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스스로 노예되기를 자처하는가


무예24기 한양류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개입 의혹으로 시작된 박근혜 게이트가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매일 같이 쏟아져나오는 청와대발 뉴스속보에 경악했다.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대통령 연설문 유출은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대통령이 청와대 안방에 앉아 온갖 미용시술을 받은 것도 모자라 비아그라까지 반입해 청와대가 청와텔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지경에 이르렀다. 어린 생명들을 비롯한 우리 국민 304명이 차가운 바닷 속에 가라앉는 동안, 국가재난을 관리하고 총지휘해야 할 대통령이 무려 사건 발생 7시간 동안 관저에 들어앉아 출근조차 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박근혜 정권은 법적·도덕적으로 완전히 타락한 정권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우리는 지금 미친 기관사가 운행하는 폭주 기관차에 올라탄 꼴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관차에 가만히 앉아 모두 개죽음을 당할 것인가. 모두가 살기 위해서는 미친 기관사를 우리 손으로 끌어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마땅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광장으로 나가 촛불을 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학생, 주부, 농민, 직장인 등 직업의 구분도 남녀노소의 구분도 없다. 대한민국 국민만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 국민의 이름으로 청와대 안방에 들어앉아 귀를 막고 있는 암군(暗君)에게 퇴진 명령을 하달해야 한다.


그런데 "왜 우리가 촛불을 들어야 하는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이것은 우리들의 책임도 아니며, 대통령이 물러나는 문제도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해결할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주권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미친 기관사에게 운전대를 맡긴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주권자로서의 당연한 권리 행사를 포기한다면 스스로 개·돼지나 노예되기를 자처하는 꼴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왜, 어찌하여 오늘의 질곡을 용납하고 이 현실을 초래한 원인을 우리 주권자는 방관만 하였던가? 언제나, 오직 주권자의 권능만이 조국의 진로를 가리키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중략···) 주권자의 우(愚)는 조국을 난파선으로 침몰시키고 말 것이다" - <주권자의 관용이 민주주의를 교살한다> (『사상계』1967년 4월 호 권두언)


"오늘날 나라의 주인은 바로 우리들 각자 백성이요, 관은 우리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 만든 기관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관에 대해서 봉사를 요구할 권리가 있고 관은 이에 응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만에 일이라도 관에 있는 자 번문욕례(繁文縟禮: 법과 규칙이 까다로움을 이르는 말)의 구름 위에 앉아서 백성을 농락하고 법을 짓밟는 일이 있다는 이것은 본말을 전도한 사회적 반역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들의 퇴진을 요구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 <민주주의를 기원한다> (『사상계』1956년 9월 호 권두언)


2016년 11월, 우리는 지금 여느 때보다도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기나긴 겨울이 지나면 기필코 따뜻한 봄이 찾아오는 법이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요, 역사의 진리다.


"참다운 민중세력은 언제나 역사에서 승리한다. 겨울이 영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낙관을 지니고 우리는 지칠 대로 지친 이 암흑에서 그래도 지금 일어나야 한다. 봄이 온다. 꽃이 핀다. 저항의 계절에 우리는 민중의 새로운 승리, 민족사의 거대한 긍정을 다짐하자" - <저항의 자세를 적극화하자> (『사상계』1967년 2월 호 권두언)


재조산하(再造山河).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산통을 겪는 중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겪는 시련은 과거 독재정권 당시 민주투사들이 겪어야 했던 시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체념하고 방관함으로써 국민 스스로 주권자임을 포기하는 그 순간, 우리는 지금보다 더 큰 시련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시련을 청산하는 것은 고스란히 우리 후손들의 몫이다. 우리 스스로 후손들에게 독재정권의 유산을 떠넘기는 못난 조상이 될 수는 없다. 이번에야말로 뿌리 깊은 친일군사독재정권에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 기나긴 산통 끝에 찾아올 새로운 생명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아직도 광장으로 나가기를 망설이는가. 스스로 개·돼지나 노예가 되고자 하는가. 먼 훗날 우리 후손들로부터 '못난 조상'이라 손가락질 받고 싶은가. 우리의 자손들이 "그때 당신은 뭘 했느냐"고 물었을 때 "광장으로 나가 촛불을 들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조상이 되자.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자.


2016년 11월 26일


무예24기 한양류

(http://cafe.naver.com/seoulmuye24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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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무예를 수련하면서 '깊이 있는 수련'에 대해 한 번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마침 아는 형님께서 블로그에 좋은 글을 올려주셨더군요. (링크: http://blog.naver.com/k0062/220779264179)


그 형님과 저는 서로 수련하는 권종 자체가 다르지만, 무술을 수련하는 입장에서 그 형님의 글을 보며 배우는 점이 참 많습니다. 꼭 무술의 실기적인 교류가 아닐지라도, 무술 수련에 있어서의 철학이나 원칙 등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매번 자극을 받고 있거든요. 이번에 형님께서 올리신 글을 보니, 저 역시 평소에 품고 있던 생각에 대해 글로 한 번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꽤 많은 무술을 배워봤습니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2~3년 이상 배웠죠. 그중에는 깊이 있게 무예를 지도하는 곳도 있었지만, 수박 겉핧기식으로 초식의 형태만 지도하는 곳이 더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겉모습이라도 제대로 지도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몇 번 보여주고 마는 식의 지도... 용법은 자연히 알 길이 없고, 외형(外形)조차 제대로 따라하고 있는지 의문일 때가 많았습니다. 


제가 잠깐 다녔던 어느 도장에서의 일입니다. 하루는 초식을 연마하고 있는데, 관장님께서 "왜 동작을 그렇게 해!"하고 호통을 치신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더군요. 저는 당연히 그 동작이 정석이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연습을 했기 때문이죠. 그곳의 교육과정은 관장님께서 한두 번 보여주면, 뒤에서 따라하고 마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식의 교육방식이 옳고 그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세하게 동작을 지도해주고 그런 지적을 받았더라면, 그나마 덜 억울했을 듯 합니다.


물론 처음에 제대로 배웠다고 하더라도, 혼자 수련을 하다보면 자세가 계속 어긋나기 십상이고, 그래서 꾸준히 교정을 받아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게 사부님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그 동작을 배운 지 몇 개월이나 지난 뒤에서야 지적을 받았으니, 그동안 그 관장님께서는 제가 동작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 제대로 점검도 안 해주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연히 무예 수련의 깊이란 걸 느낄 턱이 없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무예에 대한 확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저는 무예24기를 수련하면서 '깊이 있게 수련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점차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처음에 공연 연습 때문에 기창의 투로만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급하게 배운 투로를 통해 기창을 완벽하게 숙달했다고 착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사부님께 기창 교정을 받고 있는데, 기본기 하나에서부터 동작의 숨은 의미와 용법에 대해 세심하게 지도해주시는 데서 '깊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수련 시 사부님께서 일러주신 부분들을 신경쓰며 수련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찌르기' 하나를 하더라도 보법이며, 안법이며, 칼날의 각도 등 신경써야 할 부분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요즘은 창을 쓰든 칼을 쓰든, 욕심 안 부리고 가장 기본이 되는 동작들 하나 하나에 집중해서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기본기 하나조차도 유의해야 할 부분이 한 둘이 아닌 탓에, 이 모두를 완벽하게 숙달하기 위해선 정말 평생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무예란 하루이틀 배우고 말 것도 아니고, 평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조급하게 생각할 것도 없고, 가장 단순한 베기나 찌르기 하나를 하더라도 평생 한다는 생각으로 수련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루 하루 수련할 때마다 느낌이 다릅니다. 정말 단순한 동작인데, 그 동작을 좀 더 세련되게 다듬어가는 과정에서 점점 더 수련의 깊이를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무예24기는 태생적으로 복원무술이라는 한계가 있어, 여러모로 '무술적 깊이'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저 역시도 처음 무예24기 수련을 권유받았을 때, '정종 문파에서 수련하는 내가 왜 굳이 검증도 안된 복원무술을 배우나' 하면서 망설였습니다. 


결국 무예24기 수련을 시작했을 때도 '그냥 한 3개월 정도만 수련하다가 핑계 대고 나가야지'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이곳 '무예24기 한양류'에 정착하여 5년째 수련을 해오고 있습니다. 군대에서도 수련을 꾸준히 해왔으니, 사실상 제 무예 경력 중 가장 많은 경력을 차지하는 게 바로 무예24기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는 이곳 한양류가 존재하는 한, 평생 이곳에서 수련을 할 생각입니다. 아직도 사부님으로부터 배워야 할 게 많고, 사부님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은 평생 교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확신을 할 정도로, 한양류는 타 무예도보통지 수련단체에 비해서도 무예도보통지의 무술적 복원이 꽤 높은 수준까지 이루어진 상황입니다. 사부님 역시도 "다른 건 몰라도 장병기 기법의 복원과 운용에 있어서만큼은 우리 한양류만큼 하는 곳도 별로 없을 것이다"라고 자부하시더군요. 사부님 밑에서 무예를 배우면서, 사부님의 실력을 봤기에 저 역시 그 말이 결코 허풍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몸 담고 있는 한양류에 확신을 갖고 무예를 배우고 있습니다.


만약 무술을 배우는 분이라면 진지하게 한 번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부님께서 동작 하나하나의 의미와 용법을 제대로 알고 지도하고 계시는지, 사부님께 동작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면 망설임 없이 답변할 정도로 실력을 갖추고 계신지, 무술을 수련하면서 실전에서 쓸 수 있다고 확신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술을 수련하면서 '깊이'를 느끼고 있는지... 자문자답을 해보고 그게 아니라면 제대로 가르쳐주는 곳을 찾아 떠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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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이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푹푹 찌는 날씨 탓에,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릅니다. 어딜 나가기가 참 겁이 나는 요즘입니다. 무예 수련하기에 가장 힘든 계절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촉한음서(觸寒飮署)라고 했으니... 무예 수련을 게을리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요근래 저는 기창(단창)의 매력에 푹 빠져서, 기창 위주의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길쭉한 창을 쭉쭉 뽑아 찌르고 베는 맛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칼 수련에 한창 빠져있을 때는 뭐든지 베고 싶더니, 창 수련에 빠지게 되니 이젠 창을 들고 길을 다니다보면, 작은 빈틈만 보여도 푹푹 찌르고 싶은 욕구가 듭니다.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보라매공원에 기창을 들고 가서 수련을 했습니다. 먼저 지난 정규전수 시간에 배운대로, 화단의 풀잎을 하나의 표적으로 설정해놓고, 기본이 되는 찌르기(刺)와 베기(磨)를 반복 연습했습니다. 확실히 표적이 있으니 집중도 더 잘되고, 재미도 있습니다. 반복하면 할수록 정확도도 올라가고, 창에 힘도 실리는 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창 하나만 해도 수련해야 할 과정이 상당한데, 언제 24기를 다 숙달시키나... 이럴 때면 참 막막함을 느낍니다.


아무튼 기본기를 반복 연습하고, 기창 투로를 몇 번 반복해서 연습을 했습니다. 확실히 찌르기와 베기 연습을 하고 난 뒤에 투로를 연습하니 훨씬 동작들이 부드럽게 이어지더군요. 그리고 공연 연습 때와 달리 동작의 의미를 하나 하나 분석하면서 제대로 수련을 하려고 하다보니, 동작들의 의미에 대해 계속 의문이 듭니다. 몇몇 동작들에 대해 벌써 의문이 생겼는데, 이건 정규전수 시간에 사부님께 여쭤보고 답을 구해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분석했을 때는, 투로를 빠르게 진행했을 시에 마지막 '우일자-좌일자-후일자-전일자' 구간에서 보법이 엉키는 부분이 있습니다. 상체는 무거운 창을 들고 계속 전환하는데, 전후좌우 사방으로 계속 움직여야 하다보니, 아직 보법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기본 보법을 지키면서 한 걸음씩 숙달하려고 신경쓰고 있습니다. 또한 '퇴산색해세'를 할 때에도, 복호세에서 전환할 때 자연스럽게 전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반복 연습만이 답이겠죠.


아무튼 수련은 재밌는데, 날이 덥다보니 쉽게 지치는 것이 함정이네요. 기본기 연습에 이어, 달리다가 중간에 갑자기 멈추면서 창으로 가상의 적을 찌르는 연습을 했는데, 날이 더워 금세 지치다보니 조금만 뛰어도 몸의 힘이 쭉 빠집니다. 티셔츠는 이미 땀으로 흠쩍 젖었고, 바지도 땀으로 젖어서 땀띠가 날 지경입니다. 여름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체력 단련을 꾸준히 하지 않아 부실해진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여하간 여름철 수련이 제일 힘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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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대학에서의 첫 무예 강의가 용두사미로 끝나버린 뒤로, 당분간은 개인수련이나 열심히 하면서 실력을 키우는 데 전념하기로 마음 먹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한 군데에 가있으면, 계속 그 쪽으로 기회가 생기나 봅니다. 열정대학과 비슷한 플랫폼을 가진 대안학교인 '이태원 대학교'에서 또다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스카웃 제의가 들어온 계기는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한 장 때문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수련터에 나가서 기창 수련을 하고 찍은 사진을 제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그 사진을 MBN 윤범기 기자님이 본 겁니다. 참고로 윤 기자님과는 열정대학 기자학과 강의를 통해 서로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요, 그분은 신촌대학교와 노량진대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번엔 이태원대학교 개강을 준비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윤 기자님께서 그 사진을 보자마자 제게 "우리 창술배워볼과 한 번 만들어보면 어떨까요?"하고 제의를 하신 겁니다. 사실 기창은 제가 배운 지 오래 되지 않기에, 누군가를 지도할 만한 실력은 당연히 안된다고 생각했고, 열정대학에서 받은 상처가 아물기도 전이라서 망설여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일단 사부님과 먼저 의논을 하겠다고 했는데, 사부님께서는 또다시 "한 번 만들어보라"고 하시더군요. 윤 기자님 역시 집요하게 개설을 독려하기도 했고, 사부님도 제가 기창을 지도하는 것에 대해서 허락하셨기에... 다시 한 번 무예를 지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슬슬 들더군요. 그래도 약간의 망설임이 남아 있었기에, 오늘 열리는 사전 모임에 참여해서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나 확실히 보고 듣고 난 뒤에 판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태원 대학교의 강의실로 활용될 '용산문화예술창작소'에서 열린 사전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다른 강의 개설자 분들을 보니, 아무래도 나이는 제가 제일 어린 듯 합니다. 사는 곳도, 직업도 제각각이더군요. 교수, 변호사, 공무원 등등 면면히 정말 화려했습니다. 북놀이, 고전무용과 같은 무형문화재를 이수한 분들도 계셨습니다.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계신 분들이, 자발적으로 재능기부를 위해 모인 것을 보니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다들 자기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인 듯한데, 제가 여기 낄 자격이 되나 싶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인 이태원 대학 소개에 앞서, 앞으로 강의실로 활용될 공간을 둘러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인원 구성에 따라 30명 정도 수강이 가능한 소강의실부터, 최대 6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대강의실까지 있고요, 예·체능 과목을 위한 '공연연습실'도 별도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여기서 창술을 지도하게 될텐데, 오늘 둘러보니 평수는 충분하지만 천장이 낮아서 창을 휘두르기엔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되긴 합니다. 이에 대해서 오늘 의견 조율이 있었는데, 정 안되면 옥상이나 주차장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보니까 주차장은 버스 전용 주차장이라 아주 넓더군요.


오늘 설명을 들어보니, 열정대학보다는 여러모로 안정적인 구조인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열정대학의 맹점 중 하나는 전공 과목이 아닌 이상 개설자가 수강료를 받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수강료가 없으면 개설자 입장에서도 무책임해지기 쉽고, 수강생들도 자기가 수강하는 과목의 가치를 가볍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죠. 수강료를 내지 않기 때문에, 듣다가 마음에 안 들거나 귀찮으면 '안 들으면 그만' 하고 잠수타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함께 무예 배워볼과' 역시 이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태원 대학은 일단 그런 점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수강료'를 받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돈 받자고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수강료가 많은 것은 아닙니다. 소액의 수강료고, 그것도 개설자와 이태원 대학 운영위원회 측이 5:5로 나눠가집니다. 


여기에 대해 윤 기자님도 "돈 벌자고 이런 일 하는 거면 차라리 다른 데 찾는 게 맞다"며 "수강료는 서로 무책임해지지 않기 위해서 내는 것이다"라고 하더군요. 확실히 수강생들 입장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자신이 낸 비용이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듣지 않을까요? 그리고 강사 입장에서는 소정의 수강료라도 받으니 조금 더 책임감 있게 과목을 지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강의를 개설한 개설자를 '학과장'이라고 대우하면서, 이태원 대학에서 개설되는 모든 강의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는 것도 마음에 쏙 들더군요.



게다가 이태원 대학은 용산구에서 적극적으로 후원해주고 있어 전망도 밝은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용산구에서 이태원 대학을 지역사회를 이끄는 시범 모델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줄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용산문화예술창작소도 무료 대관을 해주는 것이고, 오늘 구청 직원들도 나와서 적극적으로 저희의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았습니다. 


창술을 지도하기에 장소가 비좁은 것 같다는 제 의견에 대해서도 "주차장이나 옥상에서 강의를 지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겠다"고 하고, 커피 관련 학과를 만들려고 하는 바리스타 한 분이 "커피용품이 없는 점이 애로사항이다"라고 하니 "그 역시 구에서 물품을 준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하더군요. 여러모로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후원을 해주니 든든하기도 하고, 잘하면 용산구에 무예24기를 뿌리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소 외에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무기 마련'입니다. 창술 같은 경우 당연히 창이 준비되어야 하는데, 수강생들이 개개인별로 창을 구비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봉으로 대체한다 하더라도 봉을 구매할 의사가 얼마나 될지 막막한 게 사실입니다. 한 번 배우고 말 수도 있는데, 봉을 사야한다고 하면 부담스러워서 안 들으려고 할 사람들도 있겠죠. 더욱이 봉을 들고 다니기도 버겁고. 


그런데 이 문제 역시 한 방에 해결됐습니다. 일단 이태원 대학 측이 운영비로 봉을 구입해주겠다고 합니다. 또 봉을 가지고 다니는 게 힘들다면, 창작소 건물에다가 보관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겠다고도 하더군요. 걱정했던 부분들이 시원시원하게 해결되고, 빵빵한 지원까지 곁들여지니 흡족합니다.


일단 8월 말에 공식 PT를 한다고 하니, 잘 준비해봐야겠습니다. 10월 개강 전까지 수련 역시 열심히 해서 다시 한 번 열정을 불태워봐야겠습니다. 이번엔 열정대학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용두사미'가 안되도록 최선을 다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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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덥습니다.


안그래도 2박 3일 동안 캠프 다녀오느라, 몸도 지칠대로 지친 상태여서 아침에 눈을 뜨고서도 '오늘 수련을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늘 수련을 빠지면 일주일을 또 후회할 것 같아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정규수련에 참여했습니다. 날이 더워서 조금만 움직여도 옷이 땀으로 흠뻑 젖고, 뜨거운 햇살에 금세 지치기도 했지만, 집중해서 수련을 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군요.


오늘은 '기창(단창)' 연습을 위주로 했습니다. 사부님께 기창 투로를 전체적으로 점검받고, 기본기 중 찌르기 자세를 지도받았습니다. 저렇게 화단의 작은 풀잎을 표적으로 삼아 찌르는 연습을 했는데, 일단 첫 번째 영상에서는 팔힘을 쓰지 않고 온전히 하체 힘으로만 찌르기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무예가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하체에서 힘이 나오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하체의 힘만으로 창을 찌른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질 않아 힘이 전혀 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반복하다보니 어느 정도 감이 오더군요. 진보로 나가다가 표적에 닿는 순간 정지하면서 뒷다리에 힘을 실러 팍 찔러주니 힘이 실립니다. 바로 두 번째 단계로 나가 상체 힘까지 같이 쓰니 위력이 배가 되는 걸 느낍니다. 표적을 정해놓고 하다보니 집중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고, 찌르기시 고질적으로 드러나는 '삽질' 문제도 교정이 되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영상은 같이 수련하는 친구가 찌르기 연습을 하는 영상인데, 저렇게 표적지를 만들어서 찌르기 연습을 해봤습니다. 풀잎보다 저렇게 푹 찌르면 찢어지는 과녁이 있으니 더 재밌더군요.



이건 제가 찌른 종이입니다. 찌르기 연습 도중에 사부님께서 갑자기 바닥에 굴러다니는 종이조각을 하나 주워서 '여기 빨간 부분을 표적이라 생각하고 찌르라'고 주문하시더군요. 집중해서 찔렀는데 푹 들어가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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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수련 중에 '허공의자'라는 수련이 있다. 무예24기를 수련하며 배운 것인데, 등을 벽에 바싹 붙이고 허리를 낮춰 의자에 앉은 것마냥 허공에 앉아 버티는 수련이다. 중국무술의 마보와도 비슷한데, 마보만큼이나 힘든 수련 중 하나다.


이 자세는 척추를 바르게 하고, 기혈을 뚫어주어 내기(內氣)의 순환을 원활하게 만드는 자세라고 한다. 앉아서 버티는 자세이니 하체 단련이 되는 것은 묻지 않아도 당연한 일이다. 하루 10분씩 3개월 이상 꾸준히 하면 뱃살도 들어간다고 한다.


처음 이 자세를 배웠을 때는, 1분을 버티기도 힘들었다. 그때 사부님이 "여학생들도 10분 이상은 한다"고 하길래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군대 있을 때는, 매일 같이 이 자세를 연습하기도 했다. 그때도 3~4분을 넘기기 힘들었던 것 같다.


허공의자 수련은 결코 쉽지 않은데, 우선 하체가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힘들기 때문이다. 중국무술의 마보 자세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허리를 낮추고 앉아 오랜 시간 버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지루함' 역시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고통이다. 가만히 앉아서 5분, 10분 버틴다는 게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다보니 허공의자를 하는 도중에 '얼마나 됐을까' 하며 계속 시계를 들여다보게 되는데, 고작 1분 지났을 뿐이다. 이런 지루함을 이겨내보고자 일부러 TV를 보면서 하기도 했고, 음악을 틀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지루함을 다소 덜 수는 있었지만,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너무 힘든 수련인지라, 사실 무예를 수련하면서도 은근슬쩍 이 수련은 거르곤 했다. '오늘은 몸이 피곤하니까 생략해야겠다', 이런 식으로 갖은 핑계를 대면서 내 자신과 타협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사부님으로부터 허공의자의 효용성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도록 계속 듣다보니, 꾸준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내 자신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평생 무예를 수련하며 대가가 되겠다고 다짐해놓고서는 힘들다는 이유로 수련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큼 완벽한 '자기모순'도 없을 것이다. 사부님이 내게 자주 하는 말씀 중에 하나가 "그래가지고 무슨 대가가 되겠다는거야?"다. 확실히 이런 말을 들으면 자극이 된다.


요즘은 그래서 개인수련을 하게 되면, 무조건 허공의자부터 먼저 한다. 최소 10분을 기준으로 허공의자를 수련하는데, 며칠 전부터 허공의자가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엔 항상 힘들다. 하지만 1~2분 정도 시간이 지나고 자세가 완전히 잡히면, 어느 순간 하체가 시원해지며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오늘은 그 느낌이 절정에 달했다. 너무 편안해서 졸음이 올 지경이었다. 오늘은 TV나 음악도 켜지 않았다. 사부님 말씀대로 온전히 호흡에만 집중했다. 그랬는데도 지루함은커녕 편안함이 느껴졌다. 몸이 편안해지니 마음도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원래 같았으면 하체가 부들부들 떨리고, 땀이 비오듯 줄줄 흘렀을텐데 오늘은 땀도 그닥 안 나고, 하체도 일체의 요동이 없었다. 다만 등에는 땀이 나서 자꾸 미끄러지는 바람에 하체가 계속 허리 아래로 낮아지는 바람에 자세를 일정하게 유지하지 못했던 게 아쉽다. 그럴 때마다 다시 자세를 잡곤 했지만, 한 번 풀린 자세를 다시 잡는 게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시간을 정확하게 재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오늘은 20분 가까이 한 것 같다.


사부님 말씀에 따르면 "이 자세를 하고 나서 호흡을 하면 정말 공기가 맛있다"고 하는데, 나는 원체 감각이 둔한지라 아직까지는 그런 느낌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르면 허공의자가 편안해진다'는 말에는 공감할 정도가 된 것 같아 뿌듯함을 느낀다. 꾸준히 하다보면 나중에는 공기가 맛있다는 말에도 공감할 정도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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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도보통지』 기창(旗槍)


增(증)


창날 길이 9촌, 자루 길이 9척, 붉은 칠을 한다. 주석판 이하에서는 검은색·흰색 칠을 모두 5마디로 하고, 혹은 누런색이나 붉은색의 작은 기를 단다. 


『엄주사부고( 州四部藁)』에 이르기를, "문황제(大明 成祖황제)의 어창(御槍: 임금님의 창)은 오문루(午門樓)의 포좌(座:어탑) 오른쪽에 두었는데, 창은 칠한 합죽으로 자루를 알고, 검은 정기를 달았는데, 약호(若號)중에 늘어뜨린 단 중에는 여러 가지 별들을 수놓았다. 창자루에는 칼자국이 세 군데나 있고, 화살 구멍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기록에 의하면 문황(文皇)이라 칭했다. 


그는 매번 대적을 만나면 문득 용감한 기병(驥騈)을 거느리고 중견으로 부딪쳐 들어가서(中堅:『후한서』「광무제전」에 '그 중견을 부딪쳐 들어가서...' 注에 중군장 지존이 기거하므로 견고하고 정예로써 스스로를 도우게 되어 있기 때문에 중견이라 한다.) 적 후방을 에워 싸고 깃발을 흔들면 군사들이 다투어 분전하니 적은 순식간에 크게 무너진다."


『고려사』「여복지(輿服志)」에 이르기를, "임금의 수레에 의장병으로 소기창대(小旗槍隊)의 장교(將校)가 2명이 연등한다(고려에는 팔관 연등회가 있다)." 기는 노부(의장병이다. 진·한 때부터 그 이름이 시작된다)은간 (작은 대나무) 작은 기창 이다.


案(안)


문황의 창은 기병의 무기이다. 『고려사』「여복지(輿服志)」에 실려있는 것은 의장용 무기이다. 기를 단 창을 인용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이다. 무릇 군의 행렬(5열 종대이기 때문에 군오(軍伍)라 함)은 각각의 장수가 무기를 잡고 이어서 치고 받는 자세를 연습한즉 대저 깃대를 단 창대에 날을 붙인 것은 그 치고 찌르는 술(무예기법)을 전하려 하는 것이니 오히려 현명하지 않겠는가? 호미와 고무래(『회남자』주에는 흙덩이를 부수는 연장이다)도 병기가 된다. 이에 별도로 하나의 창으로 갖추어 그 자세를 익힌다.


번역문 출처: 한국전통무예연구소(www.muye24ki.com)


[초식]


1. 용약재연(龍躍在淵)

2. 거극(擧戟)

3. 야차탐해(夜叉探海)

4. 중평(中平)

5. 중평(中平)

6. 진왕마기(秦王磨旗)

7. 한신점기(韓信點旗)

8. 중평(中平)

9. 복호(伏虎)

10. 퇴산색해(堆山塞海)

11. 거극(擧戟)

12. 은교출해(銀蛟出海)

13. 중평(中平)

14. 복호(伏虎)

15. 우일자(右一刺)

16. 좌일자(左一刺)

17. 후일자(後一刺)

18. 전일자(前一刺)

19. 야차탐해(夜叉探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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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http://news.donga.com/3/all/20130502/54850209/1

 

[최형국의 무예 이야기] 조선시대 무예의 요체 4가지

 

담력 기르고 힘 키운 뒤, 정교하게 다듬고 속도로 완성


누구라도 ‘무예(武藝)’란 말을 들으면 강한 주먹이나 날렵한 몸놀림부터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인지 무예를 익힌 사람 주위에는 허무맹랑한 무용담이 떠돌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존경심을 잃지 않는다. 중국 무협영화에 등장하는 신비한 무공비급이나 특정 무술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신명이 난다. 하지만 전장에서의 무예란 개인의 생명, 나아가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는 존재다. 조선시대 군사들은 늘 무예의 핵심에 대해 고민했고, 그것을 실전에서 재현하기 위해 끊임없는 훈련을 반복했다.


임진년의 뼈아픈 기억


1592년 4월에 일어난 일본과의 전쟁은 조선이란 국가의 시스템을 순식간에 마비시킬 정도로 커다란 재앙이었다.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을 겪으며 가장 많은 혼란과 변화를 겪은 곳은 다름 아닌 군대였다. 이후 조선군은 그동안 유지 발전시켜 온 무예를 대대적으로 개조해야 했다. 


전쟁을 시작한 지 20일도 못 되어 수도 한성이 적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것은 군인 입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치욕이었다. 게다가 조선은 국왕이 수도를 버리고 개성과 평양을 거쳐 국경선 근처 의주로 피란해야 하는 한계 상황까지 내몰렸다. 물론 이후 북쪽에서 명나라 구원군이 도착했고 남해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내륙에서는 관군과 의병이 활약해 전세를 만회할 수는 있었다.


이렇게 불리한 전황을 극복하기 위해 군대 시스템을 재편하고 군사무예의 변화를 꾀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시에는 ‘변화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이 압도적으로 작용했다. 승부와 직결되는 군사들의 무예 훈련은 조선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이런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국왕이 직접 무예서 편찬을 지시하게 됐다. 즉각 당대 최고의 병법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무예의 요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훈련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당시 조선의 최고 이론가들이 정리한 군사무예의 핵심은 일담(一膽), 이력(二力), 삼정(三精), 사쾌(四快)로 정리할 수 있다. 그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면 조선시대 군사무예의 존재 의미를 간결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먼저 담, 즉 용기다(一膽). 우리는 “간담이 서늘하다”는 말을 흔히 한다. 간장과 쓸개는 용기를 나타낸다. 담력은 예로부터 무예의 요체 가운데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특히 실제 전투상황과 직결된다. 창칼이 번득이고 화살과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는 담력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담력이 부족한 병사는 실전에서 주변의 전우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아군에 득보다는 실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 군대에서는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담(膽)을 가장 먼저 훈련시켰다. 요즘 군대의 이른바 ‘악으로, 깡으로’ 식의 군사훈련도 그 근원이 같다. 


사기(士氣)는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다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각 군사의 용기를 군대라는 집단으로 모아낸 개념이다. 군사의 기상이 하늘을 찌르는 것이야말로 군대의 미덕이다. 예전 군대의 가장 기초적인 훈련이 담력을 기르는 것이었던 이유다.


두 번째는 힘이다(二力). 담력을 어느 정도 갖게 된 사람은 반드시 ‘힘(力)’을 기르는 훈련으로 나아가야 한다. 조선시대의 전투는 맨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병장기를 들고 하는 것이었다. 무거운 병장기를 자유롭게 다루기 위해서는 당연히 힘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군사들은 때론 일부러 무거운 갑옷을 입은 채로 훈련하거나 실전에서 쓰는 무기보다 무거운 장비를 사용해 근력을 단련했다. 또 전투가 벌어지면 자신의 무기가 망가지거나 분실되는 경우가 많아 타 병종의 다양한 무기를 다루는 일도 훈련에 포함되곤 했다.


무예의 요체… 담력, 힘, 정교함, 빠름


세 번째는 정교함이다(三精). 용기를 갖추고 힘을 기른 후에는 이를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 


군사들의 사기가 충천하고 그 힘이 태산을 무너뜨릴 정도로 거세다면 일단 절반의 승리는 보장된 셈이다. 그러나 각 군사들의 무예실력이나 진법훈련이 정교하지 못하고 투박하다면 어느새 상대방의 공세에 틈을 보이고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고대 로마시대의 시민군은 정교한 전법과 진법으로 전략적 능력이 떨어지는 게르만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마지막 미덕은 바로 신속함이다(四快). 실전에서는 빠르고 통쾌한 한 방을 준비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나아가 적의 창칼보다 빠르게 움직여야만 전투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고, 적보다 총알이나 화살을 더 빠르게 쏴야만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용기, 힘, 정교함이 모두 부족한데 빠르기만 해서도 곤란하다. 이런 자는 전투에서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옛 사람들은 무예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하고 그 중요도를 지키는 것이 효과적인 무예훈련이라고 보았다.


현대인들은 흔히 ‘사는 것이 전쟁’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그만큼 혹독한 경쟁 속에서 하루를 보내기 때문인지 요즘 여기저기서 ‘힐링(치유)’이라는 말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온다. 삶이라는 전투에서 심신의 상처를 입었으니 넉넉히 보듬어 달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인 셈이다. 


전쟁과도 같은 개개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힐링하기 위해 조선시대 무예의 요체인 담-력-정-쾌(膽-力-精-快)를 적용해 봐도 좋을 것이다. 자신이 부닥친 일에 대해 용기와 힘을 갖고 대응하며, 그것을 정교하고 빠르게 처리한다면 우리 모두가 인생의 승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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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수련하고 있는 '무예24기 한양류'의 2016년 하계 정기총회가 어제 있었습니다. 


저희 단체는 2009년 창립 이래 매년 정기총회를 꾸준히 열고 있습니다. 상반기와 하반기에 한 차례씩, 1년에 두 번 열리죠. 급하게 해결해야 할 안건이 생기면 임시총회가 열리기도 합니다.


다른 단체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희 단체는 전통적인 무술 도장의 도제식 문화와는 거리가 많이 멉니다. 그래서 총회를 통해 사부님과 제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주어진 안건에 대해 격의 없이 토론을 벌이곤 합니다. 어떻게 보면 사부님께서 실험을 하고 계신 거겠죠. 매니아틱한 전통무예를 가르치는 단체이기 때문에, 무겁고 딱딱한 수련 분위기를 만들면 오히려 대중화에 걸림돌이 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듯 합니다. 그래서 사부님 스스로 모든 권위를 내려놓고 '총회' 시스템을 도입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이번 총회에서도 다양한 안건들이 나왔습니다. 주요 꼭지들만 요약해서 설명해보자면,


1. 하반기 행사 일정 점검


무예24기 공연을 요청하는 지자체나 단체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리고 저희 스스로 그런 기회를 찾아 공연 요청을 하기도 하고요. 이번에는 한양류가 위치한 동작구 관내에서 생활체육대회 등 다양한 무대가 열린다고 합니다. 


특히 11월 말에는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에서 기념관 개관 5주년 기념 행사에 공연 참가할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그쪽 기념관 관계자 분들과 제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관계로, 무예24기 공연을 의뢰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더군요. 8월 6일에 제가 한 번 방문해서 간단하게 시범 보인 뒤에 공연 여부를 결정짓기로 했습니다. 만약 공연이 성사된다면 재밌게 놀다 와야죠. 가는 김에 거기서 1박 2일로 MT도 하기로 했습니다.


2. 홍보 활동 관련 논의


무예24기 자체가 홍보는 많이 되고는 있습니다. 특히 수원화성에서 매일 하는 정기시범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고 있죠. 하지만 무예24기 공연은 공연이고, 저희 단체는 단체니까요. 그리고 저희 단체는 공연용 무술을 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군사무예 복원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노선이 명확히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간의 의혹(무예24기는 평생 할 수 없다, 무예24기는 무술적 가치가 없다 는 등등)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반박하고, 실력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희 단체 역시 나름대로의 홍보 활동을 펼쳐나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를 위해 타 문파를 벤치마킹한 방안들을 제시해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공개참관을 의미하는 '오픈하우스'나 세미나 등을 개최하는 거죠. 초학자 대상의 '단기 전수회' 개최도 긍정적으로 논의가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홍보를 위한 충분한 예산이 확보되고, 단체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 시범 준비가 되면 겨울방학 때쯤에 전격적으로 추진해보기로 했습니다.



대략 이 정도였고요. 더 많은 내용들이 있었지만, 다 내부적인 이야기라... 확실히 총회를 통해 다른 수련생들과 토론을 하다보니 생각지 못한 의견들이 많이 나오더군요. 


저는 어쨌거나 무술이란 기본적으로 호신이 가능해야 그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회의 내내 계속해서 '실전성 증명'과 같은 측면에 입각한 홍보를 주장했는데요, 몇몇 수련생들은 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하더군요. 그중의 한 수련생은 좀 날카로운 지적을 했습니다.



"일본 고류검술들도 이제는 실전성 증명이 아니라 그냥 전통문화 계승 차원에서 전수를 하고 있는데, 무예24기와 같은 병장기 위주 무예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지금 시대에 칼, 창 들고 실전기술을 가르친다고 하는 건 호신이 아니라 살인행위를 가르치는 것 아니냐"


사실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병장기를 수련하는 단체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제가 권법에 집착하는 이유도 그렇고요. 


그렇지만 제가 생각하는 실전성이란 '무술의 본질적 의미를 알고 수련하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수원화성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무예24기 공연을 보면, 화려함을 위해 인위적으로 가미된 부분, 과장된 동작들이 존재합니다. 그런 동작들을 보고 실제 무술을 하는 분들 중에 "저런 동작은 실제로 쓰지도 못한다"고 생각하고, 무예24기의 가치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더랬습니다. 물론 당연히 쓸 수 없는 동작들이죠. 중국무술로 치면 '우슈'와 같은 표연용 무술이니까요.


하지만 실제로 그런 동작은 제대로 무예24기를 복원하고 수련하는 곳에서는 하지 않습니다. 관객들에게 호응하기 위해 공연에서만 선보이는 동작들이죠. 저희 단체 역시 그런 점에서 공연 팀과는 명백히 노선을 달리합니다. 곤방(봉) 하나를 쓰더라도, 타점을 정확히 이해하면서 실제 상황에서 좀 더 효율적으로 상대방의 봉을 방어하고 공격하는 움직임을 추구합니다. 이런 게 바로 '실전'이라는 거죠.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게 무술의 본질적 의미를 제대로 알고, 그 효율적인 움직임을 제대로 수련하고 있다는 점을 홍보하자는 뜻이었습니다.


여하간 이런 생산적인 토론과 함께, 평소 바빠서 잘 오지 않던 수련생들도 대거 참석하여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이 마침 초복이기도 해서, 총회 종료 후에는 근처 양꼬치집에 가서 칭다오 맥주를 곁들인 양꼬치와 경장육슬, 마파두부 등의 중국요리로 몸보신을 했네요. 



그러고도 다들 아쉬웠던지, 2차로는 마트에서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들고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효사정에 가서 노상 뒷풀이를 즐겼습니다. 마침 비가 와서 날이 선선한지라 한강 바람도 시원하게 불고, 밖에서 술 마시기에 아주 좋더군요. 그렇게 오가는 술잔과 함께 다들 한층 더 화목해진 것 같습니다. 사부님도 뒷풀이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오늘 여러모로 벅차오르는 것 같다"고 뿌듯해 하시더군요.



여러모로 제가 몸 담고 있는 단체이니만큼 계속해서 잘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다른 무술과는 별개로 무예24기는 무예24기대로 평생 할 생각이고, 특히 이 단체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체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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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쯤이던가요, 갑자기 사부님으로부터 "중학교에서 무예를 가르쳐보겠느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내용인즉슨, 서울 소재 한 중학교에서 자유학기 예·체능 교육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무예24기 중 권법(拳法)을 지도해달라며, 사부님께 강사 의뢰를 했다고 합니다. 사부님은 본인 일도 바쁘고 하셔서 저한테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많이 망설였을 것 같은데, 전역한 직후 백수 신세라 늘 비어있는 통장 잔고 탓에 한숨만 쉬고 있는 터에 좋은 기회다 싶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현실적인 문제가 가장 컸죠. 거기에 사부님께서 믿고 맡기시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고요. 또 자유학기 강사 경험이 훗날 전수관을 차린다거나 할 때 여러모로 좋은 경험으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덥썩 한다고 수락했죠.


지원부터 계약 체결까지는 일사천리였습니다. 학교 측에서 먼저 강사 직을 제의한지라, 면접도 형식에 불과했습니다. 나름 면접이라고 자기소개서 한 번 쭉 검토하고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도 준비해서 갔는데, 교감 선생님께서 "바로 계약 체결합시다"하고 쿨하게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어제 해당 학교에 방문해서 계약 체결하고 왔습니다. 알바를 한 번도 안 해본지라, 계약서를 쓰는 경험 자체가 처음이었어요. 여긴 학교라서 계약 절차가 좀 더 복잡한 것 같았습니다. 신체검사 결과도 내야해서, 계약 맺기로 결정나자마자 곧장 보라매병원가서 부랴부랴 '공무원 채용신체검사'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학교라 그런지 '성범죄 및 아동학대 관련 범죄 전력 조회 동의서'란 것도 즉석에서 자필사인한 뒤에 제출했습니다. 경찰서에서 신원조회도 한다고 합니다. 세상이 흉흉하니 이런 절차는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진: 계약서 사진입니다)


아무튼 여름방학 끝나고 2학기부터 수업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내년 2월까지가 계약 기간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이고, 6, 7교시 2시간 수업이라고 합니다. 한 반에 20명 정도 된다고 하는데, 많은 수의 학생들에게 뭔가를 가르쳐보는 게 처음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교원자격증이 있는 강사의 경우, 혼자 지도할 수 있지만 없는 경우에는 학교 선생님과 Co-teaching 한다고 합니다. 애들을 가르쳐보기는커녕, 어울려 본 적도 없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노련한 선생님께서 옆에서 보조해주신다면 훨씬 수월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사진: 예시로 작성해 본 수업계획서입니다)


여하간 당분간은 금전 사정이 해결될 것 같습니다. 덕분에 취미 생활도 당분간은 맘 놓고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이상 집에서 논다고 눈치보지 않아도 되고요. 아무튼 열정대학에서의 무예 지도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열심히 지도해 볼 생각입니다.


PS. 점점 아이들이 교육 받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 흐뭇합니다. 제가 중학생, 고등학생 때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물론 제가 다녔던 성남고등학교에서는 검도와 유도가 필수과목이긴 했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종목을 선택할 자유가 없었습니다. 일부러 무예24기를 배우고 싶어 멀리서 찾아오는 이들도 있는데, 이제 일선 교육현장에서도 접할 수 있다니, 학생들은 복 받은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도 영춘권, 무예24기, 태껸 등 다양한 무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제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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