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검을 휘두를 때 번쩍번쩍하는 검광과, 부드럽게 상하좌우로 베어내리는 검선(線)을 보자니 '참 곱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검을 수련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저런 매력에 빠져서 검을 수련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저 역시도 그랬고요.

어제부터는 연구회에서 중국식 도법(刀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흔히 유엽도라고 부르는, 중국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도를 쓰는 법입니다. 기초 자세만 배웠을 뿐임에도 참 어렵더군요. 무예24기를 수련하면서 조선식 검술을 수련하다가 중국식 도술을 해보려니 차이점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사실 저는 전에 배운 게 지금 운동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그닥 안 해봤습니다만, 역시나 어제 수련하는데 제 폼이 엉성한지 사부님으로부터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그릇을 비우고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차라리 빈 그릇이면 붓기만 하면 되는데, 이미 채워진 그릇을 도로 비워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니까요. 제 고민을 듣던 사형도 "나도 그래. 그건 죽을 때까지 싸워야 되는 문제야"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시더군요. 결국 수련은 평생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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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웹서핑을 하던 중 새로 나온 무협영화 한 편이 풍극안 선생의 유작이라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유작이라면 이미 돌아가신 분의 작품을 뜻하는 바인데, 저는 풍극안 선생이 돌아가셨을 거라고 전혀 짐작도 못하고 있었거든요. 부랴부랴 찾아보니 2016년 3월 2일 식도암으로 별세하셨다고 합니다. 향년 68세입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kamagi2000/220764824382)


풍극안 선생이라면 성룡과 함께 성가반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7,80년대 다양한 무협영화로 이름을 날린 분입니다. 워낙 개성 있고 험악해보이는 마스크 탓에 단골 악역으로 등장하곤 했지요. 제가 보던 무협영화에는 어김없이 등장하곤 했기에 워낙 인상 깊은 배우였습니다. 최근에는 <쿵푸허슬>에서 맹인 음악무술가, <엽문 2>에서 팔괘장을 구사하는 정 사부로 등장한 바 있습니다. 아직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분이 돌아가실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제가 아무리 홍콩무협에 대해 옛날만큼 관심이 떨어졌다고 해도, 참 충격적입니다. 이렇게 유명한 홍콩무협배우의 별세 소식을 이제서야 알다니요.


홍콩에선 유명한 분이지만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는 탓에, 국내 DB에도 업데이트가 안된 모양이더군요. 네이버에는 아직도 사망 정보가 안 올라와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렇게 하나둘 잊혀지는 것이...


요근래 제가 좋아했던 홍콩무협영화 배우들이 하나 둘 지고 있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참 씁쓸함을 느낍니다. 홍가권의 대가이자 쇼브라더스 무협영화의 거장 유가량 감독이 2013년에 별세하고, 유가량의 영화에 자주 출연하며 황비홍 역으로 정통 홍권을 선보인 유가휘는 반신불수가 되어 휠체어 신세입니다. 이제 풍극안 선생마저 돌아가셨네요. 여기에 이연걸은 난치병에 걸려 매우 수척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룡, 견자단도 언제까지 그 몸과 젊음을 유지할 수는 없겠지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참 가슴이 아파옵니다. 어릴 적 전설처럼 생각했던, 때론 친구보다 더 친숙했던 스크린 속 스타들이 하나 둘 지는 것을 지켜봐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새삼 이소룡의 죽음이 당대 열성팬들에게 줬을 충격과 슬픔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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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권을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무예24기 수련을 안하다보니 요새 관심이 부쩍 줄어들었네요. 오랜만에 유튜브 서핑하다가 새로운 영상이 하나 올라왔길래 공유합니다. 대충 훑어보니 뻔한 내용인 것 같긴 합니다. 그래도 무예24기에 대해 모르는 이들에겐 어떤 무술인지 잘 설명해주는 영상인 듯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무예24기는 무술적 가치보다는 문화콘텐츠적 가치로 승부하는 것이 유리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는 이만한 상품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태권도에 비해 다양한 병장기가 등장하니 훨씬 화려하고 역사성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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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링크: http://omn.kr/m1ap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 및 서평은 링크를 참조)


이번에 출간된 <동경삼재>를 읽었다. 동경삼재(東京三才)는 일본 동경(도쿄)으로 유학 간 조선인 유학생들 중 세 명의 인재를 아울러 부르는 말이다. 바로 당대 문필가로 이름을 날렸던 홍명희, 최남선, 이광수를 뜻한다.


3.1운동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독립을 부르짖었던 최남선과 이광수는 1920년대 이후 친일의 길을 걸었고, 1940년대에는 동포 청년들에게 전선으로 나가 천황을 위해 죽을 것을 독려했다. 지조를 지킨 이는 홍명희 한 사람 뿐이었다.


해방 후 홍명희는 월북하고, 최남선과 이광수는 반민특위에 체포됐으나 무혐의로 풀려나왔다. 기회를 놓칠세라 그 둘은 스스로의 반민족행위를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제 몸을 팔아서 아버지의 고난을 면케 하려는 심청의 심경밖에 있을 것이 없었다. 다른 친일파는 어떠한지 몰라도 내가 하려는 친일은 돈이나 권세나 명예가 생기는 노릇은 아니었다. (…중략…) 민족을 위해서 산다고 자처하던 나로서 마지막으로 할 일이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 이광수, <나의 고백>


"내가 친일파인가 아닌가는 나의 저서가 굉장히 잘 팔리는 것으로 보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 최남선


해방 후 이들이 내뱉은 정교한 변명을 보면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들이 한때마나 민족지도자랍시고 독립만세운동을 독려하고 청년들에게 민족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단 말이던가. 뻔뻔하기까지 한 저들의 행태를 보며 오늘날 양심을 잃고 표류하는 지식인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들을 단죄하지 못한 역사가 오늘날 지식인들의 변절을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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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집에서 기르는 반려견 시츄 보리와 함께 보라매공원에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사실 강아지를 입양한 것도 저고, 새끼였던 애를 인천까지 가서 데려온 것도 저였는데 입양하고 얼마 안 되어 군대에 가는 바람에 보리한테 많은 애정을 주지 못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저보다도 어머니를 열심히 따르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산책을 데려가려고 하면 신나서 꼬리를 흔들고 따라가는데, 제가 데려가려고 목줄을 들면 기겁해서 도망가더라고요. 


뭐 자주 안 데려간 제 책임도 있기 때문에... 새해에는 보리랑 좀 많이 놀아줄 요량으로 시간 내서 보라매공원까지 다녀왔습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평소에 개를 데리고 공원에 가면 개에 신경쓰느라 제 수련을 못하기 때문에 절대 안 데려갔더랬습니다. 생각해보니 정기수련이 있는 날엔 어차피 수련을 따로 하니까 시간 내서 산책을 다녀와도 되겠다 싶더라고요. 오늘이 딱 그 날이었고요. 날도 많이 풀려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원래는 보라매공원에 새로 개장한 '반려견 놀이터'에 가서 놀아주려고 했는데, 애석하게도 동절기 휴장이라고 하네요. 앞에까지 갔다가 크게 실망하고 돌아왔습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공원에 개들도 많이 안 보이더라고요. 평소 같았으면 발에 돌부리 채이듯 널린 게 개들이었는데 말이죠. 보리가 숫기가 없어서 다른 개들하고 좀 접촉을 자주 해야하는데, 지금도 개들을 보면 겁 먹고 도망다녀서 걱정입니다.


아무튼 날이 추워서 오랜 시간 놀진 못했지만 오며가며 그리고 공원 잔디밭에서 뛰면서 바람도 쐬고 보리에게도 즐거운 시간이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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