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14년 10월 13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해발 1,200m가 넘는 강원 고성 설악산 최북단 봉우리. 너무 험해 아예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된 이 산을 나는 밥가방, 물가방을 짊어메고 매일 오른다. 처음 오를 때 정말 20분도 못 올라가서 속이 울렁거리고 눈 앞이 노래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헉헉대며 몇 번을 미끄러지고, 넘어져가면서 간신히 도착한 정상. 저 멀리 북쪽으로 통일전망대와 금강산이 보이고, 그 옆으로 동해바다가 흐르는 장관이 펼쳐진다.

이곳 정상부는 자칫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추락해 죽거나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바위산이다. 너무 험해서 한 시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이곳에서 우리는 집게 하나 들고 바위를 발로 디뎌가며 바위 틈 사이에서 6.25 호국영령들의 유해를 찾는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우리 세대 병사들은 그때까지도 실감하지 못하다가 바위 틈 사이로 나오는 유해와 유품을 보면서 "정말 이 땅에서 전쟁이 있었구나" 장탄식을 하고, 나 역시도 "맨 몸으로 그냥 오르기에도 힘든 이 산에서 어떻게 전투가 치러졌을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져온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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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14년 10월 1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근황 및 안부인사>

1. 입대한 지 3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무더운 여름에 논산 훈련소로 입대하면서 부모님 얼굴 보면 눈물 흘릴까봐 애써 뒤돌아보지 않고 연병장으로 걸어가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등병 계급장 달고 자대 와서 한 달이란 시간이 훌쩍 흘렀습니다. 가끔은 훈련소 생활 견뎌내고 무사히 자대까지 온 내 스스로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군대 가기 전에 너무 쓸데없는 겁을 먹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2. 천만다행으로 선임들이 다 좋은 분들입니다. 유해발굴병은 사학과/고고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선발하기 때문에, 사회 있을 때 친분 있던 이들도 있고, 한 다리 건너 아는 이들도 수두룩해서 반갑기도 합니다. 또 전역 후 사회 나가서도 이어질 수 있는 인연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3. 군대 와서 배우는 게 많은 것 같습니다. 유해발굴병은 그냥 땅만 파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유해(뼈)의 기초 감식을 위한 뼈대학 공부도 해야하고 발굴 중 드러나는 다양한 유품(총탄, 씨레이션, 전투화 등)들도 공부해야 하고, 나아가서 행정작업을 위한 워드, 포토샵도 해야하는데 하나 하나 배워가는 재미와 보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땅 파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삽질이란게 이렇게 어렵고 힘든 건 줄 처음 알았습니다) 물론 어리버리하고 행동이 느린 탓에, 많이 혼나면서 배우고 있지만 나중에 큰 자산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보람이 듭니다.

4. 사회에서는 다이어트 한답시고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초코파이, 초코바, 컵라면 등등... 군대 오니 왜 이렇게 맛있는걸까요? P.X 가서 내 돈 주고 초코파이 한 박스 사먹는 것도 난생 처음이고, 그 달디 단 초코파이가 먹어도 먹어도 안 질리는 것도 참 신기합니다.

5. <명량>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입대하기 전부터 기대하던 작품인데 개봉 직전에 입대해서 못 봤습니다. 훈련소에서 매일 읽던 국방일보에서도 만날 <명량> 흥행 타령이고, 자대 와서 TV 볼 때마다 그놈의 <명량> 얘기... 휴가/외박 나간 선임들도 모두 <명량> 보고 와서 <명량> 얘기.... 회식 때 삼겹살 구워먹는데 선임이 "백병전을 준비하라"고 하면서 삼겹살을 굽습니다. 빨리 휴가 나가서 보고 싶은데 휴가는 12월 ㅠㅠ

6. 편지봉투에 차(茶) 보내주신 박소영 누나 고맙습니다. 아침에 발굴 나가면서 편지 받고서 훈훈하게 하루 일과 시작했습니다. 근데 군대에선 잎차를 끓여마실 방도가 없네요. 그렇다고 고이 보내주신 귀한 차를 물병에 정수기 물 받아다 대충 마시고 싶지도 않고... 마실 방법을 고민 중인데, 어쩌면 휴가 나가서 마셔야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7. 우리나라 산이 이렇게 높은 줄 몰랐습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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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14년 9월 9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군대란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가치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곳 같다. 집에서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TV가 군 생활의 유일한 낙이 되어버렸고, 밖에 있을 땐 전화를 걸기는커녕 받는 것도 귀찮아했던 내가 이젠 지인들의 연락처를 수첩에 적어놓고 틈날 때마다 전화기 앞에 죽치고 앉아서 막 전화를 걸어댄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선임들의 배려로 사지방(사이버지식정보방)에 앉아있는 짧은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그리고 편지. 훈련소에 있을 때 편지를 받는 것만큼 반갑고 행복한 일이 또 없었다. 매일 분대장들이 인터넷 편지와 손편지를 불출해주는데 편지를 한 통이라도 받는 사람과 한 통도 못 받는 전우들의 표정은 극과 극이다. 혼자서 수십 통씩이나 편지를 받은 놈이 얄밉게 편지를 들고 다니며 뽐낼 때는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중대장님이 "군대 와서 인간관계가 정리된다"고 하셨는데, 전우들 사이에서 편지를 받고 안 받고가 그 기준이 되어버렸다. 밖에 있을 때 군대 간 친구, 동생들이 편지를 써달라고 할 때 귀찮아서 미루곤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안한 일이었다.

다행히 나는 그래도 아주 나쁜 놈은 아니었던지 몇몇 지인들이 인터넷 편지와 정성스러운 손편지를 보내주어 고마웠다. 특히 한 지인은 멋들어진 시(詩)까지 곁들인 편지로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때마침 완전군장을 메고 20km 야간행군을 하는 날이었는데, 행군 중 쉬는 시간에 읽으면서 큰 힘을 낼 수 있었다.

이번 연휴엔 짬을 내어 고마운 분들에게 손편지를 여러 통 썼다. 아마 그들이 편지를 받을 때쯤이면 나는 다시 철원에 있어 즉각 답장을 받지는 못하겠지만, 마음만큼은 서로 이어지리라 믿는다.

사실 다른 무엇보다 부모님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훈련소 식당에 "사실 군대에 있을 때 가장 효자가 된다"란 문구가 붙어 있었는데, 그 말이 가슴 절절하게 공감된다. 6주 간의 힘든 훈련 와중에도 부모님이 보고 싶어 울지는 않았는데, 수료식 날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주러 부모님이 오셨을 때, 보자마자 눈물이 팡 터졌다. 부끄럽지만 자대 와서 부모님께 전화드렸을 때도 그만 선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생활관에서 TV를 보는데 GOD의 '어머님께' 뮤비가 나와서 또 소리 없이 울었다. 지금 다짐처럼 될 진 모르겠지만, 정말 제대하면 부모님께 잘해드려야겠단 생각 뿐이다. 무엇보다 부모님께서 항상 건강하시기만을 기도한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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