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CGV용산에 가서 <덕혜옹주>를 봤습니다.



(사진: 영화 <덕혜옹주> 공식 포스터 - 출처: 네이버 영화)


요즘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인천상륙작전>만큼이나 개봉 전부터 말이 많았던 작품이죠. <인천상륙작전>이 '반공 프로파간다 영화'라는 선입견 탓에 말들이 많았다면, <덕혜옹주>는 '역사왜곡' 논란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바 있습니다. 공개된 예고편에서 덕혜옹주가 항일독립운동을 한 것처럼 묘사되었는데요, 실제로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기록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영화를 보니 영화 속 덕혜옹주 역시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의지를 보이는 인물은 아닙니다. 예고편의 편집을 자극적으로 하려다보니 그런 부분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우려를 가지고 영화를 본 관객들 중에서 생각이 바뀐 사람들이 많은 것 같네요. <인천상륙작전>이 개봉 전 전문가들의 혹평과는 달리 일반 관객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으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처럼, <덕혜옹주> 역시 개봉 이틀 만에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진: 영화 <덕혜옹주>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일단 영화의 막이 올라가면서 '이 영화는 허구가 가미된 팩션영화'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덕혜옹주의 비참했던 삶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상하이 망명 작전' 등은 모두 영화적 허구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그것도 엄연한 역사왜곡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있겠지만, 제 생각엔 영화적 재미를 위해 이 정도의 허구는 가미되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실제로 실행에 옮겨지진 못했지만, 어쨌든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계획했던 일이기도 하고, 이 장면을 넣었다고 해서 덕혜옹주가 항일독립운동을 한 것처럼 오해할 소지도 별로 없거든요. 무엇보다 인트로 부분에서 '팩션'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덕혜옹주의 실제 삶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은 뭐가 역사적 사실이고, 허구인지 스스로 검색해서 공부하는 효과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천군> 같은 영화는 아예 남북한의 군인들이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날아가 무기력한 청년 이순신을 각성시킨다는 시놉시스였는데요 뭘. 그에 비해 이 정도면 양반인 듯 합니다.


덕혜옹주는 어릴 적에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서, 일본인과 정략 결혼을 해야했고 그로 인해 일찌감치 치매 증상까지 보이는 등 상당히 불행했던 삶을 보낸 여인입니다. 해방 후에도 정치적 부담을 느낀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일본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은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이혼한 그녀는 종적을 감추었다가, 나중에서야 일본의 한 정신병원에서 발견되었죠. 뜻 있는 이들의 노력 덕에 생전에 고국으로 돌아올 수는 있었지만, 이미 정신적으로 폐인이 되었기에 그녀의 삶은 결코 행복했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



(사진: 실제 덕혜옹주의 어릴 적 모습)


영화에서도 그런 덕혜옹주의 비참했던 삶이 잘 묘사되었기 때문인지 중간 중간 울컥하는 장면들이 꽤 많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덕혜옹주 개인의 삶도 안타까웠지만, 그녀의 삶을 통해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굴종의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 더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계속 상상을 하게 됩니다. 한택수(윤제문)처럼 비겁한 친일의 길을 걸었을까, 김장한(박해일)처럼 총을 들고 독립운동에 투신했을까. 다 부질 없는 상상에 불과할 뿐이지만,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그런 상상이라도 계속 하게 되네요.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 <암살>과 이 영화를 같이 보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9월에는 의열단을 주제로 한 영화 <밀정>이 개봉한다고 하니, 무척 기대됩니다. 요즘 들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는 제 입장에서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알면 알수록 탄식만 나올 정도로 아프고 괴로운 역사지만, 그만큼 더 외면해서는 안될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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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CGV용산에 가서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보고 왔습니다.


이 영화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이끌어낸 'X-ray 첩보작전'을 다룬 영화입니다. 이정재, 이범수와 같은 국내 톱배우는 물론 헐리우드 톱배우 '리암 니슨'이 맥아더 장군 역할을 맡아,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죠.



(사진: 영화 <인천상륙작전> 공식 포스터 - 출처: 네이버 영화)


사실 개봉 당일부터 보려고 벼르던 영화였는데, 이런 저런 일로 관람을 미루다가 비로소 오늘에서야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영화를 본 관객들이나 평론가들의 평이 혹평에 가까울 정도라서, 보기도 전에 기대보다는 걱정이 컸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은 작품이더군요. 요근래 본 영화 중에서 그래도 재밌게 본 영화였습니다. 2시간 좀 안 되는 러닝타임 동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봤어요. 딱히 반전이랄 게 없는 스토리 구조 탓에 약간 밋밋하게 느껴진 점 빼고는 군데군데 감동적인 장면도 있었고, 무엇보다 실화라는 점 때문에 더욱 인상 깊었던 영화입니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이었습니다. 카메오로 등장하는 다양한 배우들의 활약도 흥미로웠는데요, 특히 맥아더 장군 역을 맡은 리암 니슨의 연기는... 중간 중간 잠깐씩 등장하는 데도 강렬하더군요. 몇 마디 툭툭 내던지는데, 대사마다 주옥 같은 명언이었습니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이 안 나는데, '늙고 젊은 것은 나이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이상(신념)을 버렸느냐 버리지 않았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다'라는 뉘앙스의 대사가 정말 가슴 깊이 와닿았습니다. 모두 맥아더가 실제로 했던 말들인 듯 합니다.



(사진: 영화 속에서 맥아더 장군 역을 맡은 리암 니슨 - 출처: 네이버 영화)


맥아더와 소년병의 대화


영화를 보면서 몇 번 울컥한 장면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맥아더 장군과 한국 소년병의 대화 장면이었습니다. 전우들이 몰살당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철수하지 않고 진지를 고수하고 있던 소년병에게, 맥아더 장군이 "왜 철수하지 않느냐"고 묻자, "상관의 철수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답을 합니다. 이에 감동을 받은 맥아더 장군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말하라. 다 들어주겠다"고 하자 "적과 싸울 수 있게 총과 실탄을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 꽤나 유명한 이야기인데, 실화였기에 더욱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반공영화는 무조건 나쁜가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스토리의 완성도, 배우의 연기를 떠나서 이 영화의 성격이 '반공영화'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영화를 직접 본 사람으로서 이 영화가 어느 정도 반공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6.25 전쟁을 다룬 영화에서 반공이라는 요소가 안 들어갈 수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6.25 전쟁 자체가 자유민주주의(반공)를 대변하는 대한민국(남한)+유엔군과 공산주의를 대변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소련+중국과의 국제적 이념 대결이었는데 말이죠. 특히나 이 영화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무명용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들의 활약에서 어떻게 반공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만약 반공을 부정한다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운 이들의 희생과 헌신마저 통째로 부정하는 꼴이 되어버립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반공영화면 무조건 나쁘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어쨌거나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에 명시한 나라이며, 6.25 전쟁 당시 공산당의 침략에 의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만 했던 아픔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공산주의(라고 쓰고 김씨 봉건왕조체제라고 읽는다)를 표방하는 북한은 호시탐탐 대남도발을 자행하며 한반도를 전쟁의 위기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따지고보면 사드 배치 문제도 결국 북한이라는 골칫덩어리가 있기 때문에 불거진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반공'을 이야기하는 게 왜 나쁜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놈의 공산주의가 반백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우리 민족을 이토록 괴롭히고 있는데 말입니다.


물론 반공영화에 대해 비판하는 시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갑니다. 엄혹했던 군사독재 시절, 정부의 주도 하에 반공영화가 하나의 흐름으로 정착되면서, 반공을 명분으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짓밟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강한 트라우마가 반공영화에 대한 반발심리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시각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결국 그런 시각도 '분단'이 낳은 상처라고 생각합니다. 분단이 없었다면, 이런 영화를 두고 반공이니 아니니 하면서 소모적인 논쟁을 할 까닭이 없었을테니까요. 여하간 반공영화는 무조건 나쁘다는 식의 의견에 대해서 존중은 하지만, 저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사진: CGV용산에 전시된 실제 'X-ray 첩보작전' 이야기)


이 영화의 주인공은 맥아더가 아니다


두 번째로 맥아더 장군에 대한 비판도, 이 영화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인 듯 합니다. 맥아더에 대해 공부해보지 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그는 공(功)만큼이나 과(過)도 큰 인물이라고 하더군요. 인천상륙작전으로 너무 부풀려진 인물이라고도 하고, 일각에서는 '오만방자하고 탐욕스러운 권력욕의 화신'이라고까지 악평을 하기도 합니다. 아예 인천상륙작전 자체가 너무 부풀려졌다는 말도 있습니다. 여하간 맥아더를 영웅시하는 영화이기에 보기 불편하다는 논리입니다.


일단 제가 맥아더에 대해 잘 모르는 관계로, 맥아더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맥아더에 대한 역사적 진실은 둘째 치고라도, 이 영화에서 맥아더를 '우상화' 혹은 '영웅화'하는 느낌은 결코 받을 수 없었습니다. 맥아더는 잠깐 등장할 뿐입니다. 그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름 없는 무명용사의 헌신에 감사를


이 영화의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이들은 '대한민국 해군 첩보대'와 '켈로부대'입니다. 이 영화는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유엔군이 멋지게 인천항에 상륙해 반격을 하는 부분을 다루고 있는 게 아니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한 이름 없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대한민국 해군 첩보대'와 '켈로부대'였다 - 출처: 네이버 영화)


저는 그래서 이 영화를 더욱 높이 평가합니다. '인천상륙작전=맥아더'라는 공식을 깨고, 이름 없는 영웅들의 헌신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죠. 그런 감독의 의도가 분명함에도, 자꾸 이 영화에 대해 '맥아더를 영웅시하는 영화'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잠깐 등장하는 맥아더의 강렬한 이미지가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한다면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건 리암 니슨이 워낙 연기를 잘한 탓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의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 정도 장면은 당연히 있는 게 마땅하다고 봅니다.


어쨌거나 인천상륙작전은 6.25 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 앞까지 밀렸던 우리 국군이 전세를 역전하는 기회가 된 역사적인 작전이었고, 그 의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의 맥아더의 행적이 어떻든 간에, 그 작전 하나만 놓고 보면 성공한 작전이었고, 그렇기에 그나마 대한민국이 이 정도 영토라도 보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한 무명의 용사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송구스럽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지켜주신 무명의 호국영령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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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후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홍금보의 보디가드>를 보았다. 원제는 아적특공야야(我的特工爷爷)인데, 직역하자면 '나의 특수할아버지'가 되겠다. 의역하자면 '특수요원 할아버지' 정도랄까?



개인적으로 요근래 인상 깊게 본 영화 중 하나다. 솔직히 말해서 스토리도 단순하고, 액션도 '홍금보치고는' 그렇게 대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영화 속 홍금보 자체가 '치매 걸린 노인' 설정이라, 일부러 화려한 액션을 자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만약 내 짐작이 맞다면 의도는 성공한 셈이다.


기본적인 스토리는 이렇다.


퇴직한 중앙경호국 요원(VIP를 경호하는 경호원, 우리로 치면 대통령 경호원)인 홍금보는 치매에 걸려 홀로 사는 노인이다. 함께 할 가족도 없고, 무뚝뚝하기만 한 그가 이웃집에 사는 여자아이의 적극적인 애정공세(?)에 점점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빚에 시달리던 그 여자아이의 아버지(유덕화)가 중국 조폭으로부터 위험한 제안을 받게 된다. 러시아 갱단의 보물을 훔쳐오면 빚을 탕감해주겠다는 것. 이에 러시아 갱단의 보물을 훔친 유덕화는, 변심하여 보물을 들고 잠적하게 되고 결국 그는 중국과 러시아 두 조폭 집단의 표적이 된다. 아버지의 잠적으로 여자아이가 위험에 빠지게 되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홍금보가 뛰어든다는 내용이다.



(사진: 중국 조폭들을 단신으로 때려눕히는 홍금보 - 출처: 네이버 영화)


일단 영화 막바지에 등장하는 액션씬을 보면서 약간 어이 없는 웃음이 나왔다. 영화를 보면 홍금보가 단신으로 중국 조폭들의 소굴로 쳐들어가 혼자서 조폭들을 다 때려눕힌다. 그런데 그 순간 러시아 갱단이 쳐들어온다. 홍금보는 다시 러시아 갱들을 단신으로 제압한다. 아무리 홍금보가 전직 중앙경호국 요원 출신이라고 해도, 영화 속에서는 운신조차 자유롭지 못한 치매노인일 뿐인데, 혼자서 중국/러시아 조폭들을 때려눕힌다는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설정을 감안해서인지, 조폭들과 힘겹게 싸운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액션이 펼쳐지는 내내 홍금보가 아주 힘들어하는 표정을 짓는다. 숨도 거칠게 내쉬면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이 묘사된다. 그런데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구르카칼'을 들이미는 근육질의 러시아 조폭들을 다 때려죽인다. 이런 묘사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달까. 영화는 현실이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개연성은 존재해야 한다. 아주 판타지를 표방하지 않는 이상, 이 영화의 액션씬은 약간 공감하기 어려웠다고 본다.



(사진: 홍금보는 중국 조폭에 이어 러시아 갱들도 단신으로 제압한다 - 출처: 네이버 영화)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에 상당히 높은 평가를 주고 싶다. 비현실적인 액션에 공감하기 어려웠다는 앞의 평가와 모순되는 말이긴 하지만, 그런 비현실적인 액션씬을 통해서라도 홍금보가 건재하다고 애써 위안을 삼고 싶었기 때문이다. 


홍콩무협영화 좀 봤다 하는 사람들이라면, 홍콩무협영화에서 홍금보가 차지하는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것이다. 그는 존재 자체로 이미 홍콩영화의 산 증인이자, 역사다. 그리고 이제는 전설의 경지를 넘보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의 움직임이 둔해진 것도 사실이다. 


사실 6년 전, <엽문 2 - 종사전기>에 홍가권의 고수로 출연하여, 견자단과 용호상박을 이룰 때만해도 그가 많이 건재하다고 느꼈는데, 이번 영화에 나온 그의 모습은 많이 노쇠해진 느낌이었다. 물론 영화 설정 탓에 분장을 일부러 그렇게 한 것도 있겠지만, 실제로 홍금보의 나이가 벌써 65세다. 한국 기준으로는 이미 노인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런 홍금보를 보면서, 한때 펄펄 날았던 홍금보가 이제는 이렇게 노쇠해졌구나 싶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그래서 액션씬 자체는 공감하기 어려웠으면서도, 내 마음 속에서는 '홍금보 죽지마라... 죽지마라.. 다 이겨라'를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늙고 비대한 몸으로 힘겹게 중국/러시아 조폭들을 쓰러트리는 모습에서, 애처롭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그의 절박한 몸부림에서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겹쳐들리는 듯 했다.


얼마 전, 공개된 성룡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영화 촬영 탓에 분장을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흰 머리도 훨씬 많이 늘어나고, 다크서클이며 주름이 가득해 정말 힘 없는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더불어 이연걸 역시 갑상선암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이보다 훨씬 늙어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낸 바 있었다. 


그런 걸 보면, 평생 늙지 않고 펄펄 날아다니며 악당들을 물리칠 것만 같은 영웅들도... 시간의 흐름 앞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그러나 그들이 늙어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신세가 될지언정, 내 기억 속의 그들은 언제까지나 펄펄 날아다니며 악당들을 물리치는 히어로다. 과욕일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10년 이상은 더 그들의 화려한 액션을 스크린을 통해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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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야심한 밤을 틈타 중국무협영화 한 편을 감상했습니다. 한 달 전쯤에 국내 개봉도 했던 영화 <활 : 명궁 류백원>이라는 영화입니다. 원제는 '전사류백원(箭士柳白猿)'입니다.



(사진: <활 : 명궁 류백원> 국내 공식 포스터 -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 감독이랑 출연진을 보니, 대충 어떤 스타일의 영화일지 보기도 전에 이미 감이 오더군요. 서호봉 감독이 맡은 영화인데, 이 감독은 예전부터 상업영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영화들을 만들어왔죠. 이 감독이 만든 대표적인 영화가 무사 : 4대 문파와의 혈투> (원제: 왜구의 무기), <사부 : 영춘권 마스터> (원제: 사부)인데, 이 영화들을 보신 분이라면 이해가 가실 겁니다.


일단 이 감독이 만든 영화들을 볼 때는, 스토리를 이해하려는 생각은 접고 보는 게 편합니다. 그리고 웬만큼 예술영화나 철학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 아니고서는 차라리 안 보는 게 낫다 싶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러닝타임 내내 지루하다 못해 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아, 물론 저는 예술영화나 철학영화 같은 거 체질적으로 못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만, 희한하게도 서호봉 감독 영화는 그럭저럭 흥미롭게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스토리보다는 영화 속 액션에 집중해서 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감독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잠시 고민도 해봤지만, 오히려 머리만 아파지더군요. 뭔가 감독도 생각이 있으니까 이렇게 영화를 만든 것일텐데... 머리가 아파서 그런 건 넘겨버리고 영화 속 액션에 집중했습니다. 



일단 기본적인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무뢰배에 의해 누이가 강간당하는 것을 눈 앞에서 지켜보고도, 지켜주지 못했던 한 사내가 그 충격으로 출가해서 '류백원'이라는 새 이름을 얻은 뒤, 활의 고수에게 궁술을 배워 무림으로 들어오며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뒤에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스토리도 복잡하게 얽혀서 이어집니다만, 역시 이해하면서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설명하진 않겠습니다.


참, 이 영화의 제목을 보고 속으시면 안됩니다. 제목이 '활'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영화 <최종병기 활>처럼 주인공이 활을 들고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활약을 펼치는 영화가 아닙니다. 물론 주인공의 주무기가 활이고, 결국 핵심 키워드가 활인 것은 맞습니다만, <최종병기 활>과 같은 화려한 활 액션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이 영화는 활에 담긴 심오한 철학과 궁술에 담긴 원리를 권술로 풀어나가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고 보면 안됩니다. 하지만 활을 진지하게 배우는 사람들이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선 활 뿐만 아니라 창술, 권술 등 다양한 스타일의 액션이 등장합니다. 특히 권술의 경우는 역시 서호봉 감독답게, 밋밋하지만 현실에 가까운 스타일로 표현됩니다. 상대방과 화려하게 초식을 주고받으며 비현실적인 대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근접전'을 한다면서 서로 의자에 앉아 손을 맞대고 영춘권의 치사오하듯이 대련을 하는 장면이 주를 이룹니다. 그리고 창술 역시 결코 화려하지 않습니다. 창의 기본기술을 몇 합 주고받다가 싱겁게 끝납니다. 물론 대단히 현실적인 액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액션영화는 '빠르고 화려한 액션'이 공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무술감독들도 점점 화려하고 아크로바틱한 동작들로 액션을 연출하고 있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특수효과까지 도입되어 굉장히 자극적인 액션이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극에 길들여진 요즘 관객들에게 확실히 이런 액션은 밋밋하다 못해 허접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히 갈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석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네요. 네이버 영화 리뷰들을 찬찬히 살펴보니까, '기존의 화려하고 말도 안되는 중국무협영화를 비웃기 위해 만든 영화다', '블랙코미디 영화다', '완전히 허접한 액션영화다' 등등...


하지만 개인적으로 무예를 수련하는 입장에서는 동작 하나 하나 흥미롭게 봤습니다. 특히 이 영화에 등장한 배우 우승혜(2015년 작고)는 실제 무림의 고수로 명망이 높았던 분입니다. 검술에도 조예가 깊어, 소실된 당나라 시대 검법 '쌍수검법'을 복원했을 정도라고 하니 말 다했죠. 그런 분의 몸짓을 영화로나마 접할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여하간 무예를 수련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하고, 실제 무술인이기도 한 배우들의 몸짓도 눈여겨 볼 만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는 내내 계속 영화 속 우승혜 노사의 몸놀림이 아른거리네요. 덕분에 몸도 근질거립니다. 마침 날이 밝으면 무예24기 정규수련이 있는데, 오랜만에 장병기(특히 기창)를 휘두르면서 근질거리는 몸을 풀어봐야겠습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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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어떻게 살 것인가

저자: 유시민

출판사: 아포리아

출판년도: 2013년


[책 소개]


자유인으로 돌아온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되짚어본다! 


정치인에서 자유인으로 돌아와 내놓은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 세상의 변화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하면서 한 걸음 앞서 시대와 삶의 과제를 고민해 왔던 유시민이 정치시장을 떠나 지식시장으로 복귀하여 내놓은 첫 책이다. 이 책에서 유시민은 도덕을 설교하거나 당위를 주장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로세우기 위한 사상이나 이론을 설파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드러내 놓고 비판하거나 위로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자기 자신의 삶을 냉정하게 성찰하면서 인생의 기쁨과 아픔,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삶과 죽음, 개인과 사회, 자유와 공동선, 진보와 보수, 신념과 관용, 욕망과 품격, 사랑과 책임, 열정과 재능 등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물질적 정신적 요소들을 나름의 시각으로 해석한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여러 관념들을 깊게 들여다보면서 인간의 존엄과 인생의 품격,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찬찬히 되짚어 본다. 


출처: 네이버 책


[책 감상평]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것은, 전역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서 '나가서 뭐 해먹고 살아야 하나' 한창 고민하던 때였다. 다른 책을 사기 위해 들렀던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끌려서 집어들게 되었다. 지금의 내 처지에 꼭 읽어봐야 할 책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놓고 책장 속에 묵히고만 있다가, 이제서야 읽었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경험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루면서, 그를 통해 느낀 바를 담담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그동안 내가 원했던 삶을 살지 못했다", "내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지 못했다"며 아쉬워한다. 그리고 이 책을 쓰게 된 계기 역시, 앞으로는 그런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저자가 살아왔던 길을 되짚어보면 이해할 만도 하다. 그가 태어나 자랐던 시절은 오랜 군부독재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짓밟히던 때였다. 엄혹했던 그 시절, 군부독재에 온 몸으로 맞서 싸워가며 처절하게 투쟁했고, 자연스럽게 정치판에 뛰어들어 정치인으로서는 나름 최고의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국무위원(보건복지부 장관)까지 지냈던 이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정치인으로서의 삶은 내가 원한 삶이 아니었고, 따라서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시절이 자신을 그렇게 이끌었을 뿐, 자신이 진정 꿈꾸었던 길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하기 싫었던 일에서 벗어나, 남은 생은 자신의 욕구대로 살고 싶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며 진심 어린 조언을 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을 통해 당장 내가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확신을 얻은 것은 아니다. 내 앞 길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온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실 이 책은 누구나 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강조한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인생은 유한하니 사후세계를 생각하지 말고, 지금 현재의 시간에 충실하라', '일하고 놀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라' 등등... 누구나 머릿 속으로는 알고 있는 내용 아닌가. 그리고 다들 그렇게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문제는 '실천'에 있다. 머리로만 알고 실천을 하지 않으니, 삶은 바뀌는 게 없고, 독자들은 계속해서 이런 책을 찾아 읽으며 답을 구하려고 한다. 결국 핵심은 실천이라고 본다. 이 책을 읽고 정말 마음 가는대로 한 번 살아보자고 다짐하고 실천한다면, 이 책의 진가는 그때 빛을 발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아쉬운 건, 이 책의 깊이가 그리 깊은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저자는 인용하는 구절마다 각주를 통해 명확한 출처를 밝혔는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같은 공신력 있는 문헌 뿐만 아니라 개인의 블로그에서 인용한 것들도 출처를 정확하게 밝히고 있다. 저자 입장에서는 사소한 것 하나 하나 출처를 정확히 표기함으로써, 정직함의 미덕을 내세우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사실 인터넷 블로그에 떠도는 내용 중에 검증되지 않은 내용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책장을 덮고 나니, 정치인 유시민은 잘 모르겠으나 '글쟁이 유시민'으로서의 삶은 본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바를 이루기 위해 과감하게 정치를 그만둔 용기도 그렇거니와, 글을 쓰기 위해 들였던 노력들이나 그만의 글쓰기 철학이 상당히 감명 깊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의 글에서 거짓, 위선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진솔함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듯했고, 그래서 상당히 설득력이 느껴졌다.


나 역시 글쟁이로서의 삶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인생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젊은 청춘으로서, 그의 책을 통해 느낀 바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치인 유시민이 아니라 글쟁이 유시민으로서의 그의 남은 삶을 응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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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정도전을 위한 변명

저자: 조유식

출판사: 휴머니스트

출편년도: 2014년



<책 소개>


정치란 무릇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 혁명가 정도전, 민본주의 국가 조선을 설계하다


조선의 건국은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라 고려 말의 구습을 청산하는 혁명적 사건이었다. 이때 세대교체를 이룬 주역이 바로 삼봉 정도전이다. 그러나 그는 태종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500년을 만고역적의 대명사로 낙인찍혀왔다.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고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인 혁명가 정도전은 '나라는 백성이 근본이고, 백성은 먹을 것이 하늘'이며, '정치란 무릇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민본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나라 조선의 문물제도를 만들었으며, 경복궁을 비롯한 서울 도심의 기본을 설계하는 등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다져놓았다. 그럼에도 그는 왜 역적의 누명을 쓸 수밖에 없었는가? 여기 정도전의 삶과 죽음을 집요하게 파고든 파란만장한 기록이 그의 목소리를 대신해 역사의 진실을 들려준다.


<책 리뷰>


입대 전에 정말 재미있게 본 드라마 중 하나가 바로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이었습니다. 사실 그 전에도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일생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했고, 따라서 그의 캐릭터에서 큰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정도전>이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면서, 이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공부하면 할수록 참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조선왕조를 태조 이성계가 세운 것으로 생각하지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조선을 세우고, 조선을 설계한 이는 바로 '삼봉 정도전'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부패한 고려왕조를 뒤엎고 새 왕조를 세우겠다는 야심으로 변방 호족인 이성계를 설득해 왕위에 올린 이가 바로 정도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도전이 없었더라면 조선 역시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성계는 그 자신 스스로가 왕조를 세울 야심을 갖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일생을 보면 스스로 무언가를 쟁취하기보다는, 누군가 부추기거나 추대하면 마지못해 수락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물론 창업군주이니만큼 겸손의 미덕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미화일 수도 있겠지만, 기록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살펴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도전이 조선을 세우기 위한 설계도를 가지고 이성계를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함주막사에서의 운명적인 만남이 없었더라면... 이성계는 그저 그런 변방의 무장으로 남았으리라 봅니다. 설사 중앙에 올라서더라도, 이인임과 같은 권신이 되었지 새 나라의 창업군주까지는 넘보지 못했을 겁니다.


여하간에 이 드라마가 한창 방영되던 시기에, 정도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주문했던 책입니다. 하지만 읽어보기도 전에 군대에 가느라... 전역하고서야 비로소 책을 펼치게 되었군요. 그래도 평생 서고에 묵혀두지 않고, 읽게 되었으니 다행한 일 아니겠습니까.


이 책은 정도전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국내 최초의 대중역사서라고 해도 틀린 표현이 아닐 것 같습니다. 1997년에 초판이 나왔는데, 실제로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정도전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촉발되었다고 하니까요. 정도전에 대해 많이 알려진 오늘날까지도 정도전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이 책이 단연 독보적으로 우선순위에 노출됩니다. 그만큼 정도전에 대해 자세하게 다룬 책이라는 뜻이겠지요. 아무튼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도 정도전에 대해서는 다들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고 하니, 정도전은 자신을 역적으로 규정한 조선왕조가 무너진 뒤에도 꽤 긴 시간 동안 역사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책은 정도전 정권이 무너지는 '왕자의 난'부터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이방원의 칼날 앞에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한 정도전의 모습과,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정도전의 모습... 실제 기록에 있는 대조적인 두 장면을 언급하면서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가 의문을 던집니다. 저자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전제를 언급하며, <실록>과 같은 곳에 언급된 정도전의 행적은 많이 왜곡되었을 거라 추정합니다. 그리고 책 제목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바지만, 저자는 승자(이방원)에 의해 왜곡된 모습으로 알려진 패자(정도전)의 올바른 모습을 복원하고자하는 시각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그러기 위해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상당히 논리적으로 상황을 추론하고 있습니다. 정도전이라는 인물을 신원하기 위해, 과도한 상상을 동원한다거나 억지 추리를 하는 무리수는 두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기록의 허술함(진실의 여지를 남겨두기 위한 사관의 의도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만)을 바탕으로 조각난 역사의 진실을 퍼즐 맞추듯이 끼워나가는 방식이 흥미진진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느낀 것이지만, 정도전은 정말 천재적인 인물인 것은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국방 그리고 음악까지... 그가 발을 걸치지 않은 분야가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얕게 알고 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성종 때 완성되는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의 모티브가 되는 <조선경국전>을 지었으며, 요동정벌을 준비하면서 군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진도>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만든 <진도>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라이벌이었던 태종 이방원이 훗날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데 적용합니다. 웬만해선 그의 흔적을 부정하고 싶었을텐데, 그만큼 뛰어난 병법이었다는 뜻이겠지요) 조선왕조 개국을 찬양하는 노래도 스스로 지었고요. 이 모든 것을 정도전 혼자서 했다고 하니, 세종대왕 못지 않은 천재가 바로 정도전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요. 오히려 그런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을 타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울 수 있었죠. 다만 사람을 잘못 만났다고 해야할까요, 아니면 그것이 그의 한계였다고 봐야할까요. 


어느 시대가 되었건 간에 정도전 같은 인물은 살아남기 힘듭니다. 천재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독주하는 인물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집단에서도 눈총을 받기 마련입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요.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정도전과 이성계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그래서 '왕자의 난'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더라면, 정말 지금과는 다른 역사가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쉬움도 있고요. 그래도 태종 이방원이 집권했기에 '세종대왕'이라는 걸출한 위인을 만날 수 있었고, 오늘날 우리가 한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볼 따름입니다.


아무튼 정도전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그의 삶과 철학은 알기 힘들었는데, 이 책을 통해 좀 더 그의 삶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도전이라는 캐릭터에는 큰 감흥을 못 느꼈었는데, 이제는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대해 상당히 흥미를 느낍니다. 


그의 천재적 능력을 따라가기에는 제 자신의 능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민본'을 위한 그의 지고지순한 이상과, 권력에 도취하지 않고 젊은 시절 품었던 꿈을 실현하고자 했던 뜨거운 열정... 여러모로 삶을 살아가는 자세나 태도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정도전, 어쩌면 이런 인물이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계에 꼭 필요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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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열아홉 바리스타, 이야기를 로스팅하다

부제: 오늘의 커피를 만드는 열아홉 카페의 바리스타와 로스터가 들려주는 커피와 인생

저자: 조원진

출판사: 따비

출판년도: 2016


<책 소개>


카페의 이름이 다헌이든 커피집이든 다방이든 어떠리.

그들에게 카페는 커피라는 종교를 섬기는 사원이며, 커피는 지옥 같은 세상살이를 견디게 하는 자유다.


커피 그 자체가 삶인 바리스타와 로스터들이 털어놓는 커피 인생


누군가에게 카페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무료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고, 누군가에게는 우아한 돈벌이를 위한 밑천이다. 누군가에게 커피는 습관적으로 들이켜는 음료거나 피로를 잊게 해주는 카페인이고, 누군가에게는 별다른 기술 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상품이다. 그러나 여기, 커피가 인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술을 마시거나 농담을 나누다가도 주제는 언제나 커피로 돌아오고, 카페의 생존을 걱정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한 잔의 커피를 더 맛있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한다.


중학생 때부터 커피를 마셔온 저자가 꼽은 열아홉 카페의 바리스타와 로스터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카페를 운영하며 커피를 내어준다. 그들의 카페는 서로 개성도 다르고 그들이 내어주는 커피의 맛도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갖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커피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그저 즐기면 된다고. 다만, 그러기 위해 그들은 자신들의 카페를 음악과 커피의 맛과 향으로, 그리고 정성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리 뷰>


요새 커피에 관심이 많아 구입하게 된 책. 출간된 지 2달도 안 된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책 소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커피에 대한 이론을 다룬 책은 아니다. 카페를 운영하며 커피를 만드는 이들, 즉 '바리스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고, 직업으로서의 바리스타들의 삶은 어떨까 궁금한 마음에 읽게 된 책이다. 커피에 관심이 많은 저자가 다양한 바리스타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어렵지 않다. 그래서 앉은 자리에서 가볍게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자신을 커피의 세계로 인도해 준 바리스타부터 시작해서, 전국 방방곡곡에 숨은 커피 명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스페셜티로 대표되는 커피 리브레의 대표 서필훈부터, 올드스쿨의 대명사이자 한국 카페의 원조 격인 학림다방의 이충렬 사장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곧 한국 커피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커피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대중들은 커피를 어떻게 받아들여왔는지 생생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인터뷰하는 바리스타들에게 공통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커피를 내리는 데 영감을 주는 도구가 무엇이냐'고. 정말 신기하게도 커피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도구들은 별로 없다. 연필, 레코드판, 낡은 책상 등... 언뜻 봐서는 대체 커피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관해보이는 것들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된다. 


한국 커피의 대부인 바리스타 이정기는 '인문학'을 도구로 든다. 그는 젊은 시절 중국문학을 전공한 인문학도였다. 평생을 송사(宋詞) 연구에 매진했던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의 전공에 회의를 느끼고 커피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다. 하지만 젊은 시절 매달렸던 인문학은 오히려 그의 강점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로 사유하는 인문학적 사고방식은 커피의 세계에 접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바리스타들이 추구하는 커피의 맛이나, 커피를 대하는 관점이나 철학 등 모든 부분에 있어 공통점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각양각색의 철학을 가지고 커피를 내리는 그들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철학을 관통하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것. 


여기서 맛있는 커피란, 많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보편타당의 맛을 의미한다. 아무리 케냐 AA의 고품질 원두로 내린 최상급 커피라고 할 지라도, 사람들이 거부한다면 맛있는 커피라고 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바리스타들에게 넘어야 할 목표는 '믹스커피'란다. 믹스커피야말로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커피시장을 독점해왔는데, 그 이야기는 곧 믹스커피의 맛이 사람들의 입맛에 보편타당한 맛으로 자리잡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리스타들은 믹스커피만큼이나 보편타당한 맛을 창출하기 위해, 오늘도 보이지 않는 카페의 주방 뒤에서 열심히 콩을 볶고 끊임없이 새로운 커피에 도전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맛있는 커피를 내리고자 하는 이유는, 자신의 커피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 위한 목적이 클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당연히 '카페의 생존' 문제도 걸려있다. '커피는 소통의 도구'라는 말이 맞긴 하지만, 몇몇 바리스타들은 "그 말은 대형 프렌차이즈 업계가 독점하고 있는 정글 같은 커피시장에서 살아남은 뒤에나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씁쓸하게 말한다. 직업으로서 바리스타를 선택한 이들에게 '커피는 소통의 도구'라는 말은 사실 배부른 소리일 터. 그래서 이 책에서는 카페의 생존을 고민하며 현실과 부분적으로 타협하해야하는 바리스타들의 고민과 삶의 애환도 주목한다.


그들의 공통점을 또 하나 들자면, 바리스타가 되기 전부터 이미 열정과 고집이 남달랐다는 점이다. 여기 열아홉 바리스타들은 대학 교수 자리를 제의받을 정도로 인문학을 오래 전공했거나, 그림 혹은 음악에 미친듯이 매달렸던 시절이 있었다. 결국 그 길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바리스타로 전환하긴 했지만, 바리스타가 되기 이전에도 이미 삶의 목표와 철학을 뚜렷하게 가지고 '열정적인 삶'을 살던 이들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언가에 미친 듯이 홀릴 정도로 고집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바리스타라는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어서도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리라. 결국 자신의 삶에 열정이 있고, 고집이 있는 사람은 어딜 가도 성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리스타에 관심이 없고, 심지어 커피에조차 관심이 없는 이들일지라도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들의 커피를 대하는 철학이나 자세 혹은 그들의 삶 그 자체를 통해 생각할 거리를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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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주문한 책들을 아직 다 읽지도 못했는데, 방금 전에 온라인 서점을 통해 책을 새로 주문했습니다. 기존에 산 책들을 항상 다 읽기도 전에, 자꾸 새 책을 사들이는 습관이 제 병폐이긴 합니다. 


하지만 책 주문을 앞두고 고민을 많이 합니다. '이 책을 꼭 사서 읽어야 할 정도로 소장가치가 있는가', '언젠가 꼭 읽을 책인가' 등등... 몇 번의 자체문답을 거친 뒤에, 확신이 서면 구매를 하죠. 일단 사놓고 보면 언젠가는 읽게 되리라는 심산으로요. (이런 마인드로 구매해놓고 여전히 읽지 않아, 먼지만 풀풀 날리는 책들이 꽤 많은 게 함정이지만요)



일단 '바리스타 자격증 2급 기본서'는 제가 지금 바리스타 자격증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주문했습니다. 어제 부로 동네 문화센터에서 듣고 있는 홈바리스타 강좌가 모두 끝났는데, 강사 선생님께서 "필기 정도는 혼자 문제집 풀고 독학해도 충분히 딸 수 있다"면서 필기 시험만 독학으로 따두라고 권하시더군요. 그 다음에 실기반만 따로 수강하면, 바리스타 자격증 따는 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여름 동안 필기시험 공부를 해볼 요량으로 주문했습니다.


'일본 검도의 역사'는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입니다. 눈여겨봤다가 좀 더 저렴하게 사려고 온라인 서점을 통해 주문했죠. 검도하면 역시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을 무시할 수 없는데, 생각보다 국내에는 일본 검도 관련 서적이 별로 없더라고요. 무예24기 중에서도 검술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검의 세계에 대해 깊이 알고 싶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주문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는 제가 얼마 전에 <오마이뉴스>에 서평 기사도 썼던 책입니다. 사실 이 책의 경우는 이미 읽은 책이지만, 따로 사진 않았더랬습니다. 책이 풀리자마자 오프라인 서점에서 읽었거든요. 이 책 역시 오프라인에서 사는 것보다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하는 게 훨씬 저렴했기 때문에 그랬죠. 그래서 이미 읽은 책이지만, 소장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기 때문에 주문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돈 많은 독지가였다면, 이 책을 다량 구매해서 주위에 기증하고 싶은데, 그럴 여력이 없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만큼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문해놓고 보니 책장에 아직까지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정말 많군요. 올해는 다른 일에 눈독들이지 말고, 서고에 있는 책들을 모두 독파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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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제목


인문학 습관/윤소정 저/다산초당/2015


■ 저자에 관하여


저자 윤소정은 현재 인재양성소 '인큐'라는 교육기업을 운영하는 여성교육가이다. 


그녀는 굉장히 불우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하는데, 아버지의 실직으로 집안이 기울면서 굉장히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고 회고한다.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공부와도 담을 쌓게 되면서,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당시 그녀는 B와 D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단다. 그러나 뼈를 깎는 노력으로 영어공부에 매진, 훗날 대학교의 영어강사로 취직하는 데 성공한다.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교에 회의를 느끼고 자퇴를 결정하였으며,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인재양성소 '인큐'를 설립했다. 일상의 모든 것을 통해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실용 인문학'을 전파하는 것이 그녀가 운영하는 인큐의 설립취지라고 한다.


참고로 나는 아직 군 복무 중이었던 올해 초, 군대를 통해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다. 


매주 수요일은 정신교육을 하는 날이라, 전 부대원이 아침부터 '국방TV'를 시청하는데, 그때 '명강특강'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명사를 초청해 국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는 코너다. 여기에 윤소정 씨가 출연한 것이다. 사실 국방TV는 그냥 틀어만 놓고, 실제로 보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아리따운 젊은 아가씨가 나와서 특강을 하고 있으니까, 열심히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처음엔 그녀의 미모에 끌려서 특강에 집중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특강 내용에 공감하며 집중해서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녀와 내가 인연이 있던 것인지, 신기하게도 그 후로는 어딜 가도 그녀의 이름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읽게 된 '700만원짜리 도장을 파는 장인 이야기'에 탄식을 하며 읽을 정도로,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알고보니 그 글을 쓴 이가 바로 명강특강의 윤소정 강사였다. 그 이야기에 감명을 받은 나 역시 '사람 공부'를 해본답시고, 함께 무예를 수련하는 여동생을 불러내어 장시간 인터뷰를 해보기도 했다. (그 당시 내가 했던 인터뷰 링크: http://gabeci.tistory.com/109)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었다. 전역을 얼마 앞두지 않은 상황에서, 내게 무예를 가르쳐주시는 사부님이 "《인문학 습관》이라는 책을 한 번 읽어보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하며 책을 추천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책을 쓴 저자가 또 윤소정 씨였다. 그렇게 해서 읽게 된 책이 바로 지금 독서노트로 작성하고 있는 《인문학 습관》이다.


얼마 전에, 그녀가 운영하는 인큐에 가입해볼 요량으로, 인큐에 대해서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전역 후 백수인 나로서는 수중에 가진 돈이 없어 등록금이 다소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 열정대학조차도 간신히 입학을 결정하지 않았던가. 어쨌건 그녀와 나와의 인연이 계속 이어진다면, 꼭 인큐가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그녀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날이 있을 거라 확신한다.


■ 인상 깊은 구절


1. '열심히'가 아니라 '어떻게'를 고민하라 (p.7)


2. 세상은 그저 열심히 떡볶이를 만드는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맛이 있어야 합니다. 즉,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p.8)


3. "세상에는 매우 총명하고 고등교육을 받았으나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그들이 어려서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교육받고 근면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이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부지런하게 일해도 남과 똑같이 해서는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성공은 당신이 얼마나 많이 노력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 장옌, 「알리바바 마윈의 12가지 인생강의」 중 (p.9)


4. 중요한 일이 있기 전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깨졌다. (p.21)


5. "책이라는 것은 얼어붙은 나의 세상을 깨는 도끼와 같아야 한다." - 카프카 (p.22)


6. (서양 최초의 철학자를 묻는 교수의 질문에 학생들이 저마다 다른 대답을 내놓자) "답을 탈레스입니다. 이름을 기억하려고 하지는 마세요. 그가 왜 최초의 철학자인지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탈레스는 세상이 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사람입니다. 물론 그의 주장은 틀렸습니다. 세상은 물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최초의 철학자일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르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것, 이것이 곧 철학입니다!" (p.24)


7.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나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 (p.28)


8. 쐐기벌레는 앞에 가는 벌레의 자국을 보고 졸졸 따라가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에 흥미를 느낀 파브르는 재미있는 실험을 합니다. 쐐기벌레를 원형의 대형으로 줄을 세우고 서로의 엉덩이를 졸졸 따라가게 만들었죠.

그러고 나서 아주 맛있는 먹이를 대형 밖에 설치하였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한 마리라도 대형을 이탈하고 먹이에 달려들어야 하겠죠?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쐐기벌레는 무려 6일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앞에 가는 벌레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갔던 것입니다. 그러다 대다수가 죽어버렸습니다. 만약 이 중에 단 한 마리라도 용기 있게 대형을 깨고 이탈했다면 모두 살 수 있었을테죠. (p.30)


9. 깨달았다 = 깨뜨리다+다다랐다 = 깨고 다다랐다


10. 우리는 계속해서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에서 '사랑'을 배울 수 있으니까요.


11. 실제로 단점에 새로운 '의미 부여'를 하면서 더더욱 단단해지는 친구들이 많이 있답니다. 단점은 나쁘다는 고정 관념을 깨고 다르게 생각하는 습관을 키운다면 분명 우리 삶에 있어 단점 또한 최고의 자산이 되어줄 것입니다. (p.68)


12. 고흐 역시 우리처럼 매일 일을 하기 전에 자신을 의심했다고 합니다. '이 일이 내게 맞는 일인가?', '내가 이 일에 재능이 있을까?' 그림을 잘 그리는 일은 천재 화가에게도 고통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붓을 잡으면 늘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기 때문에 그 일을 쭉 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가 평생 그림을 그린 이유는 그것이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가슴 뛰는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몰입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p.104)


13.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결정하는 것이다 - 벤 스타인


14. "이건 너의 길이야. 남들을 따라가지 마" (p.116)


15. "불필요한 일에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 - 마키아벨리, 「군주론」 (p.117)


16. 자신이 하고자 하는 어떤 것의 본질에 집중한 뒤 기존의 시스템에서 잘못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겪다보면 자신만의 무기와 필살기가 만들어집니다. "무엇을 만들까?"를 고민하기 전에 그 무엇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현재 그 무엇이 지닌 문제점이 무엇인지부터 확인해보세요.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분명 해결 방법이 있다는 세상의 신호입니다. 그리고 그 해결 방법이 머리에만 머물지 않고 삶의 경험으로 도출되었을 때 진가를 발휘하죠.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고민이라면, 먼저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부터 따져보는 건 어떨까요?


17.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세상이 바뀌어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서운하리만큼 모든 것은 제자리였죠. 그러나 괜찮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제 자신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18. 나라는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누군가의 정해진 답이 아니라, 내 스스로 질문하고 풀어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꼭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결국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19.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도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 폴 호건


20. "공부는 한자로 '工夫'라고 씁니다. 이때 工은 천(天)과 지(地)를 연결하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夫는 천과 지를 연결하는 주체가 사람(人)이라는 뜻입니다. 공부란 천지를 사람이 연결하는 것입니다. - 신영복, 「담론」


21. "당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 조지 엘리엇


22. "'무엇을 안다'는 것이 '교양'은 아니다. 단순한 지식은 교양이 아니다. '안다'는 과정에서 익힌 것 또는 익힌 능력을 교양이라 할 수 있다." - 폴 풀키에


23. "만난 사람 모두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현명하다" - 「탈무드」


24.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그대 지금 무엇을 극복하고 있는가." - 니체 (p.302)


25. "붓글씨를 매일 쓰다 보면 말이여. 분명 어제랑 오늘은 나아진 게 없거든? 근데 3개월 전 썼던 글씨랑 오늘 쓴 글씨는 분명 달라져 있는겨. 인생사도 똑같혀."


26. "99도까지 열심히 온도를 올려놓아도 마지막 1도를 넘기지 못하면 영원히 물은 끓지 않는다고 한다. 물을 끓이는 건 1도, 포기하고 싶은 바로 그 1분을 참아내는 것이다. 그 순간을 넘어야 다음 문이 열릴 것이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다." - 김연아 (p.332)


■ 감상평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은, 평소 내가 품고 있던 고민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마치 내 머릿 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역사(인문학)를 전공하는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현실 속에서 역사(인문학)를 실용학문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윤소정은 '실용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죽은 학문이 아닌 '살아있는 학문'으로서의 인문학 공부를 할 것을 주장한다.


요즘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어딜 가도 '인문학'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인문학 열풍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열풍에 대해 나는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다. 인문학, 인문학 하는데, 과연 사람들은 인문학의 올바른 정의를 알고서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리고 인문학을 공부한답시고 '죽은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전공하고 있는 역사학을 예로 들어 한 번 살펴보자. 요즘 들어 '역사'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까지 비화될 정도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지 오래다. 특히 그중에서도 '학생들의 역사의식 부재'에 대한 이야기는,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다. 3.1절과 같은 특정 기념일만 되면, 언론에서는 반드시 이 이야기를 한 꼭지로 다루곤 한다. 그리고 항상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즉석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인용하곤 한다. 그런데 그 설문조사란 걸 살펴보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때 사용한 무기가 무엇인가?", "6.25 전쟁은 몇 년도에 발발했는가?"와 같은 질문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걸 틀릴 경우, 학생들의 역사의식에 엄청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자극적으로 뉴스를 편집해 보도하곤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때 사용했던 무기가 그렇게 중요한가? 나는 역사교육을 부르짖는 어른들이야말로, 역사를 왜 공부하는지 그 본질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도시락 폭탄으로 처단했든, 권총으로 처단했든 그런 미시사적인 부분은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다. 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처단한 이후의 국제정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등 전후 사정과 같은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라는 점이다. 


또 그 사건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을 생각해보게끔 유도하는 것이,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치고 배우는 길이라고 본다. 국, 영, 수를 공부하면서 안그래도 외울 게 많아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무기의 종류나 날짜와 같은 세세한 것까지 외우라고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학생들로 하여금 역사를 지루한 과목으로 기피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역사학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을 뿐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부하려는 시도는 별로 없다고 보여진다. 우선 인문학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사실 인문학이란 학문 자체가 꼭 문, 사, 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문학. 말그대로 '사람에 대한 학문'이다. 건축이나 경제, 정치학도 결국 사람을 위한 학문이기에, 인문학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더 나아가 주위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이해 역시 인문학을 공부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을 문, 사, 철의 범주에 가둬버리고서, 그것을 무슨 '지적으로 보이기 위한 상식' 정도로 한계를 지어버리거나, 외려 신성시해버리는 것은 인문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이 아닐까 싶다.


저자 윤소정 역시 그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문학이란 내 주위에 있는 사람, 사물을 관찰하면서, 그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 속에서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우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 책은,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자신의 단점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단점까지도 사랑할 줄 아는 습관을 들이는 것. 그리고 자신이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파악하는 것. 그래야만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고,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끌어나가야 타인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주체적인 관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내 자신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타인에 대해서도 이해하려 노력하게 된다. 이건 나 자신만을 아는 이기심과는 다르다. 나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하듯, 또한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그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사람에 대한 사랑, 배려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어도, 독자의 살아온 환경이나 생각하는 습관에 따라 느끼는 바가 많이 다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자신에 대해 먼저 이해하고+그 이해를 확장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내 생각을 공유하며+타인의 생각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을 인문학의 궁극적인 목표로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이 책 역시, 나 혼자 읽고 끝낼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고 서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그럴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혹여라도 나중에 독서 스터디 모임을 만들게 된다면 가장 먼저 이 책을 선정해보고 싶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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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대학 2016년도 3학기 기자학과 사전과제


■ 책의 제목


정의를 부탁해/권석천 저/동아시아


■ 저자에 관하여(저자에 대한 자신의 견해 포함) (300자)


이 책을 쓴 저자 '권석천'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법대 출신들이 가는 일반적인 코스(사법고시)를 걷지 않고, 언론계로 진출했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법에 애착을 느낄 수 없었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하지만 막상 신문사에 들어가니 법의 울타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한다. 법학이라는 그의 전공이, 그의 기자 생활을 규정지어버린 것이다. 


그는 사실 문화부 기자를 꿈꾸었지만, 신문사에서는 그의 전공이 '법학'이라는 이유만으로 '법조 기자'로 보내버린다. '개인의 사정은 조직의 필요 앞에 무력했다'는 그의 고백에서 무력감과 분노를 읽은 것은 나 뿐일까. 


여하간 그는 경향신문, 중앙일보 등지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중앙일보에서 논설위원을 하며 '권석천의 시시각각'이라는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한 주마다 중앙일보 지면에 실리는 그의 칼럼은 독자들에게 때로는 카타르시스를, 때로는 분노를 제공한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라는 한국 사회를 가르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벗어나, 합리적이면서도 감성적으로 사회의 현안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대중들에게 그가 '균형 있는 언론인'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나 역시도 이번에 그가 쓴 책을 읽으며, "아직까지도 이런 언론인이 남아있었다니..."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인상 깊은 구절 (25개 이상/각 구절 당 번호와 쪽수를 넣어주세요)


1. '칼럼은 편견이다.' 언젠가 읽은 작가 김훈의 한마디가 위안이 돼주었습니다. 그래, 꼭 정답일 필요는 없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을 보여주면 돼. 텅 빈 모니터, 깜빡이는 커서 앞에 진실하면 되는 거야. (p.5)


2. 가장 큰 난관은 용기였습니다. 팩트와 팩트를 논리로 이어가다보면 이 선을 넘어도 되는 걸까. 고민되는 지점이 나타나곤 합니다. 자기검열의 경고등이 켜지는 순간이지요. 기자로서의 양심에 비춰 문제가 없다면, 단순히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면, 글을 완성하기 위해 피할 수 없다면 눈을 질끈 감고 그 선을 넘었습니다. (p.6)


3. 매너가 신사를 만든다면 기자는 사건이 만드는 것입니다. (p.11)


4. 더 심각한 것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야, 자기기만쯤은 멋지게 해낼 수 있어야 먹이사슬의 위쪽에 설 수 있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데 있다. (p.23)


5. 2015년의 사건들은 세월호와 인과의 끈으로 묶여 있진 않더라도 최소한 겹쳐져 있다. 부끄러움의 자정 능력을 상실한 사회에서 항용 나타나는 현상이요, 징후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자기기만의 시스템을 더 높이 쌓아올리는 것인지 모른다. (p.24)


6. 시스템은 중요하다. 다만 시스템이 우릴 구조해줄 것이라 믿는 건 오산이다. 착각이다. 우리를, 우리 아이들을 위기에서 구해줄 수 있는 건 선장, 해경, 장관, 총리, 대통령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몸과 마음을 바쳐 움직여줘야 생명을 건질 수 있다. 스펙이 화려하다고, 신망이 높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진정성과 용기, 열정과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p.28)


7.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병균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머지 것들, 예를 들어 건강함, 성실함, 순수함 등은 이를테면 의지, 그러니까 결코 멈춰서는 안 되는 의지의 산물이죠. (p.32)


8.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선 희생하는 사람과 봉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피고인)는 국가를 위해 희생했고, 나(검사)는 봉사했다. (p.36~37)


9. "사도세자의 칼에 죽어간 환관과 나인이 100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의 죽음은 무시해도 되느냐"는 일갈이었다. 칼럼의 골격을 보면 사도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민초들은 돌아보지 않은 것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과연 우린 영조의 관점, 혜경궁 홍씨의 관점, 조선 사관의 관점에 묶여 있는 것일까. 뒤주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내버려진 환관과 나인들은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p.45)


10.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생각과 표현의 자유는 북한식 전체주의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가치다. 한 로스쿨 교수는 "종북이란 과장된 공포의 언어로 시민들을 위축시키는 일이야말로 북한의 유일사상 체제를 뒤따라가는 것, 즉 종북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p.60)


11. 우리가 할 일은 생경하고 철 없는 말들을 종북으로 뭉뚱그리는 게 아니다. 종북세력이 '무해한 광신도'가 되게끔 헌법 정신을 뿌리내리는 것이다. 항균 능력을 키워 '건강하게'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얻은 건강이 진정 우리의 삶을 지켜주고 민주주의를 꽃피우게 해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p.61)


12. 민주적 기본질서의 의미는 전체주의 정당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다. 그 의미를 자유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로 한정하는 경우 다원성과 가치상대주의, 정당의 자유를 제한하여 오히려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p.62~63)


13. 하지만 그들을 해산시키더라도 그들의 생각가지 해산시킬 수는 없다. 그들의 생각은 정부가 아니라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평가되고 걸러져야 한다. (p.64~65)


14. 법치주의는 법 만능주의가 아니다. 권력자의 횡포를 막고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다.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것 못지않게 법을 제대로 만들고 공정하게, 신중하게 적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법질서가 힘 있는 자의 편에 서 있는 건 아닌지,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을 내모는 도구로 쓰이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지 않는다면 또다른 억압일 뿐이다. (p.71)


15. 나는 공권력이란 말이 되도록 쓰이지 않았으면 한다. 국민이 정부에 위임한 건 권력이 아니라 권한이다. 권한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공(公)이란 수식어도 부적절하다. 공이 무조건 사(私) 위에 있다는 발상은 권위주의 체제에서나 가능하다. (p.75)


16. 하지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 문장력은 학력 순이 아닙니다. 문장력을 뒷받침하는 생각의 질은 어떤 고등학교 나와 어떤 대학 갔느냐에 좌우되는 게 아닙니다. 얼마나 자신의 삶에 진지하고 솔직했느냐, 다른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느냐,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느냐에 따라 생각의 질이 달라진다고, 저는 믿습니다. (...) 진정한 글의 힘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 아닐까요. (p.100~101)


17. 사과는 반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왜 분노하는지 상대방 말을 듣는 데서 시작돼야 하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정해야 한다. 반드시 상대방 눈을 보면서 해야 하고, 때를 놓쳐서도 안 된다. 그래야 사과하는 사람도, 사과 받는 사람도 마음을 열고 변화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p.138)


18. 국가의 명예란 국가가 스스로 그 명예를 주장하며 국가와 정부를 비판하는 국민을 처벌하거나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다고 하여 지켜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비록 악의적이고 상당성을 잃은 비판이라 할지라도 국민에 대한 설명과 설득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다. (p.150)


19. 감히 말씀드리건대 소통은 너(상대방)를 아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상대방을 자기 식대로 이해하고 해석한다고 공감이 이뤄지는 게 아니다. 소통과 공감은 오히려 나 자신을 제대로 알려는 노력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p.171)


20. 시스템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만드는 것이다. (p.174)


21. 총구에선 권력이 나오지만 투표함에선 권한이 나올 뿐이다. 민주공화국이라면 대통령이라도 공식적으론 권한이라고 해야 맞다. 그럼에도 우리는 권력을 인격화하고 우상으로 받들며 그 앞에 대(大)라는 수식어까지 붙여주고 있다. (...) 권력엔 부패가 따르지만 권한엔 책임이 따른다. (p.178)


22. 한바탕 칼춤 뒤엔 억울한 혈점(피가 맺혀 살갗에 생긴 점들)들 부지기수요, 원(怨)과 한(恨)이 봄날 벚꽃처럼 구천에 흩날렸으니, 탓할 것은 칼이 아니요, 그 칼 쓰다 각자도생(各自圖生) 떠난 자들 아니던고. (p.214)


23. "검찰에 있을 땐 정의냐, 불의냐, 나쁜 사람이냐, 아니냐로만 봤습니다. 그런 이분법으로는 그 무엇도 재단할 수 없다는 것, 저 자신을 포함해 대부분의 인간은 완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존재라는 것을..." (p.235)


24. "민주주의가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과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이들이 선거에서 패하게 하는 것이다. 멀고 험하고 귀찮은 길을 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면역력을 강하게 만든다." (p.275)


25. 그들은 취재 대상이나 피사체이기 이전에 사람이었다.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름과 사연을 묻고 셔터를 누르는 것까지 '기자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장에 급파되는 기자들은 재난자들에 대한 취재 기법과... 취재, 보도 과정에서 지켜야 할 구체적인 지침을 전달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고백에서 <중앙일보>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사가 자유롭지 못하다. (p.332)


26. 기자에게는 끝까지 믿음을 저버려선 안 된다는 '신뢰 의무'가 있다. 그 약속이 무너지면 언론도 무너진다. (p.333)


27. "언론이, 기자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해부할 만한 전문성과 집요함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옳다, 그르다, 당위론에 머무르는 것 아닙니까." (p.340)


28. 언론의 조폭성은 현장 상황을 사소하게 여기면서 내부의 생각을 강요하는 데서 나온다. 존경받는 성자도 모든 상황에서 옳을 순 없다. 보수든, 진보든 모든 언론이 듣기 싫은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반대쪽에 선 이들의 다른 면도 보려고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p.341)


29. 정의와 취향은 반대쪽에 있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 정의로운 사회는 다른 이의 취향을 철저히 존중해주는 곳일 것이다. (p.345)


30. 사실과 거짓을 가리지 않고 받아쓰는 행태가 신뢰를 저버린다는 문제 제기였다. 실제로 언론의 공신력이 낮아진 데는 이편저편으로 나뉘어 진영논리의 스피커 노릇을 해온 영향도 작지 않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기자들은 같은 길을 가는 동료라는 의식을 잃은 채 특정 진영의 종군기자, 개별 언론사 샐러리맨이 돼왔다. (p.348)


31.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다. 이기는 게 정의다.' 이 지랄 같은 상식을 깨는 건 슈퍼히어로 한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같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어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우린 결국 서로에게 정의를 부탁해야 하는 존재다. (p.415)


■ 감상평 (600자 이상)


열정대학 기자학과를 수강하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고 독서노트를 작성하는 것이 사전과제였다. 현재 R-POINT 수업 때문에 일주일에 책 한 권 읽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400쪽이 넘는 이 책의 두께를 보고 지레 겁을 먹었으나, 막상 책장을 펼쳐드니 도무지 책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일단 이 책을 쓴 저자는 현직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서, 이 책 역시 그가 중앙일보에 매주 기고하는 논설코너 '시시각각'의 글들을 묶은 것이다. 그래서 글들의 주제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있었으며, 신문사 칼럼의 형식에 맞춰 짤막하게 구성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신문사의 사설이나 논설에 대해 호의적이진 않은 편이다. 재미는 있지만, 스트레이트성 기사에 비해 개인이나 사측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간 글이기 때문에, 아무리 균형 잡힌 시각으로 집필하려 신경썼다고 해도, 어느 정도 한쪽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트레이트성 기사들은 기사를 쓴 기자보다는 기사의 소재가 되는 사건에 대해 독자들의 칼날이 향하는 경우가 많지만, 논설이나 사설은 사건보다는 집필한 기자에게 칼날이 향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나 보수 언론, 진보 언론의 이분법적 프레임에 따른 언론사별 색채가 뚜렷이 구분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사/논설의 성향 역시 매우 강한 색채를 띠고 있다. 나처럼 진보와 보수, 좌와 우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신문을 읽어도 거부감이 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라는 저자 소개만 보고서, '이 책도 어쨌든 조중동이라는 보수언론의 성향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라는 편견을 가지고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그런 편견은 양파 껍질 벗겨지듯 한꺼풀, 한꺼풀 벗겨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중앙일보> 칼럼이라는 타이틀만 없었다면, 이 논설이 어느 신문에 실렸을지 감도 잡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권석천 위원은 우리 사회와 언론을 지배하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벗어나, 최대한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분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말 이런 기자가 있긴 하는구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 때 장준하 선생을 존경해 언론계로 진출하는 것을 꿈꾸었던 나로서, 롤모델까지는 아니어도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 역시 입대 전까지만 해도 통일부, 국가보훈처 등에서 대학생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기자라는 꿈을 잠깐이나마 꾼 적이 있었다. 하지만 군 생활 중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기자라는 꿈에 대해서는 회의를 느꼈더랬다.


일단 보수/진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 언론에서 내가 설 자리는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나는 이승만도 존경하고 김구도 존경한다. 동시에 이승만도 비판하고, 김구도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 언론이 어디 그런가. 보수 언론에서 김구는 빨갱이요, 이승만은 건국대통령이다. 진보 언론에서 김구는 민족지도자요, 이승만은 독재자다. 하지만 김구든 이승만이든 각 인물의 공은 공대로 인정하고, 과는 과대로 비판하고 넘어가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쪽의 잣대로, 그 인물의 생애와 사상을 한마디로 재단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사고가 아닐까. 이런 양극화된 언론계에서 과연 내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나를 받아줄 곳은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 때문에 쉽사리 기자라는 직업을 꿈꾸지 못했다.


두 번째로, 자신이 없었다. 내게 사건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잣대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줏대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글쓰기 능력이나 취재 능력 등은 부수적인 문제였다. 여러모로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다고 여겼고, 늘 열등감에 시달렸다. 글 한 편 쓸 때마다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역시 글재주가 없어"라며 자신감이 위축되어 갔다.


하지만 권석천 위원의 글을 읽으며, 어느 정도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권 위원 역시 25년 이상 언론계에 몸을 담은 '베테랑 기자'이면서도, 아직까지도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매번 글을 쓰면서도, 색다른 문체와 시각으로 글을 구성하기 위해 '독백체', '편지글', '인터뷰' 등 다양한 형식으로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노력과 시도가 존경스러웠다. 나같은 경우도 글을 쓰는 스타일이 고정적인데 사실 나만의 색채를 갖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글이 담기는 매체나 형식에 따라 글의 스타일도 자유자재로 변용하는 능력이 늘 부러웠기 때문에, 권 위원의 다양한 글쓰기 스타일은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가 분석한 현안 이슈에 대한 균형 잡힌 분석도 인상 깊었지만, 그가 강조하는 '기자 정신'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피해자를 취재할 때는, 그를 단순한 취재대상이나 피사체로 인식하지 말고, 피해자가 겪고 있을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감과 배려', 이분법적 프레임을 벗어나 사건을 합리적으로 보려 노력하는 '균형 잡힌 시각',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보도자료만 보고 받아쓰는 수동적 보도가 아닌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쳐서, 사건의 근본을 인식하고 진실을 보도하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취재' 등등... 여러 글들을 통해 그가 강조하는 기자가 갖춰야 하는 자세들은, 수많은 글을 써왔던 내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보는 계기로 작용하였거니와, 다시 한 번 '기자'라는 꿈을 꾸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먼 훗날,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이 글을 다시 보게 될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기자가 되어있든, 기자가 아닌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든... 어쨌든 글쟁이로서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 아니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이 책을 통해 받은 자극이 언제까지고 유효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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