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독립운동가 후손 분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런데 이분들은 한결 같이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살기 좋아졌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임시정부에서 비서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의 후손은 손목에 '이니시계'를 차고 다녔고, 만주 국민부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김진성 선생의 후손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드디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고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만 들어도 '문재인 대통령이 참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방부에서도 광복군을 뿌리로 하는 국군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극우세력들은 이조차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있다.


당장 국방부에서 만든 이 영상만 봐도 그렇다. 광복군을 우리의 뿌리로 가르치는 영상을 두고서 '주적을 북한이 아닌 일본으로 교묘하게 바뀌치기함으로써 적화통일로 이끄려는 문재인 정권의 술수'라는 기가 막힌 발언도 눈에 띈다.


나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더 이상 안 나오게 하겠다는, 그리고 그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적극 지지한다.

Posted by 가베치
,

http://omn.kr/rvdw


공동의 역사를 통해 의식의 분단부터 극복하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취지에는 적극 공감한다. 적어도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역사학도들이라면 '통일사학'의 기치를 들고 갈라진 남과 북을 하나로 봉합할 수 있는 역사 연구가 필요하다고 줄기차게 주창해온 터다.


그런데 남과 북이 공동으로 기념할 수 있는 독립운동사업이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약간 회의적이다.


북한에서는 기본적으로 우리와 독립운동사를 전혀 다르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이 일본에 맞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항일투쟁이었다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투쟁을 이끌어 간 주체에 대해서 북한은 오로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 장군' 한 명만 추앙하고 있다.


사실상 북한에서는 '독립운동사=김일성 일대기'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외에 다른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실패한 인물로 묘사한다. 심지어 김일성이 그렇게 존경했다던 안중근조차도 김일성보다 아래로 보고 깎아내린다.


독립운동사의 상징적 존재인 백범 김구 선생도 예외는 아니다. 김구 선생을 민족의 스승으로 높이 추앙하는 남한 사람들에겐 매우 불쾌할 수밖에 없는데, 북한에서는 김구 선생이 김일성에게 '귀의'했다고 가르친다.


노령의 김구 주석이 30대의 젊은 김일성을 만나 "수령님의 탁월한 영도력에 감명을 받았다. 저는 지금까지 잘못된 길을 걸어왔다. 이제부터 수령님의 품에 안기겠다"며 무릎 꿇고 임정 주석의 인장을 갖다바쳤다고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생각하는 지점이 확연하게 다르다. 특히 어느 지점에 있어서는 함부로 얘기를 꺼냈다가는 자신들이 받들어 모시는 수령님의 신성한 권위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되레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더욱이 문 대통령은 내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이번 사업을 제안했다.


임정은 북측에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역사다. 대한민국은 국호(대한민국), 국기(태극기), 국가(애국가) 그리고 정체성(민주공화정)까지 임정의 법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수립되었는데 만약 임정의 역사를 인정한다면 북측 스스로 자신들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우려일 뿐이다. 남북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역사학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100% 공감하는 바이다. 그저 정부에서 잘 추진해서 이런 우려가 그냥 헛된 망상에 불과했음을 증명해주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가베치
,

링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10047363


2018 남북정상회담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사상 최초로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방남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듯 합니다. (비록 판문점 구역 안으로 제한되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쟁점 중 하나가 바로 김정은이 우리 대한민국 국군을 사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였습니다. 보통 외국 정상이 국빈으로 방한하게 되면 대통령과 함께 나란히 서서 우리 국군 의장대를 사열합니다. 김정은 역시 우리 정부가 '국빈 대우'를 한다고 알려졌기에 우리 의장대의 사열을 받을 것이냐 말 것이냐가 화두로 떠오른 것이지요.


설마 설마 했는데 결국 김정은이 국군 사열을 받는다고 보도가 나왔네요. 이건 가벼이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댓글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여론들도 좋지 않습니다. 저 역시 민주당원이고 문재인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통일지상주의자지만 이번 문제만큼은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아직까지 북한은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목함 지뢰 설치 등 각종 도발을 자행한 주적이며, 김정은은 그 수괴입니다. 지금 한반도에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해서 적국의 수괴가 아닌 건 아닙니다. 적국의 수괴에게 우리 군이 사열을 받는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는 생각합니다. 아마 이번 사열은 북측에서 먼저 강하게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정부가 굳이 국민 여론이 나빠질 게 뻔한 김정은의 사열을 앞장 서서 추진했을 리는 없고 북한이 '선례'를 들어 자신의 최고령도자에 대한 남측의 예우를 요구했겠지요.


그 선례란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과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각각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군 의장대를 사열했던 것을 말합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우리도 너희 최고지도자로부터 사열을 받았는데, 왜 우리 지도자는 못 받느냐"고 나설 명분이 있는 셈이죠.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이러한 논리 앞에서 딱히 반박할 명분을 찾기 힘들었을 겁니다.



더욱이 한반도에 봄이 오려는 마당에, 그깟 의전 문제 하나가 걸림돌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무릎을 꿇고 건달의 다리 사이를 기어간 한신의 고사처럼 두 눈 질끈 감고 잠깐 고개 한 번 숙이는 게 훨씬 실리적인 태도일 수도 있습니다. 사열 한 번 해주는 대가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한 논의에 진지하게 임한다면 까짓거 한 번쯤 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국제사회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법이니까요.


그럼에도 이번 결정을 지지하기 힘든 건, 역시 그들의 도발에 꽃다운 생명을 잃은 우리 국군 용사들과 남은 유족들 때문입니다. 특히 자식과 형제들을 가슴에 묻은 유족들 입장에서 김정은이 우리 군을 사열하는 장면을 보면 가슴이 천갈래 만갈래 찢어질 듯 합니다. 그런 유족들의 감정을 생각하면, 이번 결정을 덮어놓고 잘했다고 지지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태도에 달렸을 듯 합니다. 북한이 진정성을 가지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래서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된다면 이번 사열 문제도 평화를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단이자 빅픽처로 재평가될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다시 태도를 바꾸어 우리의 뒷통수를 치는 순간, 이번 문제는 문재인 정부를 레임덕에 빠트리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가베치
,

[논평] 위협받는 국가유공자들의 삶, 국가무한책임은 어디로?



링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449&aid=0000132522&sid1=001


2007년 창설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6.25 전쟁 당시 전사한 호국영령들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된 부대다.


국유단은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추진하는 목적에 대해 그것이야말로 '국가무한책임'을 완수하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은 국가가 마지막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백 번 옳은 말이다.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꽃다운 청춘을 불살라가며 희생한 모든 국가유공가자들은 그에 걸맞는 대우와 보상을 받아야만 한다. 여전히 이름 모를 산야에 묻힌 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리는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일을 영구 지속사업으로 국가가 주도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국가무한책임의 범주에는 지금 당장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는 생존 국가유공자들도 포함되어야만 한다. 우리나라에는 '국가보훈처'라는 기구가 있어 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모든 국가유공자들에게 그에 걸맞는 대우와 보상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제1연평해전에 참전해 우리 해군의 승리를 이끌었고, 그 댓가로 자신의 소중한 삶을 잃은 한 참전용사가 편의점에서 콜라를 훔치다 적발됐다는 사연은 보훈처가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품게 한다.


물론 보훈처에서도 국가유공자를 보살피기 위해 연금을 지급하는 등 나름대로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살 곳이 없어 고시원을 전전하거나 당장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해 폐지를 줍는 등 생계에 위협을 받는 국가유공자들의 이야기가 매년 들려오고 있으니, 과연 이들을 위한 보훈처의 역할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국가유공자를 위한 제도가 형식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보훈처가 미처 살피지 못한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고위공직자 중 '적폐청산' 1호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을 전격 경질하고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국가보훈처의 위상을 '장관급'으로 격상하겠다는 등 보훈사업에 적극적인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이제 그 의지에 걸맞는 실천이 필요할 때다.


2017년 6월 24일


역사독서모임 독사신론(讀史新論)

(http://facebook.com/suhistorybook)

Posted by 가베치
,

요즘 드라마 <미생>을 다시 보고 있다. 처음부터 '정주행'을 하는 것까지는 아니고, 간간이 주요 장면만 돌려보는 정도다.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는데 드라마도 마찬가지인 듯 싶다. 같은 장면을 보고, 같은 대사를 들어도 그때 그때 다가오는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미생>은 고졸 출신 비정규직 주인공의 고군분투를 담아낸 드라마다. 윤태호 작가가 그린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절절히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수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제목 미생은 바둑용어로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있지 못한 상태를 뜻한다. 어려운 바둑용어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지만 쉽게 말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삶이란 뜻이다. 그 반대의 뜻으로는 완성된 삶을 의미하는 완생이 있다. 즉, 미생이란 이제 막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디뎌 어리숙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처지를 빗댄 표현인 셈이다. 


나는 군대에서 이 드라마를 처음 봤다. 당시 나의 계급은 일병이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일병은 '일만 하는 병사'라는 우스개소리가 있을만큼 한창 바쁠 짬이다. 더욱이 그 당시의 나는 의지할 후임조차 없는 막내였다. 군 생활의 낙이랄 게 없는 그때, 선임들 틈바구니에 끼어 곁눈질로 보던 <미생>은 유일한 낙이었다. 애석하게도 항상 드라마가 끝나기 10분 전에 청소시간이 시작됐다. 매번 결정적인 10분을 놓치는 게 그렇게 한스러울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첫 휴가 계획을 짜면서 '<미생> 정주행'을 목록에 넣어놨을까.


아무튼 내가 이 드라마를 좋아했던 까닭은 주인공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고졸 출신 낙하산으로 매번 실수 연발에, 선임들에게 깨져가면서 점점 직장 생활에 적응해나가는 주인공의 처지는 당시 군대에 있던 내 처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잠시나마 드라마 속 그를 통해 나의 처지를 위로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병장이 되면 저절로 완생이 되리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막상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병장이 되고 보니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후임들과의 관계에서도 나는 여전히 미숙했고 팀의 리더로서 우리 팀을 최고의 팀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욕심만 앞섰을 뿐,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계급이 오를수록 늘 새로운 고민과 과제가 던져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전역증을 받는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등병이었을 때나 병장이었을 때나 나는 늘 미생이었음을.


전역하고 돌아온 사회는 여전히 내가 미생임을 더욱 절감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동안 이뤄놓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과제들만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토익을 비롯한 어학·자격증 등 취직을 위해 쌓아야 할 스펙은 끝도 없었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열심히 스펙을 쌓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면 나는 완생이 되는 걸까? 아니다. 결혼도 해야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도 꾸려야한다. 그리고 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어떻게 해서든지 직장에 살아남아야만 한다. 결국 나는 언제까지나 미생일 뿐이다.


사실 완생이란 내 삶이 다하는 그 순간에서야 마주할 수 있는 말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이뤄지지 못할 허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딱히 절망스럽지는 않다. 산을 정복한 뒤에 느끼는 정복감은 일시적인 감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산에 오른 뒤에는 내려올 일밖에 없다. 그러나 미생들에겐 올라야만 하는 산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아직 오르지 못한 산을 찾아 오르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을까. 그러니 완생을 꿈꾸며 나아가되 그 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눅들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시 드라마 <미생>이다. 결정적인 한마디로 주인공을 늘 응원해주던 직장상사 오과장은 말한다. "결국 우리 모두 미생일 뿐. 그렇게 완생을 향해 나아가는 거지" 


* 이 글은 2017학년도 1학기 수원대학교 교양과목 '문예창작의 이론과 실제' 수업 중 작성한 글을 과제용으로 다듬어본 것입니다. 무단 불펌을 금지합니다.

Posted by 가베치
,

* 이 글은 2010년 11월 11일에 작성한 글이다


최근 대한국인 안중근 의사의 위국헌신 정신을 기리기 위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재개관하였다. 


70년대 군사 정권 시절, 애국지사 숭모 사업의 일환으로 남산 조선 신궁 자리에 구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세워진지 꼭 40여년 만이다. 기존의 낡고 협소한 기념관을 허물고, 비둘기의 오물을 뒤집어 쓰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성금 35억여원을 들여 세련된 유비쿼터스식 새 기념관과 새 동상을 건립한 것은 기쁜 일이다. (사실, 안중근 의사 동상은 친일파 김경승이란 자가 조각한 것이기에 애초에 철거를 거세게 요구한 적이 있었다)

 

필자 역시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1주년 기념으로 열렸던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하였다. 많은 귀빈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안중근 의사의 동상 개막식과, 기념관 개관식을 지켜보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2008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안중근 의사에 대해 개인적으로 집착에 가까운 연구를 시작한 이후로, 구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여러 번 다녀왔었다. 그렇게 낡은 기념관이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이란 것에 안타까워했었던 기억, 새 기념관이 지어진다는 소식에 기뻐서 저금통을 몽땅 건립위원회에 기부했던 기억,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봉사 활동을 하며 일본인들이 찾는 것에 대해 감동받았던 기억 등..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얽혀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이제 새 기념관을 보게 되어 기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기념관의 건립을 적극적으로 축하해줄 수도 없는 현실에 다시 한번 서글퍼졌다. 비록 기념관이 건립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으나, 한편으로는 기념관의 건립에 대해 이런저런 안타까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국내의 안중근 의사를 숭모하는 단체들이 얽힌 문제들 때문이다.

 

국내에는 안중근 의사를 숭모하는 단체가 크게 두 곳으로 양분되어 있는데, 첫째가 바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위탁 운영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 숭모회'이며, 둘째가 숭모회에 반발하여 세워진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이다. 두 단체는 공식적으로는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는 단체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항상 다툼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에서는 사실상 숭모회를 안중근 의사 추모 단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념사업회에서는 이번 새 기념관 건립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였고, 반민특위나 민처협 같은 일부 진보적 민족주의 단체와 연계하여 안중근 의사 기념관 건립 반대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럼 기념사업회는 왜 이러한 반대 운동에 뛰어들었는가? 그것은 기념관의 운영을 맡고 있는 숭모회의 전력 때문이다.

 

사실 숭모회는 안중근 의사 추모 단체라는 이름이 부끄럽게도 초대 이사장이 '윤치영'이라는 친일파 출신의 관료였다. 숭모회의 역대 이사장 계보나 주요 임원진들이 친일 전력을 가졌거나, 군사 정권 시절, 정권에 협력한 인물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숭모회에서도 사실상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더군다나 현 숭모회의 안응모 이사장 역시 전두환 정권 시절, 내무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라는 것이 기념사업회의 숭모회 부정 운동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기념사업회에 방문하여, 숭모회의 지난 전력을 전해듣고 깊은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한 쪽의 말만 들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숭모회 측에도 이 사실에 대해 해명을 해달라고 부탁하였는데 숭모회 측에서는 "이미 역대 친일 출신 관료들은 죽고, 주요 임원진들이 싹 바뀌었는데 친일파 단체란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기념사업회에서는, "사람만 바뀌었다고 그 역사와 전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반박하였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두 단체에 모두 발을 담그고 각 단체의 관계자 분들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봤기에 두 단체 간의 이러한 알력은 심히 유감스럽고 안타까우며, 하늘에 계신 안중근 의사께 면목이 없어 눈시울이 붉어질 뿐이다.

 

필자는 겉으로는 우선 안중근 의사 기념관의 건립에 참여를 하였다. 왜냐하면 우선 안중근 의사의 구 기념관 상태가 정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거니와, 이제 와서 반대를 한다고 이미 지어지고 있는 기념관 건립이 무산될 확률도 희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필자는 동시에 숭모회 측에 지난 과거에 대한 반성과 숭모회 내부 자체 개혁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숭모회에 대한 어떠한 연민(?)이 있었다라기보다는 안중근 의사를 숭모하는 단체들이 난립하고 서로 반복하여 분열되는 작금의 행태가 너무 안타깝고 분개할 수 밖에 없었기에, 어떻게든 두 단체를 중재하여 가장 나은 방안으로 나아가자고 그런 주장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숭모회 측에서는 그 이후로 어떤 답변도 없었고, 따로 사과나 개혁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념사업회는 여전히 숭모회를 부정하며, 숭모회의 자체 개혁을 요구하면서 기념관의 운영권을 포기할 것을 주장하는 분위기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가 난 필자는 국가보훈처에 차라리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국영화하거나, 안중근 의사의 유족들을 모아 유족 중심의 추모 단체를 따로 만들어, 그들에게 기념관 운영권을 부여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였으나 이미 안중근 의사 기념관의 운영권이 안중근 의사 숭모회에 있는 이상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요구에 가까웠다.

 

벌써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개관한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새로 지은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들어가 안중근 의사의 좌상을 마주할 때마다, 애증의 감정이 피어오른다. 평생을 평화와 협력을 주장하신 안중근 의사께서, 정작 자신을 추모하는 단체들의 분열과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이러한 상황을 하늘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 그저 기가 막히고 안 의사께 면목이 없을 따름이다.

 

안중근 의사의 사라진 유해를 찾는 것이 당장 시급한 일이겠으나, 안중근 의사의 뼛조각을 찾는 것에만 큰 의미를 부여하고 정작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깨닫지 못하고, 그분의 유지를 제대로 받들지 못하는 후손들은 반성해야할 것이다.

 

후일, 지하에서 안중근 의사를 만나뵈었을 때, 나는 그분 앞에서 과연 고개를 들 수 있을까.

Posted by 가베치
,

* 이 글은 2012년 2월 16일 새벽 3시에 쓴 글이다.


옛날부터 정치인들이 툭하면 위인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자신들을 화려하게 포장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인습이다. 최고 지도자에서 말단 의원들까지 선거철만 되면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위인들을 이용한 자기 미화를 하는데, 그런 미화에 이용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충무공 이순신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순신이란 인물이 차지하는 위상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많은 정치인들은 툭하면 이순신의 이름과 그의 업적을 들먹이며 국민들에게 자신을 이순신과 동일한 이미지로 봐달라고 선전을 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툭하면 이순신의 사당인 아산 현충사를 찾아 참배하는 것도, 공개 석상에서 툭하면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와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죽고자 하면 살 것이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를 들먹이는 것도 모두 그러한 행보의 일환이다. 정치적 색깔과 어떠한 이념에 구애됨 없이 오로지 순결한 마음으로 이순신을 앙모하는 나로서는 눈에 뻔히 보이는 정치인들의 이러한 행보가 참으로 불쾌하게만 느껴진다.

 

요새는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이순신과 같은 위인들의 이름을 들먹이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데, 그 도가 지나쳐서 황당하기까지 하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시위를 하거나 집회를 벌이고선 이순신 동상 앞에서 했으니 이순신 역시 자신들의 목적을 지지한다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다. 이쯤 되면 망상에 시달리는 중증 환자가 아닐까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특히나 정치적 선동에 이순신을 끌어들이는 이들도 있는데, 이순신은 오로지 국가와 백성만을 생각한 군인이었다. 군인에게 정치적인 색깔과 이념이 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특히나 이순신의 경우 지기인 류성룡이 동인이었다는 것 때문에 동인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동인도 아니고 서인도 아닌 오로지 왜적을 맞아 싸울 생각에만 전념했던 참 군인이었다. 그런 그를 현대 정치판에 끌어들이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위인들의 이름을 걸어 자신들의 행동을 미화하는 것이 어디 하루 이틀 일이겠느냐마는 죽은 위인들의 이름을 함부로 들먹이며 여기저기 갖다붙이는 행동은 그 위인들을 두 번 죽이는 행동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가베치
,
링크: http://www.korea100.kr/tc/241

(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서 운영하는 '100년 편지'란 홈페이지가 있다. 다가올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2019년)을 기념하며 만든 이벤트 홈페이지인데, 내가 김구, 안중근이 되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혹은 우리가 김구, 안중근 등 독립투사들께 편지를 써서 올리는 홈페이지다. 편지를 보내면 기념사업회의 심사를 거쳐 선정이 된 편지가 올라가며, 격주로 업데이트 된다.

언제고 한 번 써봐야지, 써봐야지 하면서도 내내 미루다가 지난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 서거 65주기를 맞아 김구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군 입대를 앞두고 더는 미룰 수 없어서다. 그리고 8일에서야 내 편지가 192번째 편지로 게재되었다.

원래는 4월 말에 야심차게 시작했던 <백범일지> 필사를 마치고 당당하게 편지를 쓰려했는데, 게으른 탓에 '상권'조차 완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입대를 하게 되어 더는 미룰 수 없겠기에... 그래서 편지 말미에 필사를 다 마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운 고백도 담았다.

그간 100년 편지를 쓴 분들을 보면 대부분 역사학계에서 활동하시는 교수님들이나 역사 관련 학술단체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 주로 썼고 나와 같은 젊은 사람들이 쓴 편지는 드문 것 같다. 보다 젊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열심히 써주었으면... (소정의 원고료도 지급된다)
Posted by 가베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