 윤태호 작가가 그린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절절히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수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제목 미생은 바둑용어로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있지 못한 상태를 뜻한다. 어려운 바둑용어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지만 쉽게 말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삶이란 뜻이다. 그 반대의 뜻으로는 완성된 삶을 의미하는 완생이 있다. 즉, 미생이란 이제 막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디뎌 어리숙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처지를 빗댄 표현인 셈이다. 


나는 군대에서 이 드라마를 처음 봤다. 당시 나의 계급은 일병이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일병은 '일만 하는 병사'라는 우스개소리가 있을만큼 한창 바쁠 짬이다. 더욱이 그 당시의 나는 의지할 후임조차 없는 막내였다. 군 생활의 낙이랄 게 없는 그때, 선임들 틈바구니에 끼어 곁눈질로 보던 <미생>은 유일한 낙이었다. 애석하게도 항상 드라마가 끝나기 10분 전에 청소시간이 시작됐다. 매번 결정적인 10분을 놓치는 게 그렇게 한스러울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첫 휴가 계획을 짜면서 '<미생> 정주행'을 목록에 넣어놨을까.


아무튼 내가 이 드라마를 좋아했던 까닭은 주인공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고졸 출신 낙하산으로 매번 실수 연발에, 선임들에게 깨져가면서 점점 직장 생활에 적응해나가는 주인공의 처지는 당시 군대에 있던 내 처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잠시나마 드라마 속 그를 통해 나의 처지를 위로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병장이 되면 저절로 완생이 되리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막상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병장이 되고 보니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후임들과의 관계에서도 나는 여전히 미숙했고 팀의 리더로서 우리 팀을 최고의 팀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욕심만 앞섰을 뿐,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계급이 오를수록 늘 새로운 고민과 과제가 던져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전역증을 받는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등병이었을 때나 병장이었을 때나 나는 늘 미생이었음을.


전역하고 돌아온 사회는 여전히 내가 미생임을 더욱 절감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동안 이뤄놓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과제들만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토익을 비롯한 어학·자격증 등 취직을 위해 쌓아야 할 스펙은 끝도 없었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열심히 스펙을 쌓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면 나는 완생이 되는 걸까? 아니다. 결혼도 해야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도 꾸려야한다. 그리고 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어떻게 해서든지 직장에 살아남아야만 한다. 결국 나는 언제까지나 미생일 뿐이다.


사실 완생이란 내 삶이 다하는 그 순간에서야 마주할 수 있는 말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이뤄지지 못할 허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딱히 절망스럽지는 않다. 산을 정복한 뒤에 느끼는 정복감은 일시적인 감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산에 오른 뒤에는 내려올 일밖에 없다. 그러나 미생들에겐 올라야만 하는 산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아직 오르지 못한 산을 찾아 오르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을까. 그러니 완생을 꿈꾸며 나아가되 그 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눅들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시 드라마 <미생>이다. 결정적인 한마디로 주인공을 늘 응원해주던 직장상사 오과장은 말한다. "결국 우리 모두 미생일 뿐. 그렇게 완생을 향해 나아가는 거지" 


* 이 글은 2017학년도 1학기 수원대학교 교양과목 '문예창작의 이론과 실제' 수업 중 작성한 글을 과제용으로 다듬어본 것입니다. 무단 불펌을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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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베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