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의 역사학자들이 정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 약사(略史)다. 부록(연표)을 제외하면 175페이지로 매우 얇다. 두꺼운 연구서를 읽기 벅찬 일반 독자들을 위한 맞춤형 교양서다.


책이 얇다고 안에 담긴 내용도 얄팍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임정 연구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9명의 학자(한시준, 김희곤, 한상도, 장석흥 교수 등)들이 1부 상해 시기, 2부 이동 시기, 3부 중경 시기의 세 파트로 임정의 활동상을 나누어 정리했다. 임정의 성과와 한계를 두루 조명하려 한 점이 눈에 띈다.


이 책의 초판은 2009년에 나왔다. 그리고 좌우 세력 간 역사전쟁을 불러일으켰던 '건국절' 논란은 2008년에 시작됐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도 건국절 논란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반박이 제시되고 있다. 


역사학자들이 정확한 근거를 들어 건국절 논란을 반박한 게 벌써 9년 전인데 아직까지도 건국절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는 현실이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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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독립운동가 후손 분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런데 이분들은 한결 같이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살기 좋아졌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임시정부에서 비서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의 후손은 손목에 '이니시계'를 차고 다녔고, 만주 국민부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김진성 선생의 후손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드디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고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만 들어도 '문재인 대통령이 참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방부에서도 광복군을 뿌리로 하는 국군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극우세력들은 이조차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있다.


당장 국방부에서 만든 이 영상만 봐도 그렇다. 광복군을 우리의 뿌리로 가르치는 영상을 두고서 '주적을 북한이 아닌 일본으로 교묘하게 바뀌치기함으로써 적화통일로 이끄려는 문재인 정권의 술수'라는 기가 막힌 발언도 눈에 띈다.


나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더 이상 안 나오게 하겠다는, 그리고 그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적극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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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 사극 영화가 세 편이나 개봉했습니다. <안시성>, <물괴>, <명당>입니다. 개인적으로 셋 다 크게 기대했던 작품은 아닙니다. 사극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닥 구미가 당기는 작품들은 아니었습니다. 


어쨌거나 추석 전후로 <안시성>과 <명당>을 보았습니다. <물괴>는 아직 보지 못했는데, 네티즌들의 감상평이 좀 안 좋더군요. 상영관에서도 슬슬 내려가기 시작한 것 같고... 기회가 되면 보는 걸로.


아래는 각 영화에 대한 촌평입니다.


1. 안시성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입니다. 사실 초반엔 보다가 졸았습니다. 이번에 안시성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저는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영화를 잘 못 보는 성격인 듯합니다. 안시성은 안시성에서 벌어지는 고구려군과 당군의 전투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터라, 기본적으로 안시성을 벗어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전투의 반복일 뿐입니다. 그리고 전투란 것도 사실 마지막의 '토산 전투'를 제외하고 나면 칼로 베고 찌르며 활 쏘고 돌 던지는 뻔하디 뻔한 공성전의 반복이라... 너무 지루한 나머지 창칼이 맞부딪끼면서 내는 요란한 소리에도 불구하고 초반엔 너무 졸려서 한참 잤습니다.


조인성의 연기는 확실히 사극톤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조인성만의 매력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대조영>의 임동진 선생이 중후한 카리스마의 양만춘 대장군 상을 정립했다면, 조인성의 양만춘은 친구 같은 젊은 리더의 상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실제 양만춘의 얼굴을 우리는 본 적도 없으니 어떻게 표현하든 그건 감독과 배우의 재량이라고 봅니다.


스토리 전개가 너무 뻔합니다. 저는 원래 머리가 둔해서 반전 예측도 잘 못하고, 해석이 필요한 영화는 질색입니다. 당장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도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은 극찬을 하는데, 저는 대체 뭔 소린지 몰라서(심지어 해석을 봐도 이해가 안 가더라는) 보자마자 바로 시간 날렸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둔한 저조차도 너무나도 쉽게 예측이 가능했습니다. 뭐 하나 떡밥이 나오면 바로 '이 떡밥은 나중에 이렇게 활용이 되겠군' 하고 머릿속에 쫙 그려지더군요. 당 태종이 못 당기는 주몽의 신궁을 양만춘이 당겨서 당 태종을 쏘아맞춘다는 뻔한 설정, 그리고 활을 쏠 때 "고구려의 신이 함께 당겨주실 거다"라며 노골적으로 민족주의적 코드에 기대는 대사들까지. 아쉬움만 많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2. 명당


안시성보단 훨씬 낫습니다. <관상>, <궁합>, <명당> 등 동양철학 3부작 중 마지막 시리즈라고 하는데, <관상>보단 못 하지만 그래도 제법 괜찮았습니다. 조승우야 <암살> 이후로 믿고 보는 배우인만큼 연기력 면에서 완벽했고, 백윤식 선생 역시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관상>에서는 충신을 <명당>에서는 간신을 연기하면서 극과 극의 캐릭터를 보여주었는데, 둘 다 너무나도 잘 어울릴만큼 역시나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통해 '지성'을 재발견했습니다. 지성이 나온 작품을 많이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명당>을 보면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야욕과 광기에 휩쓸린 흥선군의 역할을 정말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두 눈빛에 서린 광기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스토리는 감독이 지어낸 허구인 줄 알았는데, 근거가 아주 없지는 않더군요. 솔직히 저도 역사를 전공했지만 흥선군이 자손이 천자가 되려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그곳에 있던 사찰을 불태워버리고 묘를 썼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찾아보니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도 언급이 된 부분이라고 하는군요. 아마 야사일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찌 됐건 근거를 가지고 제법 개연성 있게 스토리를 풀어나간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신흥무관학교 이야기는 제 개인적인 관심사(독립운동사)를 정확하게 관통하는 코드라 매우 흡족했고요. 엄청 잘 만든 수작은 아니지만, 킬링타임용으로는 제법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졸지도 않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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