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의 역사학자들이 정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 약사(略史)다. 부록(연표)을 제외하면 175페이지로 매우 얇다. 두꺼운 연구서를 읽기 벅찬 일반 독자들을 위한 맞춤형 교양서다.


책이 얇다고 안에 담긴 내용도 얄팍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임정 연구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9명의 학자(한시준, 김희곤, 한상도, 장석흥 교수 등)들이 1부 상해 시기, 2부 이동 시기, 3부 중경 시기의 세 파트로 임정의 활동상을 나누어 정리했다. 임정의 성과와 한계를 두루 조명하려 한 점이 눈에 띈다.


이 책의 초판은 2009년에 나왔다. 그리고 좌우 세력 간 역사전쟁을 불러일으켰던 '건국절' 논란은 2008년에 시작됐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도 건국절 논란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반박이 제시되고 있다. 


역사학자들이 정확한 근거를 들어 건국절 논란을 반박한 게 벌써 9년 전인데 아직까지도 건국절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는 현실이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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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독립운동가 후손 분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런데 이분들은 한결 같이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살기 좋아졌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임시정부에서 비서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의 후손은 손목에 '이니시계'를 차고 다녔고, 만주 국민부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김진성 선생의 후손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드디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고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만 들어도 '문재인 대통령이 참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방부에서도 광복군을 뿌리로 하는 국군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극우세력들은 이조차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있다.


당장 국방부에서 만든 이 영상만 봐도 그렇다. 광복군을 우리의 뿌리로 가르치는 영상을 두고서 '주적을 북한이 아닌 일본으로 교묘하게 바뀌치기함으로써 적화통일로 이끄려는 문재인 정권의 술수'라는 기가 막힌 발언도 눈에 띈다.


나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더 이상 안 나오게 하겠다는, 그리고 그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적극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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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 사극 영화가 세 편이나 개봉했습니다. <안시성>, <물괴>, <명당>입니다. 개인적으로 셋 다 크게 기대했던 작품은 아닙니다. 사극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닥 구미가 당기는 작품들은 아니었습니다. 


어쨌거나 추석 전후로 <안시성>과 <명당>을 보았습니다. <물괴>는 아직 보지 못했는데, 네티즌들의 감상평이 좀 안 좋더군요. 상영관에서도 슬슬 내려가기 시작한 것 같고... 기회가 되면 보는 걸로.


아래는 각 영화에 대한 촌평입니다.


1. 안시성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입니다. 사실 초반엔 보다가 졸았습니다. 이번에 안시성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저는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영화를 잘 못 보는 성격인 듯합니다. 안시성은 안시성에서 벌어지는 고구려군과 당군의 전투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터라, 기본적으로 안시성을 벗어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전투의 반복일 뿐입니다. 그리고 전투란 것도 사실 마지막의 '토산 전투'를 제외하고 나면 칼로 베고 찌르며 활 쏘고 돌 던지는 뻔하디 뻔한 공성전의 반복이라... 너무 지루한 나머지 창칼이 맞부딪끼면서 내는 요란한 소리에도 불구하고 초반엔 너무 졸려서 한참 잤습니다.


조인성의 연기는 확실히 사극톤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조인성만의 매력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대조영>의 임동진 선생이 중후한 카리스마의 양만춘 대장군 상을 정립했다면, 조인성의 양만춘은 친구 같은 젊은 리더의 상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실제 양만춘의 얼굴을 우리는 본 적도 없으니 어떻게 표현하든 그건 감독과 배우의 재량이라고 봅니다.


스토리 전개가 너무 뻔합니다. 저는 원래 머리가 둔해서 반전 예측도 잘 못하고, 해석이 필요한 영화는 질색입니다. 당장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도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은 극찬을 하는데, 저는 대체 뭔 소린지 몰라서(심지어 해석을 봐도 이해가 안 가더라는) 보자마자 바로 시간 날렸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둔한 저조차도 너무나도 쉽게 예측이 가능했습니다. 뭐 하나 떡밥이 나오면 바로 '이 떡밥은 나중에 이렇게 활용이 되겠군' 하고 머릿속에 쫙 그려지더군요. 당 태종이 못 당기는 주몽의 신궁을 양만춘이 당겨서 당 태종을 쏘아맞춘다는 뻔한 설정, 그리고 활을 쏠 때 "고구려의 신이 함께 당겨주실 거다"라며 노골적으로 민족주의적 코드에 기대는 대사들까지. 아쉬움만 많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2. 명당


안시성보단 훨씬 낫습니다. <관상>, <궁합>, <명당> 등 동양철학 3부작 중 마지막 시리즈라고 하는데, <관상>보단 못 하지만 그래도 제법 괜찮았습니다. 조승우야 <암살> 이후로 믿고 보는 배우인만큼 연기력 면에서 완벽했고, 백윤식 선생 역시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관상>에서는 충신을 <명당>에서는 간신을 연기하면서 극과 극의 캐릭터를 보여주었는데, 둘 다 너무나도 잘 어울릴만큼 역시나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통해 '지성'을 재발견했습니다. 지성이 나온 작품을 많이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명당>을 보면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야욕과 광기에 휩쓸린 흥선군의 역할을 정말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두 눈빛에 서린 광기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스토리는 감독이 지어낸 허구인 줄 알았는데, 근거가 아주 없지는 않더군요. 솔직히 저도 역사를 전공했지만 흥선군이 자손이 천자가 되려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그곳에 있던 사찰을 불태워버리고 묘를 썼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찾아보니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도 언급이 된 부분이라고 하는군요. 아마 야사일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찌 됐건 근거를 가지고 제법 개연성 있게 스토리를 풀어나간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신흥무관학교 이야기는 제 개인적인 관심사(독립운동사)를 정확하게 관통하는 코드라 매우 흡족했고요. 엄청 잘 만든 수작은 아니지만, 킬링타임용으로는 제법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졸지도 않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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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47&aid=0002202175


어제 집에서 혼술타임을 보내고 있는데... 자정에 가까운 시각, 갑자기 굉음이 울리더군요.


뭔일인가 하고 내다봤더니 집 앞의 유치원 건물이 기울어 있었습니다. 어제 오늘 실검에 뜬 '상도유치원'입니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건물인데, 저 큰 건물이 앞으로 확 기울어진 채로 무너져 있으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옥상에 올라가보니 어제 밤에는 어둠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던 처참한 몰골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인근 공사현장의 흙막이 벽이 무너지면서 지반이 침하한 결과 유치원이 저렇게 기울었다는데...



분통이 터지는 건 공사업체와 정치인들의 행보입니다.


보니까 이미 6개월 전부터 교실 바닥에 균열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고, 교육청에서 공사업체에 주의명령도 내렸는데 계속 묵살했다고 합니다. 


공사업체의 과실이 1차적 원인인데, 사실 좀 더 강력하게 조치하지 못한 정부 당국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제 와서 법을 고쳐야 한다느니 어쩐다느니... 법이 문제인 걸 알았다면 진즉 조치했어야 하는 게 아닌지. 왜 꼭 누구 하나 죽어나가거나, 건물 하나 무너져봐야 '강력한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하는 건지... 사후약방문도 이런 사후약방문이 따로 없습니다.


세월호 때 그 참사를 겪고도 여전히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정말 멀었습니다.


이미 현장에는 구의원이며 박원순 시장이며 온갖 정치인들이 다 출동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작구 모 구의원은 자기가 새벽 같이 출동해서 현장 점검하고 있는 걸 업적 자랑하듯이 페이스북에서 홍보하고 있고, 생각 없는 인사들은 또 '우리 구의원님 멋져' 하면서 찬양하고 있네요. 주민들은 당장 불안에 떨고 있는데... 정말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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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즐겨 보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불란셔 제빵소'라는 이름으로 파리바게뜨의 PPL 상품들이 등장합니다. 왕사탕, 무지개 카스테라, 꽃빙수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이걸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입에서 군침이 떨어지곤 합니다.




제일 처음에 산 '왕사탕'입니다. 극중에서 고애신(김태리)과 구동매(유연석)가 먹었던 사탕입니다. 옛날에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싸구려 눈깔사탕이랑 다를 바가 없지만, 드라마 탓인지 뭔가 더 달달하게 느껴지는 맛입니다.




고애신과 쿠도 히나(김민정)가 먹던 '무지개 카스테라'입니다.


원래 카스테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드라마를 보니 왜 그리 당기던지. 그런데 이거 구하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근처 파리바게뜨에 매일 같이 들락날락했는데 갈 때마다 품절입니다. 다른 지점에 가도 항상 품절 소식만... 드라마 자체가 인기가 많다 보니 저처럼 이 상품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오늘도 운동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삼각지역 파리바게뜨에 들렀는데 역시 품절이더군요. 오기가 생겨서 동네 파리바게뜨에 전부 전화를 돌려 재고를 물어봤는데, 마침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에 재고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갔습니다. 그렇게 비를 뚫고서 딱 하나 남은 재고를 집어왔습니다.


달달하니 제법 맛납니다.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머그컵'에 가배당 커피를 담아서 마셔보았습니다. 기가 막힌 대한제국 풀세트의 완성입니다.


가배당 역시 PPL 상품인데, 이건 파리바게뜨가 아니라 달콤커피에서 내놓은 한정 상품입니다. 드라마에서 각커피를 뜨거운 물에 풀어 마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작은 박스에 딱 두 알 들어 있습니다. 커피가루와 설탕을 뭉쳐서 네모난 조각으로 만든 상품입니다. 이 커피 역시 달달하니 괜찮습니다. 사실 보이차와 놓고 보면 헷갈릴 정도로 비슷합니다 (...)


가배당도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입고된 지점이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엊그제 미팅 때문에 강남역에 갈 일이 있어 갔다가, 마침 근처 지점에 재고가 있길래 두 세트 구해왔습니다.


커피잔은 스타벅스에서 올해 광복절 및 대한제국 선포 121주년 기념으로 한정 출시한 '오얏꽃 머그컵'입니다. 드라마 PPL과는 무관하지만, <미스터 션샤인>의 배경이 대한제국 시절이라 무척 어울립니다. 마침 어제 방영분에서는 '오얏꽃'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하더군요.


오얏꽃 머그컵에 가배당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니 가배를 사랑하던 고종 황제가 생각납니다.



이런 거 사올 때마다 "돈 쓸 데가 그렇게도 없냐"는 가족들의 핀잔이 쏟아집니다. 그래도 뭐 저만 즐거우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이런 거 사먹으려고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돈 버는 건데. 소확행이 따로 있겠습니까.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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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에서 광복절 및 대한제국 선포 121주년 기념 MD를 출시했더군요.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무궁화가 감싸고 있는 모양의 머그컵입니다. 텀블러와 티스푼, 스벅카드도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오얏꽃 머그컵이 제일 이쁜 것 같습니다. (가격도 착하고)



솔직히 광복절과 대한제국 선포 121주년은 약간 어거지로 엮은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만, 가배(커피)를 즐겨 드시던 고종 황제를 생각하면 대한제국 선포 기념 MD로는 적절한 컨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출시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근처 스벅 매장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실물을 보니 사진에서 본 것과는 달리 별로 끌리지가 않더군요. 매장까지 가놓고서도 만지작 거리다가 그냥 돌아섰는데... 그날 이후로 계속 이 컵이 눈 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결국 다시 마음을 바꾸어 가까운 스벅 매장을 찾아갔습니다만, 하루 만에 벌써 품절됐다는 소식이... 다른 매장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빨리 매진될 줄 알았더라면 그냥 그때 바로 사는 거였는데...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는데, 어제 보라매공원에 수련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스벅 매장을 보았습니다. 큰 기대 안 하고 들어섰는데, 운 좋게도 아직 재고가 남아 있었습니다. 두 개 남은 것 중 하나를 데려왔습니다. 가격은 17,000원.


이번에 통인동 커피공방에서 공수해온 시그니처 블렌딩 원두 '경복궁의 가을'을 핸드드립으로 내린 뒤에 친구가 캐나다에서 사온 '메이플 시럽'을 타서 아이스 커피로 한 잔 마셨습니다.



요새 <미스터 션샤인>을 재미나게 보고 있는데, 극중에서도 고종 황제가 가배차를 즐겨마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머그잔에 커피를 마실 때마다, 망국의 설움과 굴욕을 감내해야만 했던 고종 황제가 생각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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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대망의 출국일이 밝았습니다.


비행기 시간이 오후라 아침에 비교적 여유 있게 출발했습니다. 친구와 김포공항에서 만나 공항철도로 환승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아무래도 출국 절차가 복잡할 것 같아서 꽤나 일찍 출발했는데, 생각보다 일사천리로 금방 끝났습니다. 티켓 끊고, 미리 예매한 포켓와이파이와 교토행 하루카(고속철도) 티켓도 수령했습니다. 일본 고속철도 티켓을 한국에서 미리 예매해 인천국제공항에서 수령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여행 준비하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참 신기하고 편리하더군요. 출국 심사 마친 뒤, 점심 먹고 면세점 구경 좀 하다가 오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동해 상공을 날아 마침내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바깥에 나가는데, 훅 끼쳐오는 덥고 습한 공기. 확실히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덥고 습하다던데 피부로 확 느껴졌습니다. 과연 3박 4일 동안 무사히 보고 다닐 수 있을지 슬슬 걱정이 되더군요.


어쨌거나 저희는 바로 교토로 가기 위해 하루카를 타러 이동했습니다. 사실 저나 친구나 일본어도 영어도 할 줄 몰라서 이번 여행 기간 동안 '직감'에 많이 의지했습니다. 버스를 어디서 타야할지 몰라도 직감적으로 여기다 싶으면 그냥 들이대고 본 거죠. 무식하면 용감하달까. 


그런데 생각보다 이 직감이란 놈이 대단하더군요. 여행 중 구글 맵이 잘못 알려준 길을, 직감적으로 이상하다고 느끼고 반대로 가니까 제대로 도착하는 그런 일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하루카를 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 사실 교토행 하루카인 줄 알고 열차를 탔는데,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검색해보니 다른 블로거가 올린 하루카 내부 사진하고 지금 저희가 타고 있는 열차 사진하고 전혀 다르더군요. 


"야, 우리 잘못탄 것 같다"하고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간사이국제공항으로 돌아가는 반대편 열차를 탔습니다.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보니 하루카행 열차는 하루카 전용 탑승구가 따로 표기되어 있더군요. 다른 관광객들도 거기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는 '저 사람들 왜 열차 왔는데 안 타고 서있지' 하면서 다른 열차를 탔던 겁니다.


결국 도착하자마자 뻘짓을 하는 바람에 지체되긴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게 전화위복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루카는 자유석으로 운영이 되는 터라 티켓이 있어도 좌석이 차면 입석으로 가야 합니다. 만약 앞서 하루카를 탔더라면 이미 줄이 길어서 꼼짝없이 서서 갈 뻔 했는데, 한 번 보내놓고 나니 줄이 리셋되어 저희가 비교적 앞줄에 자리잡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하루카에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었습니다.





원래 오사카에서 교토까지는 일반 열차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하루카를 타니 1시간 20분 만에 교토역에 도착했습니다. 교토역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교토타워부터 들르는 거였는데, 피곤하기도 하고 막상 교토타워를 보니 그닥 가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서 그냥 역 앞에서 감상하는 걸로 마무리하고 바로 숙소로 길을 잡았습니다.





숙소는 교토역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저녁이라 날이 선선해서 걸어서 가기로 했습니다. 뭐 이렇게 낯선 땅 구석구석을 도보로 이동하는 것도 자유여행의 묘미 아닐까요.





한 30분 정도 걸으니 목적지가 나타났습니다. 교토에 있는 동안 머물 숙소는 '다나카-야-인'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료칸 분위기가 나는 숙소로 일부러 예매했는데, 이런 형태의 숙소들이 거리에 밀집해있더군요. 인적 드물고 조용하면서도 깔끔한 거리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 은은하게 울리는 풍경(이 맞는 용어인지 모르겠습니다)소리도 무척 좋았구요.




숙소에 도착해서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주인 아주머니의 한국어가 유창하시더군요. 알고 봤더니 재일교포라고 합니다. 아주머니의 아들인 '마사토'라는 이름의 청년이 저희를 숙소로 안내해주었는데 무척 밝고 경쾌한 청년이었습니다. 이후로 한 번도 보지는 못 했지만...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여장을 풀고 곧장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산조역 근처에 있는 '이케다야'라는 술집이 바로 목적지였습니다. 


여기도 도보로 20분 정도 걸린다고 해서 그냥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숙소가 위치한 지역은 조용하기 짝이 없었는데, 좀 걷다보니 시끌벅적한 번화가가 나타나더군요.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삐끼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성진국답게 유흥업소들이 많이 보이는데, 솔직히 이런 장면은 저희 동네 근처 신림동만 가도 볼 수 있는 모습이라... 크게 이색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생각 없이 걷고 있는데 낯 익은 사진이 보였습니다. 메이지유신의 기반을 닦은 사카모토 료마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 앞에 비석이 있길래 한자를 해석해보니 이곳이 료마의 거주지였다는 것 같군요. 나중에 안 사실입니다만 이 부근에 료마가 암살당한 현장도 있다고 하는데, 사실 제 관심사는 오로지 신선조에만 꽂혀 있어서 그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마침내 신선조 투어의 첫 번째 목적지, 이케다야에 도착했습니다.




이케다야는 원래 여인숙이었습니다. 막부 말기에 막부에 적대적이었던 조슈 번과 도사 번의 존황양이파들이 이곳에 숨어 지내면서 교토수호직이었던 아이즈번 영주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의 암살과 교토 시내 방화, 천황 납치라는 어마무시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첩보를 입수한 신선조 대원들이 1864년 7월 8일, 야밤에 이케다야를 습격해 이들을 처단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사건이 바로 '이케다야 사건'입니다. 신선조가 유명해진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한데, 위키백과에 따르면 '메이지유신을 1년 늦춘 사건'이라고 평할 정도로 대단한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그 당시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그저 이곳이 과거 이케다야 사건의 현장이었다는 비석과 함께 지금은 동명의 이자카야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에 담긴 의미가 남다르다보니 술집에서는 적극적으로 신선조 마케팅을 하고 있더군요. 아예 내부에 신선조 관련 그림과 모형 등을 전시해놓고 있었고, 신선조 특유의 톱니바퀴 모양 하오리를 입어볼 수 있게끔 복장들을 걸어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점원들도 신선조 하오리를 입고 서빙을 하더군요.





그외엔 딱히 신선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과거 신선조가 활약했던 역사적 현장에서 사케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즐거웠습니다. 첫 잔은 우선 이곳에서 죽어간 신선조 대원들을 위해 추모의 잔으로 올렸습니다. 그리고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케다야에서 가볍게 1차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술과 안주를 사서 숙소에서 2차를 달렸습니다. 깊은 밤, 교토의 료칸에서 친구와 마시는 사케 맛이 참 달더군요. 그렇게 일본에서의 첫 날이 저물었습니다.



- 3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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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미팅 때문에 역삼동에 갈 일이 잦은 편입니다.

디지털 마케팅·IT 비즈니스 업계는 대부분 역삼동 쪽에 밀집되어 있는 모양이더군요.


이번에 아마존 직원을 만날 일이 있어 이베이가 입주한 '강남파이낸스센터'에 갔습니다. 처음엔 그렇게 큰 건물인 줄 몰랐는데, 지하 8층에 지상 43층 규모라고 하더군요. 고층건물에 갈 일이 별로 없는 터라, 좀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촌놈' 티 제대로 내고 왔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초고속으로 올라가는데, 흔들흔들거리니까 괜히 심장이 쫄깃하더군요. 그리고 올라가다보면 비행기 탈 때처럼 귀가 멍멍해지는 현상이... 서울 한복판에서 엘리베이터 타고 그런 경험을 하니 신기했습니다.


저자 미팅 끝내고 미팅룸에서 창밖의 서울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봤습니다. 미팅룸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기가 막히더군요. 외부인들에게는 개방이 안된 공간인데, 여기 직원들 입장에서는 최고의 휴식처가 아닐까 합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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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1일부터 24일까지 일본으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사실 이번 휴가는 굉장히 즉흥적으로 그리고 전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애시당초 일본에 가야겠다는 생각도 전혀 없었고요. 슬슬 휴가 시점을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서울에서부터 일본까지 자전거 일주를 계획한 군대 선임(앞으로는 그냥 편의상 '친구'라 부르기로)이 "일본에서 합류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해오더군요.


제게 허락된 휴가는 3일. 그러니까 주말끼고 3일이면 일본에서 며칠 동안 놀고 먹기엔 충분한 시간이라 판단했습니다. 그 친구가 자전거 타고 일본에 건너오는 시점에 맞춰, 저 역시 비행기 타고 건너가 일본 어딘가에서 만나 며칠 놀고 먹다가 저는 저대로 다시 돌아오고 그 친구는 나머지 일정을 소화하는 방식으로 올 휴가를 보내기로 잠정 합의를 했더랬습니다.


그렇게 전격적으로 왕복 항공권까지 다 예매했는데, 바로 다음 날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일본에서 폭우로 100여명 이상이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일본 폭우 소식이 국내 실검에까지 오를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면서 결국 그 친구가 자전거 여행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인들은 복구하느라 정신없는데 그 옆에서 유유자적 자전거 타고 다니기엔 양심이 허락하질 않는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맥이 빠지더군요. '누구 때문에 내가 항공권을 예매했는데...'하면서 순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친구가 내건 명분도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뭐라 반박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혼자 가야하는 건가' 싶어 고민이 컸는데, 다행히 그 친구가 그런 제 입장을 배려해서 "자전거 여행은 포기했지만 형과 비행기 타고 같이 가겠다"며 동행을 약속하더군요.



어쨌거나 자전거여행이 아닌 3박 4일 간의 일본여행이 중심이 되면서 코스 역시 제가 주도해서 짜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일본에 가게 되면 교토 지역의 신선조(신센구미) 유적을 집중적으로 둘러볼 생각이었습니다. 작년에 NHK 대하드라마 <신선조!> 시리즈를 워낙 감명 깊게 본 터였습니다. 교토는 신선조가 주로 활동했던 지역이라 아직도 관련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하더군요.



부랴부랴 국내 블로거들 중 이미 교토 신선조 투어를 다녀온 이들의 후기를 정리해서 대략적인 코스를 짰습니다. (아래 코스 참조)


[교토·오사카 3박 4일 코스]


1일차(7.21): 교토 (이케다야)

2일차(7.22): 교토 (니시혼간지·마에카와저택·야기저택·코엔지·미부데라·킨카쿠지·사료호센·하치다이신사)

3일차(7.23): 교토 (기요미즈데라·산주산겐도·도요쿠니 신사·귀무덤·후시미이나리신사)

4일차(7.24): 오사카 (오사카성·도톤보리)



신선조 유적과 일부 유적들은 제가 짰고, 나머지는 친구가 골랐습니다. 일본의 폭염을 감안해서 최대한 널널하게 짜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괜히 이 더위에 이거 저거 보겠다고 욱여넣었다가 지쳐 쓰러질지도 모를 일이라. 다행히 신선조 유적들은 대부분 몰려 있는 경우가 많아서 한꺼번에 해치우기(?)가 수월했습니다.


코스를 짜면 짤수록 자꾸 가보고 싶은 지역이 늘어나는 게 함정(...) 원래는 신선조 유적만 돌아보고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찾던 중 '하치다이 신사'가 또 눈에 띄더군요. 미야모토 무사시가 요시오카 일족과 대혈전을 벌였던 역사적 장소라고 합니다. 한때 또 미야모토 무사시의 열렬한 팬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결국 추가했습니다. 더 추가했다간 죽을 것 같아 다음을 기약하고 참았습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들더군요. 대학 입학 후 거의 매년 중국으로, 일본으로 그도 모자라 러시아와 독일까지 다녀왔지만 대부분 단체로 다녀온 여행이었습니다. 그래서 딱히 준비랄 게 없었습니다. 숙식이며 이동이며 모두 현지 가이드가 함께 하니 두려울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사실상 처음으로 혼자 가는 자유여행(친구와 가는 거긴 하지만)이라 더 많이 떨리더군요. 항공권 예매부터 숙소 예약까지... 모든 걸 처음 하다보니 마치 해외여행을 처음 가는 사람처럼 헤매기도 하고 걱정도 컸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철저하게 준비라도 하고 싶었는데, 이젠 직장에 얽매인 몸이라 환전할 여유조차 빠듯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여행을 떠나는 대망의 21일이 밝았습니다. 뭔가 덜 준비된 것 같은 불안함과 찝찝함을 안고 인천국제공항으로 발걸음을 잡았습니다.



- 2부에서 계속 -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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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미친듯이 덥다. 정말로.


어제는 수련하다 처음으로 퍼졌다. 상대방과 열심히 자유추수를 하는데 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넘어 온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마치 한증막 사우나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자유추수를 할 때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데, 너무 더우니까 공격이고 방어고 간에 그냥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중간 중간 '타임'을 외치면서 숨을 돌리다가, 결국 "더 이상 못 하겠다"고 말하고 끝내버렸다. 


그러고 나서 옆에서 쉬고 있는데 극도의 갈증과 더위에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았다. 마침 사제 한 분이 대련을 요청하러 다가왔는데 어지러워서 못 하겠다고 거절했다. 미안하게도. 


어차피 수련 끝날 때도 다 되었고 해서 잠깐만 쉬었다가 다시 합류할 생각이었는데, 이거 뭐 쉬어도 충전되는 느낌이 전혀 안 든다. 이 상태로는 더 못 할 것 같아서 결국 사부님께 먼저 간다고 말씀드리고 돌아왔다. 수련터에 늦게 오는 법은 있어도 먼저 가는 법은 없었던 터라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다. 더워서 지쳤다고 하니 다들 왜 이렇게 약하냐고 한다. 


나도 자괴감을 느낀다. 나만 유난히 더위를 타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작년 여름엔 어떻게 견뎠나 의문이다. 오죽하면 여름엔 수련을 쉴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마저도 들었다. 근데 나 없는 동안 쭉쭉 뻗어나갈 동기들을 생각하면 또 그러진 못하겠다. 덥다고 쉬는 모양새도 우습고. 매년 여름마다 수련 안 할 건 아니지 않은가. 결국 극복해야 할 과제인 듯 하다.


오늘도 미팅이 있어 낮에 돌아다녔는데, 정말 밖에서 돌아다니는 그 잠깐의 시간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밥 먹는 동안에도 등줄기에 흐르는 땀 때문에 먹는 데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밥 먹는 것조차 고통스러우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마트에서 휴대용 선풍기를 샀는데 소음만 요란할 뿐 전혀 시원하지가 않다. 7천 원만 날렸다. 썅.


7월 말에는 일본으로 휴가를 떠날 예정이다. 7월 말이면 더위가 절정일 때다. 게다가 한국보다 더 습하고 덥다는 일본이다. 여행 가서 더위 때문에 고생만 하지 않을까 무척 걱정된다. 여행은 고생하러 가는 게 아니라 즐기러 가는 건데... 친구와 같이 가기로 한 터라 이제 와서 "더워서 못 가겠다"고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거 참 고민이다. 난 왜 이렇게 더위를 타는 걸까. 나의 저주 받은 체질이 원망스럽다.


그나저나 함께 수련하는 사형이 남양주에 지부를 오픈했다. 굉장히 부럽다. 나도 수료하고서 보라매공원에서 제자를 받아 가르치는 상상을 해봤다. 내가 열심히 땀 흘리며 꿍푸를 쌓아오던 장소에서 제자를 받아 가르친다라. 얼마나 낭만적인가. 어느 순간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수련터 홍보는 블로그로 할까 SNS로 할까'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아서라. 아직은 먼 미래의 이야기일 뿐.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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