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최배달>은 영화 <바람의 파이터>의 모티브가 된 전설적인 무도인 최배달에 대한 평전이다.


2004년에 출간된 책인데 현재는 절판된 터라 시중에서 구해볼 수가 없다. 남산도서관에 있길래 빌려와서 읽었는데 얇은 데다가 내용이 무겁지 않아 후딱 읽을 수 있었다.


사실 특별히 인상적이거나 대단히 감명 깊은 내용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무술을 수련하는 입장에서 전세계를 뒤흔든 전설적인 무도인의 발자취를 들여다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특히 최배달에 대한 편견도 깨지는 계기가 됐다. 최배달 하면 우락부락한 이미지 탓에 난폭하고 성미가 급할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의외로 굉장히 합리적이고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특히 너무 무리한 단련은 건강에 좋지 않다며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분수에 맞게 수련하는 게 좋다고 주장한 건 굉장히 의외였다. 최배달하면 무식하리만치 단련하고 또 단련하는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인 '범수화'는 최배달의 세 아들(최광범, 최광수, 최광화)의 이름 끝에서 따온 필명이다. 아들들이 아버지의 일대기를 정리했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아무래도 최배달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이니 최배달의 인간적인 면모나 내밀한 얘기들을 기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 쓰인 내용을 과연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과연 아들들이 아버지의 흠결까지도 사실 그대로 기록했을까. '아버지에 대한 세간의 풍문을 바로 잡기 위한 목적'으로 썼다고 밝히고 있으니 속는 셈치고 믿어볼 밖에.


아무튼 나 역시 최배달처럼 어디 물 좋고 산 좋은 곳에 은거하며 무사수행을 하는 게 평생의 로망인데, 언제쯤 실천할 수 있을까.


책을 읽고 나니 영화 <바람의 파이터>가 보고 싶어졌다.



Posted by 가베치


무림일가(武林一家)라는 말이 있다. 무술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 가족이라는 뜻이다. 문파를 막론하고도 이런 말이 통용될진대 같은 문파에서 수련하는 사형제 지간이라면 더욱 끈끈한 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실력 좋은 사형들은 갓 들어온 사제들의 성장을 위해 앞에서 끌어주고, 뒤늦게 들어온 사제들은 앞서 간 사부님과 사형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가 가야할 길을 본다. 그렇게 더운 날이건, 추운 날이건 함께 땀 흘리며 정을 쌓아간다.


정이 쌓이니 서로 간의 경조사를 챙기는 건 기본이다. 좋은 소식이 있으면 가서 축하해주고, 힘든 일이 있으면 위로하고 격려해준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매일 같이 손을 섞으니 결국 우리 모두 운명 같은 인연이라고 하겠다.


- 2017년 12월 9일, 한국형의권연구회 동헌 사형 결혼식에서...


Posted by 가베치

2018년 무술년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본가가 집 근처에 있는 터라 느긋하게(라고 하지만 새벽 5시에 기상...) 가서 차례를 지냈습니다. 간 김에 아예 근처 초등학교에서 수련을 하려고 미리 가방에 수련복을 주섬주섬 싸갔더랬습니다. 차례 지내자마자 곧장 옷을 갈아입고 동이 트기 시작하는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습니다. 



역시나 설날 아침이라 사방이 고요합니다. 유연공으로 몸을 풀고서 면벽공을 할 만한 장소를 물색하러 돌아다니는데 경비가 나와서 "운동하려면 운동장에서나 하지 왜 이렇게 돌아다니느냐"고 한소리 합니다. 기분이 나빴지만 정초부터 얼굴 붉히면 상서롭지 못하다 생각해서 그냥 "예예"하고 운동장으로 나와서 바로 권가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손이 조금 시렵긴 했지만 수련하기 힘들 정도도 아니었고, 아무도 없어서 그 넓은 운동장이 제 차지였기에 수련하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오행권은 한 바퀴씩 돌리고, 십이형권은 반 바퀴씩 돌렸습니다. 그렇게 한참 땀을 흘리며 수련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중천에 뜨면서 햇살이 운동장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포권 하다가 햇살을 정면으로 딱 맞았는데, 뭔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실상 오늘이 진정한 새해의 시작인데, 첫 하루를 형의권 수련으로 열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작년 한 해 정말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받은 상처가 여전히 극복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 취직하면서 본격적으로 사회에 발을 내디딘 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올 한 해는 지난 날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가오는 난관을 극복해가면서 새롭게 거듭나는 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보았습니다. 그 길에 항상 형의권이 함께 하기를...

Posted by 가베치

정말 오랜만에 블로그에 무술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옛날엔 무술을 수련할 때 온라인상에서 이러쿵 저러쿵 썰을 풀며 사람들과 노닥거리는 걸 참 좋아했었는데, 언제부턴가 그런 게 다 부질없게 느껴지더군요. 


수련일기야 매일 쓰고 있지만 그것도 저희 사부님과 사형제들만 볼 수 있게끔 비밀글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분들은 아마 제가 무술 수련을 아예 중단한 게 아닌가 의구심을 갖고 계신 분들도 계시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수련은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살면서 이렇게 열심히 수련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재밌게 수련하고 있습니다. 옛날엔 개인수련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요새는 춥건 덥건 간에 아주 피곤하거나 바쁘지 않은 이상은 매일 적어도 30분 이상은 수련을 하고 있으니까요. 특히 얼마 전부터는 동작에 탄력이 붙어서 하루 일과 중 수련하는 시간이 제일 행복한 시간이 됐을 정도입니다.


요즘 들어서는 '내가 왜 무술을 수련하고 있는가', '무술 수련을 통해 얻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합니다.


사실 학생운동을 시작한 뒤로, 정신적·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시간들을 보내왔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힘든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요. 여러 번 좌절하고 자괴감 탓에 우울증도 오고 그랬습니다. 문제는 무술 수련으로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스트레스가 수련에 방해가 되고 있었습니다. 


또 무술을 수련하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과 담력이 생겨서 매사 일처리를 할 때 대범하게 처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큰일 앞에서 겁 먹고 나약해져서 한 없이 초라해지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소심해져서 할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겁쟁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수련의 끈은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억지로 꾸역꾸역 수련터에 나갔지만, 이미 정신은 반쯤 나가버린 터라 도저히 수련에 집중이 안되더군요. 다행히 별 일은 없었지만, 사실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낙법이니 발력이니 계속 주고받아야 하는데, 정신 안 차리고 있다간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건성건성으로 임하는 건 열심히 상대해주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도 하고요.


다행히 어느 정도 일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힘든 시간도 다 지나가고 요새는 안정된 기분으로 수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때 일들을 통해, 아직도 제 자신의 수련이 많이 부족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흔히 무술을 수련하면 사람의 기질이 바뀐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들과 손을 맞대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 소통의 과정에서 친화력(소위 붙임성이라고 하는...)도 생길 수밖에 없죠. 또 실력이 상승할 때마다 자신감이 붙으니 모든 일을 대함에 있어 여유가 생기고 대범해진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담력까지 생기죠.


그러나 심적으로 조금 힘든 일이 생겼다고 해서, 쉽게 좌절하고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빠지는 제 자신을 보면서 그리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좀 더 강경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맞서지 못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여전히 변하려면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형들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는데 사형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수련할 때만큼은 수련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수련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충고를 해주십니다. 이미 꿍푸가 어느 정도 쌓인 사형들은 힘든 일이 있어도 수련을 극복의 수단으로 삼는다고 하니, 그 멘탈이 무척 부럽기까지 하더군요.


얘기가 조금 길어졌습니다만, 요새는 그래서 무술을 수련하며 얻고자 하는 가치 중 첫 번째로 '기질 변화'를 꼽습니다. 소심하고 나약한 기질을 대범하고 호방한 기질로 바꿔나가는 게 목적입니다. 사부님이나 사형들이 수련을 통해 충분히 이뤄낼 수 있는 변화라고 누누이 강조하시고, 저도 그 말씀을 믿기에 수련의 끈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제게도 다가올 변화라고 믿습니다.


호신도 당연히 얻어야 할 가치 중 하나죠. 다만 호신이란 것도 결국 성격부터 바뀌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강한 힘을 갖고 있어도, 상대방에게 맞설 수 있는 담력(용기)이 없다면 정작 실전에선 손발이 굳고 머리가 하얗게 변해서 아무 것도 못할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무술 수련을 통해 기질의 긍정적인 변화를 얻고 싶은 첫 번째 가치로 꼽습니다.

Posted by 가베치

링크: http://v.youku.com/v_show/id_XMzE0ODM1ODg1Ng==.html?spm=a2hww.20027244.m_250379.5~5~1~3~A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그룹인 알리바바의 회장 마윈이 직접 출연했다하여 화제가 된 영화 <공수도> 영상입니다. 


광군제를 맞이해서 오늘 온라인에 무료공개됐습니다. 22분 44초짜리 단편 영화네요.


마윈이 태극권 고수로 등장해서 토니자, 오경, 견자단, 이연걸 등과 차례로 겨룹니다. 특히 견자단은 아예 엽문 컨셉으로 등장해서 영춘권으로 겨룹니다. 이연걸은 오랜만에 태극권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아무튼 중국어를 잘 모르는 관계로 영어자막을 보면서 봤는데 그래도 내용이 이해가 잘 안 가네요.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저는 솔직히 좀 별로인 것 같습니다. 


중국 쪽에서도 그닥 반응이 신통치 않다고 합니다. 마윈 말에 따르면 태극권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었고, 배우들도 그런 취지에 동의해 노개런티로 참여했다고 하지만 영화만 놓고 보면 그냥 마윈 자신의 태극권 실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는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중국 쪽 네티즌들도 "돈만 있으면 최강의 권법을 쓸 수 있는 거냐" 등의 비아냥이 쏟아진다고 하네요.


아무튼 영상 퍼오기가 안되서, 링크를 걸었습니다. 링크 타고 들어가시면 로그인 없이 무료로 보실 수 있어요.


Posted by 가베치

링크: http://blog.naver.com/k_rabbit/220987021466


[한국형의권연구회 비전공개 세미나]


주제: 300년 역사의 무술, 내가권의 비전공개! 무술은 이렇게 수련해야 한다!

부제: 무술의 체계에 대한 이해와 팔괘장의 모든 것


일시: 2017년 6월 6일 (화) 오후 2시 ~ 6시 (+@)

장소: 한국형의권연구회 사무실 (부천역 근처)

대상: 무술에 관심 있는 남녀노소 누구나

참가비: 30만원


제가 소속된 '한국형의권연구회'에서 공개세미나를 개최한다는 소식입니다. 

내가권의 비전과 올바른 무술 수련방법에 대한 강의가 이뤄질 예정입니다.


시작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테니 단단히 각오하라는 사부님의 말씀이 무척 기대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연구회 입문 후 처음으로 열리는 공개세미나인지라 저도 기대가 됩니다. 이미 올바른 길을 찾아 연구회에 입문했지만, 아마 제 선택이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음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술에 관심 많은 블로그 이웃님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자세한 건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가베치

어제 부로 드디어 형의권 수련을 시작한 지 100일차가 됐습니다.


수련을 시작하고 나서 100일 단위로 짧은 단상을 써볼 계획은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100일차가 가까워올수록 '쓸까 말까' 고민이 커졌습니다. 수련일수는 세 자리를 돌파했지만 개월 단위로 치면 고작 3개월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해 조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삼체식도 제대로 못 서는 초짜 중의 초짜가 100일 수련을 기념한답시고 뭔가를 끄적인다는 게,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 계속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초보자일 때의 기록도 먼 훗날 다시 돌아볼 때 추억이 되리라는 생각에 부족한 글을 끄적여보기로 합니다.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만약 형의권 연구회로 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사는데 큰 지장은 없었겠지만, 여전히 무술을 수련하며 품었던 근본적인 고민이나 회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고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생각해보면 무술을 배운답시고 여러 도장을 전전했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나름 실전 권법으로 유명하다는 도장을 찾아 주말이면 서울에서 인천까지 왕복하기도 했고, 형의권을 수련하기 전까지 정말 열심히 배웠던 무예24기의 경우는 정말 어떤 의미로는 '치열하게' 수련했던 것 같습니다. 복원무술로도 정종 문파 못지 않은 실전성을 증명해보이겠다고 군대에서도 밤낮으로 수련하고 홀로 용법을 구상하는 등 별의별 고민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연구회에 온 뒤로 참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왜 그리 어렵게 돌아가려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미련했던 과거에 쓴 웃음부터 짓게 됩니다.


아직 형의권의 높은 단계를 경험하진 못했지만, 체계에 대한 감탄은 수련을 시작한 첫날부터 시작됐습니다. 가장 간단해보이는 참장조차도 복잡하고 많은 요결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요결을 왜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사부님의 명쾌한 설명, 동작 하나하나에 이유가 있다며 막힘 없이 설명해주시는 사부님을 보면서 역시 왜 '정종 문파', '정종 문파' 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거기에 연구회만이 이룩한 확실한 체계는 이곳에서 배운다면 틀림없이 내 무술인생의 전환점이 마련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줬습니다.


연구회의 또다른 장점 중 하나는 사부님의 오픈 마인드인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는 '질문이 없는 사회'라고 합니다. 윗사람이 시키면 아랫사람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따르라는 상명하복식 문화가 사람들의 입을 꽁꽁 닫아버렸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바 있습니다. 무술 도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여러 도장을 다녔지만 사부님께 질문을 드리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가르치는 사부님은 내색 안 해도, 옆에 있던 사형들이 괜히 '적당히 좀 물어보라'고 눈치를 주기도 합니다. 궁금한 건 많은데 자꾸 안으로만 삭히게 되니 답답하고 스트레스만 받습니다. 그런데 연구회는 달랐습니다. 사부님께서 먼저 "궁금한 걸 참으면 수련에 마가 낀다"며 "궁금한 게 있으면 그때 그때 계속 해결하라"고 물꼬를 터주십니다. 더욱이 질문 하나를 드리면 묻지 않은 나머지 아홉까지 가르쳐주십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하는데, 먼 길을 돌아 이제서야 제대로 된 무술을 배우기 시작하니 뒤늦게 열정을 불태우게 됩니다. 정말 요즘 들어 제 자신에게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동안 써온 수련일기들을 보니 웬만하면 하루도 안 거르고 수련하려고 노력했던 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비 오는 날엔 비가 안 오는 곳을 찾아서, 추우면 옷을 잔뜩 껴입고서, 하루 종일 바쁘면 공강 시간을 이용해서라도 매일 수련을 하려고 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어쩌다 이렇게 변했냐"고 스스로에게 묻고 싶을 지경입니다. 사실 형의권을 수련하기 전에는 어떤 무술을 수련하건 간에 비 오면 비 온다는 핑계로, 더우면 덥다는 핑계로 수련을 빼먹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입니다.


형의권이 재밌어서일까요? 물론 지금도 충분히 재밌습니다. 그러나 발력도 들어가지 않은 제가 감히 형의권의 진정한 재미를 논하기는 어불성설일 듯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은근히 이뤄지는 '동기부여'가 개인수련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사부님께서는 정규수련 때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개인수련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계십니다. 왜 개인수련을 해야만 하는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다보니 심리적으로 '개인수련을 안 하면 큰일나겠구나' 하는 경각심마저 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수련터에 가면 매일 목격하게 되는 사형들의 발력 시범과, 높은 단계에 대한 궁금증이 지속적으로 개인수련의 동기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형의권 수련이 일상화됐습니다. '하루라도 책을 안 읽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중근 의사의 말에 빗대어 말하자면 '하루라도 형의권을 하지 않으면 몸에 좀이 쑤신다'고도 표현해 볼 수 있겠네요.


생각해보니 형의권은 제게 운명과도 같은 무술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예전에 제가 쓴 글을 보니 2011년도에 이미 연구회에 갈까 고민한 흔적이 있더군요. '그때부터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 때도 있지만, 오히려 여러 무술을 전전하면서 계속 고민하고 먼 길을 돌아왔기에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른 데 한 눈 팔 이유도 없어졌으니까요. 얼마 전 사무실에서 회식을 하는데 사부님께서도 "넌 다른 데 갔어도 어차피 돌고 돌아 여기 왔을 거다"라고 하시더군요. 저를 연구회로 이끄는데 큰 영향을 끼친 원삼 사형도 결국 제가 여기 올 거라고 확신하셨다는 말을 들은 바 있습니다. 그래서 형의권은 운명인 것 같기도 합니다.


수련 초기 사부님께서 "3개월 동안은 그냥 놀러다닌다고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놀러 다닌다고 생각하는 3개월도 지나고, 어느덧 100일차가 넘었습니다. 초기에 지루해서 도망가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는데, 저는 재밌게 다녔으니 앞으로 단계가 올라갈수록 오히려 더 재밌게 배울 일만 남지 않았을까 싶어서 앞으로의 수련이 기대됩니다. 졸업한 뒤 취직하면 바빠서 나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걸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을 정도니 말 다한 셈이지요.


짧게 쓰려고 했는데 쓸데없이 장황해졌습니다. 써놓고보니 사실 별 게 없습니다. 형의권으로 인해 뭔가 변화를 느끼기엔 수련기간이 길지 않은 탓입니다. 지금은 그저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차원에서 써봤습니다. 그러나 단계가 올라갈수록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써볼까 합니다. 여담이지만 형의권을 통해 가장 고대하는 변화는 '마인드'의 변화입니다. 무술을 수련한다면서도 강한 상대 앞에 서면 주눅드는 겁 많은 성격. 실제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다른 사형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으면서 저도 이 근본적인 문제가 극복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세어보니 200일차에 쓰는 기념글은 무더운 여름에나 올라가겠네요. 그리고 300일차가 되면 다시 추운 겨울이 될테고요. 계절이 변할 때마다 조금씩 꿍푸가 쌓여가는 재미를 느끼면서 그렇게 평생 형의권을 수련하고 싶습니다.

Posted by 가베치

링크: http://omn.kr/mwjz


<오마이뉴스>에서 '내 안의 덕후'라는 공모전을 개최했더군요. 말 그대로 자신만의 특별한 취미생활에 대한 글을 공모하는 행사였습니다.


무술이라는 아이템은 어떻게 보면 마이너한 취미라서, 이 좋은 아이템 썩히기 아깝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글을 써봤습니다. 이미 비슷한 주제로 작년에도 글을 썼지만, 중복을 피하기 위해 다른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 글을 썼습니다. 역시나 좋은 아이템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마이뉴스> 메인 기사로 배치됐고, 네이버와 다음 등 주요 포털사이트에도 전송되어 검색하면 제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사실 무술계에서 제 무력은 어디 명함을 내밀 정도도 전혀 못되기에,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물전 망신 꼴뚜기가 시킨다고 소속 문파의 명성에 먹칠만하는 우려도 있을 수 있고요. 그래도 제 삶을 돌아본다는 생각으로 담담하게 써봤습니다. 그리고 표현에 최대한 신중을 기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무림고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무덕에 불과할 뿐이니까요.


상금 20만원이 걸린 공모전인데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가베치

어제가 크리스마스였죠. 저같은 솔로들은 이런 날 '방콕'하며 <나홀로집에> 시리즈나 정주행하는 게 맞겠지만, 연휴라고 집에만 있기 뭐해서 일부러 밖에 나섰습니다. 다행히 제 눈을 괴롭히는 연인들의 달달함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원래 일요일이라 그런지 특별히 연휴 분위기도 안 나고, 눈도 안 와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그닥 안 나더군요. 날도 많이 풀려서 야외수련하기 아주 딱 좋은 날씨였습니다.


그래서 보라매공원에 가서 무예 수련을 했습니다. 몇 개월 전부터 보라매공원 대신 중앙대에 수련터를 만들어 운동하고 있는 터라 보라매공원은 또 오랜만에 가는 셈입니다. 확실히 그 사이에 계절이 바뀌어서 그런지 수련터 풍경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열심히 창으로 찌르고 베던 수풀들은 어느덧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있었습니다. 제 키보다 높았던 게 시들고 나니 배꼽 아래까지 내려와 있더군요.


아직 배운 게 많지 않아 열심히 참장과 질보 수련만 하다 왔습니다. 사부님이나 사형들이나 "처음엔 지루함과 싸우는 게 가장 큰 수련"이라고 강조하곤 하시는데, 부족한 게 많기 때문에 지루할 겨를 없이 수련에 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목검도 챙겨나가서 검술 기본기와 본국검으로 땀도 좀 빼줬습니다. 어디 가서 장기자랑용으로는 이만한 게 없는 터라, 가끔씩은 투로를 잊지 않는 선에서 연습을 해줄 생각입니다.



Posted by 가베치

오랜만에 흥미로운 소식입니다.


조선시대 권법에 관한 논문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군사> 101호에 등재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수원 무예24기시범단의 최형국 박사님께서 쓰신 논문입니다. 



(사진 출처: muye24ki.com)


그렇게 긴 분량의 논문도 아니고, 문화사적 관점에서 쓴 논문이라 읽기 어렵지 않습니다. 무예를 수련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조선시대 군사들은 맨손무예를 어떻게 익혔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동작의 고증은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보고 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남아있는 사료들을 통해 학술적으로는 대략적인 추정이 가능합니다. 조선군이 병영에서 어떻게 권법을 익혔고, 권법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면 논문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가 가능합니다만, 아래 논문 PDF 파일을 따로 첨부해뒀습니다. 편하게 다운받아서 읽어보시면 됩니다.



조선후기 권법의 군사무예 정착에 대한 문화사적 고찰.pdf


Posted by 가베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