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 생애 첫 노트북을 장만했다. 기종은 삼성 노트북 9 라이트 시리즈다. 부천 일렉트로마트를 아이쇼핑하면서 직원에게 안내도 받았지만, 심한 기계치라서 들으나 마나 뭔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했다. 그냥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가볍고 작은 노트북을 골랐다.


사실 살면서 데스크톱 컴퓨터가 주는 익숙함에 젖어 노트북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것보다는 데스크톱 컴퓨터로 글을 쓰는 손맛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노트북의 필요성을 처음 느꼈다. 교수님의 말씀을 받아적느라 손 아프게 필기하고 있을 때, 휘리릭 노트북으로 받아적는 학생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도 4학년이 될 때까지 꿋꿋이 데스크톱을 고수했다.


하지만 전역하고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노트북의 '휴대성'이 간절하게 요구됐다. 어디든 편하게 들고 다니면서 취재한 즉시 원고를 보낼 수도 있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오랜 시간 집을 비울 때도 언제 어디서든 노트북으로 글을 쓸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찌는 듯했던 올 여름, 찜질방 같은 집 안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려니 그 자체로 고통스러웠다. 내년 여름엔 스타벅스 같은 시원한 카페에 가서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다소 안심이 된다. 복학해서 수업을 들을 때도 예전처럼 손 아프게 필기할 일도 줄어들테고. 나름 비싸게 주고 산 물건이니만큼 오래도록 유용하게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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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16년 한 해도 며칠 남지 않았군요. 제겐 여러모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제게 있어 올 한 해는 '전역의 해'였습니다. 4월에 전역을 하면서 마침내 1년 9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군인에서 민간인으로 신분이 전환됐으니까요. 비로소 다시 태어난 해라고나 할까요. 전역하고 나서는 군 생활 중 정리했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뛰어왔던 것 같습니다. 


직접 커피 한 잔 내려마시고 싶어서 커피 공부를 시작했고, 남자라면 악기 하나쯤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해금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열정대학과 이태원대학 등 대안대학에서 무예24기를 가르치면서 지도자로서의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자유학기제 강사로 채용되어 중학생들에게도 무예24기를 지도했는데, 여기서는 제 자신의 부족함을 많이 깨닫는 계기가 됐지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은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짭짤한 원고료는 취미생활을 즐기는 밑천이 되어주었고, 꾸준한 활동으로 상도 탔으니까요. 그리고 올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는 마침내 형의권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올 한 해는 대충 이 정도로 언급하기로 하고 2017년 신년 목표를 한 번 정리해봤습니다.


1. 형의권의 꾸준한 수련


형의권을 배우기 시작한 지 열흘 정도 됐습니다. 좀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배움에도 때가 있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예24기를 수련하다가 한계에 봉착해서 여기에 왔으니, 오히려 더 전념할 수 있겠죠. 만약 큰 고민 없이 시작했다면, 그만큼 쉽게 포기할 가능성이 높았을 겁니다. 오랜 방황과 고민 끝에 어렵게 시작한 권술이니만큼, 평생 공부라고 생각하고 수련을 하려고 합니다. 사부님이나 사형들 말씀으로는 1년 동안은 체(體)를 만들어야해서, 그 과정이 대단히 지루하다고 합니다. 그 지루함을 못 이기고 떠나는 이들이 굉장히 많다고. 그래서 저는 새해 목표 중 하나를 형의권의 꾸준한 수련으로 잡았습니다. 지루함과 싸워 이기고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수련해서 몸을 만들고자 합니다. 이변이 없는 한, 형의권을 중도에 관둘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2. 무사히 졸업하기


드디어 내년에 복학을 합니다. 오랜 시간 학교를 떠나 있었기 때문에, 사실 복학이 좀 두렵습니다. 내년엔 17학번이 들어오는데, 제 학번이 11학번입니다. 완전 화석인 셈이죠. 아저씨 냄새 풀풀 풍기면서 학교 생활하려니 걱정도 되고, 그동안 굳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기나 할까 걱정됩니다. 다행히 1학기 등록금은 장학금을 타뒀기에 맘 편하게 다닐 수 있겠습니다만, 2학기 장학금을 탈 수 있을지도 우려스럽고요. 사실 지금 상황에서 토익 점수와 졸업논문만 있으면 조기 졸업이 가능한데, 그에 대한 대비도 전혀 없는 상태라 좀 아쉽군요. 이건 한 번 알아볼 생각입니다. 반짝 해서라도 저 조건 충족이 가능하면 조기 졸업도 노려볼 만 하니까요. 하루 빨리 학교를 뜨는 게 제 소원입니다.


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꾸준히 활동하기


올해 군 전역 후 가장 의미 있었던 활동이었습니다. 용돈벌이나 할 셈으로 시작한 시민기자 활동이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의미 있었습니다. 일단 부수입이 매우 짭짤했습니다. 지금까지 기사쓰기로 벌어들인 원고료만 200만원이 넘었습니다. 그 돈으로 술도 사 먹고 책도 사 읽고 무술도 배우는 등 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돈을 떠나 제 글쓰기를 가다듬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고요. 글 쓰는 지적노동이 군 생활하며 삽질하는 육체노동 못지 않게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래도 글 한 편 탈고해서 메인에도 올라가보고, 제 글을 통해 누리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점이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덕분에 '이 달의 게릴라' 상도 타보고, '2월 22일상'이라는 상도 수상해서 내년 2월에 시상식이 열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 서평단에 합류하면서 매주 2권씩 신간 서적을 무료로 받아볼 수 있는 혜택도 입었습니다. 덕분에 요새는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요새 제 활동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년에 복학하면 학교생활이 바빠서 지금처럼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데요, 열심히는 못해도 꾸준히 활동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4. 운전면허 따기


부끄럽게도(?) 26살 먹도록 운전면허를 못 땄습니다. 따야할 필요성은 강하게 느끼는데, 차일피일 미루게 되는군요. 가급적 복학 전에 운전면허를 따려고 목표를 세워봤습니다. 전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운전면허는 꼭 따고 싶습니다.


5. 책 많이 읽기


아무리 바빠도 책은 지금보다 더 많이 읽고 싶습니다. 독서만큼 유익하고 재밌는 취미가 없거든요. 전공 서적이나 취업을 위한 수험서에만 매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군 생활하면서 86권의 책을 읽었고, 전역 후에는 <오마이뉴스> 서평단 활동을 위해 책을 꾸준히 읽어오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읽고 싶은 책은 나날이 쌓여만 가고 있으니까요.


6. 해금 꾸준히 배우기


생각해보니 해금을 배우기 시작한 지도 반 년이 넘었습니다. 해금 배우기는 말년 병장 시절 정리했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버킷리스트를 실천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꾸준히 배우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스스로 대견함을 느낍니다. 이것 역시 형의권처럼 이변이 없는 한, 꾸준히 배우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해금을 대여해서 쓰고 있었는데, 조만간 아예 제 해금을 장만할 생각입니다. 언제까지 배워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스승이 따로 필요 없는 수준에 이를 때까지는 계속 배우고 싶습니다.


7. 중국어 배우기


중국어를 참 좋아합니다. 영어는 아무리 배워도 머리에 안 들어오는데, 어릴 적부터 중국무술이나 중국요리 등 중국문화를 좋아했다보니까 중국어도 친숙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고등학교 때나 대학 교양수업 때면 제일 열심히 들었고, 성적도 항상 우수했습니다. 문제는 꾸준히 배웠어야 했는데, 단기로 끝내서 말짱 도루묵이 됐다는 거. 내년부터는 중국어를 한 번 배워볼까 생각 중입니다. 제 소원이 그 좋아하는 중국무협영화를 자막 없이 보는 겁니다. 아울러 앞으로 중국 갈 일이 많을 텐데, 현지에서 통역 없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도 목표고요. 그러려면 역시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배워야겠죠.


8. 진로 정하기


이것도 중요한데 여전히 막막한 부분입니다. 내년만 학교를 다니면 졸업인데, 아직까지도 진로를 정하지 못했네요. 입대하기 전만 해도 당연히 졸업하고 대학원 가서 역사 공부를 계속 할 생각이었는데, 군 생활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고, 스스로 공부 체질이라는 생각도 안 드는군요.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봤습니다만, 시민기자 활동을 하다보니 그것 역시 딱히 제 체질은 아닌 듯 합니다. 여러모로 가장 많이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올해 안에는 생각을 정리해서, 취업을 준비해야겠죠.


대략 이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겠네요. 너무 무리하게 목표를 세우면 오히려 질려버릴 듯 합니다. 사실 이미 저 정도만으로도 굉장히 거창한 듯 하네요. 그리고 정리해놓고보니 죄다 돈을 많이 벌어야 가능한 일인 듯 합니다. 배움도 결국 돈이 있어야 가능하니까요. 일단 최대한 지출을 아끼고, <오마이뉴스>에 꾸준히 글을 쓰면서 부수입을 늘리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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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홈플러스에서 해외맥주를 캔당 1,000원에 판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랴부랴 달려갔습니다.


브룩 피어스트(Burgfürst)라는 독일맥주인데, 처음 보는 브랜드였습니다. 여하간 저는 아직 맥주 브랜드까지 따져가며 마실 정도의 맥덕은 아닌지라 저렴하게 수입맥주를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그래서 10캔을 업어왔습니다. 그래봐야 1만원이네요.


사오긴 했는데, 아직까지 맛은 못 봤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감기 기운이 있기도 했고, 요새 이상하게 술이 별로 안 땡기더라고요. 어차피 자제할 필요가 있던 음주인지라, 굳이 땡기지도 않는데 먹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마 주중에 한 번 까지 않을까 싶네요. 그때까진 고이고이 K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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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없이 블로그에 접속했더니 방문자 수가 무려 '1,900명'을 돌파했습니다. 누적이 아니라, 오늘 하루 방문자수입니다. 그동안 평균 방문자수가 200명 정도를 항상 웃돌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제 오늘 1,000여명이 넘게 방문해서 2,000명 돌파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아마 이 기세대로라면 오늘 안에 2,000 돌파도 식은 죽 먹기일 듯 합니다.


대충 예상은 했습니다. 관리 페이지에서 '유입 키워드'를 확인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 <임진왜란 1592>를 키워드로 타고 들어오셨더군요. <임진왜란 1592>는 KBS와 중국 CCTV가 합작해서 만든 팩츄얼 드라마(사실에 기반한 다큐+드라마 형식이라고 합니다)로 5부작인데 어제 첫 방송을 했다죠. 어제 늦게까지 술자리가 있어서 집에 와서 뒤늦게 찾아봤습니다만, 너무 피곤한 관계로 보다 끄고 오늘에서야 다시 봤습니다.


(사진: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1화 캡쳐)


솔직히 말해서 전 별로였습니다. CG가 대단하다고는 하는데 글쎄요. 일단 화면부터가 너무 어두운 점이 내내 거슬렸습니다. 좀 조명을 밝게 했어도 좋을 것 같은데, 왜 굳이 짙푸른 화면구성을 선택했을까요. CG는 영화 <명량> CG팀이 담당했다고 하는데, 거북선 CG도 그렇고 영화만큼 때깔이 잘 나오긴 했습니다만 화려한 CG를 살릴만큼 전투씬의 전체적인 퀄리티가 뒷받침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배우들의 연기+전투씬 스토리 등등)


그리고 저도 조선시대사에 대해 문외한에 가까울 정도긴 하지만 군사사도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입장에서 고증 문제가 계속 걸리더군요. 환도 패용 문제는 이제 지겹기까지 합니다. 제작진이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대체 군관이 언제까지 칼을 손에 들고 다닐 요량인지. 출정할 때 이순신이 멋지게 등장하는 장면에서 '오 좀 멋있는데..?' 하려다가 水자 수졸복 입은 군졸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김이 팍 새버렸습니다. 이 장면은 영화 <명량>에서의 출정 장면을 그대로 본따온 것 같은데, <명량>은 그래도 군졸들이 갑주도 입고 있고 음악도 비장해서 볼 만 했습니다만... <임진왜란 1592>에서는 허접하기 짝이 없더군요. 사실 이순신이 입고 있는 두정갑도 엄밀히 말해서 정확한 두정갑의 형태와는 거리가 좀 있어서 고증에 정확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사진: 이순신의 출정 장면 -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1화 캡쳐)


고증을 떠나서 드라마적 재미도 그닥 없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불멸의 이순신>은 고증은 엉망이었어도, 드라마적 재미는 충분했기 때문에 제가 높이 평가하는 작품입니다. 화려하고 통쾌한 포격전에 적절한 BGM 삽입까지...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었고요. 배우들의 감정 연기가 대단했지요.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극적인 재미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장수들은 다 어디 간 건지... 이순신하고 하급 군관, 이름 없는 무명소졸들만 수두룩빽빽하고, 이순신을 도와 함께 싸웠던 주력 지휘관들은 코빼기도 안 비추더군요. 무명소졸의 이야기에 집중하려 했다지만, 그렇다고 전투의 실질적인 지휘관을 빼버리는 건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어찌됐건 전투를 총 지휘하는 건 지휘관들이었으니까요. 50분짜리 짧은 드라마에 전투씬과 선조의 몽진, 일본의 침략을 다 담아내려니 중구난방 같다는 느낌도 많이 들었고요.



(사진: 그나마 좀 멋있었다고 생각되는 이순신과 거북선의 대화 장면 -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1화 캡쳐)


그리고 매우 기대가 컸던 최수종표 이순신 장군. 제 아무리 '사극왕'이어도 김명민의 아성은 무너뜨리지 못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는 아직까지 김명민의 이순신 연기를 뛰어넘는 배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김명민 배우에 대한 편애일 수도 있겠지만, 제 주관이 그렇습니다. 최수종씨는 연기의 패턴이 단조롭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5부작이고 이제 시작이니, 계속 지켜볼 생각입니다만... 아쉬움이 더 큰 것 같습니다.


PS. 사극 제작진들에게 다시 한 번 최형국 박사님의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를 읽으라고 강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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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많이 선선해졌습니다.


덕분에 어제, 오늘은 간만에 집 밖에 나가서 수련을 했습니다. 늘 가던 보라매공원에 가서 칼을 좀 휘둘렀더니 땀이 쫙 나네요. 여전히 덥긴 하지만, 그래도 수련하기에 나쁜 날씨는 아닌 듯 합니다. 딱 5월쯤의 날씨인 것 같아요. 앞으로는 추워질 일만 남았네요.


수련을 마치고 평소 오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우회해서 와봤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하굣길이기도 했고, 입대 전 모교에서 야간자율학습 감독 알바를 할 때 출퇴근 하던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겐 참으로 친숙한 거리죠. 그런데 오래간만에 가봤더니 그새 또 많이 변해있네요. 


요새는 어딜 가도 다 그런 것 같습니다. 한 달 정도 텀을 두고 가보면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져요. 신장개업한 지 얼마 안된 음식점들이 그새 또 다른 간판으로 바뀌어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죠. 심지어 저희 집 앞에 있는 치킨집은 개업 한 달도 안되어서 폐업하고, 과일주스 가게로 바뀌었더라고요. 제가 지금까지 본 업소 중 초고속으로 바뀐 케이스입니다. 


어제도 이 길을 걷다가 이렇게 번화가로 바뀐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보면 변두리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인데, 생각보다 술집이며 맛집이 많이 들어왔더라고요. 뭐 집 가까운 곳에 맛집이 많이 생기니 반가운 일이긴 한데, 아쉬운 느낌도 듭니다.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거리의 모습이 바뀔수록, 제 추억도 빛을 바래가는 것 같아서요. 제가 유난히 과거에 집착을 많이 하는지라, 제 유년시절의 추억이 깃든 장소가 바뀌면 마음도 많이 울적해집니다. 그래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몇몇 가게들이 제 추억을 유지시켜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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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웬 택배가 왔더군요.


자다 일어나 졸린 눈으로 택배상자를 열어보니, 책 두 권이 들어있었습니다. 알고보니 제가 얼마 전 <오마이뉴스>에 서평기사를 썼던 <마지막 무관생도들>이라는 소설의 저자께서 친필 서명을 한 당신의 저서 두 권을 보내주신 것이었습니다. (관련 기사: http://omn.kr/kl0p)


<마지막 무관생도들>은 개인적으로 매우 가슴 아프게 읽었던 소설입니다. 대한제국 무관학교의 마지막 생도들 45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대부분의 생도들이 일본군과 만주군이 되어 일본 제국주의 통치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책장을 넘기기가 힘겨웠더랬습니다. 유일하게 독립전쟁에 뛰어들었던 지청천 장군은 광복군 총사령관이라는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해방 후 일본군 출신들이 다시 득세하면서 우리 국군의 뿌리는 일본군 출신들이 장악해버린 아픈 역사를 마주해야만 했지요.


하지만 생각보다 이런 사실이 대중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좀 공들여 서평기사를 쓰긴 했는데, 기사가 게재되자마자 지금까지 제가 쓴 기사 중 가장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무려 13만 명이 기사를 열람했더군요. 아마 독자들에게도 꽤나 충격적인 사실이었겠지요.


출판사 쪽에서도 제 기사를 봤나봅니다. 며칠 전 <오마이뉴스>를 통해 쪽지 한 통을 받았는데, 출판사 편집팀장이었습니다. 서평기사를 잘 봤다면서 "저자의 사인본을 보내고 싶으니 주소를 알려달라"는 저자의 메시지까지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얼른 저자 분께 이메일로 주소를 알려드렸는데, 오늘 이렇게 택배가 왔네요. 이번에 쓰신 <마지막 무관생도들>과 함께 예전에 쓰셨던 <조봉암 평전>도 함께 보내주셨습니다. 정성스러운 친필 사인과 낙관까지 찍혀있는 상태였습니다. 솔직히 제가 이런 과분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되는지 몸둘 바를 몰라 허둥댔습니다.



책을 받고 나서 저자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드릴 겸 전화를 드렸습니다. 전화를 받으시자마자 "글을 참 잘 쓴다"며 칭찬해주시더군요. "70세 나이를 바라보며 이 세상에 쓴소리 한 번 하자는 생각으로 쓴 책"이라며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김 선생의 서평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전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차마 몸둘 바를 몰라 굉장히 황송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뵙기로 했는데, 저도 꼭 뵙고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오히려 이런 좋은 책을 내주셔서 독자의 한 사람으로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아무튼 몇 푼 원고료를 받는 것보다, 이렇게 제 글을 읽고 감응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글쓰기의 보람을 느낍니다. 솔직히 글을 쓰는 걸 즐기면서도, 부족한 글솜씨 탓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더 많습니다. 평생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중앙일간지 논설위원조차도 '글쓰는 일을 빨리 그만두고 싶다'고 고백할 정도로, 글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 생각만큼 문장이 잘 안 뽑힐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보람을 느끼기에, 여전히 글쓰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오늘도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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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오랜만에 현충원엘 다녀왔더랬습니다. 제가 복무했던 부대에 들러 간부님들께 안부 인사도 드리고, 부대에 잔류하고 있는 후임들하고 얘기도 하고... 뭐 전역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서포터즈다 뭐다해서 자주 들렀더니 이젠 그닥 반가워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어제는, 군 복무 당시 직속상관으로 모셨던 前 중대장님을 만나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지금은 최전방인 경기도 연천에서 수색중대장으로 복무하고 계시는데, 얼마 전 소령 진급이 확정나면서 단으로 진급 인사차 오셨다고 하는군요. 안그래도 몇 달 전부터 따로 만날 약속을 잡고 있었는데, 중대장님이 먼저 서울 내려오는 김에 한 번 보자고 하셔서, 현충원에서 만나게 된 겁니다.


사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롤모델이나 멘토가 하나쯤은 있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CEO 혹은 정치인처럼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인사들을 롤모델로 삼죠. 저같은 경우는 현실 속에 그런 롤모델이 없다고 판단해서, 일찌감치 역사 속 위인들을 제 롤모델로 삼아왔더랬습니다. 


그런데 그런 롤모델들의 경우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인물인지라,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제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제 인생의 큰 줄기(삶의 가치관)를 형성하는 데는 그들의 영향이 컸지만, 소소한 문제에 부딪쳤을 때는 답을 얻기가 힘들었죠. 이미 죽은 이들은 말이 없는 법이니까요.


그런 제가 현실에서, 그것도 가장 가까이에서 롤모델로 삼을 만한 분을 만났습니다. 바로 어제 만난 옛 중대장님입니다. 저는 이분에게 개인적으로 큰 은혜를 입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군 생활이 마냥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제가 일병 4호봉 때였던가요. 후임에게 폭언 및 욕설로 영창을 다녀온(그것도 만창 15일) 선임 한 명이 저희 팀(분대)으로 배속되는 바람에 제 맞선임이 되고 말았습니다. 안그래도 일병이 꺾이도록 후임이 들어오지 않아, 계속되는 막내 생활에 스트레스 받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선임이 늘어난 겁니다. 더욱이 사고 치고 온 선임이라니... 그때의 절망적인 심정이란... 오죽하면 제가 담당 간부한테 "후임들에게 욕하고 때리는 선임을 선임으로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라고까지 하면서 항명했으니까요.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군대란 까라면 까야하는 곳이죠. 사고치고 온 직후라, 본인 스스로도 조심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긴 했지만, 본성이 어딜 가겠습니까. 처음엔 좀 자제하더니, 가끔씩 욱하는 기질이 드러나더군요. 뭐 때리지 않았으니 그나마 개과천선했다고 봐야할까요? 그래도 욕설은 정말 많이 했죠. 특히 제 후임이 들어오면서부터 많이 심해졌습니다. 제 후임한테 뭐라고 할 때마다, 중간에 낀 제가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원래 맞후임 잘못은 맞선임이 욕 먹는게 군대 구조라...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죠. 더욱이 성추행과 같은 짓궂은 행동들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제 맞후임은 나중에 저한테만 고백했는데, 이걸 상당히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밤에 남몰래 침낭 속에 들어가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하는군요. 그때 정말 선임으로서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여하간 이 당시 이야기를 글로 풀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겁니다. 중간에 참 많은 일이 있었죠. 어쨌거나 중간 과정 다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바로 옛 중대장님께서 이 선임의 부조리 행위를 적발해서 처벌해주셨던 겁니다. 최초 고발자였던 저조차도 '이걸 찌른다고 과연 해결이 될까'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었지만, 중대장님은 "넌 임마, 나중에 장관도 하고 대통령도 하고 싶다는 놈이 이런 걸로 겁을 먹어?"라고 하시면서 오히려 격려해주시더군요.


사실 군대에서 이런 사건/사고가 터지는 건, 간부들에게 그닥 반가운 소식이 아닙니다. 진급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죠. 그래서 군대에서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감추고 쉬쉬한다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오히려 중대장님은 '부조리는 발본색원해야 한다'면서 일찌감치 병영 부조리 혁파에 앞장 서오신 분이었습니다. 저 맞선임을 최초로 영창 보낸 분도 바로 중대장님이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쉬쉬하고 내부적으로 징계위원회 열어서 영창 보내고 끝냈을 법도 한데, 중대장님은 오히려 판을 키워서 국방부 조사본부까지 연락했더랬습니다. 덕분에 헌병 수사관들이 출동해서 저희들도 '마라톤 조사' 받고, 그 맞선임도 끝내 야전으로 전출을 가버렸죠. (후일담이지만 중대장님이 판을 키운 덕분에, 그 맞선임은 전역 후 민간 재판으로 넘어갔습니다. 빨간 줄 그어지게 생겼다며 저희에게 제발 합의해달라고 사정했을 정도로, 사안이 커졌더랬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주도한 게 바로 중대장님이었습니다.


개인적은 은혜도 은혜였지만, 이렇듯 중대장님은 병영부조리 혁파에 정말 많은 관심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사실상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던 '마음의 편지'(예전으로 치면 소원수리) 제도를 활성화시킨 분도 이분이었는데, 부임 직후에 마편함을 화장실 칸마다 추가 개설해서 수시로 확인하시더군요. 덕분에 병사들도 끊임없이 마음의 편지를 썼고, 중대장님은 하나 하나 다 읽어보시고 최대한 저희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들어주려 노력하셨습니다. 심지어 중대장님에 대한 비판도 나왔는데, 그 편지 내용까지 공개적으로 읽으면서 "미안하다"며 전 병력이 보는 앞에서 쿨하게 사과까지 하셨죠.


이런 분이었으니, 어찌 존경심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개인적인 롤모델로 삼았던 것이고, 이분의 모습에 반해서 잠시 접어두었던 장교의 꿈을 다시 한 번 품어보기도 했었더랬습니다. 이분 같은 군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말뚝을 고민했던 것이죠. 하지만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 "개똥밭에서 굴러도 사회가 낫다"며 주위에서 뜯어말리는 통에 결국 예비역 병장으로 전역하고 말았습니다. 말뚝 박을 용기가 없기도 했고요.


전역한 지 3개월째... 저는 지금 군문 안에서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실컷 누리는 중입니다. 군대에서 자유의 소중함을 깨달았기에, 지금도 하루 하루 의미 있게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죠. 전역 전에 작성했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해서, 해금이며 커피며, 무예며 이것 저것 새로 배우기 시작하고... 글도 쓰고 사람도 만나면서 정신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조만간 중국어 학원도 등록할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가슴 한 구석이 공허할 때가 많습니다. 사회란 곳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요. 사회가 좋긴 좋지만, 가끔은 서울 도심의 꽉 막힌 도로와 사람들로 붐벼 숨쉴 틈조차 없는 지옥철에 몸과 마음이 지치곤 합니다. 전역 후 백수 신세라 늘 비어있는 통장 잔고도 한숨을 불러일으키고 있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나중에 뭐 해서 먹고 살아야하나 막막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면 자꾸 '군대'가 생각납니다. 일종의 도피성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어릴 적부터 직업군인이 꿈이기도 했고, 전역 직전까지 말뚝을 고민했던 터라 평생 직업으로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됩니다.


어제 오랜만에 중대장님을 만난 자리에서도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여전히 군복만 보면 설레고, 내가 입고 있어야 할 옷은 군복인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까, 중대장님 역시 "너는 장교를 하는 게 맞다"면서 "남들 말에 휘둘리지 말고, 아직 젊으니까 한 번 도전해봐"라고 조언해주시더군요.


제 군 생활 중 롤모델이었던 중대장님으로부터 적극적인 권유를 받으니, 마음이 다시 흔들립니다. 남자에게 가장 큰 악몽은 '재입대하는 꿈'이라고들 하는데, 이러다가 저는 정말 꿈이 아닌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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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가끔은 본 영화를 또 보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특히 이상하게 토요일 밤만 되면, 특히 한 철 지난 홍콩무협영화를 자꾸만 보고 싶어집니다. 어제도 그래서 견자단 영화를 볼까, 성룡 영화를 볼까.. 아니면 유가휘 영화를 볼까... 계속 고민하다가, <취권>을 보기로 결심하고 DVD를 꺼내 들었습니다.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열심히 집중해서 봤습니다. 확실히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라서 그런지, 오랜만에 보는데도 세세한 부분까지 다 기억이 납니다. 근데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취권>은 제가 본격적으로 무술에 흥미를 느끼고 그 세계에 입문하게 해준 영화라, 제겐 더할 나위 없이 애틋하게까지 다가오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어쩌다 무술에 흥미를 갖게 되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항상 레퍼토리가 똑같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케이블 TV에서 본 영화 <취권> 때문이다"


실제로 저는 이 영화를 보고서, 곧장 교보문고 강남점으로 달려가 '현대쿵후교본'이라는 책을 산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도장 갈 용기가 없어서 교본으로나마 독학을 하려고 했던 것인데, 흑백으로 된 아주 조잡한 그 교본은 도저히 독학이 불가능한 수준의 책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YouTube도 있었는데, 왜 21세기에 그런 전근대적인 시도를 하려고 했는지 우스운 노릇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 책은 지금도 제 서가에 꽂혀있습니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어 동네 태극권 도장에 등록하게 되었고, 그게 바로 제 무술세계로의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초딩 때 배운 태권도는 논외로...) 도장에 나가니 책만 봐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던 동작들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흔히들 무술 독학을 시도하는 이들에게 '독학하면 몸 망가진다' 이런 말을 많이 하며 말리는데, 저는 제 스스로 책이나 영상을 보고 따라할 정도의 재능이 없음을 알기에, 애시당초 독학을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그냥 동작들 몇 개나 따라했을 뿐. 진지하게 독학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죠.



오랜만에 <취권>을 보니 어릴 적 로망(지금도 있습니다만)이 다시 떠오르기도 하고, 다시 한 번 홍가권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요즘 몸 풀이 정도로 생각하고, 밤마다 홍가권의 권법들을 한 차례씩 연무하곤 하는데, 정말 매력적인 권법인 것 같아요. 진지하게 홍콩 쪽에 가서 정통 홍가권을 제대로 배워볼까 하는 고민도 하게 됩니다. 내친 김에 '취팔선'까지...


영화를 보고 감상에 푹 빠져버려서, 어제는 밤잠을 좀 설쳤네요.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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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비도 추적추적 오고 하는데, 오랜만에 '혼술' 한 번 즐겨보고 싶더군요.


그래서 활쏘기 특강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망고바나나 막걸리' 한 통 사서 밤새 홀짝 홀짝 마셨더랬습니다.


군대 가기 전까지만 해도 과일주가 그렇게까지 대중화되지는 않았던 걸로 아는데, 어느 날부터 '순하리' 시리즈가 나오더니 이젠 막걸리까지 외연을 넓혀 '망고바나나 막걸리'라는 것도 나왔네요. 망고바나나라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망고맛은 별로 안 나고 바나나맛이 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이 막걸리도 성분표시를 보니 역시나 '아스파탐'이 들어가있군요. 아스파탐만 들어간 게 아니라 합성감미료까지 들어갔습니다. 지난 번 '막걸리 유랑단' 행사 때 마셨던 막걸리들도 거진 '아스파탐'이 안 들어간 게 없더라고요. 우리가 흔히 막걸리로 알고 있는 막걸리는 오리지널 순수 막걸리가 아니란 것. 저는 막걸리 유랑단 행사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게, 아스파탐 덩어리 막걸리를 해외에 홍보할 게 아니라, 순수 막걸리를 홍보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흔히들 막걸리 마시면 다음 날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이 '아스파탐' 때문이랍디다. 설탕보다 100배 이상의 단맛을 내게 한다고 하여, 막걸리에는 꼭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오히려 이게 진짜 막걸리의 맛을 망치는 것 같아서 전 싫습니다. 


아스파탐 막걸리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진짜 막걸리를 못 먹는다고 하는데, 여하간 저는 양평에 갔다가 술도가에서 직접 내린 순수 지평막걸리 맛을 보고 홀딱 반한 뒤로는, 이런 가공막걸리는 그저 그래요. 딱히 대안이 없으니 마시긴 하지만, 늘 아쉽죠. 사실 주위에서 아스파탐이 들어가지 않은 막걸리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거든요.


예전에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집에서 직접 막걸리를 빚어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저도 한때나마 막걸리를 직접 빚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다른 취미 활동에 바빠 까먹고 있었네요. 여유가 생긴다면 저도 아스파탐 첨가하지 않은 오리지널 순수 막걸리를 제 손으로 빚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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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충무로 '한국의집'에서 '막걸리 유랑단' 행사가 있어서 참석했습니다.


막걸리 유랑단이란?


막걸리 유랑단은 2014년에 처음 시작한 행사인데, 전국을 돌면서 우리 민속주인 막걸리를 홍보하는 행사라고 합니다. 한국홍보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처음 기획했고, 지금까지 배우 송일국, 조재현, 개그맨 정준하, 가수 하하 등등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연예인들을 집중적으로 섭외하여 함께 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얼마 전에 SNS를 통해 이번 행사 소식을 접하고, 호기심에 한 번 신청해봤습니다. 원래 막걸리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이번 행사에 참석하면 막걸리와 안주가 무료 제공된다고 해서요. 그리고 이번에는 영화 <명량>의 감독인 김한민 감독과 배우 안성기씨도 온다길래 재밌을 것 같아서 신청했습니다.


어제가 행사였는데, 마침 어제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죠. 거의 폭우 수준으로 비가 많이 오길래,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오히려 비가 와서 막걸리 마시기엔 더 좋은 날씨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집에서 출발할 때쯤 되니까 비도 이미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요. 그래서 집을 나서서 행사장으로 향했습니다.


행사가 열리는 충무로역 한국의집 3층 취선관에 가니 행사의 규모가 생각했던 것보다 커서 놀랐습니다. 드넓은 연회장에 거의 뷔페 수준으로 음식(안주)들이 쫙 깔려있고, 각 지역을 대표하는 8개 브랜드의 막걸리가 테이블마다 놓여있습니다. (이 술과 안주는 무제한으로 계속 제공되었답니다!)



저같은 경우 혼자 신청했는데, 어떻게 앉아야할지 몰라서 어느 젊은 여성 두 분이 있는 테이블에 양해를 구하고 동석했습니다. 이쪽 테이블이 맨 앞이라 토크쇼가 시작되면 카메라로 찍었을 때 사진도 잘 나오겠다 싶더라고요. 어쨌거나 그 두 분하고 어색해서 처음에는 저 혼자 막걸리 따라 마시다가, 이대로 가면 너무 뻘쭘하겠다 싶어서 먼저 말도 걸고, 서로 막걸리도 따라주고 함께 건배도 하면서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술이 들어가니 분위기가 많이 고조되더군요. 그 여성 분들과의 뻘쭘했던 분위기도 어느새 취흥에 날아가버리고, 저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계속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습니다. 내심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코앞에서 본 '배우 안성기'


저희가 막걸리 한두 잔으로 입가심을 하고 있을 즈음에, 드디어 행사를 기획한 서경덕 교수가 입장했습니다. 서경덕 교수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홍보대사이기도 하고, 저 역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출신 예비역 병장에, 지금은 대학생 서포터즈 1기로 활동하고 있죠. 뭐 더 멀리 들어가면 같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SNS를 통해 교류를 많이 해오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는 척을 했더니, 서 교수님도 무척이나 반겨주시네요.



뒤이어 안성기 배우와 김한민 감독도 함께 입장했습니다. 저도 연예인들 많이 보긴 했지만, 안성기씨를 보는 건 처음이라 참 신기했습니다. 게다가 전 맨 앞 테이블이라서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어요.


오늘 토크쇼의 주제는 '영화'. 서경덕 교수가 질문을 하면, 김한민 감독과 안성기 배우가 대답을 하는 문답 형식으로 토크쇼가 진행이 되더군요. 특히나 이번에 김한민 감독이 제작을 맡고, 안성기 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 <사냥>이 엊그제 개봉했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홍보도 이루어졌습니다.



영화 관련 토크 뿐만 아니라 막걸리에 얽힌 사연들도 나왔습니다. 특히 안성기 배우는 "우리는 옛날에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서 막걸리도 이런 막걸리가 아니라, 정말 저렴하고 품질이 떨어지는 막걸리를 마셨다"면서 "안주 역시 별 게 있었겠나. 김치가 전부였다"고 회고하네요. 


그리고 막걸리에 얽힌 에피소드에 대해서도 소개했는데요, 술 먹고 돌아다니다가 학교 벽에 토하는 바람에 아침에 수위 아저씨가 박박 닦는 모습을 보며 모른 척 했다는 사연부터, 술 먹다가 오바이트를 했는데 나중에 코가 가려워 보니까 콧구멍에서 고사리가 나왔다는 이야기까지... 진솔하고 소탈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보고 참 인상 좋은 동네 아저씨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국민배우는 달라요.


일방향적 소통이 아쉬웠던


그럼에도 행사 자체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취중토크쇼'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취중토크라서 그런지 너무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연예인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다는 신기함도 잠시, 점점 술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다들 취해서 앞에서 진행을 하건 말건 관심도 안 가지게 되더라고요. 결국 테이블별로 열심히 술 마시고 떠드는 분위기가 형성이 되어버렸네요. 맨 앞에 앉은 저조차도 그 소란함 때문에 앞에서 주고받는 대화가 잘 안 들릴 정도였어요.


어차피 다들 집중도 안하고 있고, 앞에서는 일방향적으로만 대화를 하고 있어서, 이럴 바에야 중간에 관객들이 직접 질문을 던지면서 쌍방향으로 유도하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던지려고 했는데, 관계자 분이 "나중에 질문 타임이 있으니까 지금은 하지 말아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꾹 참고 기다렸는데, 결국 행사가 끝나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나중에 그 관계자가 저한테 "미안하다"고 한 걸 보면, 원래 질문타임이 있는데 출연진이 바빠서 생략한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그럴 거였으면 차라리 30분 정도는 미리 빼서 '관객들과의 대화' 코너를 마련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와 동석했던 일행들도 제 생각에 다들 동의하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하니까 뭔가 앞에서는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뒤의 관객석에서는 자기들끼리 술 마시면서 떠들고... 너무 어수선한 것이 행사의 취지에도 맞지 않고, 진행 역시 매끄럽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질문할 기회를 기다리면서, 계속 뭘 질문해야하나 머릿 속으로 고민하고 질문 내용을 다듬고 했는데... 허망하게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너무 아쉬웠습니다.



벌써 13회째라고 하는데, 전의 행사들도 항상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처음 참석한 행사인데 아쉬움이 많이 남았어요. 개인적으로 서경덕 교수의 한국홍보활동을 늘 지지하고 응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번 행사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행사의 진행 방식에 대해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막걸리 한 잔으로 시작된 인연


행사에 아쉬움을 느낀 것과는 별도로, 테이블에 동석했던 여성 두 분과 친해져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화여대 다니는 여대생이라고 하는데, 취기 탓인지 서로 친해져서, 행사가 끝날 무렵에는 "2차 가자"고 서로 합의하고, 근처 호프집에 가서 생맥주 한 잔씩 더 했네요. 


초면의 여성 분들과 2차까지 가게 될 줄도 몰랐지만, 오가는 대화 속에 생각보다 저와 생각이나 관심사가 비슷해서 더욱 놀랐습니다. 결국 밤 늦은 시간까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떠들다가, 이러다간 차 놓치겠다 싶어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났습니다. 비록 딱 한 번 본 사이지만, 이것도 인연인데 앞으로 서로 좋은 인연으로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철저한 준비와 함께 더 훌륭한 행사로 거듭나길


어쨌거나 '막걸리 유랑단' 행사의 취지 자체는 굉장히 훌륭하고, 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행사는 중국, 일본 등 해외로 나가서 진행한다고 합니다. 국내 행사를 진행하면서 느꼈던 문제점들을 바탕으로 해외 관객들의 많은 성원을 끌어낼 수 있게끔 좀 더 확실하게 준비를 해서 행사를 열었으면 좋겠군요. 우리 술과 우리 문화를 홍보하는 행사이기에, 철저한 준비를 해서 뒷말이 없기를 바라는 게 제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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