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편에서 이어집니다


이렇듯 기본기에 대한 관점이 바뀌니,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권법에 대한 시각도 차츰 바뀐다.


사실 지금까지 권법에 대한 내 생각은 그냥 몸풀이용에 불과했다. 어릴 적부터 중국무술에 심취해 각종 권법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알음알음 접해본 나로서는 중국의 상급 권법에 비해 기술의 가짓수도 적고, 그나마 있는 기술들도 표면적으로 봤을 때 효용성이 그닥 있어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무예24기의 권법 자체가 초창기 형태의 중국 권법을 가져온 것이라, 이미 여러 중국 권법을 본 내 눈엔 성이 안 찬듯 싶다. 사실 무예24기 중 권법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고, 무예24기를 수련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권법의 가치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사람을 많이 보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본기부터 다시 제대로 정립하자는 생각을 갖고, 권법에 접근하니 생각이 확 바뀐다. 생각해보면 기술이 적은 것은 그만큼 적은 기술을 더 많이 반복-숙달 수련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리고 태극권 역시 초창기 형태는 10가지도 채 안되는 초식들로 구성된 단순 권법이었으나, 후대에 갈수록 점점 동작들이 추가되어 오늘의 형태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기에, 어쩌면 초창기 형태의 권법이야말로 그 당시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용성 높은 동작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나는 권법에서 그나마 효용성 높다고 생각하는 동작들을 뽑아 단수 훈련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그냥 몸에 익을 때까지 계속 반복 연습하면서 동시에 앞에 가상의 적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것이다. 이 모양으로 한동안 계속 수련을 해오다가, 점차로 모든 권법의 동작들을 분석하고, 그 나름의 효용성을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이 싹 트기 시작했다.


그래서 권법 수련을 하면서 '과연 이 동작은 어디에 쓰일까' 고민을 하며 나름의 용법들을 생각해 노트에 필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런 동작들이 과연 실전에서 쓰일까 의문이었지만, 그동안 알음알음 배웠던 중국 권법의 기술들을 생각하니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용법을 만드는 데 큰 참고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수련을 하다보니 무예를 바라보는 시각 전체가 확 바뀐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전역하면 어떤 무술을 배울까', '어떤 무술이 가장 강할까' 고민하며, 배우고 싶은 무술들의 목록을 정리하고, 사지방(군 PC방)에서 여러 무술들을 검색해보았는데, 이제 그런 생각은 모두 헛된 망상이요, 부질 없는 욕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무예24기에서 가장 단순하다고 할 수 있는 '주먹지르기'조차 제대로 하질 못해 끙끙 앓는 놈이 뭘 더 배우겠다고 이 기술, 저 기술을 탐낸단 말인가. 무엇보다 무술에 하급 기술, 상급 기술이 어디 있단 말인가. 단순 기술도 내가 반복 숙달하여 실전에서 써먹으면 그게 나에겐 필살기이고 실전무예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굳어지면서 차츰 기본기를 수련하는 재미가 생기고, 권법의 용법을 분석하고 반복 수련하는 맛이 있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더 수련 내용을 강화하고 보충해 아래와 같이 수련하고 있다.


<현재 수련 커리큘럼>


- 주먹지르기

- 끄집어치기

- 발차기(앞차기/현각허이세/순란주세)

- 단수 훈련(탐마세-요란주세)

- 권법

- 죔죔이

- 무릎 들어올리기

- 팔굽혀펴기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련을 할 수 없다는 것. 혼자 가상으로 용법 연습을 해봐야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 하여 용법 연습에는 나와 공방을 주고 받을 상대방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상대방과 공방을 주고받으며 용법을 테스트해봐야, 내가 생각한 용법의 효용성을 검증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중에 전역하면 수련터에 가서 수련생들과 함께 내가 연구한 용법들을 함께 머리 맞대고 실험해보고 싶지만, 어리석은 초짜가 설치는 꼴은 아닐까 심히 두렵다.


요즘 다시 고민하는 부분은 '전역 후 어떻게 수련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기본기의 중요성을 깨닫고나니 그동안 수련해온 바가 '모래 위의 성'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부분은 차후 사부님과의 상담을 통해 답을 구할 생각이다.


<후기>


아무튼 엊그제부터 장마로 인해 수련을 못 하고 있어 몸이 매우 근지럽던 차에, 그동안 수련했던 바를 정리해 수련생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장문의 글을 3편으로 나누어 올려보았다.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보니 나의 무예관(武藝觀)은 군 입대 전/후로 나뉘지 싶다. 군 입대 전까지만 해도 강한 무술, 강한 기술에 대한 헛된 망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군 입대 후 꾸준한 기본기 수련 덕분에 헛된 욕심을 버리고, 무예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정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평생 수련할 무예를 찾은 느낌이다. 별로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어찌보면 군 입대 덕분에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어 고마운(?) 점도 없지 않아 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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