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간 친구가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현재 소년원 교도관으로 근무하고 있는데요, 부모님은 두 분 모두 한국에 거주하고 계시기 때문에 종종 한국에 놀러오곤 합니다. 일 때문에 자주 오지는 못하고 몇 년에 한 번씩 휴가를 내서 옵니다.


사는 동네도 같거니와 중학교 때 캐나다로 훌쩍 떠나버린 터라, 그 친구에겐 절친한 단짝이라곤 저밖에 없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 오면 어떻게 해서든지 시간을 내서 자주 만나곤 합니다. 


한 번은 제가 군대 있을 때 그 친구가 놀러왔는데 부대까지 피자를 사들고 면회를 온 적도 있었어요. 한국 사는 친구들조차도 면회를 한 번 안 왔는데, 퍽 감동이었죠. 저도 휴가 나가서 그 친구와 시간을 보냈고, 전역하고 바로 다음 주에 그 친구가 또 한국에 왔을 때도 한동안 그 친구랑 실컷 놀았더랬죠.


한 달 전에 이 친구가 휴가를 얻어서 한국에 또 왔는데, 이번엔 애석하게도 제가 취직을 하는 바람에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습니다. 이 친구도 오랜만에 한국 와서 여기저기 인사 다니느라 바빠 결과적으로 옛날만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진 못했어요.


이 친구가 내일 저녁 비행기로 다시 캐나다로 떠난다기에, 아쉬운 마음에 오늘 만나서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워낙 맛난 건 자주 먹고 다녀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무난하게 보라매공원 근처에 있는 '이태리 부대찌개' 집에서 해결했습니다.



보라매공원으로 운동하러 갈 때마다 늘 지나쳤던 곳인데, 이렇게 친구와 와서 먹게 될 줄은 몰랐네요.


오랜만에 부대찌개를 먹으니까 맛나고 좋습니다. 차라리 점심에 먹었던 군인공제회 뷔페보단 훨씬 나았어요. 9,000원짜리 부대전골 2인분을 시켜서 먹었는데, 양도 푸짐해서 장정 둘이 먹는 데도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남길 정도였습니다.


참고로 여긴 육수, 밥, 사리가 무한리필입니다. 

그 친구나 저나 앉은 자리에서 두 공기를 뚝딱 해치웠습니다.

배불리 먹은 뒤에 근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함께 동네까지 걸어와서 헤어졌습니다.


내일 공항에 마중 나가면 좋겠지만, 저도 다음 날 출근이고 밀린 일들이 많아서 결국 오늘 저녁을 마지막으로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습니다. 확실히 학생일 때가 좋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일 때문에 단짝 친구 멀리 가는 데 배웅하는 것조차 못 하는 현실이라니.


돌이켜보면 티격태격 자주 싸우기도 하고, 제가 많이 귀찮게 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늘 웃으면서 받아주는 좋은 친구입니다. 현재 하는 일이 적성에 안 맞기도 하고, 한국을 계속 그리워해서 한국으로 도로 들어오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고 하는데 모쪼록 잘 풀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기왕 한국에 돌아와서 서로 왕래하면 더 좋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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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결혼식에 간다며 같이 뷔페 가서 밥 먹고 오자고 합니다.

공짜밥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 게다가 뷔페라니. 이런 금상첨화가 또 있나요?


장소는 도곡역 근처에 있는 군인공제회 건물에 위치한 웨딩홀이었습니다.

뷔페답게 메뉴는 다양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맛은 정말 실망스럽더군요.


정말 '막입'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아무 거나 잘 먹는 편인 제게도 영 아니었습니다. 보기에는 다 화려해보이는데 막상 한 젓가락 집어서 입에 가져가보면 더 이상 먹질 못하겠습니다. 


만두는 식어서 굳어있고, 시사모 튀김은 생선비린내가 그대로 나고, 탕수육은 고기누린내가 나고... 아마 뷔페를 다니면서 이렇게 접시회전율이 낮았던 적은 처음이지 싶어요. 한 세 접시 먹고 나왔습니다.



제 친구는 맛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제가 요새 입맛이 까다로워지기 시작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정말 군대 짬밥도 맛나게 먹을 정도로 막입이었는데, 요새 들어 입이 좀 짧아지기 시작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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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역 근처에 '쩐호우 양꼬치'라는 유명한 양꼬치&훠궈 식당이 있습니다.


양꼬치는 1인당 13,000원에, 훠궈는 1인당 15,000원에 2시간 무한리필입니다. 저로서는 집 근처에 이런 식당이 있는 게 여간 반가운 게 아닙니다. 예전에 한국형의권연구회 회식 때 한 번 방문했던 곳인데, 자주는 아니어도 어쩌다 한 번씩 양꼬치나 훠궈가 생각날 때면 친구들을 데리고 여기로 옵니다.


평소엔 양꼬치를 즐겨 먹었지만, 오늘따라 훠궈(중국식 샤브샤브)가 무척 당겨서 훠궈를 먹었습니다. 사실 겨울이 가기 전에 훠궈를 먹지 않으면 무척 아쉬울 것 같아서요.


원래 훠궈에는 중국 바이주를 곁들이면 정말 쥑이는데, 제 친구나 저나 술을 자제하고 있는 터라 아주 건전하게 음주 없이 오로지 훠궈로만 배를 채우다 나왔습니다.




훠궈를 배터지게 먹고난 뒤에는 좀 걷다가 보라매공원 근처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파르페를 사먹었습니다. 



제가 먹은 건 '마카롱 파르페', 친구는 '오레오 파르페'를 먹었습니다.

그냥 소프트 아이스크림에 이것저것 얹은 것 뿐인데 가격이 6천 원을 훌쩍 넘더군요.

요새 물가 ㅎㄷㄷ 합니다.


옛날엔 친구들 만나면 가볍게 마시는 게 커피 한 잔이었는데, 요새는 결코 '가볍게'라는 표현을 쓰기 힘든 듯 합니다. 가끔은 기분 내키는 대로 폼나게 친구들한테 한 턱씩 내고 그래야하는데, 당장 저부터도 커피 한 잔에 손이 바들바들 떨릴 지경이니. 확실히 잘 벌고 볼 일인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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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무인과 거문고>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중국무림 3대의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해서 꽤나 흥미를 끌었더랬습니다.


중국무술 중 하나인 '형의권(形意拳)' 문파의 3대 명사(상운상-한백언-한유)의 이야기를 3대인 한유의 구술로 정리한 책입니다.


참고로 한유의 구술을 책으로 정리한 사람은 중국의 영화감독인 서호봉입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왜구의 무기>, <명궁 류백원>, <사부 - 영춘권 마스터> 등 마니아틱한 무술 영화를 연출한 감독입니다. 실제로 무술을 연마한 경력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형의권에 대해 설명하자면, 중국 청나라 때 만들어진 무술로 내가 3대 문파(태극권, 형의권, 팔괘장)의 일종으로서 강맹하고 직선적인 공격을 특징으로 하는 무술로 유명합니다. 국내에는 건강체조로도 널리 알려진 태극권에 비해 그 인식이 미미합니다만 중국 내에서는 3대 명권(名拳) 중 하나라고 꼽힐 정도로 유명한 권법입니다. 


특히 형의문의 유명한 인물인 곽운심이란 분은 반보붕권(반보로 내딛으며 주먹을 지르는 기술)으로 중국무림을 평정함으로써 여기에서 '반보붕권 타편천하(半步崩拳 打遍天下: 반보의 붕권으로 천하를 때린다)'라는 말이 유래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상운상이란 분 역시 곽운심의 제자로, 형의문이 배출한 유명한 권법가입니다. 이분은 만화 <권법소년>에도 등장하지요. 머리와 몸이 둔해서 간단한 기술 하나조차도 습득하지 못하는 탓에 스승이 붕권 하나만 가르쳐줬더니 무려 3년 동안 그 기술 하나만 연습해서 날고 기는 사형제들을 다 꺾어버린 전설적인 일화가 전해내려옵니다.


그 상운상 노사가 어떻게 제자들을 가르쳤고, 무림에서 대련 신청(소위 도장깨기)이 들어오면 어떻게 상대했는지 그 당시의 일화들을 증언의 형태로 구술하고 있어 무척 흥미롭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은 일화 한 토막이 있어 소개합니다.


어느 날, 상운상 노사가 제자를 가르치고 있는데, 웬 노인이 찾아와 대결을 청했다고 합니다. 상운상 노사와 노인이 손을 맞대자마자 둘 다 훌쩍 뛰어오르며 반대편으로 착지했는데 제자들은 그걸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스승을 상대로 필적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로소 적수를 만났다고 생각한 상운상 노사 역시 제자들에게 "모두 나가라"고 한 뒤에 문을 닫아걸었는데 궁금증을 참지 못한 제자 한백언이 몰래 창틈으로 엿보니 상운상 노사가 달마상에 향불을 피워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향을 올리고 뒤돌아서는 상운상 노사의 얼굴을 보고 기겁을 했다고 합니다. 평소 자신의 사부의 얼굴이 아닌 전혀 다른 얼굴이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대련에 임한 상운상 노사는 가볍게 노인을 제압했습니다. 


나중에 한백언이 그 까닭을 여쭈면서 "신령의 도움이 있었습니까" 하고 물으니 상운상 노사가 답하기를 "정성이 지극하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사람이 간절하면 이로움이 생긴다"고 에둘러 말했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너무 과장과 허풍이 심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아주 없는 말을 지어낸 건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특히 웬만한 스승의 허물은 감추고 싶은 게 제자의 심리일텐데, 무림계에서는 대선배이자 고수로 명성을 떨친 상운상 노사조차도 무술만 하다보니 밥벌이를 제대로 못해서 아내에게 구박받는 장면이 묘사되는 걸 보면 나름 진솔하게 증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상운상 이후 제자 한백언이 문화대혁명 당시 고초를 겪었던 일, 홍위병들을 무술로 깜짝 놀라게 한 일 등이 등장합니다. 이를 통해 청나라에서부터 중화민국을 거쳐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 시절로 이어지는 근현대 중국의 사회상을 민중사적 관점으로엿볼 수 있는 것 같아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었습니다.


무슨 장풍 쏘고 날아다니는 무협 판타지를 기대하시는 분들에겐 환상이 깨질 수 있으니 비추합니다. 차라리 근현대 중국사에 관심 많은 분들이 오히려 더 흥미롭게 보실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읽는 게 좀 고통스러울 수 있으니 그 점은 미리 밝혀둡니다. 이 책을 번역한 출판사가 번역을 어찌 이리도 엉망으로 해놨는지, 문장이 매끄럽지 않은 걸 떠나서 읽다가 짜증이 날 정도입니다. '난 참을성이 많다'고 자부하시는 분들에게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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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동작도서관에 책 빌리러 갔다가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3,800원짜리 백반인데, 미역국 맛은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반찬이 좀 아쉽습니다.


작년에 해금 배울 당시 자주 이용했던 부천시청 구내식당은 같은 가격에 훨씬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했는데, 아직까지 그만한 퀄리티의 구내식당을 만나본 적이 없네요. 해금 관둔 지도 꽤 되서 부천시청 구내식당도 안 간 지 한참 됐는데... 그 밥맛이 그립습니다. 


좀더 여유가 생기면 다시 해금을 시작해야할 텐데, 한 번 끊으니 다시 시작하기가 어렵습니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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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친구들과 남한산성에 올랐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우리 국유단 동지들과 함께...)


그렇게 바글바글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등산객들이 꽤 되더군요.

날이 따뜻해서 등산하다보니 금세 등줄기가 후끈해집니다. 



그닥 가파른 산이 아니어서 그런지 딱히 힘들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름 만날 산 타는 게 일상이었던 유해발굴병 출신인데, 가오가 있지 이깟 산에 헥헥거렸으면 자존심 상할 뻔 했습니다. (예외도 있었지만...)


서문-> 수어장대 -> 북문 코스로 잡고 등산을 시작했는데 대략 40분 정도 오르니 서문에 도착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항복하러 나왔던 문이 바로 이곳 서문이라고 합니다.



서문에서 길 따라 쭉 올라가다보면 제일 높은 곳에 '수어장대'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오군영 중 하나였던 '수어청'의 지휘관이 병사들을 지휘했던 지휘소라고 합니다.

이제는 등산객들의 단골 포토존이 된 지 오랩니다.



저도 삼체식과 용형으로 인증샷을 남겼는데, 용형할 때 주변 등산객들이 깔깔거리고 웃는 통에... 쩝;

(그나저나 매번 인증샷이 마음에 안 듭니다. 어떻게 하면 멋지게 나올지 연구해봐야겠습니다)



내려올 땐 북문으로 내려왔는데, 여긴 조선군과 청나라군이 한 판 붙었던 '북문 전투(법화골 전투)'의 현장입니다. 조선군 300여명이 북문으로 나왔다가 매복해있던 청나라군에 의해 무참하게 패배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내려올 때는 배가 고파서 밥 먹을 생각 밖에 없었는데, 지금 이 포스팅을 하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기가 거기였습니다. 귀찮아서 사진도 안 찍었는데 이제서야 무릎을 치게 됩니다 -_-; 아무튼 영화 <남한산성>에서도 북문 전투가 묘사되는데 실제로 여기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북문을 지나 쭉 내려오면 식당가가 등장합니다. 

미리 사전 조사로 눈여겨봐둔 식당을 찾았습니다.



여기 '효종갱'이라는 메뉴가 유명하다고 하여 일단 2인분만 주문해봤습니다. 


효종갱은 조선시대에 양반들이 새벽까지 술 먹다가 아침에 배달해서 먹던 해장국이라고 합니다. (효종은 '새벽종'이란 뜻입니다. 새벽종이 울릴 때 먹던 해장국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양반들이 즐기던 해장국답게 전복, 소갈비, 해삼, 버섯 등 각종 진귀한 재료들이 들어갑니다. 가격도 1인분에 12,000원이나 합니다. 



먹어보니 북엇국 맛이 강하게 납니다. 솔직히 12,000원이나 주고 먹기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다 한 번 먹을 수는 있겠지만, 굳이 다음에 또 와서 찾아 먹을 맛은 아닙니다.


추가로 오리백숙 한 마리를 안주 삼아 동동주를 마시며 늦은 점심을 거하게 해결했습니다. 한참 먹고 마시면서 떠들다가 근처 한옥카페에서 커피를 먹고 해산했습니다. 



설 연휴 들어 너무 잘 먹고 마시며 다니다보니 슬슬 똥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용형을 빡세게 해줘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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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대표 역사카페 '부흥'에서 주최한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이번에 <중국사 인물과 연표>(이하 중국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중국이란 나라를 무척 좋아합니다. 거대한 땅덩어리만큼이나 다채로운 문화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영웅의 로망을 품게 해준 중국무협문화부터 눈과 혀를 즐겁게 해주는 중화요리들까지. 어떻게 보면 역사적으로 우리와 늘 함께 공생해왔던 나라지만 그 문화는 너무나도 다른 이 중국이란 나라에 오랜 시간 흥미를 갖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무릇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먼저 역사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륙 위에서 살아간 이들의 발자취를 통해 지금의 중국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그 중국에서 살아가는 중국인들은 왜 그런 사상을 품게 되었는지 역사는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넓은 땅덩어리만큼이나 너무나도 방대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중국이기에, 중국사를 '통사'로 이해하는 것은 또한 지난한 일이기도 합니다. 좁은 반도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버거운 일일진대, 드넓은 대륙 위에서 몇 천 년을 살아간 중국인들의 발자취를 좇는 과정을 책 한 권에 담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중국사>는 보기 드문 대단한 수작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5천 년에 이르는 중국의 역사를 한 권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연표 형식으로 구성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대부분 역사를 다룬 책마다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기 쉽게 연표를 싣곤 하지만, 거진 책 말미에 한두 장 짧게 정리한 게 전부입니다. 그러다보니 대충 훑고 스쳐지나가는 경향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 <중국사>는 오로지 연표로 구성한 데다가, 연표를 따라 역대 중국 위인들의 초상화 1,443장과 역대 제왕들의 '용맥도(계보도)'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연표를 통해 중국 5천 년의 통사를 한 눈에 쉬이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읽는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너무나도 방대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이기에, 우후죽순처럼 자라난 소국(小國)들의 역사가 난잡하게 혼재되어 있는 양상을 띠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고대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다보니 중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본인으로서는 한 번에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이는 제 개인의 학식이 부족한 탓이니 누굴 원망할 문제는 아니겠지요.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보충 설명이 있다고는 해도 중국사를 전혀 모르는 이들에겐 다소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방대한 역사를 한 권에 담아내려다보니, 그리고 연표 형식으로 정리하다보니 구체적인 설명은 많이 부족합니다. 위에도 언급한 것과 같이 너무나도 난잡한 대륙의 양상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운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으로 중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은 이 책보다는 시중에 나온 가벼운 교양서적을 한 번 읽고난 뒤에 이 책 읽기에 도전하는 것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그러면 분명 복습도 되면서 중국사에 대한 이해의 차원이 훨씬 넓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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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24기를 수련하던 시절, 공동구매를 통해 월도 한 자루를 구매한 적이 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집 옥상에 올라가 땀을 뻘뻘 흘려가며 틈틈이 수련했는데, 무예24기 수련을 관둔 이후로는 방 한 구석에 처박아둔 채 먼지만 풀풀 쌓여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사부님이 무기특강을 하신다고, 집에 있는 무기들 아무 거나 가져와보라고 하시더군요. 반농반진으로 "집에 청룡언월도 한 자루 있는데 들고 가도 됩니까?" 했다가 예상외로 너무 적극적인 호응(?)이 쏟아졌습니다.


집에 와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바로 '운반' 문제 때문입니다. 한창 무예24기 공연 다닐 때는 여럿이서 들고 다녔기에 민망함이 덜한 편이었는데, 이걸 혼자서 들고 수련터까지 이동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래도 가져갔을 때 사형제들의 반응도 궁금하고, 무엇보다 사부님의 춘추대도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 최선을 다해 포장(?)해서 운반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나름대로 날을 감추려고 애를 썼는데, 월도 특유의 반달 모양새가 드러나서 티는 감출 수 없었습니다.


원래 저는 수련터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도저히 아침 만원버스에 월도를 들고 탈 자신이 없어 돌고 돌아 지하철로 가느라 애 좀 먹었습니다. 확실히 사람들 시선이 많이 모이더군요. 생선가게 옆을 지나갈 땐 점원이 대놓고 "청룡언월도다!"라고 내뱉기도 했습니다.


간신히 수련터에 도착해서 풀어놓으니 사형제들이 관심을 갖고 모여서 구경을 합니다. 사부님께서 몸소 시범도 보여주셨고요. 사형제들 앞에서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투로를 한 번 선보이기도 했는데 그동안 연마를 게을리한 터라 무기를 통제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는 제 자신이 느껴졌습니다. 사부님도 그런 점을 한 눈에 캐치하셨고요.


아무튼 이날 월도는 많은 사형제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두 번 나들이는 힘들 것 같습니다. 운반하기 너무 귀찮고 힘들기도 하거니와 사람들 시선이 너무 쏠려서 민망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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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무예 수련 (at. 보라매공원)  (2) 2016.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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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 2월 25일에 열리는 정기 토익(TOEIC)에 접수했습니다.


원래는 이보다 2주 정도 앞선 11일에 열리는 토익에 응시하기 위해 접수까지 했었는데, 지금 듣고 있는 인강을 다 듣기도 전이라 아무래도 좀 무리일 듯 싶어 고민 끝에 취소하고 뒤로 미뤘습니다.


이번 토익은 생애 첫 토익이기도 합니다. 어릴 적에 아동 대상으로 시행됐던 모의토익과 대학 재학 중에 학교에서 시행하는 모의토익에 응시한 경험은 있었지만, 정식 토익시험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만큼 영어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물론 토익 공부를 열심히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만... 정작 시험은 보지도 않은 채 공부만 하다가 끈을 놓아버린 안타까운 역사가 있습니다.


애시당초 살면서 토익점수가 필요한 직업을 선택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등한시해왔는데... 정작 토익 점수 때문에 졸업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니 뒤늦게서야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저희 학교에서는 토익 점수가 일정 기준점수 이상을 충족해야 졸업이 가능합니다)


아무튼 6월 전까지는 기준 점수를 충족시킨 성적표를 제출해야 무사히 8월 졸업이 가능한 상황이라 마음이 좀 급합니다. 부랴부랴 EBS 인터넷 강의를 신청해서 하루에 2강씩 듣고는 있는데 많이 불안하네요. 영어와 담을 쌓고 산지 오래인데다가 중국어, 일본어에는 흥미가 있어도 영어에는 영 재미를 못 느껴서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일단은 해보는 데까진 해야죠. 기왕 하는 거 기준 점수 충족에만 만족할 게 아니라, 좀더 높은 단계를 바라보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 거 치곤 참 태만하게 공부하고 있지만...) 이제 토익은 스펙이 아니라 기본이라고 하는데, 어디 가서 부끄럽지 않을 점수는 만들어놔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PS. 토익 응시료가 만만찮네요. 44,500원이나 합니다. 부모님께 시험 응시료를 구걸해야만 하는 비참함도 만만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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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크: http://www.i815.or.kr/2017/news/magazine.php


독립기념관에서 매월 발행하는 <월간 독립기념관> 회보에 2018년 한 해 동안 고정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여름방학 때 독립기념관 소속으로 일본 역사탐방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탐방 수기를 조금 가다듬어서 1년 12개월 동안 12편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


어디 내놓기 민망한 글인데 먼저 연재를 제의하고 결정해주신 독립기념관 측에 감사드리면서, 많은 분들도 읽어주십사 소식을 공유합니다.


PS. 위의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웹진 형태로 PC에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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