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한창 커피에 푹 빠져 살았었는데요, 얼마 전부터 커피 대신 차(茶)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습니다. 사실 무예24기를 가르쳐주시던 사부님께서 보이차의 효능을 열심히 말씀하고 다니셔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실제로 수련 전후로 보이차를 직접 끓여주셔서 몇 번 얻어 마시다보니 저도 보이차에 대해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사부님 따라 차회도 가보고 보이차도 사서 마셔봤는데요, 제 성격이 원래 한 번 꽂히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입니다. 보이차도 마시다보니 '제대로 알고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더 맛과 향을 풍부하게 즐길 수 있을지, 어떤 차호로 우리는 것이 좋을지, 각 차의 특징은 뭔지... 아무래도 이론적인 부분에 있어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더군요.


때마침 '티쿱스토어'란 곳에서 제1기 발효차 교육을 실시한다는 광고를 냈더군요. 정규 차예사 과정은 50만원 정도 하는데 반해, 이번 교육은 단기 과정이라 6만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수강료로 차 이론을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귀가 번쩍 뜨일 수밖에요. 선착순 모집이라길래 하루 고민하고 바로 다음 날 수강신청을 했습니다. 사실 사부님은 "차라리 그 돈으로 차를 사먹으라"며 "차는 이론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우선 많이 마셔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지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결국 수강신청했습니다.




교육은 총 2주에 걸쳐 4강(매회 100분: 이론 60분+실기 40분)으로 구성됐는데요, 일주일에 두 번씩 가는 반이 있고 토요일에 몰아서 하는 강의가 있었습니다. 대신 토요반은 일주일에 두 번 할 것을 한 번에 몰아서 하기 때문에 강의시간도 한 번에 3시간으로 책정됐더군요. 장시간 수업을 들을 자신이 없긴 했지만, 토요일이 제일 프리하기도 하고 일주일에 두 번 가는 것보단 한 번 가는 게 편해서 토요반으로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14일 토요일, 첫 강이 열렸습니다. 강의는 창덕궁 앞에 위치한 '한국문화정품관'이란 곳에서 진행됐습니다. 오늘은 첫 날이라 발효차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차의 기원, 분류, 갈래, 쓰임)과 녹차&홍차에 대해 배웠습니다. 남자 차예사 한 분, 여자 차예사 한 분 이렇게 둘이서 강의를 진행하셨는데요, 남자 차예사 분께서 이론 설명을 하는 동안 여자 차예사 분은 끊임없이 차를 우려내주셨습니다. 



이론 설명을 듣다보니 다들 궁금한 것도 많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많아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난해하더군요. 커피도 어렵지만, 차란 것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단기 과정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사부님의 말씀이 슬슬 이해도 가더군요. 실제로 강의를 해주신 차예사 분들도 "우리는 어릴 적부터 주입식 교육을 많이 받아서 자꾸 교과서적인 접근을 한다"면서 "차는 일단 많이 마셔보는 게 중요하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도 나중엔 이론 설명을 그냥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듣듯 편하게 들으면서 우려주시는 차를 마시는 것에 더 집중했습니다.


처음엔 보이차로 워밍업을 하고 이어서 우롱차->녹차->홍차 순으로 차를 시음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다시 보이차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이 차를 마시는 순서도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차는 발효도가 낮은 순부터 높은 순으로 마셔야 한다고 해요. 그리고 향도 옅은 차에서 점점 진한 차로 가야한다고 하고요. 맨 마지막엔 보이차를 마시면서 기운을 정돈해줘야 몸이 힘들어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잘못 마시면 밤에 잠도 못자고 괴롭다고 하네요. 그런 설명을 들으니까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뭣보다 가장 인상 깊은 얘기는 차에 담긴 오행의 원리였습니다.


녹차: 木의 기운 / 뻗침의 성질 / 각성 효과 / 변비 해소 / 소화 작용 (위)

홍차: 火의 기운 / 올림의 성질 / 각성 효과

우롱차: 土의 기운 / 풀림의 성질 / 소화 작용 / 안정 효과

백차: 金의 기운 / 응축의 성질 / 집중 효과

보이차: 水의 기운 / 내림의 성질 / 소화 작용 (장) / 상성하허(上盛下虛)


이렇듯 차마다 그 안에 담긴 기운이 다 다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를 제대로 공부하게 되면 하나만 마시는 게 아니라 자신의 그날 몸 상태나 기분에 따라 맞는 차를 마실 수 있다고 합니다. 예컨대 위가 더부룩하면 녹차를 마시고, 스트레스를 받아 머리가 아프면 보이차를 마시면 된답니다. 중국인들은 더울 때 홍차를 마신다고 합니다. 홍차는 火의 기운이 있어 습한 여름에 마시면 몸의 습기를 건조시켜줘 더위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이열치열의 원리인 셈이죠.


현대인들에게 제일 필요한 차는 보이차가 아닐까 해요. 상성하허라는 말처럼, 현대인들은 머리 쓸 일도 많고 스트레스 받을 일도 많아서 기운이 자꾸 머리로 올라오는데 보이차를 마시면 이 기운을 아래로 내려준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몸의 복원력을 높여줘서 각종 병이 침투할 수 없는 튼튼한 면역체계를 세워주기도 하고요.


실제로 이론 설명을 들으면서 차를 마시니 몸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제대로 된 보이차를 마시면 허리와 등줄기가 훈훈해지면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런 반응이 느껴지더라고요. 친절한 차예사님들의 설명에 얹어 귀한 차들을 마시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강의를 들었습니다.



교육을 들으면서 심오한 차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집에서 개완이나 표일배로 간단하게 차를 우려마셔왔는데, 보이차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자사호'를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자사호는 중국 강소성 의흥의 서남부 지역에서만 나는 자사라는 독특한 광물질로 만든 차호입니다. 희소성에 더해 수공예 작품이라 작품성까지 더해져 가격이 만만찮은데요, 이날 제가 본 자사호들도 최저가격이 7만원부터 시작해서 비싸게는 800만원 짜리까지 있더군요. 7만원도 학생 신분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어차피 한 번 장만하면 평생 마실 수 있으니 큰 맘 먹고 질렀습니다. 


오늘 강의 내내 차를 우려내주신 이정수 차예사님께서 아주 친절하게 자사호 특징을 설명해주시면서 괜찮은 제품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자사호를 사고 나니 자꾸 다른 것들도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내친 김에 개완과 찻잔 그리고 자사호를 닦을 때 써야 한다는 차건(수건)까지 샀습니다. 무려 8만 5천원이 나왔네요. 서비스로 우롱차 티백을 받아왔습니다.



처음엔 사놓고서도 '괜히 산 거 아닐까' 조금 후회도 되고 그랬습니다. 아무래도 학생 신분에 7만원은 보통 큰 돈이 아니기 때문이죠. 차에 대해 관심 없는 일반인들은 "무슨 차 하나 마신다고 큰 돈 들이냐"고 이해를 못하기도 합니다. 저희 어머니도 혀를 차시더라고요. 그러나 막상 자사호로 보이차를 내려마시니 그 맛과 향이 정말 남다릅니다. 귀한 물건이니만큼 관리도 까다로워서, 혹여나 망가트릴까봐 조금 걱정은 됩니다만 어찌 됐건 지금 당장은 만족스러우니 잘 샀다고 생각하고 즐거운 차 생활하려고 합니다.


돌아오는 토요일이면 2강이 있는데요, 이날도 좋은 차를 마실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큽니다.


PS. 뜬금없지만 중국이란 나라는 참으로 위대하고 매력적인 나랍니다. 무술, 요리, 차 등등...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습니다. 저한테 중국은 너무 매력적인 나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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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차회(茶會)란 곳에 다녀왔습니다.


말그대로 차예관(찻집)에 모여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모임입니다. 정기적으로 존재하는 모임이 아니라, 그냥 지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가면 그게 차회고, 찻집 네트워크를 따라 초면의 사람들끼리 모여 차를 마시면 그게 또 차회가 되곤 합니다.


집에서 마시던 보이차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찻잎을 새로 사기 위해서라도 차관에 방문할 예정이었습니다. 마침 지인으로부터 "크리스마스 이브에 차회를 연다고 하니 같이 가보자"고 권유받아서, 함께 다녀왔습니다. 차회가 열린 장소는 보이차 전문점인 지유명차 청담점이었습니다.


지난 번에 갔던 인사점과는 달리 독립된 점포가 있어서 규모가 큰 편이었습니다. 보이차와 차구(茶具: 차를 내리는 도구)가 정말 비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가격들이 후덜덜하더군요. 눈에 탐나는 것만 보이면 가격 생각 않고 일단 지르고 보는 저조차도 수십 번씩 고민하게 만드는 가격들이었습니다. 보이차를 내려마시는 자사호(찻주전자)가 최소 7만원에서 비싸게는 120만원까지 있더군요. (물론 그보다 더 비싼 자사호도 얼마든지 많다고 합니다) 보이차 역시 '차테크'란 말이 존재할 정도로 가격대가 다양한 편이지요.



커피가 그랬듯이, 차를 내려 마시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도구 욕심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개완(중국식 찻잔)이나 표일배(간편하게 내려마시는 휴대용 도구)를 통해 차를 내려마십니다만, 정말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갖춰야 할 도구들이 꽤 많은 편입니다. 어차피 평생 마실 차라면 도구를 언젠가 갖추긴 해야할 터인데, 솔직히 아직까지는 차 구매를 소비 1순위로 맞추기엔 부담스럽습니다. 어떤 도구가 좋은지도 잘 모르는 터에 무작정 지르고 보기에 가격 데미지도 너무 큰 것 같고요. 


이날 차회에서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그쪽 점장님도 "일단은 도구 욕심 내지 말고 지금 있는 도구로 차만 열심히 마시라"고 조언을 해주시더군요. 이런 차회에 자주 와서 다양한 도구로 차를 내려마시다보면, 자연스레 경험으로 터득하게 된다고. 도구는 그때 가서 사도 괜찮다고 하네요. 아쉬운대로 일단 찻잎만 사왔습니다. '지유소타'라는 보이찻잎과 '매점'이라는 우롱찻잎을 데려왔습니다.



(가격대가 얼마로 보이시나요. 저 작은 자사호가 120만원, 파란색 개완이 40만원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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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코엑스(COEX)에서 '서울 카페쇼'란 행사를 개최합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커피박람회라고 합니다. 커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카페쇼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커피축제 참석하러 강릉도 다녀왔는데, 서울에서 열리는 행사에 제가 빠질 수가 없죠. 티켓값이 비싼 편인데, 다행히 사전등록을 한 덕분에 무료로 관람하고 올 수 있었습니다.


코엑스 자체가 워낙 규모가 커서요. 건물 도착해서도 전시장 찾아가는 데 한참을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출입증 발부받아 들어가니, 사람 정말 많더군요. 게다가 주말이었던 관계로 사람이 아주 바글바글... 당연히 부스마다 커피 무료 시음 행사도 하고 있었는데요, 워낙 사람이 많다보니 좀 인기 있는 부스들은 줄이 길어서 체념해야만 했습니다. 저처럼 성격이 급한 사람은 줄 서는 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죠.


알고 봤더니 1, 2, 3층을 통째로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더군요. 방대한 규모를 보니 왜 아시아 최대 규모라고 불리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저는 강릉에서 열리는 커피축제가 최대 규모인 줄 알았는데, 서울카페쇼에 와보니 비교도 안될 정도로 크더군요. 앞으로는 굳이 커피축제 즐기러 강릉까지 갈 필요도 없을 듯해요. 코앞에서 이렇게 대규모 행사를 하니.



아무튼 공짜커피나 좀 얻어마실 요량으로 가볍게 들렀는데... 막상 눈앞에 펼쳐진 커피용품들을 보니 또다시 지름신이 강림해버렸습니다. "전시회라서 반짝 할인하는 거다. 끝나면 이렇게 싸게 못 산다"는 호객행위에 그만 넘어갔습니다. 커피란 게 하나를 사면 둘을 사고 싶어지는 법입니다. 집에 있는 서버가 금이 간 관계로, 서버나 하나 살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드립퍼가 탐나서 하리오 드립퍼를 사고... 내려마실 커피 원두도 사야하고. 


그래도 원두는 정말 저렴하더군요. 브라질 커피원두를 100g에 1,000원에 판다고 하길래 처음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진짜 천 원이예요?", 


"네, 맞아요!" 


"아니... 왜 이렇게 싸요?"


전시회 막바지라서 떨이로 싸게 판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렴한 가격으로 커피 한 봉지도 구입해왔습니다. 아무튼 커피용품으로 두툼한 봉투를 들고오니 뿌듯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돈도 없는데 자꾸 충동구매 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는 게 후회스러웠던 거죠. 그러면서도 새로 산 하리오 드립퍼로 커피 내려볼 생각에 설레기도 하고. 그저 오래도록 잘 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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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사부님이 하도 보이차 예찬을 하셔서,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차회'란 모임에 따라가봤습니다. 말그대로 차 마시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차를 마시는 일종의 번개인 셈입니다. 장소는 늘 '지유명차'입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보이차를 정식으로 수입한 곳이라고 하는데, 사부님 말로는 국내에서 제일 믿을 수 있는 브랜드라고 합니다. 여기만 가면 적어도 가짜 보이차를 먹을 일은 절대 없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인사동에 있는 지유명차 인사점에 가서 점장님이 우려주시는 차를 1시간 정도 마셨습니다. 차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무슨 차를 1시간이나 마셔"라고 하겠지만, 보이차를 제대로 즐기는 사람들은 1시간 이상 차를 계속 마시더군요. 일단 차 자체가 계속 우러나기 때문에, 아까워서라도 한두 번 먹고 버릴 수가 없습니다. 제일 저렴한 '원미소타'라는 품종이 250g에 35,000원씩 하는데, 부자가 아닌 이상 한 번 먹고 버릴 사람은 없죠. 더욱이 계속 우러난다고 해서 맛과 향이나 효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기에 마니아들은 앉은 자리에서 수회 우려 마십니다.


저도 그래서 친구들 데리고 찻집 가서 저렇게 계속 차를 우려주면 "물배 차서 도저히 못 먹겠다"고 두 손, 두 발 드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여기 점장님 말로는 "차를 계속 마셔서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까지 계속 마셔야 한다"고 농담 삼아 말씀하시긴 하는데... 


아무튼 좋은 차를 마시면 정말 몸에서 반응이 오긴 합니다. 지금까지는 "굳이 차에 큰 돈 들일 필요 있나"하는 마음에, 가장 저렴한 '노동지 보이차'만 줄기차게 마셔대다가, 친구가 우려준 원미소타 한 잔에 금세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고는 생각이 확 바뀌었습니다. 


저렴한 보이차는 아무리 마셔도 몸에서 반응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보이차는 마시면 땀이 나는 등 신체적인 반응이 나타나더라고요. 저야 이런 단편적인 증상만 느껴봤을 뿐인데, 오늘 차회 참석한 분들 얘기를 들어보니 "매일 꾸준히 마시면 얼굴에 뾰루지가 나타나는데, 몸의 독소가 빠져나오기 시작한다는 증거"라고도 하고 "척추를 따라 열기가 느껴지기도 한다"고 하네요. 단, 매일 꾸준히 마셨을 경우라고 합니다.


아무튼 원고료도 이제 들어올 예정이고, 다른 것도 아니고 내 몸 생각해서 마시는 차인데 돈 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원미소타 한 봉지 들여왔습니다. 이게 그래도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한다고 합니다. 더 좋은 차를 마시기 위해서라도 돈부터 벌고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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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추석 연휴를 앞두고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바로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 '루소랩'의 엄소윤 바리스타님이 보내주신 문자였습니다. 추석 잘 쇠라는 말과 함께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그리우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보내주셨더군요. 얼핏 보면 직원과 고객이 주고받는 형식적인 문자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생각지 못한 문자에 은근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리스타님과 저는 딱 한 번 만난 사이였거든요. 삼청점에서 열리는 '브루잉 마스터 클래스' 초급 강좌 때 만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이렇게 연휴를 앞두고 안부 문자까지 보내주시니까 그게 그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더군요.



사실 루소랩 삼청점에 대해서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커피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여기저기 카페를 다니며 귀 동냥, 눈 동냥으로 커피 공부를 해왔는데요, 이곳 삼청점만큼 친절하고 자세하게 가르쳐주는 곳도 없더군요. 심지어 제가 제 돈 내고 수강했던 홈바리스타 강좌에서조차 꼬치꼬치 물어보면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냐"면서 강사 선생님이 질문을 자르기 일쑤였죠. 


하지만 루소랩은 달랐습니다. 무료 강좌든 유료 강좌든, 바리스타님들이 모두 친절하시더군요. 초급 클래스를 맡아주신 엄소윤 바리스타님부터, 중급 클래스를 맡아주셨던 박신영 바리스타님까지. 삼청점의 많은 바리스타님들 중에서 단 두 분의 강의만을 들었을 뿐입니다만, 두 분의 친절함과 세심한 배려에 매번 훈훈한 마음으로 카페 문을 나서곤 했습니다.



(사진: 브루잉 마스터 클래스 초급 강좌 당시 드립 시범을 보여주시는 엄소윤 바리스타님)


오늘도 딱히 삼청동에 갈 일은 없었지만, 마침 집에 있는 원두도 다 떨어졌겠다, 바리스타님께 특별히 답례도 드릴 겸 루소랩 삼청점을 찾았습니다. 마침 카페 입구에서 무료 시음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중급 클래스를 담당해주셨던 박신영 바리스타님께서 환한 미소로 반겨주시더군요. 바리스타님은 "지난 번 중급 클래스 때 시간이 부족해 미처 설명을 못한 부분이 있었다"면서 제 이메일로 보충자료를 보내주겠다고 먼저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아... 정말 세심한 배려에 감동이.. 어떻게 여긴 갈 때마다 감동을 안겨주시는 건지.. 이래서 제가 삼청점을 안 찾을 수가 없네요.



(사진: 브루잉 마스터 클래스 중급 강좌 당시 박신영 바리스타님과 함께)


카페에 들어가서 엄소윤 바리스타님과도 인사를 나눴습니다. 오랜만에 뵈니까 무척 반갑더라고요. 바리스타님도 예의 그 환한 미소로 반겨주시고. 


일단 원두부터 구입했습니다. 바리스타님 추천으로 이번에는 '케냐 AA TOP' 원두를 구입했습니다. 처음엔 케냐 AA만 봤는데, 집에 와서 다시 보니까 'TOP'가 붙어있네요. 케냐 AA와 TOP의 차이점이 뭔지 잘 몰라서 검색해봤는데, TOP는 케냐 AA 중에서도 최상품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혹시 틀렸다면 지적 바랍니다) 



지난 번에 마신 '브라질 몬테 알레그레'는 그닥 제 입맛엔 아니었던 것 같고요, 케냐 AA는 몇 번 마셔봤는데 제 입맛에 잘 맞더라고요. 어차피 루소랩에서 파는 싱글 오리진 원두를 하나씩 다 맛보는 게 목표라서 언제고 하나씩 다 사볼 거긴 하지만요. 그리고 여기는 싱글 오리진 원두를 구매하면 이렇게 '원두 카드'를 제공합니다. 해당 원두의 특징과 최적의 맛을 내는 레시피를 설명하고 있는데요, 이 카드를 모으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 카드를 종류별로 다 모아보려고 합니다.



공들여 삼청점까지 발걸음 했는데, 바리스타님이 내려주시는 커피도 한 잔 맛보고 가야겠죠? 이번엔 '인도 크리쉬나 기리'라는 커피를 주문해봤습니다. 커피 공부를 시작한 뒤로는, 항상 새로운 커피를 맛보는 게 취미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번에 마신 커피도 처음 마셔보는 건데, 산미가 아주 뚜렷하더군요.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긴 한데 저는 괜찮게 마셨습니다. 


특히 여기는 바리스타님이 손님이 보는 앞에서 직접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주는 게 인상적입니다. 2층 브루잉바로 따라 올라가면, 바리스타님이 손님의 기호에 맞게 커피를 내려주시는데요. 오늘 제가 마신 커피는 '클레버'라는 기구를 이용해 추출한 커피였습니다. 


클레버는 브루잉 마스터 클래스 때 잠깐 본 적이 있지만, 특별한 드립법을 적용할 필요 없이 그냥 원두에 물을 부어 3분 정도 우려냈다가 한꺼번에 뽑아내는 커피입니다. 찻잎을 우렸다가 한 번에 쫙 뽑아내는 표일배와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커피에 대해 잘 모르는 초보자도 간편하게 추출할 수 있어서 많이들 애용한다고 하네요. 손이 많이 가는 일반적인 드립에 비해 너무 간편한 것 같아서 "그럼 맛도 좀 덜하지 않나요?"라고 여쭤봤는데, 또 그렇지는 않다고 하네요.


아무튼 바리스타님과 이런 저런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바리스타님도 능숙한 손놀림으로 이쁜 유리잔에 커피를 담아주셨네요. 바리스타님도 바쁘셔서 오래 대화하지는 못했지만, 커피 한 잔 마시는 동안 마음까지도 따뜻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카페 문을 나서는데, 엄소윤 바리스타님이 입구까지 마중 나오시더라고요. 지금까지 수많은 카페를 다녀봤지만, 이렇듯 세심하게 손님을 배려해준 카페는 이곳 루소랩 삼청점이 유일했습니다. 엄소윤, 박신영 두 바리스타님들 외에 다른 바리스타님들은 겪어보지 못했지만, 이렇듯 좋은 바리스타님들과 함께 일하는 분들이니 모두 좋은 분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25일 열릴 고급 클래스도 무척 기대 중입니다!



아무튼 커피 공부를 시작한 이후, 수많은 카페를 다녀봤어도 아직까지 '단골 카페'라고 할 만한 곳은 없었는데요, 아무래도 이곳 루소랩 삼청점이 제 첫 번째 단골 카페가 될 것 같습니다. 삼청동에 딱히 갈 일도 없고, 거리도 가까운 편은 아니지만... 마음이 울적하고 공허한 날이면, 왠지 이곳부터 먼저 찾게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커피 값이 저렴한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내려주는 커피 한 잔에는 바리스타님의 따뜻한 배려와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져 나옵니다. 그래서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드네요. 그저 잠을 깨기 위해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아니라,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워주는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셔보고 싶다면 이곳 루소랩 삼청점에 가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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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수강했던 '브루잉 마스터 클래스' 초급 과정에 이어 '중급' 강의를 수강했습니다. 이번에도 루소랩 삼청점에서 열리는 강의에 참석했고요, 지난 번 클래스에서 수업을 진행해주신 분과 다른 박신영 바리스타라는 분께서 수업을 맡아주셨습니다. 사실 지난 주 일요일에 수업이 있었는데, 귀차니즘에 빠지는 바람에 일주일이 지난 지금에서야 후기를 올립니다. 사실 후기 게재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지만, 제 스스로 정리하는 차원에서 가급적 늦게라도 꼭 올리자는 주의입니다.


처음에 수업을 시작하는데, 바리스타님께서 "오늘은 1:1로 수업을 하게 될 것 같다"고 하셔서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수업을 신청한 사람이 저 혼자밖에 없다는 사실. 띠로리. 바리스타님과 단 둘이 수업을 진행해야해서 약간의 부담(혹은 긴장)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1:1이라서 흔치 않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업을 시작했는데..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뒤늦게 수업을 신청하신 분이 헐레벌떡 들어오셨더라고요. 그래서 2명이서 수업을 받았는데, 1:1처럼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소수라서 수업하기 딱 좋았던 것 같습니다. 더욱이 지난 번 초급 클래스와 마찬가지로 그분도 커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고, 붙임성도 좋으셔서 셋이서 이래저래 떠들며 즐겁게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다양한 변수에 따라 커피의 맛이 변한다?


초급 클래스에서는 기본적인 핸드드립과 푸어 오버라는 방식에 대해 배웠는데요, 중급 클래스에서는 '다양한 변수에 따른 맛의 변화'라는 주제로 수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즉, 커피 원두의 양과 굵기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커피의 맛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일일이 비교 분석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평소 해보고 싶었던 실험인데, 이런 시도를 하기에는 커피 원두의 가격이 비싸서 엄두를 못 내고 있던 차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수업을 통해 아낌없이 커피를 내릴 수 있어서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Tip] 6가지 브루잉 필수요소


1. 추출비율


: 분쇄된 커피 양과 추출된 커피 양의 비율 / TDS(커피성분의 총량=농도), 추출수율(원두 몇 그람을 가지고 얼마나 뽑았는가)


2. 분쇄도


: 가는 굵기 (에스프레소, 터키식 커피) / 중간 굵기 (핸드드립, 커피메이커) / 굵은 굵기 (프렌치 프레스)


3. 추출방식


: 침지법 (달임법, 우림법) / 여과법 (핸드드립, 콜드브루) / 가압추출법 (에스프레소, 모카포트)


4. 3T 


: 온도 (Temperature) / 시간 (Time) / 난류 (Turbulence: 커피입자와 물의 마찰)


5. 물의 품질


: 물 고유의 성분이 적어야 커피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음


6. 필터


: 종이 (저렴하고 깔끔하며 커피기름 걸러냄)  / 융 (커피기름이 그대로 투과되어 바디감이 좋지만 관리가 힘듦) / 스테인레스 (커피기름이 그대로 투과되어 바디감이 매우 좋음. 묵직하고 진하지만 미분이 많이 나와 텁텁할 수 있음)


브루잉의 변수를 좌우하는 6가지 요소에 대해서도 알아봤습니다. 위의 표로 정리한 바와 같이 작은 변수 하나라도 어긋나면 커피 맛이 확 달라진다고 합니다. 커피에 정답은 없다지만, 고객을 상대하는 카페 입장에서는 바리스타마다 내리는 커피 맛이 다를 경우 고객 입장에서 "어, 이게 뭐지?" 싶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카페마다 최적의 브루잉 조건을 맞춰놓고 내린다고 하는군요. 다만 손님이 개별적으로 자신의 기호에 따라 요구하게 될 경우에는 바리스타의 재량으로 커피를 내리게 되지요. 손님의 기호에 따라 커피를 다양하게 내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커피의 변수에 따른 맛의 변화는 바리스타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지식입니다.



아무튼 저희는 '추출 변수'를 실습해봤는데요, 투입량(물과 커피의 비율)과 분쇄도(커피 분쇄 입자 크기), 물온도(물의 온도에 따른 차이) 세 가지 변수에 따른 커피 맛의 차이를 느껴보기로 했습니다. 강사님하고 저하고 다른 수강생 한 분하고 각자 다른 굵기의 원두, 다른 물 온도, 다른 양의 원두로 실험을 해서 맛을 봤는데 뭐가 더 맛있고 맛없고는 개인의 기호지만 맛이 확연히 다른 건 느껴졌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원두의 양이 많을 경우에는 당연히 진하게 내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진한 커피가 좋은 사람은 물의 양을 적게 하면 되고, 연하게 마시고 싶으면 물의 양을 늘리면 됩니다. 그리고 원두의 분쇄도 역시 중요한데요, 아주 굵은 굵기의 원두일수록 물이 투과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농도가 옅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진하게 먹고 싶다면 원두의 굵기를 가늘게 하거나, 드립의 물줄기를 얇게 해서 천천히 부으면 됩니다. 가는 굵기의 원두로 연하게 먹고 싶다면, 반대로 물을 빠르게 많이 부으면 되겠지요.



물의 온도 역시 커피 맛의 변수 중 하나입니다. 저는 물의 온도가 매우 낮은 미지근한 물로 드립을 해봤는데, 뜸들이기 자체가 안되더라고요. 보통 커피 뜸을 들일 때는 퐁퐁 터지면서 가스가 빠지는데, 미지근한 물로 뜸을 들이니 그냥 원두가루가 가랑비에 마른 흙 젖듯하고 말더라고요. 맛 역시 연하고요. 커피를 내리는데는 90~94도의 온도가 제일 적당하다고 하는데, 이건 진리인 듯 합니다. 미지근한 물로 내린 커피는 일단 식어서 뭔가 먹다 남은 아메리카노 마시는 느낌입니다. 첫 맛이고 끝 맛이고 좋지가 않더라고요.


오늘 강의도 매우 즐거웠습니다. 지난 번 초급 클래스의 엄소윤 바리스타님과 마찬가지로 박신영 바리스타님도 성격이 매우 좋더라고요. 수업 끝나고 같이 사진 찍자고 하니 빼지도 않으시고, 수업 진행도 재밌게 잘 해주시고... 알고 보니 루소랩 삼청점의 고유 메뉴인 '더치 드래프트'라는 커피도 직접 개발하셨다고 하는데, 실력파 바리스타이신 듯 합니다. 



점점 루소랩이라는 카페에 호감과 애정이 가는군요. 삼청동에 갈 일만 잦으면 자주 들렀을텐데, 그쪽으로 갈 일이 없어서 일부러 가지 않는 이상 들르기가 힘든 게 아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고급 클래스는 또 다른 강사 분이 맡아서 하신다고 하는데, 앞선 두 분이 너무 잘해주셔서 기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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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문화원에서 열심히 배우던 홈바리스타 강좌가 끝나고, 한동안 제 커피공부도 좀 시들해졌던 게 사실입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려고 문제집도 구매했지만, 제 체질이 오래 앉아서 뭔가를 공부하는 스타일이 원체 못돼서요. 더욱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다고 커피를 마스터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궁극적으로 걷고자 하는 노선과도 거리가 좀 있어보였습니다. 뭐 따두면 좋기야 하겠지만, 지금은 바리스타 자격증보다는 차라리 '핸드드립' 하나에만 집중해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지인 따라 들어갔던 루소랩이라는 카페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커피 클래스'를 운영한다는 소식을 접했더랬습니다. 커피의 맛을 평가하는 커핑 클래스부터 기본적인 커피 추출법을 익히는 브루잉 클래스 그리고 기타 다양한 강좌가 꽤 많더군요. 게다가 매우 저렴했습니다. 지난 번에 들었던 와인 클래스의 경우는 수강료가 1만원이었는데, 와인과 커피까지 제공되었으니 온전히 재료비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었고요. 며칠 전에 들었던 커핑 클래스나 어제 들었던 브루잉 클래스는 아예 무료강좌였습니다.



(사진: 몇 주전에 루소랩 정동점에서 수강했던 '커피와 와인' 클래스 당시)


알고보니 루소랩은 생두를 수입하는 대형 기업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카페라고 합니다. 서울 주요 도심 곳곳에 지점이 있고요, 저는 비교적 가까운 정동점과 삼청점을 자주 가는 편입니다. 지난 번 와인 클래스는 정동점에서 수강했고, 이번 주에 열렸던 커핑 클래스와 브루잉 클래스는 모두 삼청점에서 수강했어요. 이곳 카페의 존재를 알게 된 후로는 집에서 내려마시는 커피 원두도 가급적 여기서 구매합니다. 블렌딩하지 않은 '싱글 오리진' 커피들을 산지별로 구비해놓고 팔고 있어요. 할리스와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도 모두 이곳 루소랩으로부터 원두를 제공받는다고 하니, 원두는 이곳에서 구매해도 믿을 만하지 싶습니다.


루소랩 삼청점에 가다


아무튼 어제는 브루잉 초급 클래스가 삼청점에서 열려서 다녀왔습니다. 참고로 브루잉이란 커피를 내리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크지 않은 3층 카페인데, 삼청동 자체가 참 아담한데 건물도 아담하게 잘 자리잡았더라고요. 카페 1층에는 커핑 클래스를 위한 세미나실이 있고, 2층에는 브루잉바가 있습니다.



(사진: 루소랩 삼청점의 야경)


어제 수업은 이곳 삼청점의 엄소윤 바리스타님께서 맡아주셨는데요, 전 평소 집에서 칼리타(구멍이 세 개 뚫린 드리퍼를 의미함)를 이용해 드립커피를 마시지만, 어제는 하리오(구멍이 한 개 뚫린 드리퍼)를 이용해 드립을 해봤습니다. 늘 쓰던 도구가 아니었던지라 낯설긴 했지만, 재밌었습니다. 기존에 알고 있던 핸드드립 방식(나선형으로 돌려가며 물을 붓는 방식)과 달리 '푸어 오버(Pour Over)'라는 방식도 배웠습니다. 


바리스타님 설명에 따르면 일본과 같은 나라에서는 물줄기를 천천히 붓거나, 점드립으로 점점이 찍어서 붓는 핸드드립 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그건 일본의 전통적인 다도 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반면에 미국과 같은 서구권 국가에서는 푸어 오버라는 방식으로 핸드드립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푸어 오버는 정말 규칙 없이 그냥 리드미컬하게 물을 붓는 방식입니다. 약간 리듬을 타면서 콧노래 흥얼거리며 기분 따라 물을 붓는 방식인데, 오로지 자신의 리듬에 맞춰서 붓는 방식이라 부담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기존의 드립방식에 너무 얽매여있던 터라, 푸어오버를 하면서도 의구심이 계속 들더라고요.



(사진: 하리오 드리퍼로 내리는 드립커피)


친절한 바리스타님 덕분에 즐거웠던 시간


평소에 핸드드립을 하면서 궁금했던 점들도 질문하고, 몰랐던 것도 새로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바리스타님하고 대화하면서 가볍게 커피 한 잔 하는 시간에 더 가까웠던 것 같아요. 그만큼 부담도 없고 격식도 없었습니다. 소규모 인원으로 수업을 들었는데, 함께 수강한 세 분들도 모두 좋았고요. 전 개인적으로 바리스타님 성격이 너무 좋더라고요. 공짜로 수업 듣는 주제에 이거 저거 질문하면 귀찮을 법도 한데, 그런 내색 없이 정말 친절하게 설명해주시고, 먼저 분위기를 주도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분위기를 편안하게 이끌어주신 다음에 커피를 내려주시니까, 항상 마시는 커피였어도 어제 마신 커피는 유난히 향긋했습니다.



(사진: 드립 시범을 보여주시는 엄소윤 바리스타님)


커피에 정답은 없다


개인적으로 커피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자꾸만 원칙과 정답을 찾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했는데요. 바리스타님이 "커피에는 정답이 없다"면서 너무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지도 말고, 정답을 찾으려고도 하지 말라고 강조하시더군요. 


그 말에 마음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정말 유명한 전문가가 내려주는 커피도 내 입맛에 별로면 별로인 거다"라는 말도 공감했습니다. 정말로 커피엔 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 어제 수업을 들은 사람들과 다함께 각자가 내린 커피 맛을 공유했는데, 전부 맛이 제각각이었어요. 그렇지만 어떤 건 맛있고, 어떤 건 맛없다고 단정할 순 없었어요. 제각기 그 사람의 개성과 정성이 담긴 커피였으니까요.


그렇지만 커피에 정답은 없어도, 커피 맛을 구분할 정도는 되어야 전문가라고 할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 필터(여과지)에 물을 적시는 린싱 작업의 필요유무를 잘 모르고 있던 차였습니다. 어떤 곳에선 안 하기도 하고, 어떤 곳에선 하기도 하고... 솔직히 종이필터의 맛을 알아챈다는 것도 신기할 노릇이었죠. 


그런데 바리스타님 말씀이 "나도 미각이 둔감한 편이어서 처음엔 몰랐다. 그 종이필터맛을 구분해보기 위해 일부러 린싱한 물만 마셔보기도 했다"고 하시네요. 또 커피공부를 한창 하던 때에는 하루에 에스프레소를 20잔 가까이 마시고 저녁에 토하기도 하셨다고... 


확실히 대가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의 대가가 되려면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듯 커피 좀 내린다고 하는 바리스타들도, 그 위치에 서기까지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을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커피 좋아한다고 하는 저도 노력이 부족하구나 스스로 채찍질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진: 푸어오버로 내린 커피)


아무튼 어제는 모처럼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던 시간이었습니다. 교훈도 많이 얻었고요. 다시 한 번 어제 강의를 해주신 엄소윤 바리스타님과 이런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는 루소랩 측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다음 중급 클래스도 꼭 들어야겠어요. 


PS.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던 커피 이야기도 밑천이 다 떨어졌네요. 몇 편 더 쓸 요량이었는데... 루소랩에서 수강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좀 더 추가해볼까도 고민이 되네요. 아무튼 이 글을 쓰다보니 또 향긋한 커피 한 잔이 그리워지는군요. 얼른 가서 드립 커피 한 잔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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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7호선 남성역과 총신대학교 근방에 위치한 작은 카페 '달의 둥지'입니다.


얼마 전에 지인과 남성역 근처에서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근처에 괜찮은 카페가 있나 인터넷 서핑으로 알아보다가 찾게 된 카페입니다. 괜찮다고 해서 가봤는데, 일반 프렌차이즈 카페와는 달리 전문 바리스타들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라서 믿을 만한 것 같습니다. 트로피 같은 게 있는 걸 보니, 이곳을 운영하는 바리스타들의 내공이 만만찮은 것 같습니다. 총신대 학생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많이 났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굉장히 작은 카페입니다.


메뉴를 봐도 좀 더 다양하고 색다른 맛을 연구한 바리스타들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이곳의 커피 맛이 제 입맛에 꼭 맞는다고는 할 수 없고, 아직 커피 맛을 비교할 정도의 내공도 없지만 영혼 없는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보다는 훨씬 정겨운 느낌이라 자주 찾게 될 것 같습니다. 지갑에 여유가 좀 있으면 자주 가서 다양한 커피를 맛보고 싶은데, 늘 적자라 참 힘드네요. 커피가 대중음료라고는 해도, 저같은 백수들에겐 여전히 '사치품'인 듯 합니다.



후임들 면회 가서 직접 커피 내려줄 요량으로, 이곳에서 가장 저렴한 원두 한 봉 샀습니다. 100g에 6,000원이니 엄청 저렴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이렇게 소량으로 파는 곳이 많지 않기에 만족합니다. 보통 대형 프렌차이즈들은 원두를 팔아도 250g 기준으로만 팔아서... 게다가 스타벅스에서 취급하는 원두는 언제 로스팅했는지 날짜도 표기가 안 되어있더군요. 여기는 언제 로스팅했는지 날짜까지 표기해줘서 만족스럽습니다. 


원두에 기름기가 별로 돌지 않고, 색깔도 연한 갈색에 가까운 것을 보니 로스팅의 강도는 중간 정도인 듯 합니다. 오렌지향+카라멜향+묵직한 달콤함이 특징이라고 하는데, 사실 제 커피를 감별하는 능력이 그 정도 맛까지 캐치할 정도는 못되나 봅니다. 신 맛은 느껴지는데, 카라멜향이나 묵직한 달콤함은 그닥...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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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2주 동안 쉼 없이 달려왔던 동작문화학교 홈바리스타 강좌가 끝났다. 취미반이긴 했지만 커피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조차 없었던 나로서는 충분히 유익한 강좌였고, 그래서인지 강좌를 끝까지 들었다는 뿌듯함보다는 아쉬움이 크다. 매주 화요일만 되면 커피 강의를 들으러 갈 생각에 설레곤 했는데... 강의 끝나고 받아오는 원두로 아침마다 드립 커피를 내려마시는 재미도 여간 쏠쏠한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당분간 그런 재미를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섭섭하다.


12주 강좌의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 강의는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커피공방 멜란지'에서 이루어졌다. 지난 번 수업에 이어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카페라떼'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일단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지난 번에 배운 것을 복습하는 차원에서 에스프레소를 뽑았더니, 강사 선생님이 달달한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를 만들어주셨다. 일주일 동안 복습하지 않아 까먹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막상 혼자서 해보니까, 과정이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그래서 두 잔의 에스프레소를 뽑아낼 수 있었다.



카페라떼를 만들다


카페라떼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에스프레소를 추출해야 했는데, 에스프레소 전용잔이 아니라 '라떼잔'이라고 하여 별도의 커피잔에 에스프레소를 받아냈다. 에스프레소 추출이 완료되면 스팀 피처(커피 포트와 비슷하게 생긴 물통)에 코선까지 우유를 따른다. 그리고 에스프레소 머신에 달린 스팀 파이프를 이용해 우유를 데워야 하는데, 이때 스팀 파이프에서 스팀이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해야 한다. 매우 뜨거우므로 행주로 입구를 가리고 스팀을 빼는데, 이 과정에서 실수로 파이프를 맨손으로 잡았다가 '앗 뜨거!'를 내뱉고 말았다. 스팀 파이프를 다룰 때는 절대 맨손으로 파이프를 잡아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스팀 파이프에서 스팀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스팀 피처에 파이프를 살짝 꽂아 스팀을 빼준다. 이때 손바닥을 피처에 대고서 적당한 온도까지 데워지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너무 뜨거워지기 전에 스팀 파이프 작동을 멈추고, 파이프를 행주로 닦아주어야 한다. (닦지 않으면 우유 찌꺼기가 파이프 안에 남아 위생적으로도 안 좋고, 우유가 굳어 스팀의 기압이 낮아질 우려가 높다고 함)


우유를 데운 뒤에는 피처를 테이블 위에 '땅땅' 치면서 옆으로 계속 흔들어 거품을 내준다. (스티핑) 그리고 다른 피처에 나누어 담은 다음(3분의 1까지만 담으라고 함), 에스프레소 잔에 부으면 되는데 (푸어링) 이때도 요령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깊이 붓다가, 피처를 들어올리며 점점 물줄기를 약하게 부어야 한다. 잔이 거의 가득 찰 정도가 되면, 우유를 붓는 줄기를 조절하면서 커피 표면에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이를 '라떼아트'라고 한다. 


손재주가 별로 없는 나로서는 한두 번 수업으로 아트를 해낼 수 없었다. 강사 선생님이 옆에서 붙잡고 도와주는데도 쉽지 않았다. 결국 이상한 그림이 나왔는데, 보조하던 강사 선생님이 "한 번 살려보자"며 얇은 바늘 같은 것을 가져와 커피 표면의 거품을 이리저리 건드리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포켓몬 캐릭터인 '라이츄'가 탄생했다. 내가 부은 거품의 모양이 라이츄 꼬리와 같은 모양이었던 데서 착안해 급조한 것이었다. 설사 망친 작품일지라도 이렇게 되살려낼 수 있다니... 역시 바리스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사진: 위의 왼쪽 잔이 내가 만든 초기 아트, 아래 왼쪽 잔은 강사 선생님이 '보정'해준 라이츄 아트... 오른쪽 잔은 강사 선생님이 만든 아트다)


커피 공부에 대한 고민


강의가 끝나고, 아쉬워하는 수강생들에게 강사 선생님은 자격증반이나 중급반처럼 커피 공부를 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소개해주셨다. 동작구 관내 다른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중급반 클래스에 들어갈 수도 있고, 동작문화학교 수강생들 중에서 커피를 더 배우고 싶은 사람들만 따로 모아서 별도의 클래스를 개설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같은 경우는 자격증반 수강을 원했는데, 자격증반과 중급반의 수업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중급반은 기초반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로스팅하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는데, 자격증반은 말그대로 자격증을 따기 위한 필기&실기 준비반이란다. 실제로 자격증을 딴다고 해서 커피에 대해 모든 것을 마스터하는 것도 아니고, 자격증 실기테스트의 내용도 에스프레소를 얼마나 빨리 깔끔하게 뽑아내느냐, 라떼아트를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하느냐가 중점이 되는 것 같아 고민을 하게 된다. 이런 내용들보다는 보다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격증을 빨리 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어차피 나는 커피 그 자체가 좋아서 이 강좌를 듣게 된 것이고, 평생 커피 공부를 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격증이야 언제든 따도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일단 중급반 수강을 희망한다고 신청하긴 했다. 나까지 총 3명이서 수강희망의사를 밝혔는데, 수업 내용과 비용은 추후 문자로 공지해준다고. 


강사 선생님은 "자격증을 따고 싶으면 우선 필기시험만 혼자 독학으로 따고, 실기 수업만 듣는 것을 추천한다"고 조언해주셨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필기시험을 먼저 합격해야 실기 응시 자격이 주어지는데, 필기시험은 혼자 문제집 풀면서 독학해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래서 며칠 전에 '바리스타 2급 시험 기본서'를 구매하긴 했다.


배우면 배울수록 막연한 커피의 세계


여하간 커피의 세계는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무궁무진하다. 커피에 정답이 없다고 말하는 바리스타들처럼, 결국 커피를 내리는 사람이 추구하는 철학과 노하우에 따라 커피의 맛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취미반 수업을 처음 들을 때보다, 강좌를 모두 수료한 지금에 와서 커피가 더욱 생소하고 막연하게 느껴진다. 커피에 관심을 갖고 관련 지식이 쌓일 때마다, 오히려 '나만의 커피'를 찾는 게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예전엔 그저 선생님이 가르쳐준 방식대로 드립을 해서 커피를 마셨고, 그게 정답인 줄로만 알았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핸드드립조차도 사람마다 내리는 방식이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안 뒤로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내가 마시고 있는 드립 방식보다 더 내 입맛에 맞는 방식이 있지 않을까', '도대체 드립의 방식은 몇 가지나 되는 것일까', '각 드립 방식마다 맛의 차이는 어떨까' 등등... 


정말 커피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거니와 어렵기만 하다. 하긴 그러니 평생 커피에만 매달린 전문 바리스타들도 '맛있는 커피'를 내리기 위해 매일 고민한다지 않는가. 어쩌면 이런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부터가 '아마추어'의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는 뜻 아닐까 싶어 홀로 우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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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스타벅스에서 하우스 블렌드 원두를 샀었더랬지요. 그런데 매일 커피를 마시다보니까, 뭔가 단조로운 것 같아서 새로운 마실 것을 찾게 되더군요. 집에는 용정차밖에 없어서 가끔 용정차만 마시곤 했는데, 차도 한 종류만 마시니까 심심하더라고요.


마침 국유단 서포터즈 6월 활동비도 입금되었겠다, 또다시 차(茶) 구매욕구가 발동하여 신촌의 라오상하이를 방문했습니다. 이번에는 보이차를 구매할 생각으로 방문했지요. 


사실 제게 무예를 가르쳐주시는 사부님이 차에도 조예가 깊어서, 전수관에 가면 종종 보이차를 손수 끓여주시곤 하셨는데, 사부님의 '보이차 예찬론'을 듣다보면, 진짜 차가 아니라 약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차의 깊은 세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지라 차를 마신 후 몸의 반응을 딱히 느끼지 못하겠는데, 하여간 좋은 보이차를 꾸준히 음용하면 약만큼이나 몸에 좋은 효과를 느낄 수 있다는군요. 그래서 이번에 큰 맘 먹고 보이차를 사러 간 것입니다.


보이차는 그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천차만별입니다. 저야 어떤 차가 좋은지도 잘 모르겠고, 비싼 차를 구매할 형편도 안되다보니, 제일 저렴한 차를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구매한 차가 바로 '2012년 해만차창 노동지 7578'이라는 차입니다. 357g에 18,000원 밖에 안 하네요. 저렴하긴 하지만, 노동지라는 브랜드 자체가 꽤나 유명한 곳이기도 하고, 라오상하이에서 파는 곳이니 의심할 여지 없이 구매했습니다.



어떤 차인지 알고는 마셔야 할 것 같아서 인터넷 서핑으로 알아보니 중국 운남성 안녕시에 위치한 '해만차창'이라는 차 공장에서 2012년에 생산한 보이차라고 하는군요. 노동지(老同志)가 무슨 뜻인가 했는데, 이 차의 고유 브랜드라고 합니다. 해만차창의 주인인 추병량이란 분이 마오쩌둥(모택동)을 존경하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역시 알고 마시니 재밌네요.


그렇다면 '7578'은 무슨 뜻일까요? 제일 궁금한 부분이었는데, 검색해보니 <오마이뉴스>에 관련 기사가 있네요. 그런데 이 기사에서는 뒤의 숫자 '7578'의 75를 생산년도, 7과 8을 각각 차의 등급과 생산공장 일련번호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 http://omn.kr/brrs)


그런데 75가 생산년도라면, 2012년에 만들었다는 설명과 상충됩니다. 더욱이 40년이나 된 차가 이렇게 저렴할 리도 없고요. 하여 역시 제일 믿을 수 있는 우리 라오상하이 쥔장이신 라오반장님께 여쭤봤습니다. 라오반장님께서 달아주신 답변을 아래 박스에 그대로 옮겨봅니다.


[Tip] 보이차 뒤에 붙는 숫자의 비밀


7578의 75가 연도를 말하는 것은 맞지만 그 차의 생산년도가 아니라 그 차를 제일 처음 생산했을 때의 연도를 말한다. 그리고 중간의 7은 찻잎의 등급을 말한다. 숙차는 특급 1급 3급~~9급으로 내려가는데, 그 중 7급(이나 그 이상) 차청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마지막 8은 차창 고유번호로 해만차창을 말한다. (맹해차창은 2번)


그리고 75라는 숫자 속에는 그 차를 만드는 레시피가 숨어있다고 보면 된다. 과거 75년도에 만든 방식대로 매년 만들기 때문에 최초의 레시피를 계속 유지한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맹해차창의 7542와 8542는 각각 75년, 85년 처음 만든 이래 매년 만드는 차인데 서로 맛이 다르다. 75와 85 속에 특유의 맛에 대한 레시피가 들어있다고 보면 된다.


출처: 라오상하이 (http://cafe.naver.com/chinateacafe)


이제서야 숫자의 비밀이 풀렸네요.


그동안 보이차를 마셔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항상 소포장 되어있는 상태로 구매를 해왔던지라 이렇게 긴압차인 병차(餠茶) 형태로 구매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런 병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보이차칼이 별도로 필요한데 5,000원에 저렴하게 팔길래 차칼도 하나 같이 구매했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보이차칼로 차를 쪼갠 뒤에, 시음을 해봤습니다.



솔직히 보이차를 많이 마셔보지도 않았고, 차의 깊이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저였지만 그동안 마셔본 보이차에 비해 그 맛이 많이 싱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차에 비해 향이 결코 뒤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맛 자체는 약간 밍밍했습니다. 보이차 고유의 향과 맛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던데,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게 입문용으로 적합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Tip] 보이차의 단위가 357g인 이유


수개월에 걸쳐 오랜 동안 티 로드를 따라가는 카라반의 말에는 찻잎이 60Kg이나 실려 있었다. 당시 병차는 7매를 한 묶음으로 하여, 말 등의 좌우에 각각 12묶음씩, 합하여 총 24묶음을 매달았다. 60Kg을 24묶음으로 나누고, 또 7매로 나누면 1매는 곧 357g이 된다. 


보이차의 무게 단위로 1매를 357g으로 정한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보이차에 '치쯔빙차七子餠茶(칠자병차)'문구가 흔히 적혀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출처: 『중국차 바이블』, 곤마 도모코,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 2015.


아무튼 당분간은 스타벅스 하우스 블렌드 원두와 노동지 보이차로 즐거운 티 생활을 할 수 있겠군요. 요새 한창 커피 공부에 빠져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준비하는 중인데,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하고 나면 바로 보이차에 대해서도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보려고 합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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