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선경도서관은 6월 7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7시에 인문독서아카데미를 연다.


도대체 왜?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전쟁’이라는 소재를 <칼날 위의 인문학>이라는 총괄 주제 하에 역사, 몸 철학, 문학, 사회과학 등 여러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풀어간다. 제학문을 통섭하는 강좌인 만큼 무예전문가, 작가, 사학자가 공동 강사로 참여한다.


1주제는 <무예, 몸으로 생각하며 생존의 철학을 말하다>로 6월 7일부터 7월 5일까지 5회에 걸쳐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이 강사로 선다. 전통 무예 전문가이자 무예사(武藝史) 전문가인 최형국 강사는 무예에 담긴 인문학적 의미, 무예 수련과정과 연결지어 우리 전통의 몸 문화를 강의한다. ▲1강 무예의 탄생 ▲2강 군사의 탄생 ▲3강 무기의 탄생 ▲4강 치료의 탄생 ▲5강 무예 인문학의 탄생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석자에게는 교재가 무료로 제공되며, 총 5회차 강의 중 4회 이상 참석 시 수료증이 수여된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선경도서관 홈페이지(http://sk.suwonlib.go.kr/)에 신청하면 된다. 


문의: 선경도서관 031 228-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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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검을 휘두를 때 번쩍번쩍하는 검광과, 부드럽게 상하좌우로 베어내리는 검선(線)을 보자니 '참 곱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검을 수련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저런 매력에 빠져서 검을 수련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저 역시도 그랬고요.

어제부터는 연구회에서 중국식 도법(刀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흔히 유엽도라고 부르는, 중국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도를 쓰는 법입니다. 기초 자세만 배웠을 뿐임에도 참 어렵더군요. 무예24기를 수련하면서 조선식 검술을 수련하다가 중국식 도술을 해보려니 차이점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사실 저는 전에 배운 게 지금 운동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그닥 안 해봤습니다만, 역시나 어제 수련하는데 제 폼이 엉성한지 사부님으로부터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그릇을 비우고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차라리 빈 그릇이면 붓기만 하면 되는데, 이미 채워진 그릇을 도로 비워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니까요. 제 고민을 듣던 사형도 "나도 그래. 그건 죽을 때까지 싸워야 되는 문제야"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시더군요. 결국 수련은 평생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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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흥미로운 소식입니다.


조선시대 권법에 관한 논문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군사> 101호에 등재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수원 무예24기시범단의 최형국 박사님께서 쓰신 논문입니다. 



(사진 출처: muye24ki.com)


그렇게 긴 분량의 논문도 아니고, 문화사적 관점에서 쓴 논문이라 읽기 어렵지 않습니다. 무예를 수련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조선시대 군사들은 맨손무예를 어떻게 익혔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동작의 고증은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보고 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남아있는 사료들을 통해 학술적으로는 대략적인 추정이 가능합니다. 조선군이 병영에서 어떻게 권법을 익혔고, 권법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면 논문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가 가능합니다만, 아래 논문 PDF 파일을 따로 첨부해뒀습니다. 편하게 다운받아서 읽어보시면 됩니다.



조선후기 권법의 군사무예 정착에 대한 문화사적 고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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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없이 블로그에 접속했더니 방문자 수가 무려 '1,900명'을 돌파했습니다. 누적이 아니라, 오늘 하루 방문자수입니다. 그동안 평균 방문자수가 200명 정도를 항상 웃돌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제 오늘 1,000여명이 넘게 방문해서 2,000명 돌파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아마 이 기세대로라면 오늘 안에 2,000 돌파도 식은 죽 먹기일 듯 합니다.


대충 예상은 했습니다. 관리 페이지에서 '유입 키워드'를 확인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 <임진왜란 1592>를 키워드로 타고 들어오셨더군요. <임진왜란 1592>는 KBS와 중국 CCTV가 합작해서 만든 팩츄얼 드라마(사실에 기반한 다큐+드라마 형식이라고 합니다)로 5부작인데 어제 첫 방송을 했다죠. 어제 늦게까지 술자리가 있어서 집에 와서 뒤늦게 찾아봤습니다만, 너무 피곤한 관계로 보다 끄고 오늘에서야 다시 봤습니다.


(사진: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1화 캡쳐)


솔직히 말해서 전 별로였습니다. CG가 대단하다고는 하는데 글쎄요. 일단 화면부터가 너무 어두운 점이 내내 거슬렸습니다. 좀 조명을 밝게 했어도 좋을 것 같은데, 왜 굳이 짙푸른 화면구성을 선택했을까요. CG는 영화 <명량> CG팀이 담당했다고 하는데, 거북선 CG도 그렇고 영화만큼 때깔이 잘 나오긴 했습니다만 화려한 CG를 살릴만큼 전투씬의 전체적인 퀄리티가 뒷받침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배우들의 연기+전투씬 스토리 등등)


그리고 저도 조선시대사에 대해 문외한에 가까울 정도긴 하지만 군사사도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입장에서 고증 문제가 계속 걸리더군요. 환도 패용 문제는 이제 지겹기까지 합니다. 제작진이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대체 군관이 언제까지 칼을 손에 들고 다닐 요량인지. 출정할 때 이순신이 멋지게 등장하는 장면에서 '오 좀 멋있는데..?' 하려다가 水자 수졸복 입은 군졸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김이 팍 새버렸습니다. 이 장면은 영화 <명량>에서의 출정 장면을 그대로 본따온 것 같은데, <명량>은 그래도 군졸들이 갑주도 입고 있고 음악도 비장해서 볼 만 했습니다만... <임진왜란 1592>에서는 허접하기 짝이 없더군요. 사실 이순신이 입고 있는 두정갑도 엄밀히 말해서 정확한 두정갑의 형태와는 거리가 좀 있어서 고증에 정확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사진: 이순신의 출정 장면 -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1화 캡쳐)


고증을 떠나서 드라마적 재미도 그닥 없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불멸의 이순신>은 고증은 엉망이었어도, 드라마적 재미는 충분했기 때문에 제가 높이 평가하는 작품입니다. 화려하고 통쾌한 포격전에 적절한 BGM 삽입까지...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었고요. 배우들의 감정 연기가 대단했지요.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극적인 재미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장수들은 다 어디 간 건지... 이순신하고 하급 군관, 이름 없는 무명소졸들만 수두룩빽빽하고, 이순신을 도와 함께 싸웠던 주력 지휘관들은 코빼기도 안 비추더군요. 무명소졸의 이야기에 집중하려 했다지만, 그렇다고 전투의 실질적인 지휘관을 빼버리는 건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어찌됐건 전투를 총 지휘하는 건 지휘관들이었으니까요. 50분짜리 짧은 드라마에 전투씬과 선조의 몽진, 일본의 침략을 다 담아내려니 중구난방 같다는 느낌도 많이 들었고요.



(사진: 그나마 좀 멋있었다고 생각되는 이순신과 거북선의 대화 장면 -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1화 캡쳐)


그리고 매우 기대가 컸던 최수종표 이순신 장군. 제 아무리 '사극왕'이어도 김명민의 아성은 무너뜨리지 못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는 아직까지 김명민의 이순신 연기를 뛰어넘는 배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김명민 배우에 대한 편애일 수도 있겠지만, 제 주관이 그렇습니다. 최수종씨는 연기의 패턴이 단조롭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5부작이고 이제 시작이니, 계속 지켜볼 생각입니다만... 아쉬움이 더 큰 것 같습니다.


PS. 사극 제작진들에게 다시 한 번 최형국 박사님의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를 읽으라고 강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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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에서 무예24기를 지도하고 계시는 최형국 선생님의 '환도 베기(Sword Cutting)' 영상 몇 개를 간추려봤습니다. 

무예24기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후로, 최 선생님의 현란한 베기 시범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무거운 환도를 마치 신체의 일부인마냥 자유자재로 현란하게 휘두르는 모습도 그렇고, 칼을 쓰는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포스가 있습니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렵군요. 여하간 실제로 시범을 보면 그 카리스마에 입을 절로 벌어지곤 합니다.

저 정도 경지에까지 오르기 위해서 얼마나 고된 수련을 거치셨을지... 안 봐도 눈에 선합니다. 정말 고수가 된다는 건 험난한 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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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포평생학습관에서 '조선 군사의 하루'라는 주제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연사는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 저자이자 수원에서 한국전통무예연구소를 운영하고 계시는 최형국 박사님이었고요.


책 출간 기념으로 기획한 북콘서트 형식이라고 하길래, 책 내용을 그대로 풀어 설명하는 강의가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 아는 뻔한 내용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봤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최 박사님의 강의를 직접적으로 듣는 건 처음이었는데, 책 속에 없는 내용까지 자유자재로 왔다갔다 하면서 재미있게 강의를 이끌어주셨습니다.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더라고요. 안그래도 오늘 낮부터 계속 쏘다닌데다가 몸도 안 좋아서 강의 시간에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강의가 너무 재밌어서 딴 생각 들 틈이 없더군요.



특히 조선군의 하루라는 미시사적인 관점을 통해 전통시대 군사사와 무예사의 특징을 재밌게 설명해주신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중간 중간에 무예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서도 강의가 있었습니다.


예컨대 무(武)라는 글자의 함의와, 일담이력삼정사쾌(一膽二力三精四快)와 같은 무예의 요체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요, 사실 무(武)라고 하면 보통 지(止: 그칠 지)와 과(戈: 창 과)가 결합되어 파생된 단어로 많이들 알려져 있습니다. 정조 역시 지과위무(止戈爲武)라고 하여 '창을 그치게 하는 것이 무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죠. 이를 두고 "전쟁을 멈추게 하는 것이 무예의 본질이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은데, 최 박사님 말로는 "대단히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단어다. 힘이 있는 자가 다른 이들이 힘을 갖지 못하도록 창을 그친다는 뜻이다. 즉 절대권력을 쟁취한 이들이 자신의 권력을 넘보지 못하도록 힘을 장악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시더군요. 처음 듣는 해석에 신기했습니다. 역시 공부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무예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일담이력삼정사쾌(一膽二力三精四快)는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실제 몸으로 체득하지 못했기에 너무 어려운 개념이기도 합니다. 담력과 힘이 실전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인지하고 있지만, 그걸 갖추기가 어렵다는 거죠. 아무리 정교한 기술과 빠른 스피드, 강력한 힘이 있어도 결국 담력이 없으면 상대방 안면에 주먹을 꽂지도 못하고 다리가 풀려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소위 깡다구라고 하는 담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죠. 새삼 담력의 중요성을 다시 환기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담력부터 길러야겠어요.


아무튼 강의를 듣는 내내 여러모로 깨닫는 바가 많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당대 군사들의 움직임을 생각할 때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해야한다는 겁니다. 최 선생님도 강의 내내 "역사란 상상이 어느 정도 결합이 되어야 한다"며 "사료를 볼 때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려 노력하고,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상상하라"고 강조하시더군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람들 사이에서는 전통시대 군사들에 대한 이미지가 극도로 미화되었거나, 폄하되는 등 상식 밖의 이미지로 구축되어버렸습니다. 상식을 빼고 그저 상상만 한 결과겠지요.


그리고 그 헛된 망상을 널리 퍼트리는 데 일조한 매체가 바로 사극이 아닐까요. 지휘관이 칼 뽑아들고 적진으로 돌격하는 꼴이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오늘날 육군참모총장이 권총 하나 뽑아들고 북한군 진영에 뛰어드는 꼴이라고 생각하면 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 연출인 줄 금세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시청자들도 이런 장면을 보면서 거기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드라마 한 편을 보더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서 보면 문제점이 하나둘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최 박사님은 이를 두고 "개그하고 있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더군요. 우리가 비싼 시청료 내고 보는 드라마인데, 그런 식으로 밖에 연출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고...



강의를 통해 접했던 조선군의 모습은 정말 오늘날 현대 군인들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점호 받고, 행군도 하고, 비상식량(오늘날의 전투식량)도 가지고 다니고, 숙영할 때는 A텐트를 치고, 밥 먹을 때는 군가도 부르고 구령에 맞춰 식사하는 습관도 있었습니다. 이 모두가 신호체계에 숙달되어 비상시에도 전투에 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여하간 정말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실제 사료와 유물(환도, 활, 화살 등)들을 가지고 오셔서 직접 보여주시면서 수업을 진행하니까 수강생들의 집중도도 높았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워낙 말재주가 좋으셔서요. 겉모습만 보면 과묵한 무인의 이미지인데, 화술이 상당하시더군요. 그런 뛰어난 화술도 내심 부러웠습니다. 청중들도 꽤 많이 왔는데 다들 반응이 좋더라고요. 끝나고도 질문 공세가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예상 시간을 뛰어넘어 무려 2시간 30분 가까운 시간 동안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아무튼 무예24기를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참 많은 인연을 만나고 또 좋은 기회를 많이 얻는 것 같습니다. 제가 무예24기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아마 죽을 때까지 이런 강의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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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http://news.donga.com/3/all/20130502/54850209/1

 

[최형국의 무예 이야기] 조선시대 무예의 요체 4가지

 

담력 기르고 힘 키운 뒤, 정교하게 다듬고 속도로 완성


누구라도 ‘무예(武藝)’란 말을 들으면 강한 주먹이나 날렵한 몸놀림부터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인지 무예를 익힌 사람 주위에는 허무맹랑한 무용담이 떠돌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존경심을 잃지 않는다. 중국 무협영화에 등장하는 신비한 무공비급이나 특정 무술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신명이 난다. 하지만 전장에서의 무예란 개인의 생명, 나아가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는 존재다. 조선시대 군사들은 늘 무예의 핵심에 대해 고민했고, 그것을 실전에서 재현하기 위해 끊임없는 훈련을 반복했다.


임진년의 뼈아픈 기억


1592년 4월에 일어난 일본과의 전쟁은 조선이란 국가의 시스템을 순식간에 마비시킬 정도로 커다란 재앙이었다.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을 겪으며 가장 많은 혼란과 변화를 겪은 곳은 다름 아닌 군대였다. 이후 조선군은 그동안 유지 발전시켜 온 무예를 대대적으로 개조해야 했다. 


전쟁을 시작한 지 20일도 못 되어 수도 한성이 적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것은 군인 입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치욕이었다. 게다가 조선은 국왕이 수도를 버리고 개성과 평양을 거쳐 국경선 근처 의주로 피란해야 하는 한계 상황까지 내몰렸다. 물론 이후 북쪽에서 명나라 구원군이 도착했고 남해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내륙에서는 관군과 의병이 활약해 전세를 만회할 수는 있었다.


이렇게 불리한 전황을 극복하기 위해 군대 시스템을 재편하고 군사무예의 변화를 꾀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시에는 ‘변화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이 압도적으로 작용했다. 승부와 직결되는 군사들의 무예 훈련은 조선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이런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국왕이 직접 무예서 편찬을 지시하게 됐다. 즉각 당대 최고의 병법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무예의 요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훈련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당시 조선의 최고 이론가들이 정리한 군사무예의 핵심은 일담(一膽), 이력(二力), 삼정(三精), 사쾌(四快)로 정리할 수 있다. 그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면 조선시대 군사무예의 존재 의미를 간결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먼저 담, 즉 용기다(一膽). 우리는 “간담이 서늘하다”는 말을 흔히 한다. 간장과 쓸개는 용기를 나타낸다. 담력은 예로부터 무예의 요체 가운데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특히 실제 전투상황과 직결된다. 창칼이 번득이고 화살과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는 담력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담력이 부족한 병사는 실전에서 주변의 전우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아군에 득보다는 실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 군대에서는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담(膽)을 가장 먼저 훈련시켰다. 요즘 군대의 이른바 ‘악으로, 깡으로’ 식의 군사훈련도 그 근원이 같다. 


사기(士氣)는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다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각 군사의 용기를 군대라는 집단으로 모아낸 개념이다. 군사의 기상이 하늘을 찌르는 것이야말로 군대의 미덕이다. 예전 군대의 가장 기초적인 훈련이 담력을 기르는 것이었던 이유다.


두 번째는 힘이다(二力). 담력을 어느 정도 갖게 된 사람은 반드시 ‘힘(力)’을 기르는 훈련으로 나아가야 한다. 조선시대의 전투는 맨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병장기를 들고 하는 것이었다. 무거운 병장기를 자유롭게 다루기 위해서는 당연히 힘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군사들은 때론 일부러 무거운 갑옷을 입은 채로 훈련하거나 실전에서 쓰는 무기보다 무거운 장비를 사용해 근력을 단련했다. 또 전투가 벌어지면 자신의 무기가 망가지거나 분실되는 경우가 많아 타 병종의 다양한 무기를 다루는 일도 훈련에 포함되곤 했다.


무예의 요체… 담력, 힘, 정교함, 빠름


세 번째는 정교함이다(三精). 용기를 갖추고 힘을 기른 후에는 이를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 


군사들의 사기가 충천하고 그 힘이 태산을 무너뜨릴 정도로 거세다면 일단 절반의 승리는 보장된 셈이다. 그러나 각 군사들의 무예실력이나 진법훈련이 정교하지 못하고 투박하다면 어느새 상대방의 공세에 틈을 보이고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고대 로마시대의 시민군은 정교한 전법과 진법으로 전략적 능력이 떨어지는 게르만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마지막 미덕은 바로 신속함이다(四快). 실전에서는 빠르고 통쾌한 한 방을 준비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나아가 적의 창칼보다 빠르게 움직여야만 전투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고, 적보다 총알이나 화살을 더 빠르게 쏴야만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용기, 힘, 정교함이 모두 부족한데 빠르기만 해서도 곤란하다. 이런 자는 전투에서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옛 사람들은 무예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하고 그 중요도를 지키는 것이 효과적인 무예훈련이라고 보았다.


현대인들은 흔히 ‘사는 것이 전쟁’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그만큼 혹독한 경쟁 속에서 하루를 보내기 때문인지 요즘 여기저기서 ‘힐링(치유)’이라는 말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온다. 삶이라는 전투에서 심신의 상처를 입었으니 넉넉히 보듬어 달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인 셈이다. 


전쟁과도 같은 개개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힐링하기 위해 조선시대 무예의 요체인 담-력-정-쾌(膽-力-精-快)를 적용해 봐도 좋을 것이다. 자신이 부닥친 일에 대해 용기와 힘을 갖고 대응하며, 그것을 정교하고 빠르게 처리한다면 우리 모두가 인생의 승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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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링크: http://omn.kr/ke6h


신간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라는 책을 읽고, 제가 쓴 서평 기사가 방금 전 <오마이뉴스>와 네이버 메인에 배치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무예24기를 수련하는 입장에서, 이 책의 출간 소식은 반갑기그지 없었습니다. 출간되어 오프라인 서점에 풀리자마자 폭염을 뚫고 서점까지 달려가 앉은 자리에서 읽고 쓴 서평기사입니다. 


저자인 최형국 박사님 말로는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썼다"고 하십니다. 정말 앉은 자리에서 술술 읽을 수 있더라고요. 아래는 제가 페이스북에 올린 간단한 책 소개입니다. 


기사 링크를 클릭하시면 보다 자세한 책 내용을 보실 수 있으니, 꼭 읽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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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올린 간단한 책 소개>


또 한 권의 재미있는 책이 나왔다.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라는 책이다.


사극 속 고증 오류에 대해 조목조목 사례를 들어가며 비판하고, 올바른 조선 무인의 상(像)을 고증하고 있는 책이다. 조선시대 군인들은 어떻게 칼을 차고 다녔는지, 군장 속에는 뭐가 들었는지 그리고 전투에 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싸웠는지까지... 교과서에서 알려주지 않았던 지식들을 쉽게 전달하고 있다.


이를 보다보면 그동안 사극 속에서 묘사된 옛 무인들의 모습이 얼마나 비상식적으로 그려져왔는지 깨닫게 된다. 오죽하면 저자는 "(정규군이) 오와 열도 맞추지 않아, 시정잡배의 패싸움으로 전락해버렸다"고 한탄을 한다.


사실 당대 무인들의 몸짓은 책상에 앉아 사료만 들춰서는 결코 상상해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는 정통 역사학자인 동시에, 한국전통무예연구소를 운영하며 실제 무예를 수련하는 무인이기도 한 저자의 이력이 빛을 발한다. 몸소 말에 올라 활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당대 무인들의 몸짓을 올바르게 복원하고자 한 것.


뒤에 실린 참고문헌만 봐도 이 책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이 간다. 『조선왕조실록』, 『무예도보통지』와 같은 1차 사료만 57종에 논문 87편, 단행본 50권을 참고했단다. 참고문헌 10편 내외의 대중역사서가 판을 치는 요즘에, 이 정도면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대단한 노력이다. 그만큼 신뢰도도 높다.


역사서라 딱딱할 것 같다는 편견도 읽다보면 금세 깨진다. 영화 <명량>을 비롯하여 드라마 <주몽>, <정도전> 등 실제 사극 속 고증 오류의 사례를 스틸컷까지 첨부하여 세세히 분석하고 있어 훨씬 가독성이 높다. 특히 비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향후 사극 제작에 있어 고증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어 눈여겨볼 만 하다.


그동안 생각 없이 주인공의 수려한 외모나 의상, 혹은 자극적인 스토리에만 집중해서 사극을 보던 시청자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드라마를 보는 시각 자체가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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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http://omn.kr/k1zq


<오마이뉴스>에 사공이신 최형국 수원시립공연단 상임연출님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경영학도 출신으로 좋아하는 무예와 생업 사이에서 갈등하셨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고민과도 잇닿아 있기 때문에...


나의 욕망을 확인할 수 있는 버킷리스트는 '무예'로 점철되어 있지만, 과연 무예로, 무예24기로 내가 대성할 수 있을지, 그리고 지도자가 되어 전수관을 차릴 수 있을지, 문파를 세우고 발양광대하여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할 수는 있을지... 앞이 캄캄하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취미와 직업, 이상과 현실


요즘 나를 괴롭히고 있는 화두라면 화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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