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권을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무예24기 수련을 안하다보니 요새 관심이 부쩍 줄어들었네요. 오랜만에 유튜브 서핑하다가 새로운 영상이 하나 올라왔길래 공유합니다. 대충 훑어보니 뻔한 내용인 것 같긴 합니다. 그래도 무예24기에 대해 모르는 이들에겐 어떤 무술인지 잘 설명해주는 영상인 듯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무예24기는 무술적 가치보다는 문화콘텐츠적 가치로 승부하는 것이 유리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는 이만한 상품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태권도에 비해 다양한 병장기가 등장하니 훨씬 화려하고 역사성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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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10월 1일에 신도림 디큐브시티에서 열린 '무예24기 공연' 당시 촬영한 영상입니다.

시연자는 저희 '무예24기 한양류'의 장원주 사부님이십니다. 저도 이 공연에 참가하긴 했는데, 당시에는 배운 게 별로 없어 권법 공연에만 참여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부님 혼자서 기창, 본국검, 월도 등 나머지 모든 공연을 다 하셨죠. 

오랜만에 외장하드를 뒤적이다가 당시 촬영한 '본국검'과 '기창' 영상을 발견했습니다. 의외의 수확이었습니다만, 나머지 공연 영상을 찾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사실 이날 사부님이 보여주신 월도 시범이야말로 하이라이트였거든요.

사부님께서는 "당시 장소가 너무 좁아서 제대로 못 보여줬다"며 옛날 영상을 다 지워버리라고 하셨지만... 제가 볼 때는 이 정도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장소가 비좁다보니 약식으로 진행했다는 점을 감안하고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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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수련하는 <무예24기 한양류>는 매주 일요일 오전에 정기수련을 진행합니다.


오늘도(자정이 지났으니 어제가 되는군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오전수련에 참여했습니다. 다함께 몸을 풀고 서로 팔씨름을 했습니다. 참고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팔씨름이 아닙니다. 하체를 고정한 상태에서 온 몸의 힘을 끌어올려 상체에 집중한 뒤 상대방을 쓰러트리는 경기입니다. 아무튼 이 팔씨름을 하는데 예전과 달리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습니다.


저희 수련터에서 '힘캐'라 유명한 형님과 맞붙었는데, 아직은 그 형님께 질 수밖에 없었지만 바로 일주일 전보다도 훨씬 더 오랜 시간 동안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 형님도 저를 쓰러트리면서 '어', '어' 하시더군요. 옆에서 지켜보던 사부님도 살짝 감탄했습니다. 함께 한 형님께서 "예전보다 힘이 붙은 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저도 생각보다 그 형님 상대로 오래 버틴 걸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워낙 체급도 크고 힘도 남달라서 아무도 힘으로는 이기지 못하는 상대였거든요.


오늘은 사부님께서 진검을 빌려주셔서 진검으로 베기 수련도 해봤습니다. 확실히 다릅니다. 


예전에는 진검의 무게가 버거워 도저히 들 수가 없었습니다. 목검조차도 버거운 상황에서 진검으로 베기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죠. 사부님께서 진검을 휙휙 휘두르며 공기를 가를 때 나는 바람소리가 경이롭게 들리기까지 했습니다. 힘이 딸렸던 저로서는 아무리 힘껏 휘둘러도 바람소리가 나질 않았더랬습니다. 물론 바람소리가 실력을 가늠하는 절대기준은 아닙니다만...


그런데 오늘은 베기 수련을 하는데 진검이 예전처럼 무겁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바람소리도 자연스럽게 나더군요. 사부님도 옆에서 보시더니 "진검을 잘 소화하고 있다"고 평가해주셨습니다. 사부님께서 오늘 제 수련을 보시면서 "요즘 나날이 일취월장하고 있다"고 높게 평가해주셔서 황송했습니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로 빠른 성취가 있을 수 있었던 건, 역시 꾸준한 수련 덕택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30분 정도는 꼭 수련을 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술적인 부분을 갈고 닦는 것보다 기본기와 몸의 체형을 바로잡는 수련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는데요, 내 몸을 돌아보고 힘의 원리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힘도 따라붙은 게 아닐까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바른 길을 제시해주시는 사부님이 계시니 저 역시 그를 복이라 생각하고 착실히 따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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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24기란 정조의 명을 받은 실학자 이덕무, 박제가와 무예의 달인 백동수가 1790년에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24가지 무예를 말합니다. 「무예도보통지」는 조선 전래의 무예는 물론, 중국과 일본의 우수한 무예를 적극 수용하여 '24기(技)'로 정리한 무예교범서로서 부국강병의 실학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을 완료한 정조는, 이 책을 당시 중앙 오군영(훈련도감, 총융청, 수어청, 금위영, 어영청)에 보급하여, 군영마다 제각각이던 군사들의 기예를 통일하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조선은 강력한 중앙집권 시스템이 확립된 탓에, 무예를 지도하는 별도의 무관(武館)이 존재하지 않았고, 아버지나 장인어른 등 무관직을 지낸 어른들로부터 무예를 전수받는 문화였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무벌가문이 형성되었고, 가문마다 전해져오는 기법들도 제각각이었을 거라고 합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역시 장인어른이 무예 스승이었다죠. 그래서 옛 기록을 살펴봐도, 군영마다 무예의 명칭부터 제각각입니다. 동작들도 제각각이었겠죠. 이런 문제점을 파악한 정조는 무예의 명칭을 통일하는 동시에, 실제 동작들도 통일하기 위해 「무예도보통지」를 적극적으로 보급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정조 본인의 호위를 위해 창설했던 특수부대 '장용영(壯勇營)'에도 「무예도보통지」를 보급하였지요. 무예24기로 단련된 장용영 군사들은, 당대 최고의 호위무사들이었을 겁니다. 지금으로 치자면 '대통령 경호원' 격이랄까요.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조상들은 무예를 보존해야 할 하나의 전통문화로 인식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더해 갑작스러운 개화의 물결로 인해 급진적으로 군 개혁이 이루어지면서, 무예24기는 역사의 물결 속에 사라져버리고 말았죠. 그리고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암흑기(일제강점기와 6.25 등)가 워낙 길었던 탓에, 전통무예에 대해 관심조차 갖지 못했죠.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경당, 십팔기를 비롯한 여러 전통무예연구단체들이 복원을 시도했고, 자신들의 독자적인 복원 스타일에 따라 유파를 형성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제가 소속된 무예24기 한양류의 경우는 경당-무예24기보존회의 계보를 이은 단체로, 보존회의 해석과는 달리 자체 해석으로 복원한 기법들도 상당합니다. 복원무술이다보니 열린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인 것 같긴 합니다. 타 유파의 기법 중에 차용할 만한 것들은 적극적으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짜깁기'라는 비판도 있지만, 복원무술이 안고가야 할 한계라고 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가지 않는 이상 '100% 원형복원'은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이런 노력을 하다보면 '무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날이 올 거라 봅니다.


이 홍보 영상 속에 등장하는 무예24기 시범단원들은 현재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시범단' 소속으로, 매일 같이 수원 화성행궁 신풍루 앞에서 '무예24기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주 화~일요일 오전 11시에 신풍루 앞에서 무료공연을 하고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구경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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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조선 왕의 독서법

저자: 박경남

출판사: 북씽크

출판년도: 2014년


<책 소개>


조선 왕들의 지식과 지혜, 철학, 그리고 세상을 보는 안목을 만나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영혼의 허기를 채워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체의 허기만큼 채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해서 책을 외면하는 면도 없지 않는 것 같다. 독서는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읽는 것과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가져다준다. 조선의 왕들이 이를 말해준다. 스스로 책이 좋아서 수십 번, 수백 번 읽었던 왕과 왕이니까 독서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던 왕의 정치는 확연하게 달랐다.


<리 뷰>


전역 전, 마지막 휴가를 이용해 들른 동네 시립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이었다. 부대 들어와서 전역하는 그날까지도 계속 읽었고, 전역하고 난 뒤에는 노느라 바빠 책을 뒷전에 팽개쳐뒀더랬다. 그러다가 엊그제서야 다 읽었다.


요새 나는 '옛 독서법'에 관심이 많다. 옛 독서법이란, 고전을 읽는 독서를 말하는 게 아니라, 말그대로 옛 선인들의 책 읽는 방법을 말한다. 전역하기 전까지 부대에서 읽은 책이 86권 정도 되는데, 솔직히 그 책들 중에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책이 얼마나 되는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책을 읽고 나서 뒤돌아서면 내용을 다 까먹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 그런 점 때문에 옛날부터 독서에 대한 회의감(?) 같은 감정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책 읽는 것이 곧 일상이었고, 생존수단이었던 옛 선조들은 어떻게 책을 읽었을까, 나와 같은 고민을 하긴 했을까 궁금해서 옛 독서법을 탐구하기 시작했는데, 그런 탐구의 일환으로 '조선 왕'의 독서법에도 손을 뻗게 된 것이다.


일단 이 책은 240여쪽 밖에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의 책인데다가, 대중서인지라 내용이 매우 간결하고 쉽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읽는 가운데 구절구절 가슴에 와닿는 부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불확실한 추정'에 의한 결론이 종종 보인다는 점. 예를 들어 저자는 연산군의 독서법을 지적하면서 "동기부여가 되지 않고 억지로 삐딱하게 책을 읽어서 폭정을 저질렀다"는 식의 결론을 내렸는데, 역사학적 시각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결론이란 생각이 든다. 


실제로 한 사람의 생애를 연구할 때는, 사료를 통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그 사람의 행동, 업적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증언 등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당대를 살지 않았고,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 대단히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허나 이 저자는 '독서법'을 강조하기 위해, 억지로 키워드에 그 사람의 생애를 짜맞추느라 이런 근거 없는 결론을 내렸는데, 연산군이 실제로 책을 억지로 읽었다손쳐도 그 억지로 읽은 책 때문에 폭정을 저질렀다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하기엔 너무 근거가 빈약하지 않나 싶다.


비슷한 예로, 정조 편에서도 "책을 통해 개혁을 이루고자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책에 갇힌 것이 아닌가 싶다."라며, 정조의 개혁이 실패한 원인을 책에 갇힌 것이라 단정지어 말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근거 없는 결론이라 하겠다.


아울러 이 책의 제목은 <조선 왕의 독서법>인데, 조선 26대 임금 모두의 독서법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역대 임금 중 15명의 독서스타일만 골라 소개해서, 다른 임금들의 독서 스타일은 어땠는지 궁금한 독자들에게 아쉬움을 자아내게 한다.


<책 속 인상 깊은 구절>


1. 오늘 배우지 아니하여도 내일이 있다고 이르지 말라 (P.181)


2. 독서의 요체는 성현의 언행을 마음에서 본받아서 조용히 찾고 가만히 익힌 뒤에라야 비로소 학문을 진작시키는 공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바쁘게 넘어가면 예사로 외기만 할 뿐이라면, 이것은 장구(章句)를 들은 대로 말하는 나쁜 버릇에 불과하니 비록 천 편을 다 외고 머리가 희도록 경(經)을 이야기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 퇴계 이황 (P.187)


3. 한 권의 책을 읽으면 곧 한 권의 유익함이 있고, 책을 하루 읽으면 곧 하루의 유익함이 있다 - 강희제 (P.202)


4. 이 세상에 태어나서 독서를 하지 않는다면, 결코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 독서는 이상하거나 유별난 무엇이 아니다. 단지 어버이라면 마땅히 사랑할 줄 알고, 지식이라면 마땅히 효도할 줄 알고, 임금을 섬기는 신하라면 마땅히 충성할 줄 알고, 부부라면 마땅히 분별할 줄 알고, 형제라면 마땅히 우애할 줄 아는 것과 같다. 또한 나이가 젊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어른을 공경할 줄 알고, 친구가 된다면 마땅히 믿음과 의리가 있어야 하는 것과 같다. 이 모든 것은 날마다 움직여 생활하고 활동하는 사이에 자신이 하는 일에 따라 각각 마땅한 자리를 얻을 뿐이다. 마음이 심오하고 미묘한 도리나 이치로 내달려 오묘하고 기이한 효과를 바라기 때문이 아니다 - 율곡 이이, 「격몽요결」 (P.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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