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 http://omn.kr/l6vm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대결>을 보고 왔습니다.


영화를 찍은 감독이 <서유기 리턴즈>, <치외법권> 등 전형적인 B급 영화를 많이 찍은 감독이라, 약간 의구심이 생기긴 했지만 네티즌들의 호평을 보고 기대를 했었더랬습니다. 더욱이 취권으로 현피를 뜬다는 설정도 반가웠고, 영춘권이나 칼리 아르니스, 실랏까지 다양한 무술이 등장한다고 해서 액션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만저만 실망이 아니었습니다. 스토리는 당연히 진부하고, <취권>에 대한 오마주라지만 어설픈 오마주의 과도한 남발로, 그저 <취권>의 아류작이라는 생각 밖에 안 들었습니다. 저도 영화 보는 눈이 높지 않아서, 웬만하면 좋게 평가해주는데 이 영화는 실망 그 자체입니다. 스토리가 진부했다면 액션이라도 괜찮았어야 했는데, 이건 영... 어설픈 취권 연기도 그저 웃플 뿐이었습니다.


실망스러운 감정으로 <오마이뉴스>에 리뷰를 써봤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로 대체합니다.


PS. 극장 가서 보기엔 본전 생각 많이 나는 영화입니다. 나중에 케이블 채널로나 보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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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트>를 봤습니다.


이 영화도 봐야지 봐야지 하고 있다가, 뒤늦게서야 본 영화입니다. 한 대형마트 계약직 판매원들이 회사의 일방적인 해고 통지에 맞서 투쟁을 벌이는 내용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데요, 2007년에 있었던 한 대형마트에서의 대량 해고 사태를 바탕으로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딱히 그 사건 하나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려울 듯 합니다. 작금의 대한민국 곳곳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풍경이기 때문이죠.


아무튼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작년 말에 방영했던 드라마 <송곳>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엔 드라마 <송곳>이 영화로 리메이크된 줄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이 영화가 더 먼저 개봉했더군요. 대형마트의 대량 해고 사태에 직면해 투쟁을 벌이는 여자 판매사원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회사의 부당 해고 방침과는 무관하게 자리가 보장된 정규직 남자사원이 여자 판매사원들과 연대해서 노조 투쟁을 벌이는 것도 그렇고. 놀라우리만치 드라마와 영화의 구조가 빼다박은 듯 흡사합니다. 심지어 영화와 드라마 둘 다 출연한 배우들도 몇 명 있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과연 노조 활동을 거부하거나 노조에서 탈퇴하는 이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난을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내내 머릿 속을 맴돌더군요. 영화에서 보면 마트 측은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이간계를 씁니다. 몇몇 주동자들에게 "당신만은 자리를 보장할테니, 노조에서 탈퇴해라"라고 유혹하죠. 사람인 상 그런 유혹에 당연히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죠. 투쟁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 '직업 활동가'나 먹고 사는 게 충분히 보장되어 마트 알바를 그저 용돈벌이 정도로나 하는 이들이라면 별 의미 없는 제안이겠지만, 대다수의 계약직들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입니다. 그저 '반찬값' 벌러 나온 게 아니라 '생계'를 위해 뛰어나온 이들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마트 측의 제안은 정말 달콤한 악마의 열매일 수밖에요.


결국은 이에 굴복하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끝까지 남은 이들은 굴복한 이들에 대해 '변절자'라고 욕하고 매도하지만, 마냥 비난만 할 수는 없는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누가 저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당장 집에 돌아가면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데 말이죠. 어떻게 보면 끝까지 남아서 투쟁을 벌이자고 외치는 주장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드라마나 영화니까 가능하지, 실제로 당장 내 가족이 굶어 죽게 생겼는데, 내 아들이 급식비를 못내서 점심을 굶는다는데, 언제 끝날지도 모를... 그리고 이길 확률도 희박한 이 싸움을 굳이 내가 해야하는가. 이런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논리가 일제강점기의 상황과 놀라우리만치 흡사하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군요. 독립운동가들을 끊임없이 회유하기 위해 이간책을 썼던 일제와, 자식들의 생계를 위해 굴복하며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일부 조선인들... 여기에는 생계형 친일파 혹은 대다수의 힘 없는 민중들이 포함될 것입니다. 물론 두 사례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건 다소 어폐가 있겠지만, 결국 강자 앞에서 굴복해야 하는 약자들의 현실이나, 생계를 위해 현실과 일정 부분 타협할 수밖에 없는 대다수 힘 없는 민중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여러모로 공통점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독립전선에 뛰어든 이들이 있었던 것처럼, 영화 <카트>에서도 대형 마트의 회유에 굴복하지 않고, 부당해고에 끝까지 맞서 싸우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은 지금 현실에도 존재하고 있죠. 대량 해고 사태에 몇 년, 몇십 년 동안 굴하지 않고 천막 농성을 벌이는 이들이 그들입니다. 


저들에겐 도대체 어떤 신념이 있기에, 나를 버려가면서까지, 가족들의 생계를 외면하면서까지 투쟁을 벌이는 것일까. 그 신념이란 것이 일면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나보다는 우리를 위하자는 마음이 신념으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요? 지금 당장은 나나 내 가족이 고통받아도, 결국 나 하나의 희생으로 우리 모두가 더 행복해지는 것을 꿈꾸기에... 그들은 기꺼이 투쟁에 앞장섭니다. 우리 독립운동가 선조들도 그런 마음이었겠지요.


마지막으로 영화 <카트>에서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 "우리를 한 번만 봐달라"고. 이 외침은 우리에게 뼈저리게 다가옵니다. 길거리에서 내몰려 천막 농성을 하는 이들에 대해, 우리가 언제 한 번 따뜻한 관심 한 번 줘봤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하게 됩니다. 당장 저게 내 가족의, 내 미래의 현실이 될지 모를 일이니까요.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져봐야겠다고 자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가슴이 먹먹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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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휴 때 영화를 좀 몰아봤습니다. 어제 밤에 본 <악마를 보았다>도 그중 한 편인데, 이 영화도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다운만 받아놓고 보질 못하고 있었네요.


그런데 이거... 정말 '작품'이더군요. 작품이라는 표현은 다소 모호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제 솔직한 평이 그렇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 '좋다', '나쁘다' 평가하기가 어렵네요. 영화에 대한 제 도덕적 기준에 따르자면 '나쁜 영화'인데,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나 배우들의 미친 연기력, 쉴새 없이 쏟아지는 명대사들만 보면 수작이라고 보여지거든요.


개봉한 지 꽤 오래된 영화고, 워낙 유명해서(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스토리에 대해서는 다들 말 안해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극악무도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최민식)과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분노에 찬 국정원 요원(이병헌)의 잔혹한 복수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최민식과 이병헌의 연기는 정말 후덜덜합니다. 최민식에 대해서는 연기를 잘한다, 못한다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영화를 보고 나니 확실히 그의 연기에 대해 박수를 칠 수밖에 없더군요. 정말 저 배우가 실제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리얼하게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표정이나 대사, 말투... 어디 하나 부자연스러운 게 없습니다. 이병헌도 연기 하면 어디가서 꿀리지 않는 편인데, 최민식 앞에서는 빛을 바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사진: 영화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었습니다. 

감정 없는 저 무표정이 정말 사이코패스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인육을 먹는 장면이나,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살해하고 신체를 절단하는 장면 등등 고어물에 가까울 정도로 잔혹하게 묘사된 장면들 때문에 영화에 대한 평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저도 몇몇 장면들은 도저히 눈 뜨고 보기 어려워서, 일부러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엔 이런 영화를 왜 만들었나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이 영화에 대해 남긴 평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더군요.


"이게 현실이다. 감독은 현실을 말하고 싶었던 거다. 우리가 아무리 영화로 선하고 도덕적인 교훈을 이야기해도, 결국 현실은 이렇게 잔혹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뉴스에 나오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감독은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에게 이 잔혹한 이야기가 바로 나와 내 가족의 이야기일 수 있노라고 경각심을 주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일리 있는 평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도 감독이 고어물을 즐기는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도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해서 출연에 동참했겠지요. 심지어 서구권에서는 영화에 대해 극찬을 했다고 하니까요.


아무튼 영화를 보고 나니 더욱더 호신(護身)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언제 저런 사이코패스를 만나 살해당할지, 내 가족이 저런 일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적어도 제 한 몸 그리고 제 가족 정도는 보호할 무력은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게 지론입니다. 영화에서 사이코패스를 상대하는 이병헌도 결국 국정원 요원이라는 직업 덕에 최민식을 갖고 놀고 있습니다. 무력에 있어서만큼은 훨씬 앞서 있는 거죠. 그런 절대우위를 점하고 있기에 복수극도 할 수 있는 거고요. 결국 힘 없는 정의만큼 무기력한 것도 없다는 걸 감독은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PS. 이 영화의 감독과 최근 개봉한 <밀정>의 감독이 같은 사람이더군요. <밀정>도 좀 잔혹한 장면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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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개봉한 영화 <밀정>을 보고 왔습니다. 개봉하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가 봤더랬죠. 사실 이 영화는 제작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손꼽아 기다려왔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제 전공이 전공이다보니, 역사를 소재로 한 팩션영화(그중에서도 특히 독립운동에 관한 영화)에 대한 개봉 소식이 들려오면 늘 달려가서 보곤 합니다.



의열단을 소재로 한 팩션영화


영화 <밀정>은 세간에 알려진 바와 같이 1920년대에 한국과 중국을 넘나들며 활약했던 항일비밀결사 '의열단(義烈團)'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1923년에 있었던 의열단원 김상옥 의사의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과 '제2차 대암살 파괴계획'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자는 의열단원 김상옥 의사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 경찰 다수와 총격전을 벌이다가 자결한 사건입니다. 후자는 이번 영화의 큰 줄기를 이루는 사건인데, 의열단이 중국에서 직접 제조한 폭탄을 식민지 조선의 수도인 경성으로 반입해 동시다발적 폭탄테러를 벌이려던 계획이었습니다. 파괴 대상은 조선총독부, 조선척식주식회사를 비롯한 식민지 통치기관들이었고, 암살 대상은 사이토 총독을 비롯한 조선총독부 수뇌들이었지요. 


하지만 누군가의 밀고로 인해 계획이 사전에 탄로나는 바람에 작전은 미수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이 작전에서 경기도 경찰부 고등계 소속 경부인 황옥이 의열단의 폭탄 반입을 남몰래 도왔다고 하는데요, 재판 당시에는 자신이 의열단과 무관함을 주장하여 지금까지도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미스테리로 남아있습니다. 영화도 그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고요. 이렇게 때로는 역사가 밝혀주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요.



(사진: 영화 <밀정> 스틸컷 - 출처: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암살>보다 더 재밌게 본 영화


개인적으로 작년에 개봉했던 비슷한 주제의 영화 <암살>보다 더 재밌게 봤습니다. <밀정>에서 일본 경찰 이정출 역을 맡은 송강호와 역시 일본 경찰 하시모토 역을 맡은 엄태구의 심리전을 보는 맛이 쏠쏠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의열단원들을 밖으로 빼내려는 이정출과 그런 이정출의 틈을 파고들며 의열단원들을 찾아내려는 하시모토의 대결은 손에 땀을 쥘 정도로 긴박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의열단 vs 일본 경찰'의 구도라기보다는 '밀정 vs 일본 경찰'의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거기에 수시로 벌어지는 총격전 역시 스릴 넘쳤습니다. 의열단원들은 실제로 명사수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이 제법 자주 묘사됩니다. 단총 한 자루를 가지고서 다수의 일본 경찰을 가지고 노는 장면 말이지요.


잔혹하다고 외면해서는 안될 우리의 역사


그리고 영화가 꽤나 잔혹하다는 평이 있습니다. 저 역시 보는 내내 눈을 질끈 감고 싶을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고문 장면 등이 상당히 리얼하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회피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눈을 부릅 뜨고 지켜봤습니다. 마치 그 당시 우리 조상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직시하고, 그 치욕과 분노를 가슴에 새기기라도 하듯이 말이죠. 실제로 잔혹하다며 평점을 낮게 주는 관객들에게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외면하고 싶지만 저게 진짜 우리 선조들이 겪어온 역사라고. 오히려 저기서 묘사된 장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라고. 저들의 희생과 고통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앉아서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의열단장 정채산 역으로 특별출연한 이병헌. 이병헌의 연기력만큼은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더군요. 약산 김원봉을 모티브로 한 역할인데, 의열단 리더의 고뇌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는 캐릭터였습니다. 영화 <암살>에서 김원봉으로 분한 조승우가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처럼, 이번 영화의 가장 큰 공신 중 한 명은 역시 이병헌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모두 이병헌의 입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꼭 영화를 통해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사진: 영화 <밀정>에서 이병헌이 맡은 의열단장의 모티브가 된 '약산 김원봉')


영화가 가진 저력을 다시 한 번 느끼며


<밀정>을 보고 나오는 내내 영화가 가진 저력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년 영화 <암살>을 보고 나오는 길에, 관객들 입에서 '김구', '김원봉'이라는 이름이 회자되는 것을 보며 새삼 고무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영화가 가진 힘에 대해 깨닫는 시간이었는데, 이번 영화를 보고 난 소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역사학이란 결국 대중과 소통해야 그 본연의 의미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역사학자들이 세미나 현장에서 새로운 논문 발표하고, 초야에 묻혀 연구를 위한 연구에나 매진할지언정, 그게 대중과 유리되어 있다면 결국 '죽은 학문'에 불과할 뿐이죠. 저 역시 우리의 잊혀져 가는 역사를 어떻게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을까에 늘 촛점을 맞추고 고민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하면, 대중에 미치는 파급력만큼은 논문과 비견될 일이 아니죠. 



(사진: 해방 후 촬영된 실제 의열단원들의 모습)


그런 점에서 이번에 개봉한 영화 <밀정>이 점점 흐릿해져만 가는 역사의 기억을 대중들에게 다시 또렷하게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되기를 고대해봅니다. 그리고 이런 의미 있는 영화를 만들어주신 김지운 감독님과 좋은 연기 해주신 배우 분들께도 특별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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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화제작 <부산행>을 뒤늦게 봤습니다.


지난 번 <터널>과 비슷한 이유로, 솔직히 구미가 당기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저는 좀비물을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흉한 몰골들을 보는 것 자체가 꺼림칙해서... 그래도 하도 여기저기서 '부산행', '부산행' 하길래, 얼마나 재밌는지 한 번 보자는 심산으로 방금 보고 왔습니다.


전체적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보긴 했습니다. 잘 만들긴 했어요. 감독이 영화를 통해 뭘 말하고 싶은지 메시지도 단순명료하게 잘 전달이 되고 있었습니다. 관객들로 하여금 장면을 여러 번 돌려보게 하고, 머리 써가면서까지 메시지를 추리하게 만드는 요즘 영화들과 달리, 정말 단순명료하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서 가볍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한 번 들여다보고자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 보는 내내 김의성이란 배우가 맡은 버스회사 상무 역할에 집중해서 봤습니다. 대단한 악역이라고 소문이 났길래, 얼마나 민폐를 끼치는 캐릭터일까 궁금했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행동 하나 하나를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아등바등 저 혼자 살아남겠다고, 다른 이들의 생명은 아랑곳않는 캐릭터더군요. 하지만 그 캐릭터의 행동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런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서 남들 처지까지 신경쓸 여유가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자문해봅시다. 


저는 굉장히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사실 도덕이란 것 자체가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기 위해 다수의 합의를 거쳐 만들어진 인위적 가치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자기 자신을 버릴 줄 아는 의사(義士)나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대다수의 인간들은 저런 상황에 처해서 누구나 김의성이 될 겁니다. 


물론 김의성의 행동을 정당하다고 옹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단 겁니다. 저런 상황에 처했을 때, 나라고 과연 김의성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겠는가. 뭐 당연히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요. 나라와 이웃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의인들이 바로 그런 분들이죠.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별로 없기에, 우리가 그분들을 의인이라고 존경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튼 버스회사 상무의 민폐짓과 더불어 우리 마동석 형님의 격투씬이 또 이 영화의 볼거리 중 하나죠. 그 큼지막한 주먹으로 좀비들을 때려잡는데,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그런데 영화를 보니 좀비들은 관절이 뒤틀려도 금세 관절을 끼워맞춰서 다시 공격해오더군요. 총알도 안 통하는 것 같고요. 타격으로는 좀비들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럴 때는 역시 칼과 같이 예리한 무기로 신체를 절단하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좀비들과의 격투에는 무조건 진검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고로, 우리 모두 무술을... 아니 무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기왕이면 휴대하며 사용할 수 있는 검술을 말이죠. 먼 훗날 있을지 모를 좀비들과의 격투에 대비해서, 저 역시 무예24기 수련에 매진해야겠습니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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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명: 터널

개봉일: 2016년 8월 10일

장르: 드라마

감독: 김성훈

배우: 하정우, 오달수, 배두나



어제 더위를 피해 한낮 피서를 즐기던 중에, 마땅히 시간 때울 거리를 찾다가 부천 CGV에 가서 영화 한 편을 때렸습니다. <부산행>과 <터널>이 인기라고 해서 두 영화를 언제고 볼 생각이었는데, <부산행>은 시간대가 안 맞았고 <터널>은 마침 시간대가 맞아서 바로 예매하고 봤습니다.


사실 전 재난영화를 그닥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연가시>도 그렇고 <감기>도 그렇고, 재밌게는 봤지만 뭔가 보고 나서 찝찝함이 자꾸 남습니다. 재난영화의 특성상 분명히 누군가는 피해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바이러스에 걸렸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특히 재난영화는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피해자들이 속출하죠. 거의 절망적인 상황까지 이어지다가 주인공이 히어로처럼 극적으로 살아남아 인류를 구하는 구조로 전개되곤 합니다. 그래서 다수의 피해자들이 발생하는 그런 장면들을 보고 있기가 너무 힘듭니다. 설사 영화일지언정 감정이 몰입되면 눈 뜨고 지켜보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재난영화는 나름 교훈이 있지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식으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많이 던집니다. 그런 교훈 때문에라도 사람들이 재난영화를 높이 평가하기도 합니다. 이번 영화 <터널> 역시 그런 점에서 꽤나 호평을 받고 있더라고요. 세월호 사건이 터진 지 2년이라는 시간이 넘게 흘렀지만, 지금까지도 인양이 안되고 있는 상황인지라 현실에 빗대어 봤을 때 사람들이 더 많이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연관검색어가 '세월호'일 정도니까요.


재난영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을 극화했다는 건데요, 특히 영화 <터널> 같은 경우는 당장 오늘이나 내일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까지 들더군요. 옛날 같았으면 '어떻게 터널이 무너지겠어?'라고 생각했을테지만,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붕괴되었으며, 세월호까지 침몰한 마당에 터널이라고 과연 재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아무튼 영화 보는 내내 안타깝고 화도 많이 났습니다. 감독이 대한민국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아주 작정하고 만든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그게 다 사실이라는 거지요. 터널 안에 사람이 갇혔는데도, 인근 터널 공사가 지연되는 바람에 손해보는 것을 걱정하는 사업가들과, 카메라 앞에서 사진 찍기 바쁜 공무원들, 터널 안에 갇힌 사람을 생명으로 보지 않고 한낱 뉴스거리, 특종감 정도로 생각하는 기자들, 부실공사로 인해 무너져버린 터널까지. 


긴 러닝타임 동안 많은 장면과 대사들이 나왔지만, "대한민국에서 FM대로 하는 곳이 어디 있나요? 여기가 운이 나빴던 거죠"라는 대사가 가장 가슴 아팠습니다.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저 역시 로망처럼 생각했던 군대의 내부가 생각보다 많이 썩어있던 것을 보고 그런 감정을 처음 느꼈더랬습니다. 그런데 전역하고 사회 나와보니까... 군대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다 썩었어요. FM을 떠나서 생명을 위협할 정도니, 이 정도면 정말 '안전불감증'에 걸려도 단단히 걸린 셈이지요.


영화의 스토리는 네이버 영화정보에도 나와있고, 또 실제로 영화를 보러 가시면 알 수 있을테니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꼭 극장 가서 보시라는 뜻이에요. 티켓 값이 아깝지 않습니다. 다만 감정 컨트롤 할 준비를 잘 하고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워낙 울컥하는 다혈질이라, 영화 보는 내내 몇 번을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영화일 뿐인데도, 너무 몰입하는 바람에... 입에서 쌍욕이 나올 뻔 했거든요. 뭐 그래도 마지막에 정말 후련한 장면이 하나 있긴 했습니다만.. (앗, 이거 스포 아니죠?)


PS. 어찌나 몰입해서 영화를 봤던지, 영화 보다가 문득 극장 천장을 올려다봤습니다. 만약 여기가 무너진다면 살아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보니 결국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결론이 나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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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CGV용산에 가서 <덕혜옹주>를 봤습니다.



(사진: 영화 <덕혜옹주> 공식 포스터 - 출처: 네이버 영화)


요즘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인천상륙작전>만큼이나 개봉 전부터 말이 많았던 작품이죠. <인천상륙작전>이 '반공 프로파간다 영화'라는 선입견 탓에 말들이 많았다면, <덕혜옹주>는 '역사왜곡' 논란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바 있습니다. 공개된 예고편에서 덕혜옹주가 항일독립운동을 한 것처럼 묘사되었는데요, 실제로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기록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영화를 보니 영화 속 덕혜옹주 역시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의지를 보이는 인물은 아닙니다. 예고편의 편집을 자극적으로 하려다보니 그런 부분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우려를 가지고 영화를 본 관객들 중에서 생각이 바뀐 사람들이 많은 것 같네요. <인천상륙작전>이 개봉 전 전문가들의 혹평과는 달리 일반 관객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으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처럼, <덕혜옹주> 역시 개봉 이틀 만에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진: 영화 <덕혜옹주>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일단 영화의 막이 올라가면서 '이 영화는 허구가 가미된 팩션영화'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덕혜옹주의 비참했던 삶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상하이 망명 작전' 등은 모두 영화적 허구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그것도 엄연한 역사왜곡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있겠지만, 제 생각엔 영화적 재미를 위해 이 정도의 허구는 가미되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실제로 실행에 옮겨지진 못했지만, 어쨌든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계획했던 일이기도 하고, 이 장면을 넣었다고 해서 덕혜옹주가 항일독립운동을 한 것처럼 오해할 소지도 별로 없거든요. 무엇보다 인트로 부분에서 '팩션'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덕혜옹주의 실제 삶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은 뭐가 역사적 사실이고, 허구인지 스스로 검색해서 공부하는 효과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천군> 같은 영화는 아예 남북한의 군인들이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날아가 무기력한 청년 이순신을 각성시킨다는 시놉시스였는데요 뭘. 그에 비해 이 정도면 양반인 듯 합니다.


덕혜옹주는 어릴 적에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서, 일본인과 정략 결혼을 해야했고 그로 인해 일찌감치 치매 증상까지 보이는 등 상당히 불행했던 삶을 보낸 여인입니다. 해방 후에도 정치적 부담을 느낀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일본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은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이혼한 그녀는 종적을 감추었다가, 나중에서야 일본의 한 정신병원에서 발견되었죠. 뜻 있는 이들의 노력 덕에 생전에 고국으로 돌아올 수는 있었지만, 이미 정신적으로 폐인이 되었기에 그녀의 삶은 결코 행복했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



(사진: 실제 덕혜옹주의 어릴 적 모습)


영화에서도 그런 덕혜옹주의 비참했던 삶이 잘 묘사되었기 때문인지 중간 중간 울컥하는 장면들이 꽤 많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덕혜옹주 개인의 삶도 안타까웠지만, 그녀의 삶을 통해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굴종의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 더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계속 상상을 하게 됩니다. 한택수(윤제문)처럼 비겁한 친일의 길을 걸었을까, 김장한(박해일)처럼 총을 들고 독립운동에 투신했을까. 다 부질 없는 상상에 불과할 뿐이지만,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그런 상상이라도 계속 하게 되네요.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 <암살>과 이 영화를 같이 보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9월에는 의열단을 주제로 한 영화 <밀정>이 개봉한다고 하니, 무척 기대됩니다. 요즘 들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는 제 입장에서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알면 알수록 탄식만 나올 정도로 아프고 괴로운 역사지만, 그만큼 더 외면해서는 안될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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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CGV용산에 가서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보고 왔습니다.


이 영화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이끌어낸 'X-ray 첩보작전'을 다룬 영화입니다. 이정재, 이범수와 같은 국내 톱배우는 물론 헐리우드 톱배우 '리암 니슨'이 맥아더 장군 역할을 맡아,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죠.



(사진: 영화 <인천상륙작전> 공식 포스터 - 출처: 네이버 영화)


사실 개봉 당일부터 보려고 벼르던 영화였는데, 이런 저런 일로 관람을 미루다가 비로소 오늘에서야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영화를 본 관객들이나 평론가들의 평이 혹평에 가까울 정도라서, 보기도 전에 기대보다는 걱정이 컸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은 작품이더군요. 요근래 본 영화 중에서 그래도 재밌게 본 영화였습니다. 2시간 좀 안 되는 러닝타임 동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봤어요. 딱히 반전이랄 게 없는 스토리 구조 탓에 약간 밋밋하게 느껴진 점 빼고는 군데군데 감동적인 장면도 있었고, 무엇보다 실화라는 점 때문에 더욱 인상 깊었던 영화입니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이었습니다. 카메오로 등장하는 다양한 배우들의 활약도 흥미로웠는데요, 특히 맥아더 장군 역을 맡은 리암 니슨의 연기는... 중간 중간 잠깐씩 등장하는 데도 강렬하더군요. 몇 마디 툭툭 내던지는데, 대사마다 주옥 같은 명언이었습니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이 안 나는데, '늙고 젊은 것은 나이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이상(신념)을 버렸느냐 버리지 않았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다'라는 뉘앙스의 대사가 정말 가슴 깊이 와닿았습니다. 모두 맥아더가 실제로 했던 말들인 듯 합니다.



(사진: 영화 속에서 맥아더 장군 역을 맡은 리암 니슨 - 출처: 네이버 영화)


맥아더와 소년병의 대화


영화를 보면서 몇 번 울컥한 장면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맥아더 장군과 한국 소년병의 대화 장면이었습니다. 전우들이 몰살당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철수하지 않고 진지를 고수하고 있던 소년병에게, 맥아더 장군이 "왜 철수하지 않느냐"고 묻자, "상관의 철수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답을 합니다. 이에 감동을 받은 맥아더 장군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말하라. 다 들어주겠다"고 하자 "적과 싸울 수 있게 총과 실탄을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 꽤나 유명한 이야기인데, 실화였기에 더욱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반공영화는 무조건 나쁜가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스토리의 완성도, 배우의 연기를 떠나서 이 영화의 성격이 '반공영화'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영화를 직접 본 사람으로서 이 영화가 어느 정도 반공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6.25 전쟁을 다룬 영화에서 반공이라는 요소가 안 들어갈 수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6.25 전쟁 자체가 자유민주주의(반공)를 대변하는 대한민국(남한)+유엔군과 공산주의를 대변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소련+중국과의 국제적 이념 대결이었는데 말이죠. 특히나 이 영화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무명용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들의 활약에서 어떻게 반공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만약 반공을 부정한다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운 이들의 희생과 헌신마저 통째로 부정하는 꼴이 되어버립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반공영화면 무조건 나쁘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어쨌거나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에 명시한 나라이며, 6.25 전쟁 당시 공산당의 침략에 의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만 했던 아픔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공산주의(라고 쓰고 김씨 봉건왕조체제라고 읽는다)를 표방하는 북한은 호시탐탐 대남도발을 자행하며 한반도를 전쟁의 위기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따지고보면 사드 배치 문제도 결국 북한이라는 골칫덩어리가 있기 때문에 불거진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반공'을 이야기하는 게 왜 나쁜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놈의 공산주의가 반백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우리 민족을 이토록 괴롭히고 있는데 말입니다.


물론 반공영화에 대해 비판하는 시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갑니다. 엄혹했던 군사독재 시절, 정부의 주도 하에 반공영화가 하나의 흐름으로 정착되면서, 반공을 명분으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짓밟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강한 트라우마가 반공영화에 대한 반발심리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시각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결국 그런 시각도 '분단'이 낳은 상처라고 생각합니다. 분단이 없었다면, 이런 영화를 두고 반공이니 아니니 하면서 소모적인 논쟁을 할 까닭이 없었을테니까요. 여하간 반공영화는 무조건 나쁘다는 식의 의견에 대해서 존중은 하지만, 저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사진: CGV용산에 전시된 실제 'X-ray 첩보작전' 이야기)


이 영화의 주인공은 맥아더가 아니다


두 번째로 맥아더 장군에 대한 비판도, 이 영화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인 듯 합니다. 맥아더에 대해 공부해보지 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그는 공(功)만큼이나 과(過)도 큰 인물이라고 하더군요. 인천상륙작전으로 너무 부풀려진 인물이라고도 하고, 일각에서는 '오만방자하고 탐욕스러운 권력욕의 화신'이라고까지 악평을 하기도 합니다. 아예 인천상륙작전 자체가 너무 부풀려졌다는 말도 있습니다. 여하간 맥아더를 영웅시하는 영화이기에 보기 불편하다는 논리입니다.


일단 제가 맥아더에 대해 잘 모르는 관계로, 맥아더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맥아더에 대한 역사적 진실은 둘째 치고라도, 이 영화에서 맥아더를 '우상화' 혹은 '영웅화'하는 느낌은 결코 받을 수 없었습니다. 맥아더는 잠깐 등장할 뿐입니다. 그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름 없는 무명용사의 헌신에 감사를


이 영화의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이들은 '대한민국 해군 첩보대'와 '켈로부대'입니다. 이 영화는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유엔군이 멋지게 인천항에 상륙해 반격을 하는 부분을 다루고 있는 게 아니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한 이름 없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대한민국 해군 첩보대'와 '켈로부대'였다 - 출처: 네이버 영화)


저는 그래서 이 영화를 더욱 높이 평가합니다. '인천상륙작전=맥아더'라는 공식을 깨고, 이름 없는 영웅들의 헌신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죠. 그런 감독의 의도가 분명함에도, 자꾸 이 영화에 대해 '맥아더를 영웅시하는 영화'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잠깐 등장하는 맥아더의 강렬한 이미지가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한다면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건 리암 니슨이 워낙 연기를 잘한 탓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의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 정도 장면은 당연히 있는 게 마땅하다고 봅니다.


어쨌거나 인천상륙작전은 6.25 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 앞까지 밀렸던 우리 국군이 전세를 역전하는 기회가 된 역사적인 작전이었고, 그 의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의 맥아더의 행적이 어떻든 간에, 그 작전 하나만 놓고 보면 성공한 작전이었고, 그렇기에 그나마 대한민국이 이 정도 영토라도 보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한 무명의 용사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송구스럽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지켜주신 무명의 호국영령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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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후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홍금보의 보디가드>를 보았다. 원제는 아적특공야야(我的特工爷爷)인데, 직역하자면 '나의 특수할아버지'가 되겠다. 의역하자면 '특수요원 할아버지' 정도랄까?



개인적으로 요근래 인상 깊게 본 영화 중 하나다. 솔직히 말해서 스토리도 단순하고, 액션도 '홍금보치고는' 그렇게 대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영화 속 홍금보 자체가 '치매 걸린 노인' 설정이라, 일부러 화려한 액션을 자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만약 내 짐작이 맞다면 의도는 성공한 셈이다.


기본적인 스토리는 이렇다.


퇴직한 중앙경호국 요원(VIP를 경호하는 경호원, 우리로 치면 대통령 경호원)인 홍금보는 치매에 걸려 홀로 사는 노인이다. 함께 할 가족도 없고, 무뚝뚝하기만 한 그가 이웃집에 사는 여자아이의 적극적인 애정공세(?)에 점점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빚에 시달리던 그 여자아이의 아버지(유덕화)가 중국 조폭으로부터 위험한 제안을 받게 된다. 러시아 갱단의 보물을 훔쳐오면 빚을 탕감해주겠다는 것. 이에 러시아 갱단의 보물을 훔친 유덕화는, 변심하여 보물을 들고 잠적하게 되고 결국 그는 중국과 러시아 두 조폭 집단의 표적이 된다. 아버지의 잠적으로 여자아이가 위험에 빠지게 되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홍금보가 뛰어든다는 내용이다.



(사진: 중국 조폭들을 단신으로 때려눕히는 홍금보 - 출처: 네이버 영화)


일단 영화 막바지에 등장하는 액션씬을 보면서 약간 어이 없는 웃음이 나왔다. 영화를 보면 홍금보가 단신으로 중국 조폭들의 소굴로 쳐들어가 혼자서 조폭들을 다 때려눕힌다. 그런데 그 순간 러시아 갱단이 쳐들어온다. 홍금보는 다시 러시아 갱들을 단신으로 제압한다. 아무리 홍금보가 전직 중앙경호국 요원 출신이라고 해도, 영화 속에서는 운신조차 자유롭지 못한 치매노인일 뿐인데, 혼자서 중국/러시아 조폭들을 때려눕힌다는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설정을 감안해서인지, 조폭들과 힘겹게 싸운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액션이 펼쳐지는 내내 홍금보가 아주 힘들어하는 표정을 짓는다. 숨도 거칠게 내쉬면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이 묘사된다. 그런데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구르카칼'을 들이미는 근육질의 러시아 조폭들을 다 때려죽인다. 이런 묘사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달까. 영화는 현실이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개연성은 존재해야 한다. 아주 판타지를 표방하지 않는 이상, 이 영화의 액션씬은 약간 공감하기 어려웠다고 본다.



(사진: 홍금보는 중국 조폭에 이어 러시아 갱들도 단신으로 제압한다 - 출처: 네이버 영화)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에 상당히 높은 평가를 주고 싶다. 비현실적인 액션에 공감하기 어려웠다는 앞의 평가와 모순되는 말이긴 하지만, 그런 비현실적인 액션씬을 통해서라도 홍금보가 건재하다고 애써 위안을 삼고 싶었기 때문이다. 


홍콩무협영화 좀 봤다 하는 사람들이라면, 홍콩무협영화에서 홍금보가 차지하는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것이다. 그는 존재 자체로 이미 홍콩영화의 산 증인이자, 역사다. 그리고 이제는 전설의 경지를 넘보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의 움직임이 둔해진 것도 사실이다. 


사실 6년 전, <엽문 2 - 종사전기>에 홍가권의 고수로 출연하여, 견자단과 용호상박을 이룰 때만해도 그가 많이 건재하다고 느꼈는데, 이번 영화에 나온 그의 모습은 많이 노쇠해진 느낌이었다. 물론 영화 설정 탓에 분장을 일부러 그렇게 한 것도 있겠지만, 실제로 홍금보의 나이가 벌써 65세다. 한국 기준으로는 이미 노인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런 홍금보를 보면서, 한때 펄펄 날았던 홍금보가 이제는 이렇게 노쇠해졌구나 싶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그래서 액션씬 자체는 공감하기 어려웠으면서도, 내 마음 속에서는 '홍금보 죽지마라... 죽지마라.. 다 이겨라'를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늙고 비대한 몸으로 힘겹게 중국/러시아 조폭들을 쓰러트리는 모습에서, 애처롭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그의 절박한 몸부림에서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겹쳐들리는 듯 했다.


얼마 전, 공개된 성룡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영화 촬영 탓에 분장을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흰 머리도 훨씬 많이 늘어나고, 다크서클이며 주름이 가득해 정말 힘 없는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더불어 이연걸 역시 갑상선암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이보다 훨씬 늙어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낸 바 있었다. 


그런 걸 보면, 평생 늙지 않고 펄펄 날아다니며 악당들을 물리칠 것만 같은 영웅들도... 시간의 흐름 앞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그러나 그들이 늙어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신세가 될지언정, 내 기억 속의 그들은 언제까지나 펄펄 날아다니며 악당들을 물리치는 히어로다. 과욕일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10년 이상은 더 그들의 화려한 액션을 스크린을 통해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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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야심한 밤을 틈타 중국무협영화 한 편을 감상했습니다. 한 달 전쯤에 국내 개봉도 했던 영화 <활 : 명궁 류백원>이라는 영화입니다. 원제는 '전사류백원(箭士柳白猿)'입니다.



(사진: <활 : 명궁 류백원> 국내 공식 포스터 -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 감독이랑 출연진을 보니, 대충 어떤 스타일의 영화일지 보기도 전에 이미 감이 오더군요. 서호봉 감독이 맡은 영화인데, 이 감독은 예전부터 상업영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영화들을 만들어왔죠. 이 감독이 만든 대표적인 영화가 무사 : 4대 문파와의 혈투> (원제: 왜구의 무기), <사부 : 영춘권 마스터> (원제: 사부)인데, 이 영화들을 보신 분이라면 이해가 가실 겁니다.


일단 이 감독이 만든 영화들을 볼 때는, 스토리를 이해하려는 생각은 접고 보는 게 편합니다. 그리고 웬만큼 예술영화나 철학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 아니고서는 차라리 안 보는 게 낫다 싶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러닝타임 내내 지루하다 못해 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아, 물론 저는 예술영화나 철학영화 같은 거 체질적으로 못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만, 희한하게도 서호봉 감독 영화는 그럭저럭 흥미롭게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스토리보다는 영화 속 액션에 집중해서 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감독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잠시 고민도 해봤지만, 오히려 머리만 아파지더군요. 뭔가 감독도 생각이 있으니까 이렇게 영화를 만든 것일텐데... 머리가 아파서 그런 건 넘겨버리고 영화 속 액션에 집중했습니다. 



일단 기본적인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무뢰배에 의해 누이가 강간당하는 것을 눈 앞에서 지켜보고도, 지켜주지 못했던 한 사내가 그 충격으로 출가해서 '류백원'이라는 새 이름을 얻은 뒤, 활의 고수에게 궁술을 배워 무림으로 들어오며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뒤에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스토리도 복잡하게 얽혀서 이어집니다만, 역시 이해하면서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설명하진 않겠습니다.


참, 이 영화의 제목을 보고 속으시면 안됩니다. 제목이 '활'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영화 <최종병기 활>처럼 주인공이 활을 들고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활약을 펼치는 영화가 아닙니다. 물론 주인공의 주무기가 활이고, 결국 핵심 키워드가 활인 것은 맞습니다만, <최종병기 활>과 같은 화려한 활 액션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이 영화는 활에 담긴 심오한 철학과 궁술에 담긴 원리를 권술로 풀어나가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고 보면 안됩니다. 하지만 활을 진지하게 배우는 사람들이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선 활 뿐만 아니라 창술, 권술 등 다양한 스타일의 액션이 등장합니다. 특히 권술의 경우는 역시 서호봉 감독답게, 밋밋하지만 현실에 가까운 스타일로 표현됩니다. 상대방과 화려하게 초식을 주고받으며 비현실적인 대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근접전'을 한다면서 서로 의자에 앉아 손을 맞대고 영춘권의 치사오하듯이 대련을 하는 장면이 주를 이룹니다. 그리고 창술 역시 결코 화려하지 않습니다. 창의 기본기술을 몇 합 주고받다가 싱겁게 끝납니다. 물론 대단히 현실적인 액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액션영화는 '빠르고 화려한 액션'이 공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무술감독들도 점점 화려하고 아크로바틱한 동작들로 액션을 연출하고 있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특수효과까지 도입되어 굉장히 자극적인 액션이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극에 길들여진 요즘 관객들에게 확실히 이런 액션은 밋밋하다 못해 허접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히 갈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석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네요. 네이버 영화 리뷰들을 찬찬히 살펴보니까, '기존의 화려하고 말도 안되는 중국무협영화를 비웃기 위해 만든 영화다', '블랙코미디 영화다', '완전히 허접한 액션영화다' 등등...


하지만 개인적으로 무예를 수련하는 입장에서는 동작 하나 하나 흥미롭게 봤습니다. 특히 이 영화에 등장한 배우 우승혜(2015년 작고)는 실제 무림의 고수로 명망이 높았던 분입니다. 검술에도 조예가 깊어, 소실된 당나라 시대 검법 '쌍수검법'을 복원했을 정도라고 하니 말 다했죠. 그런 분의 몸짓을 영화로나마 접할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여하간 무예를 수련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하고, 실제 무술인이기도 한 배우들의 몸짓도 눈여겨 볼 만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는 내내 계속 영화 속 우승혜 노사의 몸놀림이 아른거리네요. 덕분에 몸도 근질거립니다. 마침 날이 밝으면 무예24기 정규수련이 있는데, 오랜만에 장병기(특히 기창)를 휘두르면서 근질거리는 몸을 풀어봐야겠습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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