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 동안, 아니 준비와 홍보 기간까지 포함하면 올 여름부터 꽤나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했던 '이태원 대학교'가 어제부로 종강을 했습니다. 실질적인 강의는 고작 한 달 남짓 이루어졌을 뿐이지만, 막상 종강을 했다고 생각하니 아쉬움과 허탈함이 남습니다. 그만큼 전역 후 이렇다 할 활동 없이 지내던 제게 강렬한 기억을 안겨준 활동이 아니었나 합니다.


어제는 특히 제가 개설했던 <조자룡창술배워볼과>의 마지막 강의가 있었습니다. 제 수업만을 듣기 위해 멀리 청주에서부터 올라왔던 대학생, 취재로 바쁜 와중에도 창술 수업만큼은 꼭 듣겠다며 꾸준히 나오던 현직 기자, 가녀린 체구에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연습하던 유일한 여자 수련생까지. 면면은 다양했지만 수련할 때만큼은 모두 한결 같이 뛰어난 집중력과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어제는 그래서 기창(旗槍) 진도를 다 나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속성으로 진행한 것이라 엄밀히 말해서 다 배웠다고 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제 강의의 기본 목적은 '무예에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함'이었기에, 맛만 보라는 식으로 기창 투로를 끝까지 한 번씩은 해볼 수 있게끔 지도했습니다. 고기맛도 먹어봐야 알 수 있는 법이니까요.



사실 저는 누군가를 가르쳤다는 데 의의를 두기 보다는, 제 스스로의 경험을 쌓는 데 더 큰 의의가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솔직히 매 강의에 앞서 꾸준히 수련하면서 수강생들에게 지도할 부분을 점검했지만, 막상 지도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헷갈리는 부분이 생기더군요.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드러난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실력의 부족함을 스스로 깨닫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래서 더 자극을 받았습니다. 매 수업이 끝나고나면 평소보다 배는 더 열심히 수련하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어제 4강을 끝으로 <조자룡창술배워볼과>는 종강했습니다. 다른 강의들도 공식적으로는 어제 종강을 했는데요, 저녁에는 강의실인 용산문화예술창작소 연습실에서 종강 파티가 열렸습니다. 각자 음식을 갖고 와서 나눠 먹는 포트럭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각종 주류(와인, 맥주, 소주)와 퀄리티 있는 안주(빵, 치킨, 도너츠, 케익, 과자, 피자 등)가 있어 입이 우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종강파티에서는 그동안 수강생 혹은 학과장들이 간단하게 공연을 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세월호에서 죽은 아이들을 추모하는 전통춤사위, K-POP 댄스, 가야금 연주, 버스킹 공연 등등... 다채로운 공연들로 눈과 귀마저 즐겁더군요. 이렇게 다재다능한 학과장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스럽고, 또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조자룡창술배워볼과>를 대표해서 '무예24기 삼국검술'이라는 공연명으로 시범을 했습니다. 조선의 검술인 본국검과 중국의 검술 제독검, 일본의 검술 왜검을 차례로 선보였습니다. 급하게 결정된 공연이라 벼락치기로 연습했더니 실전에서 초보적인 실수를 한 게 마음에 걸리네요. 역시 여전히 수련이 부족함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긴장 좀 풀겠다고 와인 한 잔 마시고 취중검술을 펼친 게 실수의 원인일지도... 쿨럭)



마지막엔 다함께 플래시몹을 추는 것으로 공식 행사를 마쳤습니다. 다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이태원대학교는 아마 내년 3~4월 쯤에나 2학기가 개강할 예정입니다. 무려 4개월 가까이 긴 방학을 맞이한 셈이죠. 그 전에 노량진대학교, 신촌대학교 등 다른 대안대학의 새 학기가 시작합니다만, 제가 처음 발을 담근 곳이 이태원대학이기에 유달리 정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인 듯 합니다. 11월 중순에는 '노량진대학교'에 <조선제일검 되어볼과>를 개설합니다만, 내년에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태원대학교에 또 한 번 강의를 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6년 동안 살면서 이태원 갈 일이 별로 없었는데, 올해 한 달 동안 이태원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더니 이제 낯익은 동네가 되었네요. 앞으로도 이태원을 가게 된다면 이태원대학교 생각이 제일 많이 날 것 같습니다.


Posted by 가베치
,

오늘 저녁 이태원에 위치한 용산문화예술창작소 연습실에서 '이태원대학' 10월 개설강좌 PT 발표가 있었습니다. 저도 한양류를 대표하여 오늘 발표에 참여했습니다.


참고로 이태원대학은 열정대학, 신촌대학교처럼 '배우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학교'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대안학교의 일종입니다. 강의실로 활용하려는 용산문화예술창작소가 이태원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태원대학이란 이름이 붙었고요. 올 10월에 첫 학기가 시작되는데, 저 역시 초대 학과장으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이태원대학에 제가 개설하려는 강좌는 <조자룡창술배워볼과> 입니다. 강좌명은 이태원대학을 운영하는 MBN 윤범기 기자님이 직접 지어주셨습니다. 역시 기자님답게 네이밍 센스가 보통이 아니시더군요.



<조자룡창술배워볼과>는 무예24기 중 하나인 기창(旗槍)을 수련하는 과목이 될 것입니다. 이태원대학 학사과정상 4주 커리큘럼이 원칙이지만, 4주 안에 기창을 배우는 것은 너무 짧은 것 같아 5주로 늘렸습니다. 무예를 익히게 5주도 당연히 짧습니다. 무예란 평생 수련하는 것이니까요. 어쨌든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최대한 하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주면 그래도 창과 친숙해지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라는 생각입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역시 '무예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거죠. 오늘 피티 발표 때도 그 점을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흔히들 무예하면 어렵고 위험하고 남자들만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나도 겁이 많다. 위험하기 때문에 더 안전하게 한다"고 강조하면서, 무예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게 수업 목표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더불어 이 관심이 실제적인 수련으로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죠. 꼭 무예24기가 아니어도, 근처 무술도장에만 등록하더라도 좋겠습니다.


다행히 창을 대체할 수련용 봉은 이태원대학 측에서 운영비로 보조한다고 합니다. 고로 수업을 듣는 분들은 봉을 따로 구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장소는 보라매공원으로 하려다가, 창작소 옥상에 가보니 비교적 넓어서 할 만할 것 같더군요. 거기서 하면 봉도 보관해둘 수 있으니 운반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것이고... 일단 5명 미만이면 폐강이라고 제가 기준을 세워놨습니다. 기왕지사 칼을... 아니, 창을 뽑았으니 뭐라도 찔러(?)야하지 않겠습니까. 폐강만 안된다면 좋겠군요.

Posted by 가베치
,

열정대학에서의 첫 무예 강의가 용두사미로 끝나버린 뒤로, 당분간은 개인수련이나 열심히 하면서 실력을 키우는 데 전념하기로 마음 먹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한 군데에 가있으면, 계속 그 쪽으로 기회가 생기나 봅니다. 열정대학과 비슷한 플랫폼을 가진 대안학교인 '이태원 대학교'에서 또다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스카웃 제의가 들어온 계기는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한 장 때문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수련터에 나가서 기창 수련을 하고 찍은 사진을 제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그 사진을 MBN 윤범기 기자님이 본 겁니다. 참고로 윤 기자님과는 열정대학 기자학과 강의를 통해 서로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요, 그분은 신촌대학교와 노량진대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번엔 이태원대학교 개강을 준비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윤 기자님께서 그 사진을 보자마자 제게 "우리 창술배워볼과 한 번 만들어보면 어떨까요?"하고 제의를 하신 겁니다. 사실 기창은 제가 배운 지 오래 되지 않기에, 누군가를 지도할 만한 실력은 당연히 안된다고 생각했고, 열정대학에서 받은 상처가 아물기도 전이라서 망설여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일단 사부님과 먼저 의논을 하겠다고 했는데, 사부님께서는 또다시 "한 번 만들어보라"고 하시더군요. 윤 기자님 역시 집요하게 개설을 독려하기도 했고, 사부님도 제가 기창을 지도하는 것에 대해서 허락하셨기에... 다시 한 번 무예를 지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슬슬 들더군요. 그래도 약간의 망설임이 남아 있었기에, 오늘 열리는 사전 모임에 참여해서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나 확실히 보고 듣고 난 뒤에 판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태원 대학교의 강의실로 활용될 '용산문화예술창작소'에서 열린 사전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다른 강의 개설자 분들을 보니, 아무래도 나이는 제가 제일 어린 듯 합니다. 사는 곳도, 직업도 제각각이더군요. 교수, 변호사, 공무원 등등 면면히 정말 화려했습니다. 북놀이, 고전무용과 같은 무형문화재를 이수한 분들도 계셨습니다.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계신 분들이, 자발적으로 재능기부를 위해 모인 것을 보니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다들 자기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인 듯한데, 제가 여기 낄 자격이 되나 싶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인 이태원 대학 소개에 앞서, 앞으로 강의실로 활용될 공간을 둘러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인원 구성에 따라 30명 정도 수강이 가능한 소강의실부터, 최대 6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대강의실까지 있고요, 예·체능 과목을 위한 '공연연습실'도 별도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여기서 창술을 지도하게 될텐데, 오늘 둘러보니 평수는 충분하지만 천장이 낮아서 창을 휘두르기엔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되긴 합니다. 이에 대해서 오늘 의견 조율이 있었는데, 정 안되면 옥상이나 주차장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보니까 주차장은 버스 전용 주차장이라 아주 넓더군요.


오늘 설명을 들어보니, 열정대학보다는 여러모로 안정적인 구조인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열정대학의 맹점 중 하나는 전공 과목이 아닌 이상 개설자가 수강료를 받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수강료가 없으면 개설자 입장에서도 무책임해지기 쉽고, 수강생들도 자기가 수강하는 과목의 가치를 가볍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죠. 수강료를 내지 않기 때문에, 듣다가 마음에 안 들거나 귀찮으면 '안 들으면 그만' 하고 잠수타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함께 무예 배워볼과' 역시 이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태원 대학은 일단 그런 점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수강료'를 받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돈 받자고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수강료가 많은 것은 아닙니다. 소액의 수강료고, 그것도 개설자와 이태원 대학 운영위원회 측이 5:5로 나눠가집니다. 


여기에 대해 윤 기자님도 "돈 벌자고 이런 일 하는 거면 차라리 다른 데 찾는 게 맞다"며 "수강료는 서로 무책임해지지 않기 위해서 내는 것이다"라고 하더군요. 확실히 수강생들 입장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자신이 낸 비용이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듣지 않을까요? 그리고 강사 입장에서는 소정의 수강료라도 받으니 조금 더 책임감 있게 과목을 지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강의를 개설한 개설자를 '학과장'이라고 대우하면서, 이태원 대학에서 개설되는 모든 강의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는 것도 마음에 쏙 들더군요.



게다가 이태원 대학은 용산구에서 적극적으로 후원해주고 있어 전망도 밝은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용산구에서 이태원 대학을 지역사회를 이끄는 시범 모델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줄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용산문화예술창작소도 무료 대관을 해주는 것이고, 오늘 구청 직원들도 나와서 적극적으로 저희의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았습니다. 


창술을 지도하기에 장소가 비좁은 것 같다는 제 의견에 대해서도 "주차장이나 옥상에서 강의를 지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겠다"고 하고, 커피 관련 학과를 만들려고 하는 바리스타 한 분이 "커피용품이 없는 점이 애로사항이다"라고 하니 "그 역시 구에서 물품을 준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하더군요. 여러모로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후원을 해주니 든든하기도 하고, 잘하면 용산구에 무예24기를 뿌리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소 외에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무기 마련'입니다. 창술 같은 경우 당연히 창이 준비되어야 하는데, 수강생들이 개개인별로 창을 구비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봉으로 대체한다 하더라도 봉을 구매할 의사가 얼마나 될지 막막한 게 사실입니다. 한 번 배우고 말 수도 있는데, 봉을 사야한다고 하면 부담스러워서 안 들으려고 할 사람들도 있겠죠. 더욱이 봉을 들고 다니기도 버겁고. 


그런데 이 문제 역시 한 방에 해결됐습니다. 일단 이태원 대학 측이 운영비로 봉을 구입해주겠다고 합니다. 또 봉을 가지고 다니는 게 힘들다면, 창작소 건물에다가 보관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겠다고도 하더군요. 걱정했던 부분들이 시원시원하게 해결되고, 빵빵한 지원까지 곁들여지니 흡족합니다.


일단 8월 말에 공식 PT를 한다고 하니, 잘 준비해봐야겠습니다. 10월 개강 전까지 수련 역시 열심히 해서 다시 한 번 열정을 불태워봐야겠습니다. 이번엔 열정대학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용두사미'가 안되도록 최선을 다해보렵니다.

Posted by 가베치
,

오늘 신촌 미플에서 열린 신촌대학교 <필살기논작학과> 특강을 청강하고 왔다. 신촌대학교는 내가 다녔던 열정대학과 비슷한 취지로 설립된 대안학교인데, 열정대학 기자학과에 강사로 왔던 MBN 윤범기 기자가 직접 창립한 학교다. 기자학과 강의가 인연이 되어, 윤 기자님이 나를 신촌대학 단톡방에 초대해주신 덕분에 신촌대학에서 열리는 다양한 강좌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이번 특강 소식도 그렇게 알게 된 것.


특히 오늘 특강은 중앙일보 논설위원인 권석천 위원이 강의를 한다고 하여, 청강을 신청하게 되었다. 외부인의 청강을 일절 허락하지 않는 열정대학과 달리, 신촌대학은 외부인의 청강을 자유롭게 허락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튼 권 위원의 특강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권 위원으로부터 들어야 할 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열정대학 기자학과 사전과제가 권석천 위원이 쓴 <정의를 부탁해>라는 책을 읽고 후기를 남기는 것이었는데, 그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바 있었다. 그래서 권 위원께 따로 메일을 보내 나의 고민을 토로하고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다. 그게 바로 딱 한 달 전의 일이었는데, 워낙 바쁜 분이라 그런지 아직까지 답장을 받지 못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마침 특강도 있겠다, 오늘 직접 오프라인에서 강의도 듣고, 메일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도 듣고자 한 것이다.



강의는 1시간 30분 동안 이루어졌는데, 권석천 위원이 그동안 중앙일보에 써왔던 칼럼들을 사례로 들면서, '왜 이런 글을 썼는지', '해당 칼럼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는지' 등을 설명했다. '세월호', '진경준-우병우' 등 굵직굵직한 사회 이슈들에 대한 칼럼이 주로 소개되었다. 


그가 쓴 <정의를 부탁해>를 읽으면서도 이미 느낀 바지만, 그는 언론인의 역할에 대해 남다른 신념을 갖고 있는 듯 했다. "많은 기자들이 자신이 속한 신문사의 종군기자가 되어버렸다"며 기자들 대부분이 소속 신문사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나팔수가 되어버린 '어용 저널리즘'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한 것. 그래서 그런 기자들을 가리켜 '기레기'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글의 주제가 어떻든 간에, 그것을 꼭 좌와 우 혹은 진보와 보수 등 진영논리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해석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월호 문제와 같은 것은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다툴 정치적 쟁점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 사고가 있었던 원인을 분석하고, 진상을 파악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반성을 해야한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은 어느 순간부터, 그 입장에 따라 좌파와 우파로 나뉘는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세월호 사건 이후 권 위원이 쓴 칼럼들은 대부분 그 원인을 세월호로부터 찾고 있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세월호 사건을 통해 드러난 한국 사회의 안일함을 반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정지어 말한다.



오늘 권 위원이 한 이야기 중 "글을 쓸 때는 가장 먼저 '감정'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무릇 기자라면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원칙일 터인데, 감정이 있어야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어떤 사건을 접하든 간에 먼저 그 사건에 대해 감정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칼럼처럼 필자의 주관이 강하게 개입되는 글일수록 그렇다. 자신이 쓰고자하는 대상에 대해 그것이 연민이 됐든 분노가 됐든, 감정을 느껴야 보다 생생한 글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감정이 곧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된다고. 


뉴스를 취재할 때도 당연히 감정이 필요하다. 세월호를 예로 들어보자. 수많은 유족들이 언론을 적대시하던 것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왜 유족들이 언론을 적대시할 수밖에 없었나. 수많은 기자들이 '특종', '속보'에만 집착하며, 감정 없는 취재를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이들이 차가운 바닷 속에 갇혀있는 것에 분노하며 피눈물을 흘리는 유족들에게 카메라 셔터를 들이밀며 '업무'를 수행하는 기자들의 행태는 가히 기레기라고 할 만 했다. 그들에겐 피도 눈물도 없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감정 있는 글쓰기와 취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자, 이제 내가 권 위원에게 보냈던 고민을 이야기해보자. 사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언론인(기자)에 대한 로망도 있다. 아직 갈팡질팡하고는 있지만, 결정적인 동기부여가 이루어진다면, 언론고시를 준비할 마음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기자가 되기엔 부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계속 망설이는 중이다.


기자가 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원인 중 하나는 '줏대 있는 글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만의 관점과 논리를 가진 글을 쓰기가 어렵다는 점이 내 한계였다. 어떤 사건을 바라볼 때도 'A의 말도 맞는 것 같고, B의 말도 맞는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중립의 입장에서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고자 하는 신념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사안을 바라볼 때, 누구 말이 맞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울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논리적으로 글을 써야하는 기자가 자신의 논리에 자신감이 없다는 건 심각한 함정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줏대 있는 글쓰기', '깊이 있는 글쓰기'를 하는 방법에 대해 권 위원께 메일을 보냈었다.


그리고 오늘 강의를 통해 그런 답답함이 어느 정도는 해소되었다고 본다. 정답을 얻었다기보다는, 권 위원 당신의 경험이 녹아든 조언을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권 위원은 "완벽하게 글을 쓰려고 하지 마라"고 계속 강조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충족시키는 글은 없다. 나조차도 내가 쓴 칼럼에 대해 반박하고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내가 쓴 글에 대해 동의하는 독자가 3~40% 정도만 된다고 해도, 그 글은 성공한 글이다"라는 것이다. 또한 "편견 없는 글쓰기 역시 불가능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논리도, 모두의 동의를 얻어내는 완전한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 완전한 논리를 갖추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자신의 논리가 완벽한 논리라고 생각하고 밀어붙여라"라는 조언도 도움이 되었다.


다시 한 번 구체적인 조언을 구하는 내게, 권 위원은 "정치적 쟁점이 치열한 사안일수록 공부를 많이 해야한다"며 "책도 많이 읽고, 해당 사안에 대해 많이 공부한 뒤에 글을 쓰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예로 들었던 '메갈 사태'에 대해서, 그 역시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잘 몰라서 함부로 대답하기 어렵다"고 답변해주었다. 그런 권 위원을 보면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것은, 베테랑 기자라고 해서 모든 사안에 대해 전문가도 아니며, 글을 쓸 때도 자신의 논리가 맞는지 확신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점이었다. 베테랑 기자도 이럴진대, 풋내기 기자지망생이 이런 고민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일터. 그런 점에서 다소 위안이 되었다.


아무튼 권석천 위원 역시 지금도 글을 쓸 때, 막연하고 두려워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26년차 베테랑 언론인이자 대한민국 메이저 신문 중 하나인 중앙일보의 논설위원으로 수많은 칼럼을 써왔지만, 여전히 "텅 빈 화면에 커서만 깜빡이는 것을 보면 막연하고 두렵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머리가 아닌 그저 두 손을 믿고 글을 쓴다"고 한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며칠을 고민하고 4~5시간을 쓴 뒤에, 다시 다음 날 수정하는 식으로 계속 쓰고, 고치고를 반복한단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몇 년만 더 글을 쓰고,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다"고 한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그에게도 글쓰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힘들다는 뜻이렷다.


고작 2시간 남짓한 강의였지만, 충분히 유익했고 즐거운 강의시간이었다. 사실 장준하 선생 이후로 내게 깊은 인상을 준 언론인은 없었는데, 권석천이란 언론인에게 점점 호감이 가기 시작한다. 그가 쓴 모든 칼럼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있는 한국 사회의 기형적인 구조에 대해 비판하는 모습에서 내가 지향하는 언론인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특히 비판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는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도 '남에게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으려' 배려한다는 그의 글쓰기 원칙도 매우 높이 평가한다. 앞으로는 그의 칼럼을 자주 읽어봐야겠다.


Posted by 가베치
,

야심차게 기획하고 시도했던 열정대학 학생선택과목 '함께 무예 배워볼과'가 조기 종강되었습니다. 아니 폐강되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지 싶습니다. 정해진 이수기간을 채우지 못했고, 종강조차 소리소문 없이 이루어졌으니까요.


원래는 7월 16일이 종강 예정일이었습니다. 종강일에는 수강생들과 다함께 모여 종강파티를 할 예정이었고, 제 구상으로는 사당 본부전수관에 가서 사부님께 최종 점검을 받는 형식으로 추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종강파티는커녕 공식적인 종강을 알리지도 못하고 그냥 흐지부지 끝나버렸습니다. 이미 종강예정일이 지났으니, 종강은 했다고 봐야하겠죠. 더 이상 수업을 진행할 의사도 없으니까요.


사부님도 기대가 컸고, 저 역시 야심차게 준비했던 과목이었기에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는데, 안타깝기만 합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초반엔 매끄럽게 잘 진행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강남역 살인사건' 등으로 워낙 사회가 뒤숭숭하다보니, 호신술을 지도하는 과목이 개설되었을 때 오히려 여학생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결국 '함께 무예 배워볼과'도 저 포함 총 7명이 수업에 함께 했는데, 저 빼고 6명 전원이 여학생이었습니다.


저 역시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기본 틀은 무예24기의 권법을 지도하는 것이었지만, 그동안 제가 배운 무술들의 기법을 응용한 호신술도 조금씩 지도했고, 그 기법에 대한 무예24기만의 방어법도 고안해서 지도했습니다. 일단 무예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죠. 과하게 수련하면 오히려 지치고 질려할까봐, 수강생 개개인의 신체 여건에 맞춰 꼼꼼히 지도하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원래는 토요일 하루 수업이었지만, 주말에 시간이 안된다는 수강생들을 위해 평일 저녁 시간까지 할애해가면서 별도의 클래스를 추가 개설했고요. 수강생들에게 매 수업 후 수련일기를 블로그에 올리도록 과제를 부여했고, 꼼꼼히 읽으며 일일이 피드백해주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부분은 사부님께 대신 물어봐가면서까지 성실하게 답변을 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초반 몇 주 동안은 반응이 매우 뜨거웠습니다. 다들 수련 시간에 열심히 나와주었고, 심지어 추가적으로 또 나와서 보강을 받는 수강생도 있었습니다. 수련일기도 다들 꼼꼼히 잘 써주었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삐그덕거리기 시작하더군요. 갑자기 다들 바쁘다고 수련에 참석할 수 없다고 해서 첫 번째 결강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열정대학 건물이 아닌 사당 전수관을 대관하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다들 전수관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특별히 준비했는데, 당일 날 취소하려니 사부님께도 면이 안서더군요.


그런데 얼마 못 가서, 두 번째 결강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토요반 수강생들이 계속 나올 생각을 안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이건 안되겠다 싶어서 아예 토요반을 전격 폐지해버렸습니다. 평일에 꾸준히 나오는 수강생 대상으로만 하겠다고 선포했죠. 그렇게 2주 연속 결강 사태를 맞이한 제 심정도 우울했고, 수강생들에게 서운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한 편으로, 제 지도 방식에 문제가 있나 싶어 수강생들에게 기탄없이 의견을 제시하라고도 했는데, 오히려 자신들이 바빠서 그런거고 열심히 해주고 계신다고 위로를 해주더군요.


어쨌거나 2주 연속 결강으로 더 이상 초기의 커리큘럼(권법 28세 진도를 모두 나가는 것)대로 수업 진행하기는 틀렸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목검을 들고 가서 서로 격검을 시키거나 호신술 위주로 지도하는 등 좀 더 흥미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평일반 수강생들도 결석 혹은 잦은 지각으로 수련 시간을 제대로 맞춰주질 않더군요. 거기에 겹친 장마로 인해 하루 또 결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대로 된 마무리도 없이 종강만 바라보게 됐네요. 그래도 유종의 미는 거두어야겠다는 생각에, 수강생들과 함께 종강파티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해보려 했습니다. 가장 먼저 언제 하면 좋겠냐고 의견을 구했는데, 다들 묵묵부답입니다.


마지막이니만큼 가급적 다수의 사람들이 모였으면 하는 마음에 일부러 평일, 주말 구분없이 다 열어놓고 가능한 날짜 투표하라고 했는데... 다들 제각각인데다가 심지어 투표 참여율이 반도 안되더군요. 이건 아니다 싶기도 하고, 너무 섭섭해서 "그럼 차라리 여러분이 의견을 제시해달라"고까지 호소했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올 뿐. 아무도 대답을 안 하네요. 


제가 더 이상 매달려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매달릴 이유도 없기에 씁쓸하지만 그냥 단톡방을 나와버렸습니다. 이대로 종강인 거죠 뭐. 그 길로 사부님께 "가치를 모르는 이들에게 굳이 가르치려 매달릴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도 "이번 열정대학 사태가 네 잘못이건 네 잘못이 아니건, 뭐든지 스스로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반성해야한다"고 따끔하게 충고해주시더군요. 동감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수강생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죠. 뭔가 말 못할 불만들이 있었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 한 번 곰곰이 고민을 해봤는데,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번 열정대학 '함께 무예 배워볼과'는 유종의 미는 거두지 못했지만, 일종의 반면교사로 좋은 교훈은 될 것 같습니다. 특히 2학기부터 자유학기 강사로 중학생들에게 무예를 지도하게 되는데, 이번 실패의 경험은 반드시 되새겨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뭐 사람 일이 항상 잘되란 법은 없죠. 그냥 훌훌 털어버리렵니다.

Posted by 가베치
,

기자학과 4강은 요즘 유행하는 '카드뉴스'에 대해 배워보는 시간이었다. 강의를 맡은 이는 서울경제신문 뉴미디어부 소속 정수현 기자.



카드뉴스란 무엇인가


카드뉴스란 모바일에 최적화된 뉴스 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는 보도 형식이다. 흔히들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서 스토리가 있는 사진 기사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카드뉴스인데, 검지손가락으로 살짝 밀면 사진들이 넘어가면서 스토리가 이어지는 게 특징. 


이제는 전국민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닐 정도다. 바야흐로 모바일 시대에서, 종이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텍스트로만 구성된 온라인 뉴스조차 읽는 이가 많지 않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가져온 폐해일 수도 있고, 자극적이고 화려한 콘텐츠에만 길들여져서 텍스트를 읽을 가독력이 떨어졌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안타까운 현실인 것은 사실.


그러나 대중의 요구에 부합하여,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기삿거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것이 언론의 숙명일 터. 아무리 '종이신문의 중요성'과 'SNS의 폐해'에 대해 부르짖어봤자, 대중들은 관심도 없다. 종이신문이나 온라인 텍스트 뉴스의 효용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전자의 가치에 대해서도 꾸준히 환기를 시키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맞게 대중들에게 사회의 소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카드뉴스는 일종의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지금은 온라인 뉴스 뿐만 아니라 조중동과 같은 거대 언론마저도 카드뉴스 제작에 힘쓰고 있는 실정이다.


정수현 기자 역시 "독자가 우선이다"라고 강조하면서 "(언론사들도) 새로운 독자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마인드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말인즉슨, 읽기 편하고 재미있고 실속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언론사들도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 정 기자는 "대중들은 중요한 뉴스와 함께 보고 싶은 뉴스를 원한다"며 "중요하다고 느끼게끔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카드뉴스를 통해 화두를 던지고, 자연스레 텍스트 기사를 찾아보게끔 유도해야 한다는 것.


카드뉴스의 특징


1. 모바일에 최적화된 뉴스 콘텐츠

2. 텍스트의 최소화

3. 압축적인 디자인

4. 감성적 스토리텔링

5. 이미지 슬라이딩 패턴

6. 기존 뉴스 자원 재활용

7. SNS 최적화


카드뉴스 요약하는 법


1. 텍스트 바디를 만든다

2. 첫 번째 슬라이드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내용을 넣어라

3. 기승전결로 이어가라


정 기자는 카드뉴스를 제작하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자질로 '콘텐츠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Designer' 혹은 '이미지를 충분히 이해하는 Editor'의 자질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이 말의 뜻은 무엇일까?


사실 지금 카드뉴스를 제작하는 언론사들의 경우, 텍스트 취재 담당과 카드뉴스 디자인 담당이 분업하여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자 1인이 취재와 제작을 모두 담당하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고, 또 언론사 역시 그런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인재를 더 선호하고 있다고. 결국 콘텐츠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디자이너 혹은 감각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는 에디터 1인이 카드뉴스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이어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편집하는 기본적인 틀에 대해 설명했다.




표현하는 방법


1. Curation (큐레이션) : 사진 한 장에 아름다운 문장으로 주석(설명)을 달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

2. Scale (강조) : 문자 없이 강렬한 이미지 한 장으로 강조하는 것

3. Blank (여백) : 잡다한 메뉴보다는 본연의 목적 하나 만을 강조하는 것 (ex. 구글 vs 네이버)

4. Unconventional (창의적) :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표현 (ex. 그림자로 비춰지는 맥도날드 광고)

5. Plot (스토리) : 사진에 스토리를 담아 의미를 부여하기


편집의 5가지 기초


1. 큰 그림 (반전의 효과. 멀리 있을 때는 안 보였지만 확대해보니 본질 등장)

2. 축약하라

3. 팩트의 임팩트

4. 전체적인 테마(인상)를 정하라

5. 질서를 갖춰라 (디자인의 규칙 준수)


카드뉴스의 한계


그런데 정 기자는 "카드뉴스는 더 이상 언론사에서 밀고 있는 콘텐츠가 아니다"라고 잘라말했다. 바야흐로 카드뉴스가 대세인데, 이게 무슨 말일까? 


그녀는 "이미지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라며 오히려 많은 독자들이 카드뉴스에 질려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짤막한 카드뉴스만 보던 독자들이, 그 얇은 깊이 탓에 오히려 텍스트 뉴스를 찾아본다는 것이다. 가볍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장점이라고 여겨졌던 부분이, 오히려 함정이 되어 발목을 붙잡은 것.


카드뉴스의 한계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회 이슈들 중에서는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이 많다. 이처럼 디지털의 대안이 되기에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언론사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그 한계를 지적했다.


새로운 대안, 인터랙티브 뉴스


그녀는 카드뉴스 대신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다른 대안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오늘 강의가 있던 날, 언론의 새로운 트렌드에 대한 국제세미나가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 세미나가 끝나자마자 곧장 강의를 하러 열정대학으로 온 것인데, 카드뉴스보다는 그런 언론의 새로운 동향에 대해 더 알려주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발빠른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언론의 트렌드를 파악해야 한다"며 우리에게 트렌드 변화에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지난 기자학과 3강 김관 기자가 강조한 'VR 미디어' 혹은 '드론 미디어'와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였다.


그녀가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 언론 트렌드는 '인터랙티브 뉴스(interactive news)'였다. 인터랙티브 뉴스란 텍스트는 물론, 인포그래픽과 사진, 동영상 등을 통합 편집한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말한다. 기존 온라인 뉴스와 달리 독자가 실시간으로 반응할 수 있으며, 그 반응에 맞춰 움직이는 웹페이지를 구현한다고 한다. 즉, 읽는 뉴스가 아니라 시청하고 체험하는 뉴스인 것이다. 이 뉴스의 형식은 자유롭다. 하지만 기존의 1차원적인 형식에서 벗어나있다. 3D 그래픽과 모션 캡쳐 등을 활용하여 보다 생생하게 콘텐츠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


결국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언론이 살아남으려면(그리고 언론계에 들어가려면) 더 이상 전통적인 능력(이를테면 문장력 등)만 강조해서는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능력은 당연히 갖춰야할 소양이며, 여기에 더해 시대의 변화에 맞춘 새로운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 바로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한 능력을 의미한다. 드론이나 VR에 대한 조예도 될 수 있고, 인터랙티브 뉴스를 제작할 수 있는 그래픽 디자인 능력이 될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발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를 파악하는 능력이 제일 중요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강의를 마무리하며...


정수현 기자는 입사 1년 차의 새내기 기자라고 한다. 새내기다운 풋풋함이 많이 느껴졌다. 전달력이나 강의 진행이 앞선 기자들보다 매끄럽지는 못했지만, 기존 강의를 맡아준 기자들보다 풋풋함이 많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이 아는 모든 바를 가감없이 솔직하게 전달하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인지 우리에게 수업 내내 "여러분이 궁금해하는 바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싶다"며 계속 질문을 요구했다. 그리고 받은 질문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대답해주었다. 기자로서 힘든 점에 대해서도 거의 넋두리하다시피 풀어놓길래, 안쓰럽기도 했다.


강의가 거의 끝나갈 무렵,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나간 그녀는 "데스크에서 또 다시 취재 명령이 떨어졌다"며 즉석에서 우리들을 대상으로 인터뷰 요청을 했다. 그때 시각이 무려 밤 10시 30분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밤 늦은 시간까지도 일해야 하는 그녀가 안쓰러웠던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모두 그녀에게 동정을 표시했다. 그래서 나 역시 예상치 못한 인터뷰를 하게 되었지만, 적극적으로 응해주었다.


아무튼 다시 한 번 언론의 트렌드 변화 파악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더 이상 카드뉴스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도 새겨두어야 할 것 같다.

Posted by 가베치
,

기자학과 두 번째 수업의 주제는 '언론사 논작쓰기'. 연사는 MBN의 윤범기 기자였다.


사실 '언론사 논작쓰기'라고 해서, 다소 딱딱하고 지루한 수업이 될까봐 처음부터 긴장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윤 기자는 처음부터 언론사 논작쓰기라는 주제로 접근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언론고시의 개념과 시험 합격 Tip'을 소개했는데, 이를 소개하면서 어느 순간 '언론사 논작쓰기'로 접근했다. 수업 진행은 어찌나 매끄럽고 깔끔하던지. 일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강의를 이끌어나가는 그의 언변에 집중하다보니, 어느새 1시간 30분이 훌쩍 흘러가버렸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막연하게만 생각해왔지, 정작 기자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할 '언론고시'에 대해서는 그 개념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있었던 차였다. 그래서 오히려 이번 강의가 무척 유용하게 느껴져서 좋았던 것 같다.


언론고시란?


엄밀히 따져서 '언론고시'라는 시험은 없다. 언론사에 입사하기 위한 테스트가 사법고시, 행정고시만큼이나 어렵다는 뜻에서 '언론고시'라는 별칭으로 불리우는 것일 뿐, 다른 고시들처럼 중앙부처에서 주관하는 시험이 있는 게 아니다. 언론사별로 시험을 보는 시기나 절차가 제각각이며, 본인이 지망하는 언론사에서 주관하는 시험에 합격하면, 그걸로 해당 언론사에 입사하면 그만인 것이다.



언론고시의 단계


언론사별로 조금씩 시험 형식이 다를 수는 있겠으나, 기본적인 틀은 다 비슷하다고 한다. 그 틀은 아래와 같이 이루어져있다.


■ 1차 - 서류전형


: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영어 점수(토익)를 본다. 여기에 '한국어능력시험'이 들어간다. 일부 언론사의 경우 자체적인 테스트를 추가하기도 한다. 1차에서 보통 1,000명 정도 선발한다고 함 (경쟁률은 2:1)


■ 2차 - 필기시험


: 언론고시 중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시험. 1차에서 뽑은 1,000명 중 100명만을 선발한다. (경쟁률이 무려 10:1) 필기라고 해서 단순히 대학 입시와 같은 논술 평가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무려 4단계에 걸쳐 지원자의 역량을 평가한다. 그 단계는 아래와 같다.


(1) 1교시 - 상식

(2) 2교시 - 논술

(3) 3교시 - 작문

(4) 4교시 - 실무평가


윤범기 기자는 각 단계별 특징을 자세하게 소개하였는데, 1교시 상식과 같은 경우 "지원자의 상식을 알아보기 위한 테스트이기도 하나, 본질적으로는 불성실한 이들을 떨어뜨리기 위한 의도가 숨어있다"며 "보통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지망생들끼리 모여서 시사상식 문제집을 풀며 스터디를 하는데, 이 스터디를 하지 않은 학생들은 무조건 낙방한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스터디를 해도 다 맞힐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따라서 1~2문제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것인데, 스터디를 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여기서 판가름난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언론사 논술/작문 작성하기


윤 기자가 가장 강조한 것은 2, 3교시 논술/작문 테스트였다. 논술하면 누구나 대학 입시 때 한 번쯤은 준비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같은 경우도 경기도 소재 모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논술시험을 봤다가 낙방의 고배를 마신 쓰라린 경험이 있다. 그러나 윤 기자는 "대학 입시 때 준비했던 논술을 생각하면 안된다"고 못박았다.


보통 언론고시에서 이야기하는 논술/작문이란 단어 하나를 제시어로 내면, 그 제시어 하나만으로 응시자가 자유롭게 한 편의 글을 써내는 것이란다. 결국 정답이 없는 시험이란 것이다. 




윤 기자는 사례로 2003년 조선일보에서 출제한 '격(格)'이라는 단어가 제시어로 출제된 시험 문제를 보여주었다. 다들 이 제시어만 보고서는 어떻게 글을 써나가야할지 막막해보였다.


윤 기자는 "이 문제가 출제된 연도와 출제 언론사를 잘 살펴보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딱 떠오르는 게 있었다. '노무현'. 그렇다. 2003년은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였다. 당시 노 대통령은 각종 말실수로 구설수에 올라있었고, 그런 노 대통령과 가장 대척점에 서 있던 언론이 바로 조선일보였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누구나 조금만 고민하면 생각할 수 있는 문제다. 대놓고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로 시작하면 차별성이 없다. 왜?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고, 쓰기 때문이다. 


윤 기자는 실제로 이 시험에서 1등으로 통과한 기자의 답안을 공개하였는데, 그 기자는 자신이 대학 수업 때 교양으로 배운 라틴어를 사례로 들어, 글을 써냈다고 한다. 대충 내용을 요약하자면, 라틴어의 격이 다양하다는 내용을 언급하며, "라틴어의 다양한 격이 라틴어의 아름다운 풍격을 만들어내듯, 대통령은 대통령의 격에 맞게, 언론은 언론의 격에 맞게, 국민은 국민의 격에 맞게 조화를 이루어야 좋은 사회가 된다"는 식으로 마무리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마지막에 살짝 '대통령의 격'을 언급함으로써, 조선일보 심사위원의 의도를 충족시키면서도 주제를 참신하게 풀어내어 장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언론사 논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창의적인 소재를 활용하는 것'이다. 윤 기자는 "글을 봤을 때 떠오르는 첫 번째 소재를 무조건 배제하라"고 강조했다. 내가 처음 떠올리는 소재는 누구나 생각하는 흔한 소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둘째, "결론을 먼저 내리고, 그 결론을 잘 나타낼 소재를 찾는 것"이다. 이는 결국 앞서 언급한 조선일보 기자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경험이 많아야 다른 사람과 다른 소재를 떠올릴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마지막 4교시 실무평가의 경우는 방송기사를 직접 써보거나 기사 기획안을 작성하는 시험인데, 어차피 응시자들 중에 실제로 써본 이들이 매우 드물기에, 크게 변별력이 있는 시험은 아니라고. 결국 필기시험은 2, 3교시 논작 시험에서 모든 승부로 판가름난다는 것이다.


필기시험 후에는?


■ 3차 - 1차 면접


: 1차 면접은 평기자들이 면접관이 되어 보는 시험이라고 한다. 이 시험에서 100명 중 35명 정도가 합격을 하는데, 여기에는 나름 법칙이 있다고 한다. 4차 합숙평가 때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합숙장소로 이동하게 되는데, 버스 탑승인원이 총 45인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계자들까지 포함해서 버스 한 대에 탑승할 인원들로만 선발해야 하기 때문에 35명 정도 선발한다고. 얼핏 들으면 우스개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진짜라고 한다.


■ 4차 - 합숙 평가


: 4차까지 왔다면 다들 긴장이 많이 풀렸을 것이다. 나름 높은 경쟁률을 뚫고 여기까지 온 자원들인데다가, 합숙이라고 하니 MT를 온 것마냥 설레기도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어쨌든 합숙 평가도 엄연한 테스트. 합숙 평가에서는 응시자들에게 제한시간을 준 뒤에, 나가서 아무 거나 붙잡고 취재를 해오라고 시킨단다. 그렇게 취재하고 작성한 기사를 응시자들이 직접 발표하게 되고, 심사위원들이 테스트한다. 그리고 밤에는 다함께 술을 마시며 그 사람의 술 취한 뒤 드러나는 본심을 테스트하는 '취중테스트'까지. 여기서 다시 20명이 떨어져나간다.


■ 5차 - 최종 면접


: 최종 면접에서는 총 5명 정도 선발이 된다고 한다. 마지막 면접에서 최종 선발을 하는 이는 해당 언론사의 회장 혹은 사장이라고 한다. 데스크 부장들도 동석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 사람들은 질문만 하고 실제로 선발하는 것은 결국 최고 권력자인 회장이나 사장이 낙점하게 된다고. 결국 언론사 사주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듣고보니, 언론고시란 게 왜 '고시'인지 알 것만 같았다. 그동안은 막연하게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냥 쉽게 될 수 있는 직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수업을 듣고보니 이건 보통 어려운 시험이 아니다. 기자가 되기 위해 삼수, 사수 이상 투자하는 수험생들도 많고, 한 해 평균 2,000명 정도가 지원을 한다고 하는데, 웬만한 의지와 노력 없이는 붙을 수가 없는 시험인 것이다. 오히려 이 시험을 만만하게 생각하고 지원한다면, 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밤새 불을 켜고 공부하는 수험생들에게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를 많이 하라


마지막으로 윤 기자는 "경험을 많이 쌓으라"고 강조했다. 앞서도 언급하였다시피, 논작의 핵심은 '참신한 소재'다. 그리고 이런 소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쌓아야만 한다. 윤 기자는 "경험은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이 있는데, 직접 경험은 어차피 모든 사람이 초중고 12년 정규교육과정을 밟아왔다면 거의 다 비슷할 것이다"라며 "그렇다면 간접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하는데, 간접 경험을 위한 대표적인 수단이 바로 '독서'다"라고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독서가 중요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읽어야 할까? 


윤 기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고전 혹은 역사를 읽어야 한다". 많은 언론들이 고전 혹은 역사서의 구절이나 고사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내용을 알지 못한다면 무엇을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윤 기자는 "고전과 역사를 많이 읽어두어야 논작을 쓸 때도 더 다양한 고사를 인용하며 멋진 글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대인들이 방대한 고전과 역사서를 다 읽을 수는 없는 노릇. 윤 기자는 "요즘은 만화로 된 고전이나 역사서가 많다. 조선왕조실록도 만화로 된 책이 있다"며 "우선은 만화로 가볍게 읽으며, 대강의 역사적 얼개만 기억하면 된다. 그러다가 더 관심이 있는 분야는 활자로 된 책을 찾아서 읽으면 되지 않느냐"고 조언했다.


[Tip] 윤범기 기자가 조언하는 '책 읽기 위한 습관'


1. 핸드폰을 끊어라

2. 지하철을 타라

3. 항상 손에 책을 들어라

4. 독서일기를 써라

5. 카톡 프로필을 바꿔라 (프로필에 현재 읽고 있는 책을 적음으로써 동기부여)

6. 독서모임을 해라

7. 저자를 불러라


수업이 끝난 뒤에는 윤범기 기자와 수강생들 사이의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윤범기 기자와 기자학과 수강생과의 일문일답


Q. 기자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A. 현직 기자들에게 기자 준비한다고 하면 '기자 힘들다', '그거 왜 하려고 하냐'며 부정적으로 대답하곤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기자란 직업은 매우 좋은 직업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기자라고 하면 어딜 가도 존중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쓰는 일을 업으로 하면, 훗날 다른 일을 하더라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Q. 조중동을 읽으면 보수적으로 생각이 변하고, 한겨레를 읽으면 진보적으로 생각이 변한다. 어떤 신문을 어떻게 읽어야 균형 있게 신문을 읽을 수 있을까


A. 보수언론을 대표하는 신문 하나와 진보언론을 대표하는 신문 하나를 같이 읽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 읽기 힘들다면 차라리 '한국일보'를 추천한다. 한국일보라고 하면 어떤 성향인지 딱 떠오르는가? 아마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대중들에게 '무성향'으로 각인되어 있는 신문일수록 가장 당파성이 없어 읽기 좋다


뒤풀이를 빙자해 열린 2부 강의


수업이 끝나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윤범기 기자 曰 "우리 가볍게 맥주나 한 잔씩들 합시다!" 이렇게 적극적인 강연자는 처음 보았다. 대개 강연자라고 하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서 시간 맞춰 강연하다가 끝나기가 무섭게 퇴장하는 경우가 다반사. 하지만 윤 기자는 오히려 뒤풀이를 먼저 제안한 것이다.


나 역시 집에 가려다말고,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세라 맥줏집 뒤풀이에 합석했다. 사실 뒤풀이라고는 하지만, 내 생각엔 뒤풀이를 빙자해 열린 2부 강의였다고 본다. 윤 기자는 이 자리에서 본인의 생각과 고민을 털어놓고,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바람을 피력했던 것이다.


그는 기성 대학의 문제점을 계속 지적하면서, 젊은이들이 '대학자퇴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사람의 평균 수명이 100세를 넘기면서, 서구권에서는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직업을 3~4개 이상 갖는다"며 "우리는 젊은 시절 선택한 직업 하나를 천직으로 알고 평생 동안 그 직업에만 매달리다가, 퇴직하면 남은 인생을 허무하게 보낸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다시 "인생 이모작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3모작, 4모작이다. 남은 인생이 길기 때문에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직업도 여러 직업을 가져보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결국 본인이 하기 싫은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산다는 건 불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외에도 정치, 경제를 넘나들며 다양한 주제로 토론이 이어졌다. 특히 윤 기자는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본인이 직접 '신촌대학교'라는 대안학교를 설립했다고 한다. 신촌대학교는 열정대학과 비슷한 설립목적을 가지고 출범한 단체인데, 현재 열정대학 유덕수 총장과도 서로 교류하면서 이 땅의 젊은이들이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나 역시 평소 내가 품고 있던 고민을 털어놓았다. 내가 "기자가 되고 싶지만, 내가 쓴 기사들이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잘려나가는 것을 견디기 힘들 것 같다"고 토로하자, 그는 "우리나라 언론이 아직까지 당파성이 심하다. 그게 싫으면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고 하면서도 "그래서 대안 언론이 존재하지 않느냐. 정 기자가 되고 싶다면, 대안 언론쪽으로 기자가 되는 것을 알아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며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다보니, 어느새 밤 11시가 넘어버렸다. 너무 시간이 늦은 탓에, 아쉽게 파해야했지만 정말 흥미진진하고 유익했던 시간이었다. 오늘 취중토크를 마치며 각자 소감 한 마디씩 발표하는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열정대학 입학 후에, 솔직히 열정대학이 나와 잘 맞는지 안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는데, 오늘 기자학과 수업을 듣고나서 열정대학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솔직한 심정이었다. 열정대학이 아니었다면 언제 이렇게 현직 기자와 취중토크를 하며, 내 진솔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겠는가. 이런 기회를 제공해준 열정대학 측에 고마움을 전달하고 싶다.






Posted by 가베치
,

■ 책의 제목


인문학 습관/윤소정 저/다산초당/2015


■ 저자에 관하여


저자 윤소정은 현재 인재양성소 '인큐'라는 교육기업을 운영하는 여성교육가이다. 


그녀는 굉장히 불우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하는데, 아버지의 실직으로 집안이 기울면서 굉장히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고 회고한다.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공부와도 담을 쌓게 되면서,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당시 그녀는 B와 D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단다. 그러나 뼈를 깎는 노력으로 영어공부에 매진, 훗날 대학교의 영어강사로 취직하는 데 성공한다.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교에 회의를 느끼고 자퇴를 결정하였으며,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인재양성소 '인큐'를 설립했다. 일상의 모든 것을 통해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실용 인문학'을 전파하는 것이 그녀가 운영하는 인큐의 설립취지라고 한다.


참고로 나는 아직 군 복무 중이었던 올해 초, 군대를 통해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다. 


매주 수요일은 정신교육을 하는 날이라, 전 부대원이 아침부터 '국방TV'를 시청하는데, 그때 '명강특강'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명사를 초청해 국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는 코너다. 여기에 윤소정 씨가 출연한 것이다. 사실 국방TV는 그냥 틀어만 놓고, 실제로 보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아리따운 젊은 아가씨가 나와서 특강을 하고 있으니까, 열심히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처음엔 그녀의 미모에 끌려서 특강에 집중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특강 내용에 공감하며 집중해서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녀와 내가 인연이 있던 것인지, 신기하게도 그 후로는 어딜 가도 그녀의 이름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읽게 된 '700만원짜리 도장을 파는 장인 이야기'에 탄식을 하며 읽을 정도로,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알고보니 그 글을 쓴 이가 바로 명강특강의 윤소정 강사였다. 그 이야기에 감명을 받은 나 역시 '사람 공부'를 해본답시고, 함께 무예를 수련하는 여동생을 불러내어 장시간 인터뷰를 해보기도 했다. (그 당시 내가 했던 인터뷰 링크: http://gabeci.tistory.com/109)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었다. 전역을 얼마 앞두지 않은 상황에서, 내게 무예를 가르쳐주시는 사부님이 "《인문학 습관》이라는 책을 한 번 읽어보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하며 책을 추천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책을 쓴 저자가 또 윤소정 씨였다. 그렇게 해서 읽게 된 책이 바로 지금 독서노트로 작성하고 있는 《인문학 습관》이다.


얼마 전에, 그녀가 운영하는 인큐에 가입해볼 요량으로, 인큐에 대해서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전역 후 백수인 나로서는 수중에 가진 돈이 없어 등록금이 다소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 열정대학조차도 간신히 입학을 결정하지 않았던가. 어쨌건 그녀와 나와의 인연이 계속 이어진다면, 꼭 인큐가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그녀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날이 있을 거라 확신한다.


■ 인상 깊은 구절


1. '열심히'가 아니라 '어떻게'를 고민하라 (p.7)


2. 세상은 그저 열심히 떡볶이를 만드는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맛이 있어야 합니다. 즉,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p.8)


3. "세상에는 매우 총명하고 고등교육을 받았으나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그들이 어려서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교육받고 근면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이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부지런하게 일해도 남과 똑같이 해서는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성공은 당신이 얼마나 많이 노력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 장옌, 「알리바바 마윈의 12가지 인생강의」 중 (p.9)


4. 중요한 일이 있기 전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깨졌다. (p.21)


5. "책이라는 것은 얼어붙은 나의 세상을 깨는 도끼와 같아야 한다." - 카프카 (p.22)


6. (서양 최초의 철학자를 묻는 교수의 질문에 학생들이 저마다 다른 대답을 내놓자) "답을 탈레스입니다. 이름을 기억하려고 하지는 마세요. 그가 왜 최초의 철학자인지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탈레스는 세상이 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사람입니다. 물론 그의 주장은 틀렸습니다. 세상은 물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최초의 철학자일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르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것, 이것이 곧 철학입니다!" (p.24)


7.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나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 (p.28)


8. 쐐기벌레는 앞에 가는 벌레의 자국을 보고 졸졸 따라가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에 흥미를 느낀 파브르는 재미있는 실험을 합니다. 쐐기벌레를 원형의 대형으로 줄을 세우고 서로의 엉덩이를 졸졸 따라가게 만들었죠.

그러고 나서 아주 맛있는 먹이를 대형 밖에 설치하였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한 마리라도 대형을 이탈하고 먹이에 달려들어야 하겠죠?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쐐기벌레는 무려 6일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앞에 가는 벌레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갔던 것입니다. 그러다 대다수가 죽어버렸습니다. 만약 이 중에 단 한 마리라도 용기 있게 대형을 깨고 이탈했다면 모두 살 수 있었을테죠. (p.30)


9. 깨달았다 = 깨뜨리다+다다랐다 = 깨고 다다랐다


10. 우리는 계속해서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에서 '사랑'을 배울 수 있으니까요.


11. 실제로 단점에 새로운 '의미 부여'를 하면서 더더욱 단단해지는 친구들이 많이 있답니다. 단점은 나쁘다는 고정 관념을 깨고 다르게 생각하는 습관을 키운다면 분명 우리 삶에 있어 단점 또한 최고의 자산이 되어줄 것입니다. (p.68)


12. 고흐 역시 우리처럼 매일 일을 하기 전에 자신을 의심했다고 합니다. '이 일이 내게 맞는 일인가?', '내가 이 일에 재능이 있을까?' 그림을 잘 그리는 일은 천재 화가에게도 고통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붓을 잡으면 늘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기 때문에 그 일을 쭉 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가 평생 그림을 그린 이유는 그것이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가슴 뛰는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몰입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p.104)


13.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결정하는 것이다 - 벤 스타인


14. "이건 너의 길이야. 남들을 따라가지 마" (p.116)


15. "불필요한 일에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 - 마키아벨리, 「군주론」 (p.117)


16. 자신이 하고자 하는 어떤 것의 본질에 집중한 뒤 기존의 시스템에서 잘못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겪다보면 자신만의 무기와 필살기가 만들어집니다. "무엇을 만들까?"를 고민하기 전에 그 무엇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현재 그 무엇이 지닌 문제점이 무엇인지부터 확인해보세요.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분명 해결 방법이 있다는 세상의 신호입니다. 그리고 그 해결 방법이 머리에만 머물지 않고 삶의 경험으로 도출되었을 때 진가를 발휘하죠.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고민이라면, 먼저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부터 따져보는 건 어떨까요?


17.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세상이 바뀌어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서운하리만큼 모든 것은 제자리였죠. 그러나 괜찮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제 자신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18. 나라는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누군가의 정해진 답이 아니라, 내 스스로 질문하고 풀어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꼭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결국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19.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도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 폴 호건


20. "공부는 한자로 '工夫'라고 씁니다. 이때 工은 천(天)과 지(地)를 연결하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夫는 천과 지를 연결하는 주체가 사람(人)이라는 뜻입니다. 공부란 천지를 사람이 연결하는 것입니다. - 신영복, 「담론」


21. "당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 조지 엘리엇


22. "'무엇을 안다'는 것이 '교양'은 아니다. 단순한 지식은 교양이 아니다. '안다'는 과정에서 익힌 것 또는 익힌 능력을 교양이라 할 수 있다." - 폴 풀키에


23. "만난 사람 모두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현명하다" - 「탈무드」


24.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그대 지금 무엇을 극복하고 있는가." - 니체 (p.302)


25. "붓글씨를 매일 쓰다 보면 말이여. 분명 어제랑 오늘은 나아진 게 없거든? 근데 3개월 전 썼던 글씨랑 오늘 쓴 글씨는 분명 달라져 있는겨. 인생사도 똑같혀."


26. "99도까지 열심히 온도를 올려놓아도 마지막 1도를 넘기지 못하면 영원히 물은 끓지 않는다고 한다. 물을 끓이는 건 1도, 포기하고 싶은 바로 그 1분을 참아내는 것이다. 그 순간을 넘어야 다음 문이 열릴 것이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다." - 김연아 (p.332)


■ 감상평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은, 평소 내가 품고 있던 고민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마치 내 머릿 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역사(인문학)를 전공하는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현실 속에서 역사(인문학)를 실용학문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윤소정은 '실용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죽은 학문이 아닌 '살아있는 학문'으로서의 인문학 공부를 할 것을 주장한다.


요즘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어딜 가도 '인문학'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인문학 열풍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열풍에 대해 나는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다. 인문학, 인문학 하는데, 과연 사람들은 인문학의 올바른 정의를 알고서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리고 인문학을 공부한답시고 '죽은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전공하고 있는 역사학을 예로 들어 한 번 살펴보자. 요즘 들어 '역사'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까지 비화될 정도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지 오래다. 특히 그중에서도 '학생들의 역사의식 부재'에 대한 이야기는,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다. 3.1절과 같은 특정 기념일만 되면, 언론에서는 반드시 이 이야기를 한 꼭지로 다루곤 한다. 그리고 항상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즉석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인용하곤 한다. 그런데 그 설문조사란 걸 살펴보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때 사용한 무기가 무엇인가?", "6.25 전쟁은 몇 년도에 발발했는가?"와 같은 질문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걸 틀릴 경우, 학생들의 역사의식에 엄청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자극적으로 뉴스를 편집해 보도하곤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때 사용했던 무기가 그렇게 중요한가? 나는 역사교육을 부르짖는 어른들이야말로, 역사를 왜 공부하는지 그 본질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도시락 폭탄으로 처단했든, 권총으로 처단했든 그런 미시사적인 부분은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다. 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처단한 이후의 국제정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등 전후 사정과 같은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라는 점이다. 


또 그 사건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을 생각해보게끔 유도하는 것이,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치고 배우는 길이라고 본다. 국, 영, 수를 공부하면서 안그래도 외울 게 많아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무기의 종류나 날짜와 같은 세세한 것까지 외우라고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학생들로 하여금 역사를 지루한 과목으로 기피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역사학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을 뿐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부하려는 시도는 별로 없다고 보여진다. 우선 인문학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사실 인문학이란 학문 자체가 꼭 문, 사, 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문학. 말그대로 '사람에 대한 학문'이다. 건축이나 경제, 정치학도 결국 사람을 위한 학문이기에, 인문학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더 나아가 주위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이해 역시 인문학을 공부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을 문, 사, 철의 범주에 가둬버리고서, 그것을 무슨 '지적으로 보이기 위한 상식' 정도로 한계를 지어버리거나, 외려 신성시해버리는 것은 인문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이 아닐까 싶다.


저자 윤소정 역시 그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문학이란 내 주위에 있는 사람, 사물을 관찰하면서, 그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 속에서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우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 책은,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자신의 단점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단점까지도 사랑할 줄 아는 습관을 들이는 것. 그리고 자신이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파악하는 것. 그래야만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고,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끌어나가야 타인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주체적인 관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내 자신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타인에 대해서도 이해하려 노력하게 된다. 이건 나 자신만을 아는 이기심과는 다르다. 나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하듯, 또한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그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사람에 대한 사랑, 배려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어도, 독자의 살아온 환경이나 생각하는 습관에 따라 느끼는 바가 많이 다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자신에 대해 먼저 이해하고+그 이해를 확장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내 생각을 공유하며+타인의 생각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을 인문학의 궁극적인 목표로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이 책 역시, 나 혼자 읽고 끝낼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고 서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그럴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혹여라도 나중에 독서 스터디 모임을 만들게 된다면 가장 먼저 이 책을 선정해보고 싶다.

Posted by 가베치
,


오늘로써 열정대학 학생선택과목 '함께 무예 배워볼과'도 5주차에 접어들었습니다. 2주 뒤면 종강이고, 마지막 수업은 사당 전수관에 가서 '종강파티'를 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으니, 실질적인 수업은 다음 주가 마지막인 셈입니다.


지금까지 다들 열심히 잘 따라와주긴 했는데... 얼마 전부터 삐그덕거리기 시작하네요. 


지난 주 토요일은, 과목 개설 후 사상 처음으로 '결강'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단 한 분도 참석을 하지 않았던 겁니다. 뭐 사유를 밝혀주신 분들도 있고, 그냥 아무 연락 없이 잠수타신 분들도 있고... 심적으로 좀 울적했네요. 다들 재밌다고 잘 따라와주다가 갑자기 안 나오는 바람에... 제 수련 지도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가 싶어 혼자 고민도 해봤고, 학생들에게 물어도 봤지만... 다들 '바빠서 어쩔 수 없었다. 죄송하다'고 합니다. 뭐 정말 바빠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야죠.


어쨌거나 이 상태로는 애시당초 정했던 커리큘럼(종강까지 권법을 떼는 것)대로 가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수업을 지도해야할까 고민하다가, 집에 있는 목검 두 자루를 챙겨서 수련터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수련은 기존에 배웠던 거 가볍게 복습하고, 바로 검을 잡게 했습니다. 수강생들에게 목검 쥐는 법부터 간단한 타법까지만 지도하고 서로 툭탁거리며 때리고 막는 연습을 시켰습니다. 확실히 만날 허공에만 주먹과 발을 날리다가, 뭔가를 들고 투닥거리니 다들 재밌어하는군요.


칼을 이용한 공방 연습을 끝내고는 기초 호신술 몇 가지를 지도했습니다. 뭐 전부 여기저기 무술도장을 다니며 알음알음 익혀두었던 것들이죠. 위급 상황에서 여자들도 쓸 수 있는 기술들 몇 개를 소개하니, 다들 또 신기해하고 재밌어합니다. 둘이서 짝 지어서 열심히 연습하네요.


어차피 다음 주 수업이 마지막이니, 마지막 수업 역시도 그냥 이렇게 서로 손이나 칼을 맞대고, 재밌게 수련을 하다가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뭔가 용두사미가 된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만... 애시당초 처음 개설한 과목이고, '기초 호신술 지도+무예에 대한 흥미 유발'이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였으니, 그닥 후회는 없을 듯 합니다. 그리고 꾸준히 나오면서 제게 응원해주는 수련생들도 있고요. 다들 퇴근하고 쉬고 싶을텐데, 멀리서 와서 열심히 운동하는 거 보면, 저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마지막 종강파티 때까지 꾸준히 나와줘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군요.

Posted by 가베치
,

지난 23일 목요일 저녁, 불광동 서울시 청년허브 다목적홀에서 열정Talks가 열렸다. 이번 토크의 주제는 '황 싸부의 인생 다이어트 멘토링'. 


국내 굴지의 뮤지션 기획사인 'YG 엔터테인먼트'의 전속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황상찬 코치(일명 황 싸부)의 강연이었다. 


참고로 황 코치의 별명이 황 싸부인 이유는, 그가 우연히 극장에서 본 영화 <황비홍 3>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극중의 황비홍은 '황 사부'란 뜻의 '황 시푸'로 더 많이 불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게 마음에 들어서 그때부터 '황 싸부'라고 스스로를 부르기 시작했단다.


YG 전속 트레이너 황 싸부를 만나다


처음에 이 과목 개설 소식을 듣고서는, 별 생각 없이 신청했다. 과목을 신청한 가장 큰 이유는 학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여유 있을 때 더 많은 과목을 듣고 최대한 경험을 쌓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YG 전속 트레이너의 운동법이 어떤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분이 처음에 자기소개를 할 때, MMA쪽 용어를 계속 쓰시길래 혹시나 싶어 "마샬아츠(무술)도 같이 지도하시는 거냐"고 여쭤봤다. 그랬더니 "나는 원래 브루스리(이소룡)를 존경해서 홍콩도 자주 갔었다. 그래서 무술에도 관심이 많았고 배우기도 했다. 그리고 연예인들을 지도할 때는 헬스만 지도하면 다들 지루해서 못 견뎌한다. 그래서 타격기 계열의 마샬아츠를 결합한 운동을 지도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무술을 수련하는 입장에서 반갑기도 하고, 오늘 2부 시간에 어떤 운동을 지도해줄 것인가 이때부터 흥미가 생겼던 것 같다.


황 싸부의 '인생 & 다이어트 멘토링' 


1부 강의는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지금의 위치에까지 오른 황 싸부 자신의 인생역정을 소개하며, '성공'과 '목표', '습관' 등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조언하는 방식으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황 싸부는 "성공한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라는 말로 강연의 첫머리를 열었다. 그는 성공의 기준은 결국 내 자신에게 달렸으며, 그 기준을 충족시켰을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강조했다. 또한 다소 난해한 질문을 던졌다.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want'와 'must' 중에 무엇이 먼저인가?"라는 질문이 그것이었다. 나는 처음에 'want'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수강생들 다수가 'must'라고 답했다. 아무래도 내 가치관은 다른 수강생들과 달랐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원하는 일부터 먼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길을 먼저 찾아야, 그 길 위에서 내가 반드시 해야 할 'must'를 또한 찾게 되는 것 아닐까? 황 싸부 역시 "보통 must를 먼저 하는 게 맞다고 하지만, 꼭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다"라며 "어떤 길을 가야 시간이 단축되고 효율적일지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면 된다"고 충고했다.


산을 오르는 방법


이어 황 싸부가 화면에 띄운 PPT 내용이 참 인상 깊었다. '산을 오르는 방법'이라며 묘사된 그림에서는, 산을 올라가는 몇 개의 방법이 있었다.



첫 번째, 헬기를 타고 바로 정상으로 가는 것이다. 이 길은 매우 쉽고 빠르다. 그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두 번째, 직선코스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 길은 매우 빠르지만, 또한 매우 힘들다. 세 번째, 등산로로 우회하여 가는 것이다. 이 길은 매우 느리지만 그만큼 다양한 길로 갈 수 있다.


이 셋 중에도 역시 정답은 없다. 결국 산을 올라가는 방법이라는 것도, 본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였다. 개인적으로 할 수만 있다면 역시 첫 번째 방법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욕심의 존재이니) 현실적으로는 세 번째 방법이 맞다고 본다. 이 길도 가보고, 저 길도 가보면서 느리지만 다양한 삶을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좌충우돌 부딪쳐본 끝에 정상에 올라야만, 후회 없는 등산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의 나도 이미 세 번째 길을 걷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수상을 보고 울부짖던 사내


황 싸부는 곧이어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체대를 지망했던 황 싸부는 실제로 기계체조를 전공했고, 나중에는 단돈 600만원을 들고서 미국 필라델피아로 건너가 요가와 필라테스 그리고 가라데 등 각종 무술과 운동을 두루 섭렵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투병 소식에 귀국해 병원비를 대느라 고시원 쪽방 생활을 전전해야 했고, 3일에 한 번씩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얼음을 나르는 알바를 했는데, 이 당시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황 싸부가 머물던 고시원 바로 옆에 큰 예수상이 있었는데, 밤마다 이 예수상을 보며 원망을 담아 울부짖기도 했다는데, 이에 지나가던 사람이 경찰에 신고해 취객으로 몰린 적도 있다고. 


황 싸부는 이때를 회고하면서 "살면서 한 번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러기엔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아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이때 내가 정말 더 힘들었더라면... 그런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정말 힘들었던 무명 시절이었던 것이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이종격투기'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게 된 계기 역시 흥미로웠다. 


당시의 황 싸부는 워낙 고된 알바로 인한 육체적 스트레스와,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만성적인 '두통'을 앓았다고 한다. 병원에 가자 의사가 "이대로 계속 살면 죽을지도 모른다"며 경고했다고 할 정도였다. 게다가 스트레스로 인해 누군가를 자꾸 때리고 싶을 정도로 폭력적인 성격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단다. 


바로 이때, 황 싸부는 '이종격투기'를 알게 되었다. "차라리 격투기를 통해 합법적으로 사람을 때리며 스트레스도 풀고 돈도 벌자"고 생각하며, 이종격투기 체육관에 입관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황 싸부가 본격적으로 운동 코치로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때부터 황 싸부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게 된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황 싸부는 "지금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나중에 어떻게 쓰일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헤매고 있는 것이다"라며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 마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라"고 주문했다. 즉,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내가 원하는 인생, 목적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알쏭달쏭한 말이지만 이해가 가는 것도 같았다.



그러면서 황 싸부는 '머그잔의 법칙'을 강조했다. 머그잔을 옆에서 보면 물을 아무리 부어도, 얼마만큼 차올랐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계속 들이붓다보면 어느 순간 차올라서 옆으로 줄줄 흘러넘치게 되는데, 결국 인생이란 것도 그런 거라고. 다른 사람들이 보면 나의 실력을 알 수가 없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실력을 쌓으면(물을 부으면) 결국 내 스스로도 알고, 남들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물이 흘러넘치는 것)


성공하는 삶=좋은 습관


마지막으로 황 싸부는 '성공하는 삶=좋은 습관'이라는 원칙을 제시하며, 성공하는 삶을 만들기 위한 좋은 습관 4가지를 제시했다.


1. 긍정마인드


-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모든 일에 임하라


2. 인사


- 누구에게나 적극적으로 인사하라. 필요 이상의 적을 만들지 마라.


3. 운동(health)


-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우선 본인의 체력부터 길러라. 모든 일도 건강이 우선이다.


4. 칭찬


- 스스로에게 칭찬하라. 주위에서 내 편을 찾지마라.


황 싸부는 위의 4가지 습관을 잘 기억하고 실천한다면, 성공하는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장담하였다. 


또한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문드러질 때까지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을 주문하였다. 정말 미친듯이 몰두했을 때에도 안되는 일은 내 일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일 중에 안 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일에 그렇게까지 미쳐본 적이 얼마나 되는가 반문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달까.


황 싸부는 "습관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비결의 하나는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다"라고 역설하면서,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사례를 들려주었다. 


주짓수를 배울 당시에, 자기가 쉽게 넘길 수 있는 상대가 있었던 반면에, 자기가 아무리 해도 넘기지 못했던 상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존심이 상해서 자꾸만 자기가 쉽게 넘길 수 있는 상대하고만 붙으려고 했었는데, 결국 그렇게 하니 실력이 좋아질 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무술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흔히들 겪고 깨닫는 현상 중 하나이기도 해서, 또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무술 이야기가 나오는구나 싶어 무척 반가웠다.


여름맞이 운동법을 배우다


1부 강연이 끝난 뒤, 곧이어 이어진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황 싸부로부터 여름맞이 운동법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의자를 모두 치우고 다들 간단하게 몸을 푼 뒤에, 황 싸부의 지도를 받아 스쿼트와 같은 기본 체력단련법을 먼저 배웠다. 



나같은 경우 워낙 무술 수련을 통해 하체단련 하나는 잘 되어 있다고 자부하고 있던 터여서, 그렇게 힘들다고 느끼진 않았다. 여하간 황 싸부는 "운동을 제대로 한 사람은 엉덩이가 크지 않다"며 "이 동작만 제대로 하루에 1분씩만 해줘도 골반 라인이 이뻐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1. 두 발을 마보처럼 넓게 벌리되, 양 발의 끝이 바깥쪽을 향하게 하여 180도로 만든다.

2. 양 손바닥을 엉덩이에 살짝 짚는다

3. 앉으면서 숨을 들이마시고, 일어서면서 숨을 내쉰다. (일어설 때 엉덩이를 꽉 조여주는 것이 포인트)


하체단련법을 배운 뒤에는 복싱을 배워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야 고딩 때 복싱을 몇 개월 정도 배워본 적이 있어서 따라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잽, 스트레이트'를 먼저 배우고, 나중에는 스텝을 이용해 '잽-잽-잽-잽-원/투'를 반복하였는데, 오랜만에 복싱을 하려니 생각보다 재밌었다. 확실히 복싱이 운동량도 대단히 많고, 기술들도 간단명료하면서 위력적이어서 단기간에 실전에 써먹기엔 아주 좋은 운동인 것 같다. 어느 순간 황 싸부의 구령에 맞춰 비지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원투를 날리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상대방과 마주하면서 원투를 날리고, 받아치는 연습을 했다. 보통 미트로 받아치면서 연습하곤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투를 날리면 상대방이 손바닥으로 타탁 쳐내며 반격하는 공방 연습이었다. 나와 함께 손을 섞고 연습을 하던 열정대학 조교 근우씨와 원투를 주고받다보니 단조로움에 질리기도 하고, 또 무술가적 본성이 주체하지 못하고 튀어나오고 말았다.


"저는 영춘권을 배워서 이렇게 말고, 다른 식으로도 할 수 있어요"라며, 근우씨를 상대로 영춘권 스타일로 공격을 막고 반격해봤다. 어설프게 알면 모르니만 못한 법이고, 가만히만 있어도 중간은 가는 법이다. 그럼에도 자꾸만 배운 기술을 이래저래 써먹어보고 싶은 것이 또한 무술 수련생의 욕구 중 하나다.


원투 주고받기 기술 외에도 몇 가지 호신술을 익혔다. 사실 무술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도장에서 배운 호신술 중 일부 기술들은 실제로 써먹기 어려운 '죽은 기술'인 경우가 종종 있다. 근력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 쓸 수 있는 기술이라던가... 고도로 연습하지 않으면 쓰기 힘든 기술이라던가... 황 싸부는 그런 점을 지적하면서 힘이 약한 여자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기술들을 지도해주었다. '손목 잡혔을 때 대처법', '상대방이 껴안았을 때 대처법' 등이다.


그렇게 한창 복싱 연습을 하다가, 바로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어갔다. 


명상 중간에 갑자기 황 싸부가 "아!"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그 소리에 놀라는 사람도 있었고, 놀라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명상에 집중하느라 그 소리에 놀라지 않는 게 더 제대로 하고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황 싸부는 의외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낸 소리에 크게 놀랄수록 제대로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라며 "명상에 집중하면 내가 내는 소리에도 반응을 하게 된다. 그리고 거친 운동을 한 뒤에는 꼭 이 명상을 바로 해주면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 미심쩍기도 하고, 애매하기도 해서 나중에 사부님께 다시 한 번 여쭤볼 생각이다.



강의를 마치고


명상을 끝으로 오늘의 강의도 모두 끝났다. 


무려 2시간 30분 가까이 진행된 강연이었지만, 지루할 틈이 없었던 것 같다. 특히 몸으로 직접 운동을 배워볼 수 있었던 2부 시간은 재밌는 경험이었다. 오랜만에 잽을 날리는 맛도 괜찮았고, 새로운 운동법을 배울 수도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사실 무엇보다 황 싸부의 인생역정을 들으면서, '역시 성공한 사람들에게도 시련은 있었구나'하는 점을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YG 전속 트레이너로 유명 연예인들을 지도하고, 하루에도 80통 이상의 메일을 받는다는 그 황 싸부도, 젊은 시절 동네 예수상을 보며 울부짖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성공이 더욱 값진 것이 아닐까. 나 역시 그 정도까지 좌절한 적은 없지만, 그리고 그런 좌절을 일부러 겪고 싶진 않지만... 남은 인생에 있어 어떤 좌절과 실패가 닥치더라도, 마땅히 극복하겠노라 다짐해본다.



PS. 끝나고 나가는 길에 황 싸부가 협찬받은 건강보조식품을 나눠주었는데, 운동 전/후로 먹으면 운동효과가 배가 된다고 한다. 뭔가 되게 좋아 보여서 많이 챙겨왔다.



Posted by 가베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