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 http://cafe.naver.com/dogpalza/12758093


강아지 사료 전문 제조업체 뉴트리나에서 건강백서 프로페셔널 브랜드 사료 체험단을 모집한다고 합니다. 150명을 골라 선발해서 사료를 제공한다고 하는데요, 저희 보리 역시 사료를 많이 가리는지라.. 이번에 신청하게 됐습니다. 자세한 건 링크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강아지 기르는 집에서는 한 번 눈여겨 볼 만한 소식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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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집에서 기르는 반려견 시츄 보리와 함께 보라매공원에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사실 강아지를 입양한 것도 저고, 새끼였던 애를 인천까지 가서 데려온 것도 저였는데 입양하고 얼마 안 되어 군대에 가는 바람에 보리한테 많은 애정을 주지 못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저보다도 어머니를 열심히 따르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산책을 데려가려고 하면 신나서 꼬리를 흔들고 따라가는데, 제가 데려가려고 목줄을 들면 기겁해서 도망가더라고요. 


뭐 자주 안 데려간 제 책임도 있기 때문에... 새해에는 보리랑 좀 많이 놀아줄 요량으로 시간 내서 보라매공원까지 다녀왔습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평소에 개를 데리고 공원에 가면 개에 신경쓰느라 제 수련을 못하기 때문에 절대 안 데려갔더랬습니다. 생각해보니 정기수련이 있는 날엔 어차피 수련을 따로 하니까 시간 내서 산책을 다녀와도 되겠다 싶더라고요. 오늘이 딱 그 날이었고요. 날도 많이 풀려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원래는 보라매공원에 새로 개장한 '반려견 놀이터'에 가서 놀아주려고 했는데, 애석하게도 동절기 휴장이라고 하네요. 앞에까지 갔다가 크게 실망하고 돌아왔습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공원에 개들도 많이 안 보이더라고요. 평소 같았으면 발에 돌부리 채이듯 널린 게 개들이었는데 말이죠. 보리가 숫기가 없어서 다른 개들하고 좀 접촉을 자주 해야하는데, 지금도 개들을 보면 겁 먹고 도망다녀서 걱정입니다.


아무튼 날이 추워서 오랜 시간 놀진 못했지만 오며가며 그리고 공원 잔디밭에서 뛰면서 바람도 쐬고 보리에게도 즐거운 시간이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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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밥인 줄 아는 걸까  (0) 2017.03.19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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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 생애 첫 노트북을 장만했다. 기종은 삼성 노트북 9 라이트 시리즈다. 부천 일렉트로마트를 아이쇼핑하면서 직원에게 안내도 받았지만, 심한 기계치라서 들으나 마나 뭔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했다. 그냥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가볍고 작은 노트북을 골랐다.


사실 살면서 데스크톱 컴퓨터가 주는 익숙함에 젖어 노트북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것보다는 데스크톱 컴퓨터로 글을 쓰는 손맛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노트북의 필요성을 처음 느꼈다. 교수님의 말씀을 받아적느라 손 아프게 필기하고 있을 때, 휘리릭 노트북으로 받아적는 학생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도 4학년이 될 때까지 꿋꿋이 데스크톱을 고수했다.


하지만 전역하고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노트북의 '휴대성'이 간절하게 요구됐다. 어디든 편하게 들고 다니면서 취재한 즉시 원고를 보낼 수도 있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오랜 시간 집을 비울 때도 언제 어디서든 노트북으로 글을 쓸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찌는 듯했던 올 여름, 찜질방 같은 집 안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려니 그 자체로 고통스러웠다. 내년 여름엔 스타벅스 같은 시원한 카페에 가서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다소 안심이 된다. 복학해서 수업을 들을 때도 예전처럼 손 아프게 필기할 일도 줄어들테고. 나름 비싸게 주고 산 물건이니만큼 오래도록 유용하게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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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16년 한 해도 며칠 남지 않았군요. 제겐 여러모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제게 있어 올 한 해는 '전역의 해'였습니다. 4월에 전역을 하면서 마침내 1년 9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군인에서 민간인으로 신분이 전환됐으니까요. 비로소 다시 태어난 해라고나 할까요. 전역하고 나서는 군 생활 중 정리했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뛰어왔던 것 같습니다. 


직접 커피 한 잔 내려마시고 싶어서 커피 공부를 시작했고, 남자라면 악기 하나쯤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해금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열정대학과 이태원대학 등 대안대학에서 무예24기를 가르치면서 지도자로서의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자유학기제 강사로 채용되어 중학생들에게도 무예24기를 지도했는데, 여기서는 제 자신의 부족함을 많이 깨닫는 계기가 됐지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은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짭짤한 원고료는 취미생활을 즐기는 밑천이 되어주었고, 꾸준한 활동으로 상도 탔으니까요. 그리고 올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는 마침내 형의권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올 한 해는 대충 이 정도로 언급하기로 하고 2017년 신년 목표를 한 번 정리해봤습니다.


1. 형의권의 꾸준한 수련


형의권을 배우기 시작한 지 열흘 정도 됐습니다. 좀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배움에도 때가 있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예24기를 수련하다가 한계에 봉착해서 여기에 왔으니, 오히려 더 전념할 수 있겠죠. 만약 큰 고민 없이 시작했다면, 그만큼 쉽게 포기할 가능성이 높았을 겁니다. 오랜 방황과 고민 끝에 어렵게 시작한 권술이니만큼, 평생 공부라고 생각하고 수련을 하려고 합니다. 사부님이나 사형들 말씀으로는 1년 동안은 체(體)를 만들어야해서, 그 과정이 대단히 지루하다고 합니다. 그 지루함을 못 이기고 떠나는 이들이 굉장히 많다고. 그래서 저는 새해 목표 중 하나를 형의권의 꾸준한 수련으로 잡았습니다. 지루함과 싸워 이기고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수련해서 몸을 만들고자 합니다. 이변이 없는 한, 형의권을 중도에 관둘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2. 무사히 졸업하기


드디어 내년에 복학을 합니다. 오랜 시간 학교를 떠나 있었기 때문에, 사실 복학이 좀 두렵습니다. 내년엔 17학번이 들어오는데, 제 학번이 11학번입니다. 완전 화석인 셈이죠. 아저씨 냄새 풀풀 풍기면서 학교 생활하려니 걱정도 되고, 그동안 굳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기나 할까 걱정됩니다. 다행히 1학기 등록금은 장학금을 타뒀기에 맘 편하게 다닐 수 있겠습니다만, 2학기 장학금을 탈 수 있을지도 우려스럽고요. 사실 지금 상황에서 토익 점수와 졸업논문만 있으면 조기 졸업이 가능한데, 그에 대한 대비도 전혀 없는 상태라 좀 아쉽군요. 이건 한 번 알아볼 생각입니다. 반짝 해서라도 저 조건 충족이 가능하면 조기 졸업도 노려볼 만 하니까요. 하루 빨리 학교를 뜨는 게 제 소원입니다.


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꾸준히 활동하기


올해 군 전역 후 가장 의미 있었던 활동이었습니다. 용돈벌이나 할 셈으로 시작한 시민기자 활동이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의미 있었습니다. 일단 부수입이 매우 짭짤했습니다. 지금까지 기사쓰기로 벌어들인 원고료만 200만원이 넘었습니다. 그 돈으로 술도 사 먹고 책도 사 읽고 무술도 배우는 등 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돈을 떠나 제 글쓰기를 가다듬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고요. 글 쓰는 지적노동이 군 생활하며 삽질하는 육체노동 못지 않게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래도 글 한 편 탈고해서 메인에도 올라가보고, 제 글을 통해 누리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점이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덕분에 '이 달의 게릴라' 상도 타보고, '2월 22일상'이라는 상도 수상해서 내년 2월에 시상식이 열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 서평단에 합류하면서 매주 2권씩 신간 서적을 무료로 받아볼 수 있는 혜택도 입었습니다. 덕분에 요새는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요새 제 활동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년에 복학하면 학교생활이 바빠서 지금처럼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데요, 열심히는 못해도 꾸준히 활동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4. 운전면허 따기


부끄럽게도(?) 26살 먹도록 운전면허를 못 땄습니다. 따야할 필요성은 강하게 느끼는데, 차일피일 미루게 되는군요. 가급적 복학 전에 운전면허를 따려고 목표를 세워봤습니다. 전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운전면허는 꼭 따고 싶습니다.


5. 책 많이 읽기


아무리 바빠도 책은 지금보다 더 많이 읽고 싶습니다. 독서만큼 유익하고 재밌는 취미가 없거든요. 전공 서적이나 취업을 위한 수험서에만 매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군 생활하면서 86권의 책을 읽었고, 전역 후에는 <오마이뉴스> 서평단 활동을 위해 책을 꾸준히 읽어오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읽고 싶은 책은 나날이 쌓여만 가고 있으니까요.


6. 해금 꾸준히 배우기


생각해보니 해금을 배우기 시작한 지도 반 년이 넘었습니다. 해금 배우기는 말년 병장 시절 정리했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버킷리스트를 실천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꾸준히 배우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스스로 대견함을 느낍니다. 이것 역시 형의권처럼 이변이 없는 한, 꾸준히 배우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해금을 대여해서 쓰고 있었는데, 조만간 아예 제 해금을 장만할 생각입니다. 언제까지 배워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스승이 따로 필요 없는 수준에 이를 때까지는 계속 배우고 싶습니다.


7. 중국어 배우기


중국어를 참 좋아합니다. 영어는 아무리 배워도 머리에 안 들어오는데, 어릴 적부터 중국무술이나 중국요리 등 중국문화를 좋아했다보니까 중국어도 친숙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고등학교 때나 대학 교양수업 때면 제일 열심히 들었고, 성적도 항상 우수했습니다. 문제는 꾸준히 배웠어야 했는데, 단기로 끝내서 말짱 도루묵이 됐다는 거. 내년부터는 중국어를 한 번 배워볼까 생각 중입니다. 제 소원이 그 좋아하는 중국무협영화를 자막 없이 보는 겁니다. 아울러 앞으로 중국 갈 일이 많을 텐데, 현지에서 통역 없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도 목표고요. 그러려면 역시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배워야겠죠.


8. 진로 정하기


이것도 중요한데 여전히 막막한 부분입니다. 내년만 학교를 다니면 졸업인데, 아직까지도 진로를 정하지 못했네요. 입대하기 전만 해도 당연히 졸업하고 대학원 가서 역사 공부를 계속 할 생각이었는데, 군 생활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고, 스스로 공부 체질이라는 생각도 안 드는군요.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봤습니다만, 시민기자 활동을 하다보니 그것 역시 딱히 제 체질은 아닌 듯 합니다. 여러모로 가장 많이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올해 안에는 생각을 정리해서, 취업을 준비해야겠죠.


대략 이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겠네요. 너무 무리하게 목표를 세우면 오히려 질려버릴 듯 합니다. 사실 이미 저 정도만으로도 굉장히 거창한 듯 하네요. 그리고 정리해놓고보니 죄다 돈을 많이 벌어야 가능한 일인 듯 합니다. 배움도 결국 돈이 있어야 가능하니까요. 일단 최대한 지출을 아끼고, <오마이뉴스>에 꾸준히 글을 쓰면서 부수입을 늘리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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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 입당 신청했습니다.


민주당은 온라인 당원이라는 제도가 있어, 굳이 지역 시/도당이나 중앙 당에 찾아가 원서를 제출하는 번거로움 없이 인터넷으로 마우스 클릭 몇 번 하면 신청이 끝나더군요. 사실 정치라는 건 특정 개인이나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접근성이 높아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온라인 당원 제도는 선진적인 것 같습니다.


입당원서를 작성할 때, 뭐 이것저것 요구할 줄 알았는데 그닥 많은 정보를 요구하지 않더군요. 5분도 안되서 신청이 끝났습니다. 당비도 매월 1,000원으로 저렴하더군요. 당비를 안 내도 당원이 될 수 있지만, 제 목소리를 내는 '권리당원'이 되려면 당비를 정기적으로 납부해야한다길래 흔쾌히 정기이체를 약속했습니다. 


통상 입당 심사가 2주 정도 걸린다고 하는군요. 요새 정국이 정국이다보니 민주당 후원과 당원 가입 신청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평상시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합니다. 뭐 급한 것도 아니고... 언제든 문자가 오겠지 하는 느긋한 심정으로 기다릴 생각입니다.


사실 저는 26년 동안 정당 활동과는 매우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정당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죠.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기성세대에 만연한 불신 풍조에서 저 역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번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오히려 심화됐죠. 국민들은 추운 겨울에 주말도 반납하고 매주 광장으로 나가 촛불을 드는데, 야당은 탄핵 시기와 절차를 놓고 지들끼리 싸우고 있으니... 솔직히 새누리당보다 민주당이 더 얄미워서 욕이라도 한 사발 퍼부어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어쨌거나 정치를 외면하고 불신한 풍조가 박근혜라는 괴물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겁니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 정치가 더럽다고 외면하면 결국 나라가 산으로 가게 됩니다. 더러우면 오히려 그걸 정화시키도록 노력을 해야죠. 저 스스로 주권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정당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민주당이냐? 세월호 변호사로 유명한 민주당 박주민 의원을 취재할 일이 있었는데, 그분이 그러더군요. "정치권이 무심한 것 같아도 국민들의 촛불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실제로 탄핵하기로 결정한 후 민주당이 보인 행보는 일사천리였습니다. 더욱이 요새 들어 호감을 갖기 시작한 박원순, 박주민, 표창원, 안희정 등이 모두 민주당 소속이기도 하고요. 제 생각에도 제1야당에 힘을 실어주는 게, 정치 풍토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쉽다고 판단해서 민주당 입당을 결정했습니다.


당원이 된다고 해서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느냐마는... 일단 이렇게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보다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심 갖고 참여하면서... 내 자신을 위해, 내 가족을 위해.. 그리고 먼 미래에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 목소리를 보태렵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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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광화문-경복궁 일대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이제 조금씩 지쳐갑니다. 날도 추워지고, 매 주말마다 어마어마한 인파에 끼어 행진한다는 게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이 결국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찝찝해서라도 광장에 나갈 수밖에 없겠더군요.


대신 오늘은 좀 일찍 가서 오후 4시부터 열리는 '청와대 포위' 행사에만 참석하고, 본행사와 행진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이 이례적으로 청와대 앞 100m까지 행진을 허용한 관계로, 동서남으로 청와대 방면의 행진이 이뤄졌습니다. 제가 행진한 구간은 남쪽 코스인 청와대 사랑채 앞 자하문로입니다. 경찰이 세워둔 차벽 뒤로 청와대 영빈관이 가까이 보이더군요. 여기서 우렁차게 외쳐댔으니, 청와대 안에 있는 박 대통령도 분명히 국민의 성난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청와대에 없을지도...?)


박 대통령에게 진지하게 건의합니다. 이제 국민들에게 황금주말을 반납하기 바랍니다. 본인 한 명만 깔끔하게 내려오면 5천만 국민 모두가 주말에 편하게 발 뻗고 잘 수 있습니다. 차벽으로 막혀 주말만 되면 울상인 삼청동 일대 상인들에게도 웃음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경복궁을 관람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해외 관광객들이 헛걸음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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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외할아버지께서 향년 83세로 돌아가셨습니다. 3년 전부터 앓고 계시던 지병인 폐렴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시신검안서에는 사인이 '신부전'으로 나오더군요. 오늘로 딱 일주일째가 됐네요. 시간 참 빨리 흐릅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함께 호흡하고 계셨던 분이, 이제는 이 세상에 안 계신다는 게 여전히 믿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11월 21일 월요일 오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한가하게 컴퓨터를 하던 중, 부고를 접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할아버지 돌아가셨대"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뒷통수를 망치로 맞은 것 같더군요. 차분하게 주어진 일을 다 마무리하고 장례식장이 있는 춘천에 천천히 합류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뭘 해도 집중이 잘 안되고 마음이 내내 불편하더군요. 결국 일정을 다 취소하고 저녁 늦게 아버지 차를 타고 춘천 빈소로 향했습니다. 빈소가 마련된 호반장례식장에 도착해 할아버지의 영정을 보는 순간 그제서야 눈물이 터지더군요. 비로소 할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안 계시다는 게 실감나기 시작했습니다.



이튿날, 할아버지 입관식을 치렀습니다. 솔직히 입관을 보기 위해서 결근까지 하고 일찌감치 춘천에 왔지만, 입관식을 앞두고서는 입관을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됐습니다. 생전의 건강한 모습을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렇지만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르니 꼭 보라는 주위의 충고에 따라 용기를 내서 영안실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이미 염을 끝내고 수의를 입은 모습으로 누워계시더군요. 얼굴에 흰 한지가 덮여있는 것을 보니 울컥했습니다. 사실 저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지켜봤는데,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더 힘들었습니다. 불과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차갑게 굳어버린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더 가슴이 아프더군요. 혹시라도 할아버지가 다시 눈을 뜨는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간절히 빌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더군요. 입관을 마치고 할아버지를 다시 차가운 냉장고에 두고 나오는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빈소에서 할아버지댁까지 거리가 멀지 않은 관계로, 잠은 집에서 잤습니다. 집에 들어가니 할아버지께서 마지막까지 누워계시던 방이 있었습니다. 당일날 아침까지도 멀쩡하셨다고 하는데, 뜬금없이 집에 있던 가족들을 다 나가라고 내보내고 혼자서 쓸쓸히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아마 본인의 마지막을 직감하시고,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남은 가족들은 유언도 못 듣고,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고 한스러워하지만... 그래도 할아버지께서 잠자듯이 편안하게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체취가 배어있는 방에 들어가서 침상에 얼굴을 묻고 한참 동안 할아버지의 체취를 맡았던 것 같네요.


3일차인 수요일에 발인부터 화장, 납골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화장터야말로 정말 따라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입관보다 지켜보는 게 더 고통스러울 것 같았거든요. 그러나 제가 유일한 손자인지라 영정과 위패까지 들고 모든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생각보다 눈물은 별로 안 나더군요. 정말 담담했습니다. 다만 역시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이 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2시간 가까운 화장 끝에 한 줌 뼛조각들로 나오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인생무상을 느꼈습니다. 뼛조각을 분쇄해 고운 뼛가루로 만든 뒤에 납골함에 담는 과정을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주더군요. 나중에 납골함에 담은 뼛가루를 코앞에서 봤습니다. 그 풍채 좋던 우리 할아버지가 한 줌 가루가 되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더라고요. 납골당에 안치하고, 마지막 제사까지 지낸 뒤에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장례 기간 동안에는 솔직히 담담한 편이었는데, 돌아온 날 밤에 갑자기 울컥해서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제서야 할아버지가 제 곁을 떠났다는 게 와닿기 시작했나 봅니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애틋합니다. 외삼촌들이 결혼을 못해 친손주가 없는 탓에, 제가 유일한 외손자로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부터 방학만 되면 늘 춘천 외가댁에서 머물다 오곤 했습니다.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목욕탕에 가서 강제로 때를 밀리며 울었던 기억, 추운 겨울에 할아버지와 소양강변을 따라 운동을 다니던 기억, 할아버지가 맛있는 거 사준다면서 손 잡고 데려갔던 달팽이집까지... 장례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여전히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서려있는 그 길들을 보면서 코끝이 시큰했습니다.


이제는 할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밖에 없습니다. 성인이 되고서부터는 외가댁으로 가는 발길이 뜸해졌거든요. 제가 하도 안 가니 할아버지께서 먼저 전화를 하셔서 "왜 안 오냐"고 독촉하기도 했습니다. 방학 때마다 한 차례씩 들르긴 했어도, 거의 형식적인 방문이었습니다. 어쩌다 놀러가도 춘천에 사는 지인들을 만나 술 마시고 오기 바빴습니다. 할아버지를 본 기억도 올해 여름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때도 저는 아는 형들을 만나 술이나 마시고, 집에서는 잠만 자다 왔습니다. "하루 더 자고 가라"고 했던 할아버지의 말을 뿌리치지만 않았어도... 그때 하루만 더 자면서 할아버지와 좀만 더 얘기를 나눴어도... 이토록 후회스럽지는 않았을텐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너무나 후회막급일 따름입니다.


저희 외할아버지... 생전에 참 풍채도 당당하고 멋진 분이셨습니다. 키도 저보다 훨씬 컸고, 덩치도 산만 하셔서 젊은 저도 완력으로 못 당해내는 분이셨습니다. 워낙 강골이셔서 추운 겨울에도 야외운동을 꾸준히 하셨고요. 결과적으로 찬 바람을 오랫동안 쐰 것이 병의 원인이 되긴 했지만... 할아버지보다는 외할머니와 더 살가웠지만,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크나큰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를 '할배', '할배'라고 부르면서 할아버지 특유의 말투를 따라하며 장난을 치곤 했습니다. 아직도 제 귓가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선한데...


이제 저도 성인이 되고 계속해서 나이를 먹다보니, 점점 더 많은 이별을 맞이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 할머니, 부모님 그리고 다른 친척들까지... 계속해서 주위 사람들과의 이별을 하게 될텐데요,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건 사실상 제겐 첫 이별이나 다름 없었기에 더 충격이 큰 것 같습니다. 어차피 태어나면 죽음도 있는 법이라지만... 남는 사람에겐 너무나 큰 고통과 슬픔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언제까지나 할아버지는 제 기억과 마음 속에 살아숨쉰다고 믿고 싶습니다. 


할배! 보고싶어! 나중에 꼭 보러 갈게! 좀만 기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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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스스로 노예되기를 자처하는가


무예24기 한양류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개입 의혹으로 시작된 박근혜 게이트가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매일 같이 쏟아져나오는 청와대발 뉴스속보에 경악했다.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대통령 연설문 유출은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대통령이 청와대 안방에 앉아 온갖 미용시술을 받은 것도 모자라 비아그라까지 반입해 청와대가 청와텔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지경에 이르렀다. 어린 생명들을 비롯한 우리 국민 304명이 차가운 바닷 속에 가라앉는 동안, 국가재난을 관리하고 총지휘해야 할 대통령이 무려 사건 발생 7시간 동안 관저에 들어앉아 출근조차 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박근혜 정권은 법적·도덕적으로 완전히 타락한 정권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우리는 지금 미친 기관사가 운행하는 폭주 기관차에 올라탄 꼴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관차에 가만히 앉아 모두 개죽음을 당할 것인가. 모두가 살기 위해서는 미친 기관사를 우리 손으로 끌어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마땅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광장으로 나가 촛불을 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학생, 주부, 농민, 직장인 등 직업의 구분도 남녀노소의 구분도 없다. 대한민국 국민만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 국민의 이름으로 청와대 안방에 들어앉아 귀를 막고 있는 암군(暗君)에게 퇴진 명령을 하달해야 한다.


그런데 "왜 우리가 촛불을 들어야 하는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이것은 우리들의 책임도 아니며, 대통령이 물러나는 문제도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해결할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주권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미친 기관사에게 운전대를 맡긴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주권자로서의 당연한 권리 행사를 포기한다면 스스로 개·돼지나 노예되기를 자처하는 꼴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왜, 어찌하여 오늘의 질곡을 용납하고 이 현실을 초래한 원인을 우리 주권자는 방관만 하였던가? 언제나, 오직 주권자의 권능만이 조국의 진로를 가리키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중략···) 주권자의 우(愚)는 조국을 난파선으로 침몰시키고 말 것이다" - <주권자의 관용이 민주주의를 교살한다> (『사상계』1967년 4월 호 권두언)


"오늘날 나라의 주인은 바로 우리들 각자 백성이요, 관은 우리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 만든 기관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관에 대해서 봉사를 요구할 권리가 있고 관은 이에 응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만에 일이라도 관에 있는 자 번문욕례(繁文縟禮: 법과 규칙이 까다로움을 이르는 말)의 구름 위에 앉아서 백성을 농락하고 법을 짓밟는 일이 있다는 이것은 본말을 전도한 사회적 반역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들의 퇴진을 요구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 <민주주의를 기원한다> (『사상계』1956년 9월 호 권두언)


2016년 11월, 우리는 지금 여느 때보다도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기나긴 겨울이 지나면 기필코 따뜻한 봄이 찾아오는 법이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요, 역사의 진리다.


"참다운 민중세력은 언제나 역사에서 승리한다. 겨울이 영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낙관을 지니고 우리는 지칠 대로 지친 이 암흑에서 그래도 지금 일어나야 한다. 봄이 온다. 꽃이 핀다. 저항의 계절에 우리는 민중의 새로운 승리, 민족사의 거대한 긍정을 다짐하자" - <저항의 자세를 적극화하자> (『사상계』1967년 2월 호 권두언)


재조산하(再造山河).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산통을 겪는 중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겪는 시련은 과거 독재정권 당시 민주투사들이 겪어야 했던 시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체념하고 방관함으로써 국민 스스로 주권자임을 포기하는 그 순간, 우리는 지금보다 더 큰 시련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시련을 청산하는 것은 고스란히 우리 후손들의 몫이다. 우리 스스로 후손들에게 독재정권의 유산을 떠넘기는 못난 조상이 될 수는 없다. 이번에야말로 뿌리 깊은 친일군사독재정권에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 기나긴 산통 끝에 찾아올 새로운 생명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아직도 광장으로 나가기를 망설이는가. 스스로 개·돼지나 노예가 되고자 하는가. 먼 훗날 우리 후손들로부터 '못난 조상'이라 손가락질 받고 싶은가. 우리의 자손들이 "그때 당신은 뭘 했느냐"고 물었을 때 "광장으로 나가 촛불을 들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조상이 되자.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자.


2016년 11월 26일


무예24기 한양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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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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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11.12 민중총궐기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일단 제가 갔을 때는 5시 반 정도였는데요, 본 행사가 7시부터 시작인데 이미 인파로 가득찼더군요. 당시 주최 측 추산 100만 명이 몰렸다고 하니까요. 도저히 서 있기 힘들더군요. 그 넓디 넓은 광화문광장과 청계광장, 경복궁역, 종로3가 일대가 인파로 가득차서 한 발자국도 걸음을 옮길 수가 없는 형국이었습니다. 가만히만 서있어도 뒷사람이 미는 통에 알아서 몸이 움직이는 기현상이 발생했죠. 마치 거대한 출퇴근길 지옥철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전화도 잘 안 터지더군요.



지하철역들도 인파로 가득차서 광화문과 2~3개 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하차해 도보로 이동해야만 했습니다. 서울광장도 온갖 단체들로 점령당한 상태였습니다. 소속 단체들의 깃발을 장대에 걸어 높이 들고 다니는데... 도로를 가득 점거한 깃발부대들을 보니 무슨 <적벽대전> 보는 줄 알았습니다. 대오도 정연하고.. 웬만한 당나라 군대보다 훨씬 각이 잡혀있더라고요.


사람이 많다보니 별의별 잡종들도 다 기어나왔더군요. 웬 양키들은 예수님 믿으라고 선교하고 자빠졌고... 이게 무슨 축제라도 되는 양 온갖 푸드트럭들이 몰려와서 장사하는 것도 보기 좋진 않았습니다. 그래 뭐, 백번을 양보해서 시위하는 사람들 배고플까봐 그랬다손 칩시다. 그래도 솜사탕은 아니지 않나요. 솜사탕은 놀이동산에서나 먹는 그런 먹거리인데... 시위 현장에서 솜사탕 장사를 할 생각을 하다니... 이 와중에도 잇속만 챙기려는 장사치들의 행태가 영 눈에 거슬렸습니다.



본 행사는 7시부터였지만... 갑자기 원인 모를 두통이 발생하는 탓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사적인 현장에서 끝까지 촛불을 함께 들고 싶었는데... 두통이 심해서 견디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사람이 너무 많은데 추위까지 겹쳐서 두통이 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생전 두통이라곤 걸려본 적이 없었는데. 집에 와서 한숨 자고 나니 좀 나아졌습니다. 집에서 SNS로 생중계되는 집회 현장을 보면서, 그 현장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게 내내 한스러웠습니다.


아무튼 2016년 11월 12일은 역사에 기록될 하루가 됐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 인파가 몰렸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렇듯 한 목소리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던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먼 훗날, 우리의 이야기들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그 때를 살아갈 후손들은 이날의 의미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 것인지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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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링크: http://omn.kr/lkco


어제 집에 오는데 동네 길거리에 웬 포스터가 붙어있더군요. 바로 오늘 노량진역 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대통령이라고 붙여주고 싶지도 않지만)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린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노동당, 정의당, 녹색당 동작지부 등에서 주최하는 집회라고 하더군요. 저는 다수정당이건 소수정당이건 신뢰하는 정당도 없고, 지지하는 정당도 딱히 없는 상황입니다. 원래 같았으면 거들떠도 안 봤을텐데, 사실 이번에는 시국이 시국인지라 주최가 어떤 곳이든지간에 꼭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기자 특유의 취재정신이 발동하기도 했고요.


오늘 저녁 6시 30분부터 노량진역 광장에서 집회를 열더군요. 시간 맞춰 광장에 가니 30명 안팎의 인원들이 촛불을 들고 모여 앉아 집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복장들을 보니 대부분 수산시장 상인들이었습니다. 수산시장 상인들이 왜 장사를 관두고 집회 현장에 나온 걸까 의아했습니다. 관계자들로 보이는 분들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는데, 제 복장이 좀 그랬는지 다들 의심의 눈초리로 경계하더군요. (무예 수련하러 가던 길이라 도복을 입고 있어서...) 그래도 '오마이뉴스'라고 하니 많이들 경계를 풀더군요. 여전히 "요즘 언론은 못 믿는다"고 경계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몇몇 상인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최순실 게이트랑 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이랑 무슨 상관이 있나요?" 그러자 한 중년의 아주머니가 "기사 나온 지가 언젠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느냐"며 도리어 타박하더군요. 


현재 추진 중인 수산시장 현대화사업 배후에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차은택과 이성한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이 개입해 이권을 챙겼다는 의혹이 있다는 겁니다. 구체적인 건 잘 모르겠지만, 언론 보도상으로는 그런 의혹이 있다고만 나오더군요. 상인들은 그러한 의혹에 대해 수협 측에 확실한 해명을 요구하고 나선 듯 했습니다.



아무튼 수산시장 상인들이 제일 많았고, 그 다음에 길 가던 시민들도 지나가다가 자연스럽게 촛불 행렬에 합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초등학생 자녀와 딸의 친구들을 줄줄이 데리고 온 아주머니도 있었습니다. 특히 딸이 아주 똘똘하더군요. "나 같은 초등학생도 심각하다고 집회에 나오는데, 대통령이란 분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른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당차게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고3이라는 한 남학생은 "수시에 합격해서 수능 부담 없이 올 수 있었다"면서 즉석에서 노래도 부르더군요. 취재차 잠깐 들른 거라, 오래 자리를 지키진 못했지만 지역사회에서도 촛불을 드는 모습이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내일 광화문에서는 역대급 집회가 예정되어 있는데, 큰 사고 없이 평화롭게 잘 끝났으면 합니다. 아, 물론 집회의 목적은 꼭 성취되어야겠지요. 박근혜의 대통령직 하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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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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