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020&aid=0002999344


수원에서 한국전통무예연구소(=무예24기연구소)를 운영하고 계시는 최형국 박사님께서 오늘 동아일보 인터뷰면의 메인을 장식하셨더군요. 네이버 메인에도 떴던데, 반응이 가히 폭발적입니다. 다들 존경스럽다는 반응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정답은 없습니다. 누구나 삶을 살아가는 각자의 방식이 있을테고, 또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지향하는 목표와, 삶을 관통하는 철학 등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자신의 신념과 의지대로 사는 것,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것, 무엇보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삶이야말로 제대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무예라는 분야를 떠나서,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현실로 만들어가며 살아가는 최형국 박사님의 삶은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독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인 것도, 자신의 꿈을 내려놓고 사는 이들이 많은 현실에서 부러운 감정이 표출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됩니다.


최 박사님의 삶을 응원합니다. 아무쪼록 선배 무인으로서 꼭 꿈을 현실에 성취하셔서, 후학들이 무예를 익히기 수월한 터전을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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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도보통지』 기창(旗槍)


增(증)


창날 길이 9촌, 자루 길이 9척, 붉은 칠을 한다. 주석판 이하에서는 검은색·흰색 칠을 모두 5마디로 하고, 혹은 누런색이나 붉은색의 작은 기를 단다. 


『엄주사부고( 州四部藁)』에 이르기를, "문황제(大明 成祖황제)의 어창(御槍: 임금님의 창)은 오문루(午門樓)의 포좌(座:어탑) 오른쪽에 두었는데, 창은 칠한 합죽으로 자루를 알고, 검은 정기를 달았는데, 약호(若號)중에 늘어뜨린 단 중에는 여러 가지 별들을 수놓았다. 창자루에는 칼자국이 세 군데나 있고, 화살 구멍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기록에 의하면 문황(文皇)이라 칭했다. 


그는 매번 대적을 만나면 문득 용감한 기병(驥騈)을 거느리고 중견으로 부딪쳐 들어가서(中堅:『후한서』「광무제전」에 '그 중견을 부딪쳐 들어가서...' 注에 중군장 지존이 기거하므로 견고하고 정예로써 스스로를 도우게 되어 있기 때문에 중견이라 한다.) 적 후방을 에워 싸고 깃발을 흔들면 군사들이 다투어 분전하니 적은 순식간에 크게 무너진다."


『고려사』「여복지(輿服志)」에 이르기를, "임금의 수레에 의장병으로 소기창대(小旗槍隊)의 장교(將校)가 2명이 연등한다(고려에는 팔관 연등회가 있다)." 기는 노부(의장병이다. 진·한 때부터 그 이름이 시작된다)은간 (작은 대나무) 작은 기창 이다.


案(안)


문황의 창은 기병의 무기이다. 『고려사』「여복지(輿服志)」에 실려있는 것은 의장용 무기이다. 기를 단 창을 인용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이다. 무릇 군의 행렬(5열 종대이기 때문에 군오(軍伍)라 함)은 각각의 장수가 무기를 잡고 이어서 치고 받는 자세를 연습한즉 대저 깃대를 단 창대에 날을 붙인 것은 그 치고 찌르는 술(무예기법)을 전하려 하는 것이니 오히려 현명하지 않겠는가? 호미와 고무래(『회남자』주에는 흙덩이를 부수는 연장이다)도 병기가 된다. 이에 별도로 하나의 창으로 갖추어 그 자세를 익힌다.


번역문 출처: 한국전통무예연구소(www.muye24ki.com)


[초식]


1. 용약재연(龍躍在淵)

2. 거극(擧戟)

3. 야차탐해(夜叉探海)

4. 중평(中平)

5. 중평(中平)

6. 진왕마기(秦王磨旗)

7. 한신점기(韓信點旗)

8. 중평(中平)

9. 복호(伏虎)

10. 퇴산색해(堆山塞海)

11. 거극(擧戟)

12. 은교출해(銀蛟出海)

13. 중평(中平)

14. 복호(伏虎)

15. 우일자(右一刺)

16. 좌일자(左一刺)

17. 후일자(後一刺)

18. 전일자(前一刺)

19. 야차탐해(夜叉探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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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24기란 정조의 명을 받은 실학자 이덕무, 박제가와 무예의 달인 백동수가 1790년에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24가지 무예를 말합니다. 「무예도보통지」는 조선 전래의 무예는 물론, 중국과 일본의 우수한 무예를 적극 수용하여 '24기(技)'로 정리한 무예교범서로서 부국강병의 실학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을 완료한 정조는, 이 책을 당시 중앙 오군영(훈련도감, 총융청, 수어청, 금위영, 어영청)에 보급하여, 군영마다 제각각이던 군사들의 기예를 통일하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조선은 강력한 중앙집권 시스템이 확립된 탓에, 무예를 지도하는 별도의 무관(武館)이 존재하지 않았고, 아버지나 장인어른 등 무관직을 지낸 어른들로부터 무예를 전수받는 문화였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무벌가문이 형성되었고, 가문마다 전해져오는 기법들도 제각각이었을 거라고 합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역시 장인어른이 무예 스승이었다죠. 그래서 옛 기록을 살펴봐도, 군영마다 무예의 명칭부터 제각각입니다. 동작들도 제각각이었겠죠. 이런 문제점을 파악한 정조는 무예의 명칭을 통일하는 동시에, 실제 동작들도 통일하기 위해 「무예도보통지」를 적극적으로 보급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정조 본인의 호위를 위해 창설했던 특수부대 '장용영(壯勇營)'에도 「무예도보통지」를 보급하였지요. 무예24기로 단련된 장용영 군사들은, 당대 최고의 호위무사들이었을 겁니다. 지금으로 치자면 '대통령 경호원' 격이랄까요.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조상들은 무예를 보존해야 할 하나의 전통문화로 인식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더해 갑작스러운 개화의 물결로 인해 급진적으로 군 개혁이 이루어지면서, 무예24기는 역사의 물결 속에 사라져버리고 말았죠. 그리고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암흑기(일제강점기와 6.25 등)가 워낙 길었던 탓에, 전통무예에 대해 관심조차 갖지 못했죠.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경당, 십팔기를 비롯한 여러 전통무예연구단체들이 복원을 시도했고, 자신들의 독자적인 복원 스타일에 따라 유파를 형성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제가 소속된 무예24기 한양류의 경우는 경당-무예24기보존회의 계보를 이은 단체로, 보존회의 해석과는 달리 자체 해석으로 복원한 기법들도 상당합니다. 복원무술이다보니 열린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인 것 같긴 합니다. 타 유파의 기법 중에 차용할 만한 것들은 적극적으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짜깁기'라는 비판도 있지만, 복원무술이 안고가야 할 한계라고 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가지 않는 이상 '100% 원형복원'은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이런 노력을 하다보면 '무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날이 올 거라 봅니다.


이 홍보 영상 속에 등장하는 무예24기 시범단원들은 현재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시범단' 소속으로, 매일 같이 수원 화성행궁 신풍루 앞에서 '무예24기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주 화~일요일 오전 11시에 신풍루 앞에서 무료공연을 하고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구경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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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http://news.donga.com/3/all/20130502/54850209/1

 

[최형국의 무예 이야기] 조선시대 무예의 요체 4가지

 

담력 기르고 힘 키운 뒤, 정교하게 다듬고 속도로 완성


누구라도 ‘무예(武藝)’란 말을 들으면 강한 주먹이나 날렵한 몸놀림부터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인지 무예를 익힌 사람 주위에는 허무맹랑한 무용담이 떠돌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존경심을 잃지 않는다. 중국 무협영화에 등장하는 신비한 무공비급이나 특정 무술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신명이 난다. 하지만 전장에서의 무예란 개인의 생명, 나아가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는 존재다. 조선시대 군사들은 늘 무예의 핵심에 대해 고민했고, 그것을 실전에서 재현하기 위해 끊임없는 훈련을 반복했다.


임진년의 뼈아픈 기억


1592년 4월에 일어난 일본과의 전쟁은 조선이란 국가의 시스템을 순식간에 마비시킬 정도로 커다란 재앙이었다.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을 겪으며 가장 많은 혼란과 변화를 겪은 곳은 다름 아닌 군대였다. 이후 조선군은 그동안 유지 발전시켜 온 무예를 대대적으로 개조해야 했다. 


전쟁을 시작한 지 20일도 못 되어 수도 한성이 적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것은 군인 입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치욕이었다. 게다가 조선은 국왕이 수도를 버리고 개성과 평양을 거쳐 국경선 근처 의주로 피란해야 하는 한계 상황까지 내몰렸다. 물론 이후 북쪽에서 명나라 구원군이 도착했고 남해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내륙에서는 관군과 의병이 활약해 전세를 만회할 수는 있었다.


이렇게 불리한 전황을 극복하기 위해 군대 시스템을 재편하고 군사무예의 변화를 꾀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시에는 ‘변화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이 압도적으로 작용했다. 승부와 직결되는 군사들의 무예 훈련은 조선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이런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국왕이 직접 무예서 편찬을 지시하게 됐다. 즉각 당대 최고의 병법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무예의 요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훈련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당시 조선의 최고 이론가들이 정리한 군사무예의 핵심은 일담(一膽), 이력(二力), 삼정(三精), 사쾌(四快)로 정리할 수 있다. 그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면 조선시대 군사무예의 존재 의미를 간결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먼저 담, 즉 용기다(一膽). 우리는 “간담이 서늘하다”는 말을 흔히 한다. 간장과 쓸개는 용기를 나타낸다. 담력은 예로부터 무예의 요체 가운데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특히 실제 전투상황과 직결된다. 창칼이 번득이고 화살과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는 담력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담력이 부족한 병사는 실전에서 주변의 전우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아군에 득보다는 실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 군대에서는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담(膽)을 가장 먼저 훈련시켰다. 요즘 군대의 이른바 ‘악으로, 깡으로’ 식의 군사훈련도 그 근원이 같다. 


사기(士氣)는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다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각 군사의 용기를 군대라는 집단으로 모아낸 개념이다. 군사의 기상이 하늘을 찌르는 것이야말로 군대의 미덕이다. 예전 군대의 가장 기초적인 훈련이 담력을 기르는 것이었던 이유다.


두 번째는 힘이다(二力). 담력을 어느 정도 갖게 된 사람은 반드시 ‘힘(力)’을 기르는 훈련으로 나아가야 한다. 조선시대의 전투는 맨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병장기를 들고 하는 것이었다. 무거운 병장기를 자유롭게 다루기 위해서는 당연히 힘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군사들은 때론 일부러 무거운 갑옷을 입은 채로 훈련하거나 실전에서 쓰는 무기보다 무거운 장비를 사용해 근력을 단련했다. 또 전투가 벌어지면 자신의 무기가 망가지거나 분실되는 경우가 많아 타 병종의 다양한 무기를 다루는 일도 훈련에 포함되곤 했다.


무예의 요체… 담력, 힘, 정교함, 빠름


세 번째는 정교함이다(三精). 용기를 갖추고 힘을 기른 후에는 이를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 


군사들의 사기가 충천하고 그 힘이 태산을 무너뜨릴 정도로 거세다면 일단 절반의 승리는 보장된 셈이다. 그러나 각 군사들의 무예실력이나 진법훈련이 정교하지 못하고 투박하다면 어느새 상대방의 공세에 틈을 보이고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고대 로마시대의 시민군은 정교한 전법과 진법으로 전략적 능력이 떨어지는 게르만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마지막 미덕은 바로 신속함이다(四快). 실전에서는 빠르고 통쾌한 한 방을 준비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나아가 적의 창칼보다 빠르게 움직여야만 전투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고, 적보다 총알이나 화살을 더 빠르게 쏴야만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용기, 힘, 정교함이 모두 부족한데 빠르기만 해서도 곤란하다. 이런 자는 전투에서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옛 사람들은 무예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하고 그 중요도를 지키는 것이 효과적인 무예훈련이라고 보았다.


현대인들은 흔히 ‘사는 것이 전쟁’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그만큼 혹독한 경쟁 속에서 하루를 보내기 때문인지 요즘 여기저기서 ‘힐링(치유)’이라는 말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온다. 삶이라는 전투에서 심신의 상처를 입었으니 넉넉히 보듬어 달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인 셈이다. 


전쟁과도 같은 개개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힐링하기 위해 조선시대 무예의 요체인 담-력-정-쾌(膽-力-精-快)를 적용해 봐도 좋을 것이다. 자신이 부닥친 일에 대해 용기와 힘을 갖고 대응하며, 그것을 정교하고 빠르게 처리한다면 우리 모두가 인생의 승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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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수련하고 있는 '무예24기 한양류'의 2016년 하계 정기총회가 어제 있었습니다. 


저희 단체는 2009년 창립 이래 매년 정기총회를 꾸준히 열고 있습니다. 상반기와 하반기에 한 차례씩, 1년에 두 번 열리죠. 급하게 해결해야 할 안건이 생기면 임시총회가 열리기도 합니다.


다른 단체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희 단체는 전통적인 무술 도장의 도제식 문화와는 거리가 많이 멉니다. 그래서 총회를 통해 사부님과 제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주어진 안건에 대해 격의 없이 토론을 벌이곤 합니다. 어떻게 보면 사부님께서 실험을 하고 계신 거겠죠. 매니아틱한 전통무예를 가르치는 단체이기 때문에, 무겁고 딱딱한 수련 분위기를 만들면 오히려 대중화에 걸림돌이 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듯 합니다. 그래서 사부님 스스로 모든 권위를 내려놓고 '총회' 시스템을 도입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이번 총회에서도 다양한 안건들이 나왔습니다. 주요 꼭지들만 요약해서 설명해보자면,


1. 하반기 행사 일정 점검


무예24기 공연을 요청하는 지자체나 단체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리고 저희 스스로 그런 기회를 찾아 공연 요청을 하기도 하고요. 이번에는 한양류가 위치한 동작구 관내에서 생활체육대회 등 다양한 무대가 열린다고 합니다. 


특히 11월 말에는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에서 기념관 개관 5주년 기념 행사에 공연 참가할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그쪽 기념관 관계자 분들과 제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관계로, 무예24기 공연을 의뢰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더군요. 8월 6일에 제가 한 번 방문해서 간단하게 시범 보인 뒤에 공연 여부를 결정짓기로 했습니다. 만약 공연이 성사된다면 재밌게 놀다 와야죠. 가는 김에 거기서 1박 2일로 MT도 하기로 했습니다.


2. 홍보 활동 관련 논의


무예24기 자체가 홍보는 많이 되고는 있습니다. 특히 수원화성에서 매일 하는 정기시범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고 있죠. 하지만 무예24기 공연은 공연이고, 저희 단체는 단체니까요. 그리고 저희 단체는 공연용 무술을 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군사무예 복원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노선이 명확히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간의 의혹(무예24기는 평생 할 수 없다, 무예24기는 무술적 가치가 없다 는 등등)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반박하고, 실력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희 단체 역시 나름대로의 홍보 활동을 펼쳐나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를 위해 타 문파를 벤치마킹한 방안들을 제시해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공개참관을 의미하는 '오픈하우스'나 세미나 등을 개최하는 거죠. 초학자 대상의 '단기 전수회' 개최도 긍정적으로 논의가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홍보를 위한 충분한 예산이 확보되고, 단체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 시범 준비가 되면 겨울방학 때쯤에 전격적으로 추진해보기로 했습니다.



대략 이 정도였고요. 더 많은 내용들이 있었지만, 다 내부적인 이야기라... 확실히 총회를 통해 다른 수련생들과 토론을 하다보니 생각지 못한 의견들이 많이 나오더군요. 


저는 어쨌거나 무술이란 기본적으로 호신이 가능해야 그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회의 내내 계속해서 '실전성 증명'과 같은 측면에 입각한 홍보를 주장했는데요, 몇몇 수련생들은 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하더군요. 그중의 한 수련생은 좀 날카로운 지적을 했습니다.



"일본 고류검술들도 이제는 실전성 증명이 아니라 그냥 전통문화 계승 차원에서 전수를 하고 있는데, 무예24기와 같은 병장기 위주 무예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지금 시대에 칼, 창 들고 실전기술을 가르친다고 하는 건 호신이 아니라 살인행위를 가르치는 것 아니냐"


사실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병장기를 수련하는 단체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제가 권법에 집착하는 이유도 그렇고요. 


그렇지만 제가 생각하는 실전성이란 '무술의 본질적 의미를 알고 수련하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수원화성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무예24기 공연을 보면, 화려함을 위해 인위적으로 가미된 부분, 과장된 동작들이 존재합니다. 그런 동작들을 보고 실제 무술을 하는 분들 중에 "저런 동작은 실제로 쓰지도 못한다"고 생각하고, 무예24기의 가치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더랬습니다. 물론 당연히 쓸 수 없는 동작들이죠. 중국무술로 치면 '우슈'와 같은 표연용 무술이니까요.


하지만 실제로 그런 동작은 제대로 무예24기를 복원하고 수련하는 곳에서는 하지 않습니다. 관객들에게 호응하기 위해 공연에서만 선보이는 동작들이죠. 저희 단체 역시 그런 점에서 공연 팀과는 명백히 노선을 달리합니다. 곤방(봉) 하나를 쓰더라도, 타점을 정확히 이해하면서 실제 상황에서 좀 더 효율적으로 상대방의 봉을 방어하고 공격하는 움직임을 추구합니다. 이런 게 바로 '실전'이라는 거죠.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게 무술의 본질적 의미를 제대로 알고, 그 효율적인 움직임을 제대로 수련하고 있다는 점을 홍보하자는 뜻이었습니다.


여하간 이런 생산적인 토론과 함께, 평소 바빠서 잘 오지 않던 수련생들도 대거 참석하여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이 마침 초복이기도 해서, 총회 종료 후에는 근처 양꼬치집에 가서 칭다오 맥주를 곁들인 양꼬치와 경장육슬, 마파두부 등의 중국요리로 몸보신을 했네요. 



그러고도 다들 아쉬웠던지, 2차로는 마트에서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들고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효사정에 가서 노상 뒷풀이를 즐겼습니다. 마침 비가 와서 날이 선선한지라 한강 바람도 시원하게 불고, 밖에서 술 마시기에 아주 좋더군요. 그렇게 오가는 술잔과 함께 다들 한층 더 화목해진 것 같습니다. 사부님도 뒷풀이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오늘 여러모로 벅차오르는 것 같다"고 뿌듯해 하시더군요.



여러모로 제가 몸 담고 있는 단체이니만큼 계속해서 잘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다른 무술과는 별개로 무예24기는 무예24기대로 평생 할 생각이고, 특히 이 단체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체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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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링크: http://news.donga.com/3/all/20130815/57038001/1


좀 철 지난 기사긴 하지만, 자료 보존 차원에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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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네이버 캐스트에 '마르코&성준의 수원견문록'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이 업데이트되고 있다.. 수원ITV 제작으로 되어있길래 찾아봤더니, 수원시에서 직접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을 의미하는 브랜드였다. 하긴 제목만 봐도 수원시에서 만들 것 같은 삘이 강하게 오긴 한다.

프로그램은 마르코라는 이탈리아 청년과 한 연예인이 함께 동행하며 수원의 관광명소를 체험하고 소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이번에는 '무예24기' 편이 나왔다. 사실 무예24기는 수원시의 대표적인 문화콘텐츠라서 빠질래야 빠질 수가 없긴 하다.

포맷은 뭐... 뻔하다. 

무예24기 공연 보고, 무예24기 체험해보고... 뻔한 스토리라서 사실 나에게는 진부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꾸준히 무예24기의 존재감을 환기시키는 노력과 시도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한다. 다만 아쉬운 건, 진부한 포맷을 벗어나서 좀 다른 식으로 접근해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예24기를 생활무술로 정착시키는 것이 목표인 내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한 편당 10분 내외로,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올라왔길래 함께 퍼왔다.

PS. 참고로 1편은 4분 20초부터 무예24기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1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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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속된 단체인 '무예24기 한양류'는 평일 전수와 주말 전수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다르다. 주말 전수의 경우 중앙대학교 야외수련터에서 이루어지지만, 평일 전수는 한양류 공식 전수관(정식 명칭은 '본부 전수관'이라고 한다)에서 이루어진다. 


평일 전수와 주말 전수가 별도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이유는 여럿이 있지만... 대표적인 이유는 '병장기 수련' 때문이다. 무예24기의 특성상 장병기는 좁은 실내에서 운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야외에서 수련할 수밖에 없다.


본부 전수관은 서울 관악구 남현동(사당역 인근)에 자리잡고 있으며, 2014년 2월 정식 개관했다.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 나도 입대를 해야했고, 전역한 직후에도 주말 전수에 주로 참여했기 때문에 사실상 나도 전수관에서 수련한 기억은 별로 없다. 


아무튼 전수관이 개설된 후로는, 야외에서만 수련할 때보다 이점이 많다. 각종 미세먼지나 황사, 우천 등으로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전수관에서 수련할 수도 있고, 정기총회와 같은 단체 차원의 친목모임 역시 전수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련생 화합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오늘은 평일 전수를 위해 전수관에 가면서, 우리 전수관 사진을 한 번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몇 장 찍었다.



전수관이 위치한 건물 입구다. 큰 간판은 없지만, 그래도 '무예24기 한양류 본부전수관'임을 알려주는 작은 간판이 달려있다. 이 건물 지하 1층이 우리 전수관이다.



(사진: 전수관 입구)




참고로 내부 사진은 오늘 촬영한 게 아니라, 예전에 촬영한 사진들을 그대로 퍼온 것이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어서 그대로 활용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리 넓은 규모는 아니지만 호젓하게 수련을 즐길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다. 특히 역사학, 전통문화, 차(茶) 등 다방면으로 공부하고 계시는 사부님 덕분에, 전수관 한 켠에는 각종 사료들과 역사학 논문, 서적들이 즐비하고, 무예 수련용 병장기, 국악기, 다구, 한복 등이 있어 마치 작은 박물관에 온 느낌을 받곤 한다.



이렇게 전수가 이루어지며... 크리스마스 시즌처럼 특별한 때 저렇게 장식해주면 밤에도 정말 멋진 광경이 연출된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전수관에서 제자들과 어울려 파티 한 번 했으면 좋겠다.




본부 전수관 오는 길은 위의 약도를 참조하면 된다.


평일 전수는 사부님의 여건에 따라 유동적이지만, 당분간은 평일 수요일, 금요일 오후 7시에 이루어진다. 굳이 전수를 받는 것이 아니더라도, 자유로운 수련 참관이 가능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사부님께 사전에 참관 문의를 한 뒤, 많이들 방문해주면 좋을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와서 차(茶) 한 잔 얻어마시면서 즐겁게 놀다 갈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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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수원시립공연단 소속 무예24기시범단이 수원화성 창룡문 앞에서 '마상무예 특별공연'을 펼친다고 한다.


평소 수원 화성행궁 신풍루 앞에서 정기적인 '무예24기' 시범공연이 열리고는 있지만, 장소가 장소인만큼 지상무예 18기에 대한 공연만 열리는 실정이고, 마상무예 6기에 대해서는 현충일, 광복절과 같은 특별한 날에만 특별시범 형식으로 열려왔다.


고로, 평소에는 보기 힘든 공연이란 점!


나 역시도 마상무예를 직접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시간을 내 가보려고 한다. 마상무예의 꽃인 마상재를 비롯해서 마상쌍검, 마상월도 등 정말 다채로운 마상무예 6기에 대한 시범이 있을 예정이라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공연을 보실 분들은 오후 세 시까지 수원화성 창룡문 앞으로 오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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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도보통지」,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기록유산에 등재되다!


지난 5월 18일부터 19일 양 일간 열렸던 제7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태지역 총회에서 10개국 14개의 아태기록유산 등재가 확정되었는데요, 「무예도보통지」 역시 등재 목록에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아태지역총회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사업의 일환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기록유산에 대한 인식제고 및 보존, 보호 관련 활동을 장려하고자 1997년 설립된 지역위원회로서, 아태기록유산을 지정해오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하네요)


1790년(정조 14년) 왕명에 의해 만들어진 종합군사무예교범인 「무예도보통지」는 그 기록의 우수성과 역사성을 인정 받아, 이번 총회에서 기록유산으로 등재 결정이 났다고 하는데요, 「무예도보통지」의 기예 24기를 복원하여 수련하는 입장에서도 매우 기쁜 일이고, 좀 더 거국적으로는 한국인으로서도 정말 기쁜 일이네요.



(사진: 「무예도보통지」 중 권법 편)

하지만 이번에 등재된 「무예도보통지」는 '북한'의 기록유산으로 등재가 되었고, 우리나라 역시 '한국'의 기록유산으로 '편액'이 따로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한민족의 문화유산인데, 북한의 문화유산과 남한의 문화유산이 구분되어 등재됐다는 사실이 매우 서글프게만 느껴집니다.


언제고 통일이 되어 하나 된 한국의 이름으로 「무예도보통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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