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16년 3월 1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1. 오늘부로 군 생활 93% 찍음. 총 복무기간 639일(1년 9개월) 중 596일(1년 7개월 16일)을 복무했고, 남은 복무기간은 43일(1개월 12일)이 되겠다.

이등병 때 만날 달력 보면서 하루 하루 날짜 지우는 재미로 살았는데, 일병 꺾이고서부터 어느 순간 날짜 지우는 취미를 잃어버렸다. 날짜 세는 게 부질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건지, 그냥 귀찮아서 그랬던 건지... 이제는 굳이 안 세고 싶어도 동기, 후임들이 알아서 며칠 남았다고 알려준다. 100일까지는 참 더럽게 시간이 안 가더니, 두 자리로 깨진 뒤로는 시간이 쭉쭉 가는 느낌이다.

이번에 나온 휴가를 포함해 남은 휴가가 24일이니 사실상 실질적인 군 복무기간은 한 달도 안 남았다. 어느 덧 전역을 바라보게 되는 짬이 되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2. 오래간만에 아파트 옥상에서 저녁 운동을 했는데, 옥상에서 내려다 본 서울 시내는 1년 9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그닥 변한 게 없어 보인다. 입대 전에는 보이지 않던 몇몇 고층 빌딩들이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밤하늘에 뜬 별들이며 야경들이 입대 전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던 그때의 정경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밤하늘의 별들과, 서울 시내의 고층 빌딩들을 바라보면서, 마치 내 자신의 처지를 보는 것 같았다. 군 생활 1년 9개월은 내 인생에 있어 '일시정지'였던 것 같은 느낌이다. 바깥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남들은 그 시간 동안 거듭 성장해왔는데, 나는 그저 1년 9개월 동안 일시정지했다가 전역 후에 다시 2014년 7월 13일. 입대 전 원점의 나로 복귀하는 것이 아닐까.

3. 요즘은 故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들린다. 입대 전 이등병의 편지를 자주 들었는데, 그때는 입대를 앞둔 시점이었기에 마냥 우울하게만 들렸더랬다. 음악이나 가사 자체도 굉장히 우울하지 않던가.

그러다 휴가 나오기 전날인 엊그제 밤에, 침낭 속에 들어가 CD플레이어로 '이등병의 편지'를 반복해서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음악이 그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들린다. 특히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생)이여'라는 구절... 이 구절이 가슴에 콕콕 박혀온다.

예전에는 이 곡이 입대를 앞둔 청춘들을 위로해주는 곡으로만 생각했는데, 사실 이 곡의 진짜 의미는 전역할 때가 되어서야 깨닫는 게 아닐까 싶다. 전역 후의 삶에 대한 막막함을 느끼는 말년에게 '이제 다시 시작이다'라고 말해주는... 말년을 위한 위로와 희망의 노래가 아닐는지.


Posted by 가베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