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일요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와 묘역이 위치한 김해 봉하마을에 다녀왔습니다. 평소부터 봉하마을은 꼭 한 번 다녀오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거리가 워낙 멀고 교통이 불편해 마음 먹고 가기가 쉽지가 않더군요. 그러다 이번에 출발 3일을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술집 '관악바보주막'에서 단체버스로 당일치기 방문을 한다기에 충동적으로 신청해서 다녀왔습니다.



봉하마을이 워낙 멀기에 하루 안에 다 보고 돌아오려면 새벽같이 출발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출발장소인 신림역으로 향했습니다. 동이 틀 무렵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벌써 점심 때더군요. 한반도가 넓다는 걸 새삼 또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봉하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대통령의 집'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서거 직전까지 머물렀던 집입니다. "이 집은 내가 살다가 언젠가는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할 집"이라는 유지에 따라 지난 5월 처음으로 민간에 개방됐습니다.



예전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집을 일컬어 '아방궁'이라는 표현을 써서 물의를 빚은 바 있지요. 당연히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대통령의 집인데 일반 주택보다는 호화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꼼꼼하게 둘러봤습니다. 


그러나 두 눈으로 직접 본 대통령의 집은 아방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방궁은커녕 우리 주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소박한 집 한 채만 있더군요. 다만 이 집엔 '철학'이 있다는 것이 여느 집과는 다른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집은 흙, 나무 등 자연재료를 이용해 설계됐다고 합니다. 또 주변 산세와 이어지면서 국민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기 위해 지붕을 낮고 평평하게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붕 낮은 집'으로도 불립니다.


방에서 다른 방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계속 밖으로 나오게끔 설계가 됐다고도 합니다. 이유인즉슨, 다른 전직 대통령들처럼 안에만 꽁꽁 틀어박혀 있지 말고 억지로라도 계속 밖에 나와서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걸 느끼며 자연과 더불어 살라는 건축가의 의도가 반영됐다는 것입니다.


손님을 맞이하던 사랑채에는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표어가 액자에 걸려있습니다. 그 아래 웬 낙서가 있길래 의아했는데, 손녀가 한 낙서라고 합니다. 뭔가 인간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서 뭉클했습니다. 



대통령 내외가 휴식을 취하던 안채(거실)를 지나면 서재가 나옵니다. 서재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그는 참모들과 함께 마을 생태계 복원과 민주주의 연구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서가에는 수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는데 총 919권이라고 합니다. 책상 위에는 그가 서거 직전까지 읽던 책들도 올려져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출판사 다니는 입장에서 우리 출판사 책이 있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없더군요. 아쉬워라...


노 전 대통령은 하루에 책을 5~6권씩 번갈아가며 읽는 스타일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매우 비슷한 스타일인데요, 그만큼 지적 욕구가 왕성했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퇴임 후 그가 남긴 육필 원고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는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그가 가진 지식의 원천이 모두 이 책들에서 비롯된 셈입니다.


책 읽고 생각하고 공부하는 대통령, 그런 대통령을 만나면 국민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지적 능력이 결여된 이를 지도자로 세우게 되면 나라와 국민이 얼마나 불행해지는지 우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뼈저리게 깨달은 바 있지요. 문재인 대통령도 '책 읽는 대통령'이라는 컨셉을 강조하던데, 앞으로도 책 읽는 사회 만들기에 적극 나서줬으면 좋겠습니다.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드디어 대통령의 묘역으로 향했습니다.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만 세워달라던" 유서 내용 그대로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은 역대 전직 대통령들 묘역 중에서도 매우 소박하게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이라 새겨진 작은 너럭바위 하나만이 이곳이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이 잠든 곳임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 아래 새겨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문구가 뭉클하더군요. 연신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게도 9년 전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2009년 5월 23일, 당시 고3이었던 저는 토요일이었음에도 모의고사를 보기 위해 등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뇌졸중', '노무현 전 대통령 음독' 등 노 전 대통령의 유고 소식이 확실치 않은 상태로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별 생각 없이 집을 나섰다가 하굣길에 노 전 대통령의 투신과 서거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더랬지요.


영결식이 있던 29일은 학교 전체가 울음바다였습니다. 어느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영결식 생중계를 틀면서 학생들과 함께 보다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고, 또 어떤 선생님은 "이게 나라냐"면서 교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때까지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던 저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요. 이래저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두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죠. 그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늘어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인 듯 합니다.


묘역 참배 후에는 봉화산에 올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발자취를 더듬기 위해 봉화산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굽어봤던 장소, 세상과 작별인사를 나누던 부엉이바위는 펜스와 철조망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몇몇 관람객들은 아쉬운 마음을 이기지 못했던지 펜스를 넘어 부엉이바위 근처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비록 펜스로 막혀 있었지만 부엉이바위는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가파른 낭떠러지 끝에 서서 바라본 이 세상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 참 가슴이 착잡해지더군요.



내일이면 벌써 그의 서거 9주기를 맞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도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하는 헛된 상상을 해보곤 합니다.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과연 무슨 말을 했을까요. 무너진 민주주의를 깨어있는 시민들이 조직된 힘(촛불)으로 바로 세우는 모습을 보고 못내 뿌듯해하지 않았을까요. 그의 친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 그가 못 다 이룬 꿈을 실천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모습을 보면서 "야! 기분 좋다!"고 외치지는 않았을까요.



노무현 대통령 서거 9주기를 맞아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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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친구들과 남한산성에 올랐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우리 국유단 동지들과 함께...)


그렇게 바글바글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등산객들이 꽤 되더군요.

날이 따뜻해서 등산하다보니 금세 등줄기가 후끈해집니다. 



그닥 가파른 산이 아니어서 그런지 딱히 힘들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름 만날 산 타는 게 일상이었던 유해발굴병 출신인데, 가오가 있지 이깟 산에 헥헥거렸으면 자존심 상할 뻔 했습니다. (예외도 있었지만...)


서문-> 수어장대 -> 북문 코스로 잡고 등산을 시작했는데 대략 40분 정도 오르니 서문에 도착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항복하러 나왔던 문이 바로 이곳 서문이라고 합니다.



서문에서 길 따라 쭉 올라가다보면 제일 높은 곳에 '수어장대'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오군영 중 하나였던 '수어청'의 지휘관이 병사들을 지휘했던 지휘소라고 합니다.

이제는 등산객들의 단골 포토존이 된 지 오랩니다.



저도 삼체식과 용형으로 인증샷을 남겼는데, 용형할 때 주변 등산객들이 깔깔거리고 웃는 통에... 쩝;

(그나저나 매번 인증샷이 마음에 안 듭니다. 어떻게 하면 멋지게 나올지 연구해봐야겠습니다)



내려올 땐 북문으로 내려왔는데, 여긴 조선군과 청나라군이 한 판 붙었던 '북문 전투(법화골 전투)'의 현장입니다. 조선군 300여명이 북문으로 나왔다가 매복해있던 청나라군에 의해 무참하게 패배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내려올 때는 배가 고파서 밥 먹을 생각 밖에 없었는데, 지금 이 포스팅을 하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기가 거기였습니다. 귀찮아서 사진도 안 찍었는데 이제서야 무릎을 치게 됩니다 -_-; 아무튼 영화 <남한산성>에서도 북문 전투가 묘사되는데 실제로 여기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북문을 지나 쭉 내려오면 식당가가 등장합니다. 

미리 사전 조사로 눈여겨봐둔 식당을 찾았습니다.



여기 '효종갱'이라는 메뉴가 유명하다고 하여 일단 2인분만 주문해봤습니다. 


효종갱은 조선시대에 양반들이 새벽까지 술 먹다가 아침에 배달해서 먹던 해장국이라고 합니다. (효종은 '새벽종'이란 뜻입니다. 새벽종이 울릴 때 먹던 해장국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양반들이 즐기던 해장국답게 전복, 소갈비, 해삼, 버섯 등 각종 진귀한 재료들이 들어갑니다. 가격도 1인분에 12,000원이나 합니다. 



먹어보니 북엇국 맛이 강하게 납니다. 솔직히 12,000원이나 주고 먹기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다 한 번 먹을 수는 있겠지만, 굳이 다음에 또 와서 찾아 먹을 맛은 아닙니다.


추가로 오리백숙 한 마리를 안주 삼아 동동주를 마시며 늦은 점심을 거하게 해결했습니다. 한참 먹고 마시면서 떠들다가 근처 한옥카페에서 커피를 먹고 해산했습니다. 



설 연휴 들어 너무 잘 먹고 마시며 다니다보니 슬슬 똥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용형을 빡세게 해줘야할 듯 합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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