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음.

 

처음엔 보기가 망설여졌던 영화

 

사실 처음 <귀향>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영화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서 이미 영화를 관람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는 마음이 생겼더랬다. 다루고 있는 문제가 문제인만큼,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마음이 매우 무거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명색이 한국독립운동사를 공부한다는 녀석이,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미 글러먹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내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다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생겼다. 부대에서 사지방을 통해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우연히 보게 된 기사 하나 때문이었다.

 

※ 기사 링크: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503978

 

영화 <귀향>의 제작 뿐만 아니라 극중에서 조선인 소녀들을 겁탈하는 일본군 역할까지 맡아 열연한 배우 임성철에 대한 인터뷰 기사였다. 그가 '백범 김구 선생'의 외종손이라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 읽기 시작한 기사였는데, 읽는 내내 가슴이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마치 '독립운동'하듯 자신의 재산을 다 쏟아부어 빚까지 져가며, 심지어 몸에 큰 병까지 걸려가면서... 한 마디로 모든 걸 내던져가면서까지 이 영화의 제작과 개봉에 힘썼던 그 한 사람의 인터뷰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사진: 백범 김구 선생의 외종손인 배우 임성철. 김구 선생과 똑 빼닮았다.

근데 이분의 일본군 연기는... 진짜 후덜덜 - 출처: 스타뉴스)

 

나 역시 내 나름대로의 소신과 사명을 갖고 살아간다고 자부해왔지만, 막상 이 사람의 인터뷰를 읽고보니 내가 가진 소신과 사명을 지키기 위해, 과연 나는 내 모든 걸 바칠 수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여하간 이 기사를 보고서,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많은 사람들의 눈물 어린 노력 때문에라도, 그리고 배우 임성철의 소신에 대한 감동 때문에라도,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휴가를 나오자마자 곧장 영화관에 달려가 이 영화를 관람하였다.

 

귀향의 진짜 의미

 

처음 영화가 시작될 때, 귀향(鬼鄕)이라는 제목을 보고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내가 생각했던 귀향이란 말그대로 귀(歸: 돌아올 귀), 향(鄕: 시골 향)으로 '집 또는 고향으로 돌아옴'의 의미였다. 일반적으로 사전에 실려있는 의미도 바로 이런 의미다. 그런데 스크린에 뜬 한자는 돌아올 귀가 아니라 鬼(귀신 귀)였다. 여기서부터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영화 <귀향>의 진짜 의미는 단순히 '집 또는 고향으로 돌아옴'이 아니라 '(귀신이 되어) 넋이 집 또는 고향으로 돌아옴'이란 뜻이었다. 그래서 귀신 귀자를 붙인 것이었다. 영문 제목도 'Spirits' Homecoming'이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진도씻김굿(죽은 자를 위한 우리나라 전통 굿)'과 같은 무속적인 요소도 등장하고, 무당이 영매가 되어 산 자와 죽은 자를 화해시켜주는 장면들도 등장한다. 처음에는 '왜 일본군 위안부 영화에 이런 장면이...?'라며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이런 의문이 풀린다.

 

 

(사진: 극중 진도씻김굿을 하는 장면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1943년 일제강점기 조선과 중국을 배경으로 하며,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되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에서는 그 소녀들이 겪어야 했던 성(性)적 학대와 폭행, 학살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보다 자세한 줄거리는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을 위해 생략한다. 궁금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영화관 가서 티켓 끊고 꼭 봤으면 좋겠다)

 

이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단순히 그 당시의 사건을 극화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 피해를 입었던 위안부 소녀가 노인이 된 시점도 계속 등장하여, 과거의 시점과 함께 서로 유기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는 데 있다. 그 과정에서 노인이 된 위안부 소녀가 죽을 때까지 품고 살 수밖에 없었던 트라우마와도 같은 기억을 제3의 인물(어린 무녀)을 통해 치유받는다는 색다른 설정도 이 영화의 볼거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현재진행형

 

또 현재의 우리에게 전하는 감독의 따끔한 메시지도 읽을 수 있다. 노인이 된 위안부 소녀가 위안부였음을 신고하려고 동사무소에 찾아갔을 때, 일본군 위안부들을 가리켜 "미치지 않고서야 쪽팔려서 그런 과거를 어떻게 드러내느냐"는 동사무소 남자직원의 말은,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관점이 과연 옳은 것인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또 영화 말미에 진도씻김굿을 하는 장면에서 위안부 소녀들을 겁탈하던 일본군 병사와 장교들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그 굿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은, 여전히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며, 그 당사자인 일본이 반성하지 않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진: 일본군에 끌려가는 조선의 소녀들 - 출처: 네이버 영화)

 

여하간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객석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참 많이 들렸다. 나 역시도 마지막에 울컥해 눈시울이 붉어지긴 했다. 영화의 주제가 주제인만큼 보고 나서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긴 하다. 그러나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해서 외면한다는 것도 참 우습고 부끄러운 일이다. 오히려 이 영화를 보면서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 자세한 리뷰를 읽으려면 아래 리뷰를 참고하길 바란다.

 

※ 리뷰기사 링크: http://www.entermedia.co.kr/news/news_view.html?idx=5251

 

PS.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 영화 보는 내내 일본군이 조선인 소녀들을 강제로 연행하고, 겁탈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일본군 병사의 옆구리에 찬 일본도를 뽑아 일본군인들을 죄다 베어버리고, 소녀들을 구출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100번은 한 것 같다.

 

 

 

Posted by 가베치

* 2편에서 이어집니다


이렇듯 기본기에 대한 관점이 바뀌니,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권법에 대한 시각도 차츰 바뀐다.


사실 지금까지 권법에 대한 내 생각은 그냥 몸풀이용에 불과했다. 어릴 적부터 중국무술에 심취해 각종 권법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알음알음 접해본 나로서는 중국의 상급 권법에 비해 기술의 가짓수도 적고, 그나마 있는 기술들도 표면적으로 봤을 때 효용성이 그닥 있어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무예24기의 권법 자체가 초창기 형태의 중국 권법을 가져온 것이라, 이미 여러 중국 권법을 본 내 눈엔 성이 안 찬듯 싶다. 사실 무예24기 중 권법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고, 무예24기를 수련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권법의 가치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사람을 많이 보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본기부터 다시 제대로 정립하자는 생각을 갖고, 권법에 접근하니 생각이 확 바뀐다. 생각해보면 기술이 적은 것은 그만큼 적은 기술을 더 많이 반복-숙달 수련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리고 태극권 역시 초창기 형태는 10가지도 채 안되는 초식들로 구성된 단순 권법이었으나, 후대에 갈수록 점점 동작들이 추가되어 오늘의 형태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기에, 어쩌면 초창기 형태의 권법이야말로 그 당시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용성 높은 동작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나는 권법에서 그나마 효용성 높다고 생각하는 동작들을 뽑아 단수 훈련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그냥 몸에 익을 때까지 계속 반복 연습하면서 동시에 앞에 가상의 적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것이다. 이 모양으로 한동안 계속 수련을 해오다가, 점차로 모든 권법의 동작들을 분석하고, 그 나름의 효용성을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이 싹 트기 시작했다.


그래서 권법 수련을 하면서 '과연 이 동작은 어디에 쓰일까' 고민을 하며 나름의 용법들을 생각해 노트에 필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런 동작들이 과연 실전에서 쓰일까 의문이었지만, 그동안 알음알음 배웠던 중국 권법의 기술들을 생각하니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용법을 만드는 데 큰 참고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수련을 하다보니 무예를 바라보는 시각 전체가 확 바뀐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전역하면 어떤 무술을 배울까', '어떤 무술이 가장 강할까' 고민하며, 배우고 싶은 무술들의 목록을 정리하고, 사지방(군 PC방)에서 여러 무술들을 검색해보았는데, 이제 그런 생각은 모두 헛된 망상이요, 부질 없는 욕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무예24기에서 가장 단순하다고 할 수 있는 '주먹지르기'조차 제대로 하질 못해 끙끙 앓는 놈이 뭘 더 배우겠다고 이 기술, 저 기술을 탐낸단 말인가. 무엇보다 무술에 하급 기술, 상급 기술이 어디 있단 말인가. 단순 기술도 내가 반복 숙달하여 실전에서 써먹으면 그게 나에겐 필살기이고 실전무예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굳어지면서 차츰 기본기를 수련하는 재미가 생기고, 권법의 용법을 분석하고 반복 수련하는 맛이 있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더 수련 내용을 강화하고 보충해 아래와 같이 수련하고 있다.


<현재 수련 커리큘럼>


- 주먹지르기

- 끄집어치기

- 발차기(앞차기/현각허이세/순란주세)

- 단수 훈련(탐마세-요란주세)

- 권법

- 죔죔이

- 무릎 들어올리기

- 팔굽혀펴기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련을 할 수 없다는 것. 혼자 가상으로 용법 연습을 해봐야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 하여 용법 연습에는 나와 공방을 주고 받을 상대방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상대방과 공방을 주고받으며 용법을 테스트해봐야, 내가 생각한 용법의 효용성을 검증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중에 전역하면 수련터에 가서 수련생들과 함께 내가 연구한 용법들을 함께 머리 맞대고 실험해보고 싶지만, 어리석은 초짜가 설치는 꼴은 아닐까 심히 두렵다.


요즘 다시 고민하는 부분은 '전역 후 어떻게 수련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기본기의 중요성을 깨닫고나니 그동안 수련해온 바가 '모래 위의 성'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부분은 차후 사부님과의 상담을 통해 답을 구할 생각이다.


<후기>


아무튼 엊그제부터 장마로 인해 수련을 못 하고 있어 몸이 매우 근지럽던 차에, 그동안 수련했던 바를 정리해 수련생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장문의 글을 3편으로 나누어 올려보았다.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보니 나의 무예관(武藝觀)은 군 입대 전/후로 나뉘지 싶다. 군 입대 전까지만 해도 강한 무술, 강한 기술에 대한 헛된 망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군 입대 후 꾸준한 기본기 수련 덕분에 헛된 욕심을 버리고, 무예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정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평생 수련할 무예를 찾은 느낌이다. 별로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어찌보면 군 입대 덕분에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어 고마운(?) 점도 없지 않아 있다.

Posted by 가베치

* 1편에서 이어집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수련을 할 차례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었다. 바로 '장비'가 없다는 것. 사실 무예24기 기예의 대부분은 병기술인데 병기를 구할 방도가 전혀 없질 않은가. 이건 뭐... 스키 타려고 스키장에 갔는데 스키가 없고, 볼링 치러 볼링장에 갔는데 볼링공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천만다행으로, 우리 선조들께서 무기가 없을 때 적과의 백병전에서 대항할 수 있도록 '권법'을 무예도보통지에 수록해주신 덕분에, 병기 없이도 수련할 수 있는 종목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24가지의 기예 중 그래도 검술이 제일 재밌고, 멋있다고 생각했기에(또 매우 어렵기에 꾸준히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검술 수련을 못 한다는 점이 너무 아쉬웠지만, 아쉬운대로 맨손무예나 열심히 수련하자는 생각으로 기본기부터 다시 시작했다. 처음 수련은 아래와 같이 지극히 간단한 기본기들로 시작했다.

<초기 수련 커리큘럼>

- 주먹지르기
- 끄집어치기
- 발차기
- 죔죔이
- 무릎 들어올리기
- 권법

그런데 기본기 수련을 며칠 꾸준히 하다보니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냥 뭐라도 수련을 해야겠다는 강박관념 내지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군대 있을 동안 기본기를 완벽하게 마스터하자"는 목표가 생긴 것이다. 이런 목표를 가지게 된 데에는 무예24기연구소장 최형국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느낀 바가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기본기가 필살기이고, 一法이 萬法이라는 문구에 느끼는 바가 컸다)

사실 밖에 있을 때는 각종 검법과 병기술(월도, 기창 등)을 수련하느라 맨손무예 기본기를 제대로 수련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짬이 없었다. 기본기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성도 못 느꼈고, 그냥 대충 횟수만 맞추자는 생각으로 100회씩만 하고 화려하고 멋진 검법 수련에 매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병기가 없는 지금, 온전히 기본기에만 충실해서 수련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기본기에 힘과 속도가 실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가장 단순하고 밋밋하다고 생각했던 동작들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가 지금 기본기를 제대로 하고 있긴 한 것인지 스스로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장 단순해서 별 거 없다고 생각한 주먹지르기조차 수련을 하면 할수록 떠오르는 의문으로 머릿 속이 복잡해졌다. (호흡부터 시작해서, 주먹을 지를 때 골반을 틀어줘야하나, 팔은 얼마나 뻗어야하나 등등) 그런 의문이 들 때마다 내가 제대로 된 수련을 하고 있긴 한 것인지 몰라서 수련의욕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수련터 카페를 통해 사부님께 답을 구했고, 내가 잘못된 방식으로 수련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마다 '왜 진작에 기본기 수련에 충실하지 않았을까'하며 가슴을 치게 된다.

- 3편에서 이어집니다.


Posted by 가베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