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종일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내일부터 다시 비가 온다고 하는데,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처럼 오늘 하루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오고, 하늘의 색깔도 알록달록한 것이 참 고요하고도 아름다운 하루였다.


내일부터 장마가 다시 시작되면, 당분간 실외수련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저녁 먹고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개인수련을 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홍가권을 연마해보았다. 공자복호권부터 호학쌍형권까지... 딱 한 번씩만 했는데도 벌써 힘이 든다. 역시 홍가권은 강권 중의 강권. 몸을 단련하는 데에 이만한 권법도 없는 것 같다. 굳이 실전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냥 몸풀이나 웨이트 트레이닝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하루에 한 번씩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오랜만에 하는데도 동작이 거의 다 기억나는 것이 신기했다. 하긴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배운 권법인데, 이걸 잊어버리면 들인 공과 돈이 아깝지.


수련을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온다. 이렇게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또 언제였던가.


그 하늘을 보는 순간 더 이상 수련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그냥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겼다. 때마침 드라마 <미생>의 메인 테마곡인 한희정의 '내일'을 듣고 있었는데, 그 분위기에 가장 와닿는 음악이기도 해서, 어울리지도 않게 감상에 빠져버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결국 나라는 존재가 살아있기에 가능한 일. 살아있는 내 자신에 감사하자.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를 소중히 여기자. 매사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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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을 수련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개인수련터'의 문제일 것입니다. 집 근처에 혼자서 수련할 수 있는 개인공간이 있으면 좋을텐데, 사실 그런 공간을 찾기란 어렵죠. 사람 많은 곳에서 무술 수련을 하자니, 주위 시선이 신경쓰여서 아무에게도 침해받지 않는 개인공간을 마련하는 게 많은 이들의 소원일 겁니다.


물론 도장이 집과 가까워 굳이 개인수련터를 찾을 필요 없이 매일 매일 도장에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축복받은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수관이 바로 옆동네에 위치한 저같은 경우도 집 문을 나서서 전수관까지 가는데 40분 이상이 걸립니다. (지하철과 버스 기다리는 시간 포함) 매일 그렇게 다니기엔 상당히 번거롭기도 하고, 좁은 실내에서 수련하는 것보단 탁트인 야외에서 수련하는 것을 훨씬 선호하는 관계로, 저도 항상 개인수련터에서 개인수련을 합니다.


원래 제 개인수련터는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야외주차장이었습니다만, 전역 후에는 더 이상 여기서 운동을 안 하고 있어요. 여기는 아파트 주차장인 관계로 많은 사람들과 차가 왔다갔다해서 인적이 드문 시간 아니고서는 수련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아파트 베란다에서 흡연을 하는 사람들이 몰상식하게 베란다 밖으로 담뱃재를 털고, 꽁초를 던지는 바람에 수련하다가 머리에 맞을 뻔한 적도 많고요. 그래서 오히려 정신건강에 안 좋겠다 싶어서 여긴 이제 수련터로서 더 이상 활용하지 않습니다.


요즘 제 개인수련터는 딱히 정해진 곳 없이 여러 곳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천천히 오래 수련하고 싶을 때, 혹은 그냥 걸으면서 사색을 하고 싶을 때면 집에서 도보로 40분 정도 걸리는 보라매공원에서 수련을 합니다. 


얼마 전에는 저희 집 뒤에 위치한 뒷산에서도 수련을 해봤는데, 여기도 아주 좋더군요. 산악달리기를 하면서 온 몸을 풀어주고, 잘 조성된 체력단련장에서 무예 수련을 하면 운치도 있고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여긴 산이라 벌레들이 많아서 요즘은 잘 안 가요.


그리고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몸이 별로 좋지 않아 가볍게 수련할 요량이면 '아파트 옥상'에서 수련을 합니다. 그렇게 넓진 않아도, 아파트 옥상이라 사람들이 올라오지 않아 방해 받을 일도 없고, 참 좋아요. 무엇보다 옥상이라 그런지 경치도 탁 트여서 운치도 있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와서 여름에도 수련하기 참 좋습니다.



그렇게 넓진 않습니다만, 북쪽으로는 서울 도심과 한강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산이 위치하고 있어 경치가 좋습니다. (그런데 배산임수와는 완전 정반대라서 풍수지리적으로는 명당이라고 할 수는 없겠네요)



사실 낮에는 그닥 아름답다고까지는 하기 어렵습니다. 그냥 우후죽순으로 밀집되어 있는 도심의 빌딩과 건물들을 보면 답답한 생각도 들죠. 그렇지만 밤에 보면 불을 밝힌 서울의 도심 야경이 아름답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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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해가 지날수록 여름이 더 더워지는 것 같다. 특히 올해 여름은 5월 말부터 슬슬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6월 중순에 이른 지금은 벌써 불볕더위가 시작됐다. 다가올 7, 8월 삼복더위는 어찌 견딜 수 있을는지... 체질적으로 더위에 약한 나로서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무튼 여름철은 수련하기가 참 안 좋은 계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들마다 조금씩 생각하는 게 다르겠지만, 나같은 경우는 차라리 겨울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겨울엔 추워도 껴입고 운동하면 되고, 운동하다보면 금세 몸이 데워지기 때문에 오히려 수련하기 좋다. 


하지만 여름에는 다 벗고 수련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더위 탓에 기운이 빠지고 온 몸이 나른해져 수련하기가 쉽지가 않다. 겨울철에는 관절이 굳어서 부상의 위험이 크다면, 여름철은 관절의 부상보다는 내기(內氣)가 손상될 우려가 매우 크다.


옛날 장용영 군사들은 촉한음서(觸寒飮署)라고 해서, 추위를 무릅쓰고 더위를 먹어가며 무예 수련을 했다고 하지만, 그건 목숨을 걸고 임금을 지켜야 하는 군대였으니 그런 거고... 평생 촉한음서하다가는 제 명에 못 살고 일찍 죽거나, 늙어서 병으로 고생할 우려가 크다고 본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삼복더위에도 쓰러질 정도로 수련할 이유가 있나 싶기도 하다. 당장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선수들 혹은 무림제패를 꿈꾸는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려는 이들이라면 모를까. 취미로 무술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무리하게 수련을 하다간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금세 관두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여름엔 수련을 하면 안될까? 그건 아니다. 아무리 더워도 몸을 계속 움직여줘야 한다. 수련은 1년 365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름철 수련은 본인의 몸 상태에 맞게 그 양을 조절해서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만약 수련양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면, 이렇게 더운 날씨에 그 많은 양을 소화해야한다는 부담감에 지레 질려서 수련을 아예 거르게 될 확률이 높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꾸준히 무예 수련을 해왔는데, 요즘 들어 바쁘기도 바쁘거니와 날이 덥다보니 금세 몸이 피로해지고 귀찮아져서, 수련을 하루 이틀 거르는 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오늘도 저녁 먹기 전에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가볍게 수련을 해줬다. 수련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름철엔 계절에 맞게끔 내가 수련양을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부님도 종종 말씀하시길, "여름에는 무리하게 운동하면 내기가 손상될 우려가 있으니, 외적으로 활발하게 하는 운동보다는 정(靜)적인 수련을 위주로 하는 게 좋다"고 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더운 날씨에, 무리하게 운동을 하다보면, 오히려 더위를 먹을 위험이 크다. 건강해지기 위해 무술 수련을 했는데, 오히려 건강을 망치는 지름길인 것이다.


오늘도 그래서 가볍게 몸을 풀고, 발차기도 허리 아래로까지만 천천히 차고, 주로 참장(입선)과 같은 내공 수련을 위주로 했다. 그리고 마무리는 역시 칼쓰기. 오른쪽 어깨가 완치될 때까지는 왼쪽으로만 칼을 쓰라는 사부님의 충고에 따라, 보법 연습과 병행하여 왼손 칼쓰기 수련을 했다.


앞으로 다가올 7.8월 더위와 어찌 싸울지 벌써부터 걱정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름이 다가올 때는 항상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도, 또 어떻게 잘 극복해왔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26년이다. 올해도 정신없이 바쁘게 수련하고, 놀고, 공부하고, 일하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시원한 가을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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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의원에 다녀왔다.


원래 장이 좋지 않아, 몇 개월 전부터 꾸준히 한약을 복용하면서 가끔씩 한의원에 가서 침뜸 치료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거 말고도 오른쪽 어깨 문제로 진료를 받기 위해 갔다.


내 증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오른쪽 팔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거나, 횡으로 뻗을 때마다 어깨죽지에서 '뚜둑'하는 소리가 나며, 뼈끼리 부딪치는 느낌이 난다는 것이다. 통증은 전혀 없으나, 칼을 벨 때마다 어깨에서 나는 마찰음과 뚜둑거리는 불쾌한 느낌이 계속 신경에 거슬렸다.


처음에는 하도 수련을 안 해서 근육이 굳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오히려 더 열심히 수련을 했는데, 나중에 휴가 나와서 사부님께 여쭤보니 빠르게 베는 수련을 당장 중단하고, 천천히 베면서 그 증상을 고칠 것을 주문받았다. 그 상태에서 무리하게 수련하면, 장기적으로 평생 칼을 못쓸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들었다. 이게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인 줄 나 자신도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내 오른쪽 어깨의 문제는 꽤 오래 전부터 그랬다. 입대 전에도 그랬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고, 하여간 군대 갔다와서 심해진 건 사실이다. 추정컨대 삽질을 하도 많이 해서 악화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삽질할 때마다 어깨가 너무 아팠는데, 아프다고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고통을 묵묵히 참다보니 결국 이 지경까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요근래 칼 수련을 하고는 있었지만, 빠르게 베는 수련은 전혀 안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배운 검법들도 이젠 가물가물하고, 타법이나 격법도 중단하고, 오로지 들어올려서 멀리 뻗어 베어내리는 동작을 아주 천천히 반복할 따름이었다. 


이러고 있자니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게다가 내 성격은 또 얼마나 조급하고. 지금이야 이 상황에 순응하고 그저 천천히 베는 데 집중하고는 있지만, 처음에는 답답한 나머지 얼마나 더 이래야 되냐고 사부님께 여쭤보기도 했다. 그러자 사부님은 "니가 지금 1년을 그렇게 한 것도 아니고, 고작 한두 달 천천히 수련해놓고선 벌써부터 조급해하면 어떡하느냐. 오히려 이번 기회에 나쁜 버릇도 고치고, 왼 팔로만 베는 수련도 할 수 있지 않느냐. 이 시간이 훗날 너에게 큰 도움이 될 거다"라고 나무라셨다. 그 덕분에 조급한 마음을 덜 수 있었다.


하여간 천천히 베는 수련을 하고 있음에도, 오른쪽 어깨의 뚜둑거리는 증상이 좀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답답하기도 하고 왜 이런가 궁금하기도 해서 오늘 위장치료차 한의원에 간 김에 진료를 받았다.


양방처럼 엑스레이 촬영하고 그런 건 없었고, 그냥 문진만 하고 바로 치료에 들어갔다. 한의사 선생님 말로는 "지금은 통증이 없지만 나중에 염증이 생길 수도 있다"고... (근데 엑스레이 한 번 안 찍어보고, 어떻게 환자의 설명만 듣고서 바로 치료를 할 수 있는 걸까. 원래 한방치료가 다 그런건가...)



(사진: 내 등 뒤에 부항자국. 목욕탕 가면 아저씨들 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흔적.. 으 징그럽다)


아무튼 별의별 치료를 다 받았던 것 같다. 침 맞고, 패치 붙인 상태에서 전기자극 치료 받고, 부항 뜨고 마지막엔 봉침(벌의 독을 주입하는 침)까지 맞았다. 한의사 선생님 말로는 당분간 너무 무리해서 운동하지 말고, 치료도 몇 번 더 받아야 한단다. 기존 위장 치료에 어깨 치료까지 더 받아야되서 이제 치료 비용도 배 이상으로 늘었다. 영수증에 찍힌 금액을 볼 때마다 한숨만... 돈 못 버는 입장에선 그저 모든 게 죄스럽다.


돈도 돈이지만, 당분간 무리하지 말라고 하니 좌절감이 느껴진다. 요근래 곤방을 새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봉을 휘두르는 맛이 제법 쏠쏠했는데, 수련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뭐 별 수 있는가. 일단 어깨에 무리를 줄 수밖에 없는 장병기 수련은 모두 중단하기로 했다.


그리고 사부님의 말씀대로 당분간은 왼팔을 단련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오늘부터 수련을 다르게 진행해봤다. 상체 자체를 가급적 안 쓰는 게 나을 것 같아, 권법 수련이나 주먹지르기도 일단 중지하고, 발차기, 보법, 허공의자와 같은 하체 단련 위주로 수련을 했다. 그리고 칼 수련은 하되 왼팔로만 칼을 잡고 베는 수련을 했다. 오른팔을 아예 뒷짐지고 왼팔로만 칼을 쓰려니, 중국무협영화 <돌아온 외팔이>가 계속 생각났다.


아무튼 사부님 말씀마따나 이번 기회를 통해 왼 팔을 단련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긍정의 힘! 그나저나 왼팔로만 수련하려고보니 왼쪽 어깨죽지에서도 뚜둑거리는 소리가 좀 들리는 것 같은데... 제발 아니라고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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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곤방(봉)을 배우고 있다. 


곤방이란 곧 봉술을 말함이다. <무예도보통지>에는 봉술 투로가 '곤방'이라는 이름으로 실려있는데, 일반적인 중국 무술유파들과는 달리 독련투로가 없고, 2인이서 함께 주고받는 대련투로만 실려있다. 그래서 혼자 수련할 수 없다는 난점이 있다. 하지만 다른 기예와는 달리 처음부터 서로 봉을 부딪치다보니 '딱', '딱' 봉 부딪칠 때마다 손에 느껴지는 타격감에 남다른 재미를 느낀다.



(그림: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곤방 보譜)


그렇다고 혼자 수련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무예의 권법이란 것 자체가, 상대방이 있다고 가정하고 혼자서 공방을 펼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가. 따라서 곤방 투로도 대인투로이지만, 상대방이 있다고 가정하고 독련투로로 전환하여 수련하면 된다. 또 꼭 투로 수련이 아니더라도, 봉술 기본기 수련은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다.


곤방을 배우기 시작한 후로, 웬만해선 봉을 구입해서 개인수련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중에서 <무예도보통지>에 기록된 제원의 봉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게 함정. 할 수 없이 수련터에서 쓰는 공용 곤방을 하나 빌려다가 사용하고 있다.


이후 시간 날 때마다 보라매공원에 가서 '원그리기', '반원그리기(반월)', '상단-중단-하단치기', '음양수' 등 곤방 기초를 연습하고 있다. 기초 동작들도 해야할 것이 많고, 사실상 이 기초 동작으로부터 모든 기술이 나오는 것이므로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투로는 사실상 뒷전이고, 기초 동작만 연습하고 있다. 사실, 이 기초 동작만 해도 너무 재밌다. 하다보면 어깨가 너무 아프긴 하지만, 봉의 매력은 치명적이다. 영화 <황비홍>이나 <엽문>에서 주인공이 긴 봉으로 다수의 적들을 제압하는 장면을 생각하며 수련하다보면, 어느새 나도 중국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마냥 힘껏 봉을 휘두르고 있다.



(사진: 영화 <엽문>에서 육점반곤을 시전하는 견자단의 모습 - 출처: 네이버 영화)


다만 아직은 봉을 다루는 것이 어색해서, 부자연스러운 자세가 연출되기도 하지만 꾸준히 수련하다보면 익숙해지겠거니... 하고 수련하고 있다.


그런데 곤방의 매력에 빠져버리는 바람에, 권법이나 칼 수련을 소홀히 하게 되는 또다른 문제점이 발생해버리는 것 같다. 배운 기예를 모두 수련하면 좋겠지만, 새로 배운 것부터 안 잊어먹고, 완벽하게 내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 맹렬히 연습하다보면, 다른 기예를 연마하기엔 체력적-시간적으로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뭐 사실 하려면 다 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수련에 대한 의지나 열정이 많이 부족한 것일테지... 아무튼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수련하는 기예의 가짓수가 늘어날텐데, 어떻게 하면 적절하게 안배해서, 수련을 해나가야할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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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들어 무예를 수련하며 '대인수련'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우선, 실전성을 살리기 위해서 대인수련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나도 알음알음 여러 무술을 배워본 기억이 있는데, 특히 중국무술 도장에서는 유난히 대인수련의 비중이 매우 적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나마 태극권 도장에서는 '추수'라는 독특한 형식의 대인수련이 존재하지만, 그것도 비중이 크지는 않았고 내가 겪어본 많은 중국무술 유파들이 대부분 도장에 나가서 각자 투로 몇 번 돌고 사부님으로부터 자세 교정을 받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실전성이 좀 있다고 입소문 좀 탄 유파들의 공통점은 '대인수련'의 비중이 독련(獨練)의 비중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영춘권 같은 경우는 개인수련보다는 대인수련의 비중이 더 큰 유파 중 하나다. 대인수련을 많이 하다보니, 내가 배운 기법들이 실전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자연스레 용법을 체득할 수 있게 되고, 상대방과의 지속적인 반복 수련으로 나중에는 극한 상황에 처해져서도 몸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6년 전에, 고작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영춘권을 수련한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몇 년 동안 전혀 영춘권 수련을 하지 않았음에도, 지금도 가끔 상대와 겨루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영춘권의 자세와 기법으로 공방을 펼치려고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기간 동안 다양한 수련생들과 팔을 맞대고 하는 대인수련을 무수히 많이 반복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볼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지금에 와서는 대인수련의 비중이 형편없이 부족하거나, 아예 체계가 없는 무술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인 입장이다.


두 번째, 혼자 하면 재미가 없다. 


이건 개인수련을 많이 하다보면 느끼는 건데, 사실 우리는 매일 매일 수많은 유혹과 싸우면서 살고 있다. 특히 무예수련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꼭 수련할 시간만 되면, 몸이 무거워지고 다른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스스로 수련을 거를 핑계를 만들어낸다. 


'오늘은 몸이 좀 찌뿌둥하니까 하루쯤 쉬어도 괜찮겠지', '오늘은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하니까 좀 쉬어야겠지' 등등 수련할 때만 되면 이런 유혹에 시달린다. 결국 의지가 좀 약한 사람들은 이런 유혹에 굴복해 그날도 수련을 거르고, 자기합리화를 하곤 한다. 그리고 '오늘 안 했으니까 내일은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하지만, 그때 뿐이다. 다음 날도 또 같은 유혹에 굴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중국의 유명한 노사들은 '매일 하루 30분씩만 수련해도 훌륭하다'는 말을 했다던가.


이렇게 개인수련을 거르게 되는 것도 결국 혼자 하는 수련이 지겨워서일 수도 있다. 물론 수련을 '지루함과의 싸움'이라고 정의짓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가 모두 절정고수가 될 것도 아니고 단순히 취미로 즐기면서 하려는 사람들에게, 지루함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가 아닐까 싶다.


여하간 개인수련을 하다보면 이런 식으로 수련을 게을리하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대인수련을 하게 되면 어쨌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정말 급한 일이 있거나 몸이 아프지 않은 이상 수련시간에 맞춰 수련터에 나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련터에 나가서도 다같이 수련을 하므로 나 혼자서 대충 수련할 수가 없고, 다같이 모여서 즐겁게 얘기하며 수련하다보면 어느새 재밌게 수련에 집중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 내가 수련하고 있는 무예24기는 현재 어떨까?


무예24기에도 대인수련은 존재한다. 우선 <무예도보통지>에도 왜검 교전, 권법 교전 등 교전(交戰)이라는 이름 아래 갑(甲)과 을(乙)로 나누어 2인이 서로 약속대련하는 형식의 수련이 존재한다. 이외에도 무예24기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다른 유파의 대인수련 형식을 많이 차용해왔는데, '수벽'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고 있는 태극권의 추수가 대표적이다. 또 현재 내가 소속된 한양류에서는 자체적으로 상대방과 손과 무기를 맞대고 다양한 수련을 전개해오고 있긴 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교전이라는 이름 아래 행하는 약속대련도 너무 형식화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그리고 수벽만으로는 다양한 상황에서 응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현재 내가 구상하는 방안으로는 각 기술들을 별도로 뽑아서, 상대방과 계속 주고받는 '단식 응용 수련'을 도입하는 것이다. 일단 얼마 전부터, 우리 한양류에서도 권법 동작들을 뽑아 실험적으로 해오고 있는데,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단식을 주고받으면서 용법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뒤에는 약속대련을 거쳐 자유대련까지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자유대련의 형식은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어쨌거나 저마다 실전에서 강하다고 주장하는 여러 무술 유파들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 무술이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생존능력을 기를 수밖에 없다. 그 생존능력이란 결국 무술의 본질인 '실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전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다양한 방법의 대인수련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본다. 적어도 나는 내가 수련하는 무예24기가 공연용으로 화석화된 무예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내 몸을 보호하는 호신의 수단으로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까지 계속 고민하고 수련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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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하기 전까지는 수련할 때마다 꼬박 꼬박 수련일기를 써서 블로그에 올리곤 했는데, 이젠 그 프레임을 좀 바꿔볼까 한다. 


매일 수련하더라도, 그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면 수련일기를 쓰는 재미가 있겠는데, 원체 아둔한 몸인지라 수련일기를 쓰다보면 형식적인 일기('오늘은 뭐 했다'와 같은...)에 그치는 것 같아 늘 아쉽기도 했고 그런 식으로 일기를 쓰는 것 자체가 굉장히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더욱이 수련일기에 가끔 사부님의 말씀이나, 수련하며 느낀 깨달음 내지는 생각을 정리해놨는데, 매일 수련일기를 쓰다보니 그 얘기를 다시 찾으려고 했을 때, 방대한 일기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찾아야할지 헤맨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제는 매일 수련일기를 쓰는 게 아니라, 수련하다가 기록으로 남겨두어야겠다 싶은 새로운 깨달음 내지는 단상들이 있을 때나, 혹은 사부님의 중요한 말씀이 있을 때만 일기를 쓸 생각이다.


오늘은 그 첫 번째 단상이다.


오늘은 전역한 지 꼭 1주일 되는 날이다. 전역하고서 며칠 동안은 제대로 수련을 안 했는데, 사람 만나서 놀고 먹느라 바쁜 탓도 있었고, 전역한 뒤 찾아온 공허함과 무기력함에 수련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일요일 정규전수에 다시 참여하기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요며칠 동안은 다시 정신 차리고 무예 수련에 매진하고 있다.


어제는 보라매공원에 가서 수련도 좀 하고, 뜀걸음도 하면서 체력 단련도 했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할 수 없이 집에서 수련을 했다. 실내에서 기본 주먹지르기와 주먹지르기를 응용한 장(掌) 지르기, 손끝 지르기, 끄집어치기 등을 하고, 발차기는 등각과 부인각, 선풍각(내파)을 수련했다. 


수련하다보니 비가 계속 오는 것 같지는 않기에 옥상에 올라가 보법(진보, 체보)을 수련하고, 칼로 천천히 들어베는 수련을 했는데, 비가 강아지 오줌 싸는 것마냥 찔끔찔끔 오다 말다 했다. 덕분에 옥상 바닥이 미끄러워져 체보 수련 시에 불편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거야말로 실전 보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적을 만나서 싸울 때는, 그 장소가 미끄러운 빙판길일지 울퉁불퉁한 돌다리 위에서일지 아무도 모른다. 항상 평평한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적을 만나란 법이 없으니, 이 기회를 이용해 언제 어디서든 흔들림 없는 보법을 연마하기에 딱 좋은 조건이었다.


오늘은 특히 보법 수련에 힘을 쏟았는데, 얼마 전에 권법을 하는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니, 상체가 앞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꼬리뼈(미추)를 안으로 말고, 상체를 쭉 펴니 보기도 좋고, 무엇보다 뒷다리에 힘이 실려 자세가 안정적으로 잡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요즘 보법 수련을 하며 꼬리뼈 마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확실히 진/퇴보를 할 시에 뒷다리에 힘이 실려서 자세가 안정적이다.


보법 수련을 하고서는 단수 훈련의 일종으로 요란주세와 순란주세를 수련하고 비가 계속 오길래 실내로 다시 들어와, 마무리로 팔굽혀펴기(주먹쥐고 넓게, 삼각형으로 좁게)와 허공의자 10분, 입선(참장) 10분을 하고 오늘 수련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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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간만에 무예 수련으로 땀을 흘린 것 같다. 6월 이후로 정말 지금까지 내 인생에 있어서 이번만큼이나 열심히 수련한 적이 있었을까 되돌아보게 만들 정도로 열심히 수련을 했었던 것 같은데 요근래 들어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체력적으로 지치다는 핑계로 수련을 게을리한 것이 사실이다. 매일 같이 무예 수련에 관한 중요한 격언을 되새기며, "최소한 하루에 30분이라도 수련을 하자"는 결심을 한 것이 엊그제인데 작심삼일이 되고 말았으니 나의 지조가 고작 이 정도라는 사실이 못내 불편하고 화도 난다.


여하간에 계속 수련을 안 하다간 정말 그간 쌓은 공력이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될까 두려워 오늘은 기어코 수련을 했다. 확실히 그간 수련을 쉬었더니 몸이 무거운 것이 여간 찝찝한 것이 아니었다. 매번 수십, 수백 번 반복해온 동작들도 며칠 쉬면 마치 처음 하는 동작마냥 어색하고 예전과는 느낌이 다르다. 동작에 힘도 실리지 않고, 숨은 평소보다 벅차며, 집중력도 흐트러진다.


정말 이래서는 안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띄엄띄엄 수련해봐야 쌓이는 것도 없고, 남는 것도 없을 터. 정말 최소 하루 30분만이라도 꾸준히, 꼬박꼬박, 매일매일 수련을 해야겠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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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중대장님의 허락을 받아, 부대 안으로 목검(木劍)을 반입하여 검 기본기 수련에 매진해오고 있다. 


1년 6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휴가 나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전혀 칼을 잡을 수 없는 처지였기에, 그동안은 오로지 맨손무예 권법 수련만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입대 전에 배웠던 검술을 모두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제대 후에 완전 쌩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는 건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그동안 수련해왔던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검 수련에 대한 갈망은 심해졌다. (물론 덕분에 권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기본기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는 되었지만...


여하간 검 수련을 너무 하고 싶어, 이젠 아무 것도 무서울 게 없는 병장의 파워로, 중대장님께 '목검 반입'을 요청했고, 중대장님도 '절대 후임에게 장난치거나 때리는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조건으로 반입을 허락해주셔서, 이제 부대 안에서 검 수련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목검 반입이 승인되니 너무 기뻤고, 매일 매일 전투체육(체력단련) 시간만 기다려졌다.


그래서 매일 전투체육 시간만 되면 목검을 들고 막사 옥상에 올라가 신나게 휘둘러댔고, 확실히 손에 무언가를 잡고 휘두르는 맛(?)이 있어, 권법 수련을 할 때보다 지루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수련하지 못했던 기본기(들어베기, 갈겨베기, 허리베기, 걸쳐베기)부터 해서, 각종 검법들(본국검, 제독검, 쌍수도, 왜검)을 열심히 땀 흘리며 수련했다.


그동안 수련을 하고 싶어도 못 해왔기에, 수련에 대한 욕구 불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입대 전보다도 더 열심히 수련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매일 매일 혼자서 수련하다보니 자연스레 '의문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사부님으로부터 정기적인 교정을 받지 못하고, 매일 독련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의문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매일 매일 새로운 의문점들이 켜켜이 쌓여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게 너무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당장 수련에 대한 욕구에 불타오르고 있는데, 이 의문점들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으니 오죽 답답하겠는가. 괜히 그릇된 자세로 수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그 의문점들은 휴가를 이용해 사부님께 여쭤볼 요량으로, 매일 매일 텍스트로 정리하고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현재 그 의문점들은 24개까지 늘어났다)


편으로, 뭔가 대달한 깨달음을 얻은 마냥 평소와 다른 느낌을 받는 기현상도 일어났다. 평소와 다름 없이 허공에 칼질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베기의 느낌이 달라진 것이다. 순간 뭔가 득도라도 한 느낌마저 들어 묘한 전율까지 일었다. 그래서 그날은 삘(?)이 붙어 계속 베기를 했다. 진짜 손바닥에 피물집이 잡히는 줄도 모르고 신나서 계속 휘둘러대다가 나중에서야 손을 들여다보니 피물집이 잡혀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던 것도 이때였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느낌을 사부님한테 보여드리고, 과연 제대로 하는 게 맞는 것인지 교정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길이 맞다면 몰라도, 틀린 길이라면 내 자세가 완전히 엉망으로 뒤틀려버릴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의문도 들긴 했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뭔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에만 집착해서 이미 뭐라도 된 마냥 설레고 흥분한 상태였다. '어서 이걸 사부님께 보여드려서 사부님을 깜짝 놀래켜드려야겠다', '사부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싶다' 하는 생각이 머릿 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동안 나는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한 것이다. 그게 잘못된 길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때마침 평소 무술에 대해 좋은 격언을 자주 올려주시는 <한국형의권연구회> 형의권사님의 블로그에서 새로 올라온 글을 하나 읽다가, 그 글이 내게 해당되는 글이라 그러한 흥분을 잠시 가라앉히고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긴 했다. (해당 글 링크: http://blog.naver.com/k_rabbit/220618298924)


그리고 마침내 지난 휴가 때 설레는 마음으로 전수관을 찾아가 사부님 앞에서 베기를 했는데, 이게 웬걸... 오히려 칼 수련을 전혀 안 하다가 오래간만에 칼을 잡고 베기를 했던 한 달 전보다 자세가 더 이상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래도 "오, 그래도 죽지는 않았네"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번엔 사부님이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거야"라며 아예 수련을 중단시켰다.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인지 감도 오질 않아 답답했다. 사부님께 그간의 경과를 설명드리니,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교정 받지 않고 혼자 판단하게 되면 그게 결국 사도(邪道: 그릇된 길)로 빠지는 것"이라며 주의를 주셨다. 나로서는 '설마...'했던 일이 진짜가 된 것이었다.


결국 사부님은 빠르게 베는 것도 중단시키고,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 천천히 베면서 '베려하지 말고 그림을 그리라'고 주문하셨다. 당분간은 절대 칼을 빠르게 휘두르지 말라고 해서, 체념하고 지금은 계속 천천히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동시에 오른 어깨가 계속 뚜둑거리는 것도, 이걸 통해 교정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다. 예전에는 그냥 어깨가 덜 풀려서 그런 거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막 휘둘렀는데, 잘못하면 어깨가 고장이 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다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교정을 하는 중이다.


아무튼 지난 번 휴가 때의 교정을 통해 또 한 번 새롭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뭔가 혼자서 득도한 마음으로 설레여 하다가 그게 잘못된 길이란 걸 깨닫게 되니 날개가 꺾인 새마냥 기운도 빠지고, 심지어 우울한 마음까지 들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한다. 무려 1년 6개월이란 시간을 칼을 놓고 살았다. 그런데 단 2주란 시간 동안 혼자서 열심히 휘둘렀다고 무슨 고수의 경지에 오른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또한 무예란 사부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이라면 평생 교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어차피 평생 무예 수련할 건데, 이런 일로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스스로 누누이 다짐해오지 않았던가.


이제 다시 휴가를 나왔고, 며칠 뒤에 전수관에 가서 사부님께 교정을 받으려고 하는데 얼마나 진전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실 딱히 한 것도 없어서 진전이랄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저 지금 하고 있는 것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이번 일을 통해 '조급한 마음을 버리자', '일희일비하지 말자'라는 교훈을 되새겼다. 군 생활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한창 어리바리해서 힘들었던 이등병 때, "조급해하지 말라"던 간부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군 생활이든, 무예든, 인생이든... 결국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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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편에서 이어집니다


이렇듯 기본기에 대한 관점이 바뀌니,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권법에 대한 시각도 차츰 바뀐다.


사실 지금까지 권법에 대한 내 생각은 그냥 몸풀이용에 불과했다. 어릴 적부터 중국무술에 심취해 각종 권법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알음알음 접해본 나로서는 중국의 상급 권법에 비해 기술의 가짓수도 적고, 그나마 있는 기술들도 표면적으로 봤을 때 효용성이 그닥 있어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무예24기의 권법 자체가 초창기 형태의 중국 권법을 가져온 것이라, 이미 여러 중국 권법을 본 내 눈엔 성이 안 찬듯 싶다. 사실 무예24기 중 권법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고, 무예24기를 수련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권법의 가치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사람을 많이 보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본기부터 다시 제대로 정립하자는 생각을 갖고, 권법에 접근하니 생각이 확 바뀐다. 생각해보면 기술이 적은 것은 그만큼 적은 기술을 더 많이 반복-숙달 수련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리고 태극권 역시 초창기 형태는 10가지도 채 안되는 초식들로 구성된 단순 권법이었으나, 후대에 갈수록 점점 동작들이 추가되어 오늘의 형태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기에, 어쩌면 초창기 형태의 권법이야말로 그 당시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용성 높은 동작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나는 권법에서 그나마 효용성 높다고 생각하는 동작들을 뽑아 단수 훈련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그냥 몸에 익을 때까지 계속 반복 연습하면서 동시에 앞에 가상의 적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것이다. 이 모양으로 한동안 계속 수련을 해오다가, 점차로 모든 권법의 동작들을 분석하고, 그 나름의 효용성을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이 싹 트기 시작했다.


그래서 권법 수련을 하면서 '과연 이 동작은 어디에 쓰일까' 고민을 하며 나름의 용법들을 생각해 노트에 필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런 동작들이 과연 실전에서 쓰일까 의문이었지만, 그동안 알음알음 배웠던 중국 권법의 기술들을 생각하니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용법을 만드는 데 큰 참고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수련을 하다보니 무예를 바라보는 시각 전체가 확 바뀐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전역하면 어떤 무술을 배울까', '어떤 무술이 가장 강할까' 고민하며, 배우고 싶은 무술들의 목록을 정리하고, 사지방(군 PC방)에서 여러 무술들을 검색해보았는데, 이제 그런 생각은 모두 헛된 망상이요, 부질 없는 욕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무예24기에서 가장 단순하다고 할 수 있는 '주먹지르기'조차 제대로 하질 못해 끙끙 앓는 놈이 뭘 더 배우겠다고 이 기술, 저 기술을 탐낸단 말인가. 무엇보다 무술에 하급 기술, 상급 기술이 어디 있단 말인가. 단순 기술도 내가 반복 숙달하여 실전에서 써먹으면 그게 나에겐 필살기이고 실전무예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굳어지면서 차츰 기본기를 수련하는 재미가 생기고, 권법의 용법을 분석하고 반복 수련하는 맛이 있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더 수련 내용을 강화하고 보충해 아래와 같이 수련하고 있다.


<현재 수련 커리큘럼>


- 주먹지르기

- 끄집어치기

- 발차기(앞차기/현각허이세/순란주세)

- 단수 훈련(탐마세-요란주세)

- 권법

- 죔죔이

- 무릎 들어올리기

- 팔굽혀펴기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련을 할 수 없다는 것. 혼자 가상으로 용법 연습을 해봐야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 하여 용법 연습에는 나와 공방을 주고 받을 상대방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상대방과 공방을 주고받으며 용법을 테스트해봐야, 내가 생각한 용법의 효용성을 검증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중에 전역하면 수련터에 가서 수련생들과 함께 내가 연구한 용법들을 함께 머리 맞대고 실험해보고 싶지만, 어리석은 초짜가 설치는 꼴은 아닐까 심히 두렵다.


요즘 다시 고민하는 부분은 '전역 후 어떻게 수련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기본기의 중요성을 깨닫고나니 그동안 수련해온 바가 '모래 위의 성'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부분은 차후 사부님과의 상담을 통해 답을 구할 생각이다.


<후기>


아무튼 엊그제부터 장마로 인해 수련을 못 하고 있어 몸이 매우 근지럽던 차에, 그동안 수련했던 바를 정리해 수련생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장문의 글을 3편으로 나누어 올려보았다.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보니 나의 무예관(武藝觀)은 군 입대 전/후로 나뉘지 싶다. 군 입대 전까지만 해도 강한 무술, 강한 기술에 대한 헛된 망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군 입대 후 꾸준한 기본기 수련 덕분에 헛된 욕심을 버리고, 무예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정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평생 수련할 무예를 찾은 느낌이다. 별로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어찌보면 군 입대 덕분에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어 고마운(?) 점도 없지 않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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