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열린 4주차 강좌는, 강사인 딸기샘이 소속된 커피공방(카페)에서 열렸다. 가끔씩 바람도 쐴 겸, 이렇게 커피공방에 와서 수업을 한다고 하는데, 뭐 그렇게 거리가 먼 것도 아니고... 괜찮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 커피공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 보고 싶은 호기심도 있었다.


해금 수업 끝나자마자, 늦은 점심을 급하게 먹고 부천에서부터 재빨리 달려오니 시간 맞춰 딱 도착했다. 보라매역 2번 출구 앞에 있는 '커피공방 멜란지'가 바로 그곳이다.


커피공방 멜란지는 그렇게 큰 카페는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매우 작은 카페였다. 카페라기보다는 '커피공방'이라는 말에 맞게, 커피를 파는 것보다는 우리처럼 커피에 대해 배우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전문적으로 열고, 커피 만드는 일에 주력하는 곳인 듯 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도, 이미 앞서 다른 강좌 수강생들이 커피 수업을 마치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차게 마시는 커피, 더치커피


오늘은 더치커피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다.


더치커피는 '워터드롭', '콜드브루'라고도 불리우는데, '차게 만들어 마시는 커피'를 의미한다.



원래 더치커피는 네덜란드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항구도시로서, 배 타고 다니는 보따리 상인들이 전세계를 누비는 해상무역이 발달했다고 한다. 이때 네덜란드 상인들이 이슬람권 국가인 예멘에서 커피를 처음 접하고 유럽에 전파하게 된 것이, 유럽에 커피가 전래된 계기라고 한다. 또 식민지에 커피를 재배하여 커피무역을 실시한 것도 네덜란드라고 한다.


이처럼 네덜란드 상인들은 배를 타고 전세계를 누비다보니, 커피를 마시고 싶어도 오랜 시간 배에 저장해두고 먹을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래도록 저장해두고 마실 수 있는 커피 추출법을 고민하다가 '더치커피'를 발명하게 된 것이다. 


초창기 더치커피의 형태는 매우 원시적이었는데, 흔히 보리차 우릴 때, 보리차 티백을 물주전자에 담아 우리듯이, 당시 네덜란드 상인들 역시 찬 물에 커피콩을 담은 주머니를 넣어 우려냈더니 향은 그래도 보존이 되어있고 저장할 수 있는 정말 맛있는 커피가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더치커피 형태로 발전시킨 것은 '일본'이라고 한다. 흔히들 일본을 '아이스커피'의 나라라고도 한다는데, 그만큼 일본인들은 커피를 차게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에 일본 역시 더치커피를 좀 더 효율적이고 맛있게 추출하는 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형태로 발전시켜 역으로 네덜란드에 수출했다고 한다. 처음 고안한 곳은 네덜란드고, 그걸 발전시켜 다시 역수출한 국가는 일본이라... 참 문화의 전파 현상이 아이러니하고 재미있지 않은가.



우리는 더치커피를 집에서 간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더치커피 간편 제조법 (커피 1L 기준)


[준비물]


- 링거, 서버, 드립퍼, 여과지, 1L 물병, 2L 생수페트병, 커피가루 50g, 옷걸이, 박스테이프, 칼, 밀폐용기(보관 시)


[제조법]


1. 옷걸이를 반으로 접은 뒤에, 걸이 부분은 벽걸이에 걸고 아래 부분은 박스테이프로 2L 생수페트병 바닥에 고정시킨다.


2. 2L 생수페트병에 1L의 물을 채운다. (칼로 ㄷ자 모양으로 페트병의 물 주입구를 따로 만들어준다)


3. 생수페트병 뚜껑에 구멍을 뚫은 뒤, 링거를 끼운다. 그리고 링거로 물을 한 번 흘려 공기를 빼준다. 이래야만 중간에 물이 뚝뚝 안 끊긴다고 한다.


4. 서버 위에 드립퍼를 올려놓고, 여과지를 끼운 뒤, 커피가루 50g을 채운다. 그리고 다시 여과지로 덮는다. (핸드드립과 달리 여과지로 덮어야만 물이 떨어지며 전체적으로 커피가루를 적셔줄 수 있다. 또한 파리 등 날벌레가 꼬이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5. 드립퍼에 링거를 테이프로 고정시키고, 생수페트병에 고정되어 있는 링거줄에서 물이 1초에 한 방울씩 떨어질 수 있도록 조절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링거줄이 바닥에 늘어지지 않도록 서버에 칭칭 감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치커피의 장/단점


더치커피는 일반적인 커피보다 장점이 많은데, 일단 찬 물에 추출하다보니 카페인이 적어서, 커피를 정말 좋아하지만 카페인 섭취를 자제해야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커피라고 한다. 또 여름철에 시원하게 마실 수도 있고, 최장 2~3주 동안 냉장고에 저장해둘 수도 있으니, 한 번 만들면 여러 번 나눠마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다양한 활용도 가능한데, 빙수에 뿌려먹으면 '커피빙수'가 되고, 소주나 맥주에 타서 먹으면 그 맛이 괜찮다고 한다. 커피와 맥주는 이미 '더치 맥주'라는 이름으로 시중에서도 판다고 하는데, 소주랑 커피가 과연 어울릴까 싶어 의아했다. 하지만 딸기쌤은 "실제로 소주에 커피를 타서 마시면 반응이 좋다. 뒤끝도 없다"며 예찬해서, 나중에라도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더치커피의 단점도 있다. 그건 추출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 1~2초에 한 방울씩 떨어지다보니 긴 시간 추출을 해야만 하는데, 1L를 추출하는 데 8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이건 평균치고, 더치커피를 추출하는 데 최소 4시간 이상은 투자해야하고, 최장 12시간까지 걸린다고 하는데, 4시간 이하여도 맛이 없고, 12시간 이상이어도 맛이 없다고 한다. 더치커피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커피라, 나같이 성격 급한 사람에게는 성가신 커피인 것 같다.


아울러 차게 마시는 커피이므로, 가급적 서늘한 환경에서 추출을 해야 세균 번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맛있는 커피를 추출할 수 있다고 하니, 이것도 주의해야 할 점이다.


PS. 오늘의 커피는 '인도네시아 가요마운틴 G1'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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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문화학교에서 시행하는 홈바리스타 강좌가 3주차로 접어들었다. 
오늘은 '설탕 시럽', '초코 시럽' 등 각종 시럽을 만드는 법에 대해 배웠다.


딸기샘의 말에 의하면, "커피에 제일 잘 어울리는 짝꿍은 설탕과 시럽"이라고 한다. 커피에 설탕을 첨가하면 단 맛도 나고, 커피의 숨은 향과 맛을 극대화시켜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결정이 있다보니 희석시키기가 어렵고, 요즘은 웰빙 시대라 설탕을 가급적 안 쓰려고 하기 때문에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말이다.


시럽 역시 설탕으로 만들어지지만, 액체 성분이기 때문에 커피에 잘 융화된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다만 시중에서 파는 시럽은 인위적인 첨가물을 넣어, 건강에도 안 좋고 너무 달기 때문에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한다.


하여 우리는 시럽 만드는 법을 직접 배웠다.


(1) 설탕 시럽


- 설탕과 물의 비율은 2:1 (애매하면 머그컵 한 잔 기준)

- 설탕은 백설탕(향 있는 설탕은 커피의 향을 망칠 수 있음)이 좋고, 물은 뜨거운 물이어야 함

- 설탕과 물을 믹서기에 넣고 결정이 안 만져질 때까지 갈면 완성


(2) 초코 시럽


- 코코아가루 1봉(80g) + 설탕 150g (종이컵 1잔 소복하게) + 드립커피 200ml를 준비한다

- 코코아가루와 설탕을 섞어준다

- 드립커피를 부은 뒤, 중불에 올려놓고 계속 휘젓는다

-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오고, 시럽이 걸쭉해지면 완성





브라질 세하도 NO.2


참고로 오늘 드립한 커피는 '브라질 세하도 NO.2'라는 커피였다. 이 커피는 전체 커피 생산량의 1/3을 자랑하는 브라질에서 나온 원두로, 브라질 커피는 대체적으로 저렴하고 부드러운 커피라고 한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즐기는 커피이기도 한데, 신맛이 별로 없어 밋밋하다는 느낌도 준단다. 좋게 말하자면 '중성적 매력'이 있는 커피라 평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개성이 없는 커피'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세하도는 커피를 생산한 도시의 이름을 말하는데, 원래 브라질 커피는 산토스 지역이 유명하지만, 요즘은 세하도의 인기가 급상승 중이라고 한다. 


뒤에 붙은 NO.2는 커피의 등급이 '2등급'이란 뜻이다. 브라질 커피는 NO.2부터 6까지 5등급으로 나뉘어 있는데, NO.2가 최고 등급이라고 한다. 그럼 1등급은? 브라질 사람들은 애시당초 사람들의 손을 타야하는 커피에 완전무결한 1등급은 없다고 판단하여, 1등급을 따로 두지 않는다고 한다. 곧, 내가 최선을 다해 내려서 맛있게 느낀다면 그게 바로 'NO.1'이란 것이다. 커피에 대한 브라질 사람들의 독특한 철학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시럽으로 만드는 다양한 커피


오늘 강의는 커피를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시럽을 만드는 게 목적이어서 그런지, 그렇게 어렵거나 복잡한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1, 2강에 비해 별로 흥미가 없는 내용이기도 했다. 순수한 커피를 즐길 뿐, 단 맛이 나는 '카페라떼, '카페모카'와 같은 혼합커피는 별로 즐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비싼 돈 내고 듣는 수업이기도 하고, 나중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려면 어쨌든 필요한 내용이라 판단해, 집중해서 들으려 노력했다.


시럽을 다 만든 뒤에는, 이 시럽을 이용한 다양한 음료를 맛보았다. 시럽과 우유를 섞어 커피우유도 마셔보고, 시럽을 식빵에 발라 맛보기도 했다. 달달하니 맛있기는 한데, 먹을 때마다 살찌는 느낌이 들어서 영 찝찝했다. 이럴 때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먹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이 시럽을 바닥에 자작하게 깔고, 드립커피와 우유를 부어 섞으면 그게 바로 '카페모카'라고 한다. 나중에 한 번 도전은 해봐야겠다.


스타벅스와 이디야, 그 차이는?


오늘 강의 때는 기회를 엿보다가 항상 궁금해하던 것에 대해 질문을 드렸다. 


"스타벅스와 같은 고가 브랜드 커피와 이디야와 같은 저가 브랜드 커피의 가격 차이가 심한데, 그럼 브랜드에 따라 원두의 품질도 다른 것이냐"


이에 대해, 딸기샘은 "브랜드마다 추구하는 원두의 맛이 다르니, 개성은 있지만 그렇다고 품질 차이가 있다고 보긴 힘들다. 다만 스타벅스와 같은 고가 브랜드가 비싼 건 '브랜드 값' 때문이다"라고 답변해주었다. 결론적으로 이디야 커피든, 스타벅스 커피든 원두 자체는 거기서 거기라는 것. 그렇다면 가급적 저렴한 브랜드를 이용하는 것이 스타벅스의 독과점을 막고 다양한 커피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시장이란 소비자가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다음 주에는 보라매역에 위치한 '커피공방 멜란지'에서 수업을 한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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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무예24기 한양류 식구들과 함께 관악산에 다녀왔다.


식구라고 해봐야 사부님과 두희 형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 뿐이었지만... 그래도 제일 수련터에서 제일 체력 좋은 남자 3인방이 산을 타니, 거칠 것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전역하고 이틀 만인 4월 15일에, 관악산 등산을 했었는데... 오늘이 5월 15일이니 딱 한 달만에 또 관악산을 타게 된 셈이다. 물론 그때는 사당역에서부터 연주대를 찍고, 깔딱고개를 지나 서울대입구로 내려오는 코스였다면, 이번에는 정반대로 서울대입구에서부터 시작해 연주대를 찍고 연주암 뒤로 내려가는 완만한 우회코스를 통해 사당역까지 거꾸로 내려가는 코스였다. 한 달 간격으로 관악산의 여러 코스를 찍어서, 이제 '사당-연주대-서울대입구' 구간은 쉽게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자감이 든다.


아무튼 오전 9시 30분에 서울대입구 근처 만남의 광장에 모인 우리는, 설렁설렁 이야기를 하며 등산을 했다. 지난 번에 혼자 산을 탈 때는, 혼자라서 그랬는지 매우 심심하고 지루했는데 오늘은 세 명이서 이야기를 하며 산을 타니 긴 등산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힘들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무예24기 이야기, 십팔기 이야기, 역사학계 이야기...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연주대에 도착.


정오가 되면 관악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사찰 '연주암'에서 점심 공양을 무료로 한다기에, 내려갔더니 줄이 정말 길다. 하필 오늘이 일요일이었던지라 등산객들로 바글바글거렸는데, 생각보다 로테이션이 빨리 돌아서 금세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메뉴는 '비빔밥'. 사찰음식인데다가 다량으로 뽑아내는거라 그렇게 맛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시장이 반찬이고 무료로 밥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맛있게 한 그릇 비워내고 하산길에 올랐다.


하산길에 우리는 '산악 뜀걸음'을 했는데, 천천히 걸어가는 등산객들을 새치기하며 바위를 뛰어넘고, 흙길을 뛰어내려가는 등 험준한 산길을 달려갔다. 사부님 曰 "이게 일반 평지에서 달리기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고 하셔서 나도 사부님 따라 열심히 뛰었지만, 따라잡기가 쉽지가 않았다. 힘들어서라기보다는, 자칫 넘어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던 건데, 사부님은 넘어지지 않고 자유자재로 뛰어다니셨다. (한복 입고 어떻게 저렇게 잘 뛰어다니는지.. 역시 무예를 오래 수련하면 저래 되는건가)


사부님은 "산에서 자연의 지형지물을 이용하며 뛰면 효과가 좋다. 특히, 넘어질까 긴장을 하게 되는데, 긴장을 하면서도 유연하게 몸을 쓸 줄 알아야 고수가 된다. 단, 긴장을 풀면 바로 사고로 이어진다"고 해서, 그 말에 유념하며 열심히 따라 뛰었다. 하지만 사부님은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없어지셨다.




결국 두희 형님과 단 둘이 한참 내려가다보니 하늘이 흐려지는 것이 곧 비가 올 조짐이었다. 그래서 발걸음 속도를 더 빨리 올렸는데, 결국 산을 다 내려가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전수관에 도착해보니 사부님은 비가 오기 시작할 때쯤 이미 전수관에 도착했다고 한다. 21세기 김광택?


아무튼 정신 없이 뛰어다니느라 자연풍광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친한 사람들과 함께 산을 오르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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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동작문화학교 홈바리스타 강좌 2강이 있는 날이었다.


홈바리스타 수업이 있는 날만 되면 무슨 조화에선지, 비가 내리는 것 같다. 오늘도 우중충한 날씨 속에 비를 뚫고 오느라 좀 고생했다.


과테말라 안티구아 SHB


수업시간이 되어 수강생들이 전부 모이자, 지난 번에 배운 핸드드립으로 오늘의 커피를 먼저 시음했다.


오늘의 커피는 '과테말라 안티구아 SHB'라는 커피였는데, 과테말라 안티구아에서 나온 최상품 등급의 품종(SHB)이라고 한다. SHB는 Strictly Hard Bean의 약자로, 보통 커피는 4000~5000피트의 고지대에서 자라지만, 이 커피는 5000피트(약 1,500m) 이상 의 고지대에서 자라는 커피로, 밀도가 훨씬 단단해서 맛과 향이 풍부하다고 한다.


이처럼 커피콩은 심은 지역에 따라 맛과 향이 다 다른데, 과테말라 커피의 경우 스모키한 맛이 강했다. 그것은 화산지대인 과테말라의 지리적 습성에서 비롯된 것이란다. 향신료를 많이 쓰는 인도에 심으면 커피에서 스파이시한 맛이 난다고도 한다.


이 커피를 핸드드립으로 해서 먹었는데, 지난 번에 한 번 설명 듣고서, 전혀 연습없이 일주일 만에 해보려니 가물가물해서 추출을 제대로 못한 것 같다. 내 커피 맛은 신 맛이 좀 덜하고, 끝에 가서 단 맛이 난다고 한다.


핸드드립 시에는 웬만하면 물줄기 흐름을 동일한 속도로 유지하면서, 한 번에 추출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초보자들의 경우 물 조절이 힘들기 때문에, 물이 금세 차올라서 2차, 3차로 나누어 추출하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추출 시간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란다.


예를 들어 1차 추출 시에 빨리 끝내고, 2차를 길게 추출하면 연한 커피가 되고, 1차 추출이 길어지면 진한 커피가 되는 것이다. 옆에서 함께 수강하던 할아버지의 경우 뜸들이기조차 제대로 안된 상황에서 추출을 계속 하는 바람에 이도 저도 아닌 경우가 되었는데, 마셔보니 확실히 커피가 맹물에 가까운 맛이었다.


까다로운 커피 보관법


커피 보관에 대해서도 오늘은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커피는 무조건 진공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밀폐용기에 담아야 하고, 밀폐되지 않은 용기에 담을 경우 2시간 이내에 향이 다 날아가버리므로 재빨리 마시던지, 밀폐용기에 옮겨 담아야 한단다. (가루의 경우가 이렇고, 원두의 경우는 1~2일 안에 향이 날아감)


밀폐용기에 담은 커피도 가루커피의 경우 이틀 안에 먹어야하며, 원두의 경우 실온에서 한 달 가까이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냉장/냉동 보관 역시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단다. 커피가 가장 싫어하는 게 '열'과 '습'이기에, 냉장 보관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냉장 상태에서 커피를 실온에 꺼낼 경우 온도 차로 인해 향이 변해버린다는 것. 그러므로 마실 만큼만 사서 조금씩 냉장 보관을 하던지, 원두를 사서 보관하고 그때 그때 갈아먹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한다.


커피벨트에서만 생산되는 커피


커피는 적도를 기준으로 북위 25도와 남위 25도 사이의 '커피벨트'에서 생산된다고 하며, 추운 지역에서는 커피가 생산되지 않기에, 우리나라 역시 커피를 재배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커피를 재배하는 지역이 있지만, 전부 온실에서 재배한단다) 또 커피나무를 처음 심을 때는 비가 많이 와 적셔주고, 건기 때 바싹 말려야 하며, 해발 1,000m 이상의 산 중턱 비탈길/언덕배기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반면, 아라비카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는 보급형 로브스타의 경우는 해발 700m 이하의 평지에서 자란다고 한다.


이탈리아인의 자존심, 에스프레소


오늘은 모카포트라는 도구를 이용해 '에스프레소' 추출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에스프레소는 '빠르다'는 뜻의 익스(Ex)와 '압축하다'는 뜻의 프레스(Press)가 결합된 익스프레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곧, '빠르게 압축하여 추출하는 커피'란 뜻이다. 핸드드립 커피보다 훨씬 강한 맛이라 쓰기까지 한데, 그만큼 커피의 많은 성분을 온전하게 추출해내는 커피다.


흔히 카페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시키면 Take-Out이 불가능한데, 그건 아주 조그마한 잔에 담겨져 나오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처음 에스프레소를 보면 '에게?'하는 반응이다. 아메리카노와 비슷한 가격인데, 양은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입 마셔보면 '윽' 한다. 아메리카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쓰기 때문이다.


강사님 설명에 따르면,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에서 비롯되었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 하면 무조건 에스프레소라고 한다. 일반 가정집에서 모카포트 하나씩을 구비해놓고 아침에 한 잔, 점심에 한 잔, 저녁에 한 잔 원샷으로 마신다고 하는데, 이탈리아인들이 얼마나 에스프레소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지 알 수 있는 사례도 들려주었다. 


한 한국인이 이탈리아에 가서 에스프레소와 따뜻한 물 한 잔을 주문하자, 종업원이 "설마 에스프레소에 물 타 먹으려는 거냐?"고 물었단다. "그렇다"고 하자, 종업원 曰 "우리 커피는 에스프레소로 먹지 않으면 그 맛과 향을 느낄 수 없다. 고로 따뜻한 물은 줄 수 없다"며 손님의 주문을 거절했단다. 이런 단편적인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탈리아인들에게 에스프레소는 자존심 그 자체인 듯 하다.


그리고 이런 에스프레소의 진한 맛에 적응하지 못한 미국인들이 쓴 맛을 희석시키기 위해 물을 타 먹기 시작한 것이 '아메리카노'의 시초라고 한다. 그리고 우유를 타면 그것이 또 '카페라떼'가 된다. 라떼라는 말은 우유를 의미한단다. 결국 에스프레소를 하나 시킨 다음에 아메리카노로 먹고 싶으면 따뜻한 물을 부으면 되고, 카페라떼를 즐기고 싶으면 우유를 타면 되고, 원액 그대로 즐기고 싶으면 에스프레소 원액 그 상태로 들이키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아메리카노의 맛에 가까운 맛 밖에 즐길 수 없는 핸드드립보다는 차라리 모카포트가 훨씬 다용도로 활용가능해서 경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커피를 즐기려면 핸드드립보다는 모카포트 하나를 장만하는 것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여과지나 드립퍼 같은 소비성 부수 물품도 필요 없으니...)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 추출하기


우리는 준비된 모카포트에 커피가루를 담고 브루스타에 올려놓고 커피를 끓이기 시작했다.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모카포트 하체(물탱크)에 물을 채운다 (물은 안쪽 표시선까지, 혹은 바깥에 있는 배꼽 밸브 아래까지)

2. 모카포트 중간에 있는 바스켓에 원두가루를 수북하게 채운다

3. 모카포트 상-하체를 결합시킨 뒤에 브루스타에 올려놓고 중불로 끓인다. (손잡이가 녹을 수 있으므로 살짝 삐져나오게 올려놓는다)

4. 물이 끓으며 올라오는 압력으로 발생된 수증기가 커피액을 추출하기 시작하면 뚜껑을 닫고 센 불로 올린다

5. 물이 끓다가 어느 순간 끓는 소리가 바뀌면 불을 끄고 잔에 따른다


처음에 모카포트를 봤을 때, 녹슨 것마냥 속이 너무 더러워서 찝찝했는데 강사님은 "이건 커피기름이다. 이게 커피의 풍미를 좋게 하기 때문에, 평소에도 절대 세제로 세척하지 말고 뜨거운 물로 한 번 헹군 뒤에 바짝 말려서 재사용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면 '크레마'라는 갈색 거품이 뜨는데,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므로 이 크레마가 살아있을 때 빨리 마셔야 커피의 좋은 성분을 그대로 섭취할 수 있다고 하며, 좋은 에스프레소를 마시면 1~2시간이 지나도 커피의 여운이 입에 남아 감돈다고 한다. 참고로 모카포트용 커피는 드립용 커피보다 더 태운 원두를 써야 풍미가 산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모카포트로 직접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한 잔씩 맛 본 뒤에 오늘 수업을 마쳤다. 지난 번부터 느꼈지만, 커피 수업은 재밌어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모든 일들이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흘러가면 좋을텐데... 


다음 수업은 시럽을 첨가한 '카페모카'에 대해 배운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달달한 커피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터이긴 하지만 바리스타가 되려면 커피에 대해 기본적인 건 다 알아야 하니까, 다음 주에도 열심히 배워야겠다.


그나저나 연습하려면 도구가 있어야 할 텐데... 도구 살 돈은 없고... 현실을 생각하면 그저 안습일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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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경복궁에서 <수라간-시식공감>이라는 행사가 열려, 어머니와 함께 다녀온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요즘 <궁중문화축전>이라고 하여, 서울에 있는 조선 궁궐에서 궁궐별로 다양한 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수라간-시식공감>은 그 축제의 일환으로 열리는 행사다. 조선시대에 임금님께만 진상되던 궁중음식을 맛볼 수 있는 체험행사인데, 궁궐에서 수라상을 직접 맛볼 수 있다고 하니 흥미가 생겼다.



<창덕궁 달빛기행>처럼 야간에 궁궐을 관람하는 행사도 구미가 당기긴 했지만, 임금님 수라상을 직접 맛볼 수 있는 이 행사에 더 끌렸다. (두 개의 행사를 동시에 예매하기엔 주머니사정이 여의치 않았기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마침 전역하고 할 것도 없는 백수인지라, 티켓 오픈이 열리는 시간에 컴퓨터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오픈되자마자, 어머니와 단 둘이서 다녀올 요량으로 2장을 예매했다.


행사가 있기 이틀 전부터, 웬 날씨가 이리 험악한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가 간 날은 운 좋게도 비가 그친 직후라 하늘이 아주 맑았다. 다만, 여전히 바람은 거세어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것은 옥의 티. 거센 바람 탓에 경복궁에 깔린 모래들이 잔뜩 휘날려 정상적인 관람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행사 당일, 경복궁에 도착한 우리는 아직 행사시간까지 여유가 좀 있었기에, 행사가 열리는 소주방 권역까지 천천히 걸어가며 느긋하게 궁궐을 관람했다. 흥례문->근정문->근정전->사정전->강녕전->자경전을 둘러보면서, 동행했던 어머니가 경복궁은 또 처음 와 본다고 하셔서 괜히 안쓰러웠다. 여태껏 서울에 몇십 년을 살면서, 코앞에 있는 궁궐 한 번 못 가보고 뭐하신 건지...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시큰했다.



행사장인 소주방에 도착하니 이미 닫혀있는 문 앞에서 행사 참여자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12시부터 점심을 제공한다고 하는데, 아예 시간을 딱 맞춰서 개방했다. 이건 좀 아쉬운 행정이었던 것 같다. 어차피 기다릴 거라면 안에 들어가서 착석시켜놓고 기다리게 해도 상관 없을텐데... 


참고로 행사가 열리는 소주방은 궁중음식을 만들던 부엌으로, 일상식을 만드는 내소주방과 잔치음식을 만드는 외소주방 그리고 별식을 만드는 생물방으로 구분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식사를 한 곳은 '외소주방'이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서 이곳에서 수라상을 체험하는 건 고증에 맞지 않겠다. 임금님이 자기 침전에서 밥을 먹지, 부엌에서 밥을 먹겠나.




(사진: 행사가 열리는 경복궁 외소주방)


아무튼 12시 정각이 되자, 드디어 문이 열리고... 한 켠에 마련된 카운터에서 예매 확인을 한 뒤에, 자리를 배치받았다. (자리의 경우는 무작위 선정) 안그래도 모래 바람이 많이 불어서, 바깥 쪽이 아니라 방 안에서 먹는 게 낫겠다 싶었는데, 운 좋게도 우리는 방 안으로 배정받아 마음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자리에 앉은 지 한 10분 정도 되었을까? 궁녀 복장을 한 직원들이 하얀 보자기에 감싼 식사를 들고 와 우리 상에 올려놓았다. 




(사진: 배달(?) 온 식사... 보자기에 수놓인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오얏꽃무늬가 인상적이다)



(사진: 도슭 수라상이 담긴 4단 유기 합)


식사메뉴는 총 2가지인데, '골동반 동고리'와 '도슭 수라상'이 그것이다. 기왕 먹는 것, 골고루 먹어보고 싶어서 예매할 적에 어머니는 골동반 동고리로, 나는 도슭 수라상으로 메뉴를 주문했었다. (골동반 동고리는 15,000원, 도슭 수라상은 20,000원이다) 


골동반(骨董飯) 동고리에서 '골동반'은 비빔밥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동고리는 둥글납작하게 만든 고리상자를 말한다. 결국 고리상자에 담은 비빔밥이란 뜻이다. 비빔밥에 올리는 나물은 제철에 나는 신선한 것을 썼으며, 흰색, 푸른색, 갈색 등 색색의 나물을 섞었다고 한다.





(사진: 골동반 동고리)


동고리에 담겨져 나온 밥을 보니 이미 약고추장과 참기름으로 간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여기에 나물만 넣어 비비면 완성. 밑반찬으로는 호두정과, 오이송송이, 풋고추부각, 배추김치가 나왔다.


그리고 내가 먹은 '도슭 수라상'은 왕과 왕비만 받을 수 있었던 최고의 일상식인 12첩 반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합에 조금씩 담아낸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도슭'은 도시락의 옛 말이란다. 아무래도 임금님에게 대접하듯 수라상을 걸지게 차려내기에는 주최 측이 부담스러웠던지, 도시락처럼 4단 유기합에 담겨져 나왔다.


도슭 수라상을 구성하는 열두가지 음식에는 선조들의 음식 철학인 음양오행과 약식동원(藥食同源: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 즉, 좋은 음식은 약의 효능을 낸다는 뜻)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보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수라상에는 육포장아찌, 오이송송이, 명란젓, 배추김치, 황태구이, 탕평채, 전복초, 더덕구이, 원추리나물, 생선전유화, 쇠고기산적, 애호박전이 밑반찬으로 나왔고, 국으로는 석류탕(만둣국)이 나왔다.






(사진: 도슭 수라상)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음식값에 비해 질과 양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물론 당대 임금님이 실제로 이렇게 맛없게(?) 먹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현대인들의 입맛과 옛 조상들의 입맛은 다를테니... 그래도 높은 가격대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었고, 간도 제각각이었던 밑반찬들이 실망스러웠다. 명란젓은 너무 짜고, 석류탕은 너무 싱거웠다. 특히 석류탕에 들어간 만두는 달랑 3개인가 들었는데,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 맛 없는 짬밥 먹다 나온 나조차도 이렇게 느끼는데, 입맛 까다로운 우리 어머니야 말할 것도 없지... 결국 어머니가 남긴 골동반까지 내가 다 먹어치웠다.


한편으로 또 허무했던 것은, 현장에서 티켓 판매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었다. 사전예매로만 티켓 구매가 가능한 줄 알고, 오픈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간신히 예매했다고 혼자 뿌듯해했는데, 현장에서도 티켓을 팔고 있으니... 그래서 우리가 식사하는 중간에도 관람객들이 지나가다 들러서 즉석에서 주문하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이럴거면 사전에 예매한 이들에 대한 서비스(?)가 따로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그래도 한 번쯤 경험해보기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언제 궁궐에서, 수라상을 받아보겠는가. 또 식사 중간에 즉석에서 국악공연을 하는데, 우리를 위해 즉석 연주까지 해준다고 생각하니 뭐라도 된 것마냥 어깨가 절로 펴졌다. 물론 먹느라 정신 없어 음악이 귀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식사하고 나오면서 경회루와 광화문을 거쳐 출구로 나왔다. 나가면서도 내내 '경복궁은 처음 온다'고 했던 어머니의 말이 마음에 걸려서, 조금 더 구경을 시켜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바람이 너무 불어 그만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셔서 할 수 없이 대충 보고 나올 수밖에... 다음을 기약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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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지친 軍생활을 위로해주던 커피 한 잔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군대에서 커피와 맺게 된 인연에 대해 길게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다. (링크: http://gabeci.tistory.com/135)


전역 직전에 심심풀이로 작성한 버킷리스트에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이 있었는데, 전역하고 얼마 안 되어, 동네 문화센터에서 '홈바리스타' 강좌를 개설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차피 휴학생 신분이라 시간도 많고, 버킷리스트를 실천에 옮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지원했더랬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홈바리스타 강좌가 개강하는 날이었다.


하필이면 오늘따라 날씨가 왜 이리 궂은 것인지... 거센 비바람을 뚫고 간신히 강좌가 열리는 동작문화원에 도착했다. 앞으로 12주간 강좌가 열릴 3층 소회의실에 들어서니, 이미 강사 분께서 커피 추출을 위한 도구들을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사진: 테이블에 마련된 커피 추출 도구들)


수강인원은 나까지 포함해서 총 11명이라고 하는데, 남자는 나와 맞은 편의 어떤 어르신 한 분이고, 나머지 분들은 전부 여성인데 역시 중년의 아주머니들이었다. 얼추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말동무 삼아 내 또래 친구들이 한둘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어쨌거나 11명이면 사실 적은 숫자인데, 테이블 세 개 합쳐놓고 11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으니 그룹과외를 받는 느낌이어서 나쁘지 않았다.


오늘은 첫 강좌라서 오리엔테이션을 겸했는데, 앞으로 12주 동안 강좌를 이끌어주실 강사님은 보라매역 인근에서 '커피공방 멜란지'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분으로, 별칭이 '딸기샘'이었다. (왜 딸기샘인지는 모르겠다) 재료비가 1회 당 6,000원으로 12주 동안 총 72,000원을 추가 지불해야한다고 해서, 또 한 번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 부담을 느꼈지만... 그날 커피 한 잔 마신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여기서 내가 얻어가는 가치가 그 정도 가격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가 되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참고로 내가 수강하는 반은 자격증 취득을 위한 전문반이 아니라 가정에서 쉽게 즐길 수 있도록 기본적인 상식과 추출법 위주로 강의하는 취미반이었다. 취미반이란 것을 알고 신청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장기적으로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까지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취미반 강의를 모두 수강하고 나면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하고 여쭤봤다. 하지만 강사님은 "여긴 순수한 취미반이라서 자격증 취득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없다. 자격증 취득을 원하면 차라리 환불하고 자격증반으로 가는 게 맞다"고 하셨다.


취미반은 12주 동안 다양한 커피를 마시게 된다고 한다. 매주 강사님이 새로운 커피를 가져오실 거라고 하는데, 1시간 30분의 강의시간 동안 30분은 각자 자유롭게 커피를 내려보고, 서로 마시면서 가볍게 수다를 떨고, 실질적인 강의는 1시간 정도 이루어진다고 하셨다.


오늘은 '핸드드립'에 대해 배웠다. 핸드드립이란 일명 '손흘림 커피'라고 하는데, 손으로 직접 추출하는 커피를 말한다. 핸드드립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원두를 핸드밀로 갈아서 가루를 추출한다. 그리고 서버(추출되는 커피 원액이 담기는 주전자)에 드립지(여과지)를 끼워넣은 드립퍼를 올려놓고, 그 속에 추출한 커피가루를 채워넣는다. 이후 포트(주전자)에 담긴 뜨거운 물을 부어, 원액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오늘 배운 유의사항을 정리해보자면,


1. 드립퍼 속 구멍의 숫자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 (구멍이 많을수록 빠르게 추출 가능함)

2. 도구에 대해 절대 욕심내지 말 것! (처음 등산하는 사람이 노스페이스 등산복을 구입하는 것과 같은 행동)

3. 커피물의 온도는 90~95도가 적당하다

4. 기계로 원두를 갈면 미분(먼지)과 정전기가 발생하고, 전기세도 많이 든다. 하지만 빠르고 편하게 원두를 갈 수 있고, 분쇄정도를 조절할 수 있어 다양한 커피를 추출할 수 있다. 반면 핸드밀은 두꺼운 입자의 커피만 추출이 가능하다.

5. 커피 원두가루 10g으로 100ml 정도의 커피를 추출할 수 있다.

6. 글라인더로 갈 때나, 포트로 물을 따를 때도 한쪽 방향으로만 돌리는 게 좋다. (곱게 갈기 위해서는)

7. 핸드드립의 장점은, 살짝 가루를 불려주는 '뜸들이기'가 가능해서 더 향과 맛을 좋게 추출할 수 있다. 또한 물이 남은 상태에서 원하는 만큼 추출했을 때 더 이상의 추출을 중단할 수 있다.

8. 커피는 한 번 추출한 뒤 재탕하면 안 된다 (재탕할 수록 카페인과 같은 안 좋은 성분이 많이 나옴)

9. 드립지 테두리 쪽으로 물 부어선 안 된다. (종이 맛이 날 수 있고, 커피가 연하게 나옴)

10. 원액과 물의 비율이 1:1이어야 맛있는 커피가 된다.

11. 커피를 마실 땐 처음에는 코로 향을 느끼고, 두 번째는 오물거리며 입가심을 하고, 세 번째에서 목넘김을 하며 맛을 느낀다.

12. 포트에는 물을 60% 이상 채운다.


우리가 오늘 마신 커피는 '콜롬비아 수프리모 후일라'라는 커피인데, 여기서 콜롬비아는 남미에 위치한 국가로, 최고의 커피 품종을 자랑한다고 한다. 수프리모는 커피의 등급 중 하나인데, 최상품의 등급이라고 하고, 후일라는 커피가 생산된 지역을 말한다. 보통 커피 품종을 말할 때에는 '커피 생산국+품종의 등급+커피가 생산된 지역, 농장, 수출하는 항구도시 이름'으로 명명한단다.


우리는 각자 커피를 내려보면서, 서로의 커피를 맛 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특이하게 같은 원두를 이용해 추출했음에도 맛이 제각각이었다. 강사님은 "추출하는 사람의 스킬에 따라 커피맛이 다 다른 것이 커피의 매력"이라고 하셨다. 강사님이 추출한 커피는 신맛이 강하게 났는데, 신맛이 많이 나야 맛있는 커피라고 하셨다. 그리고 커피의 좋은 효능은 전부 신맛에 있다고 한다.



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추출해봤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성격이 급한 게 커피 추출을 통해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포트로 물을 부을 때, 강아지 오줌 싸듯이 찔끔찔끔 그러나 멈춤 없이 부어야하는데, 물조절에 실패해 들이붓듯이 붓기 일쑤. 강사님은 내 커피를 맛본 뒤에 "처음엔 밍밍하다가 뒤에서 갑자기 신맛이 확 난다. 물을 갑자기 확 부었다는 뜻이다"라고 하면서 정확하게 내 스타일을 캐치하셨다. 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스킬은 늘어난다고 하니까... 12주 뒤에 멋지게 핸드드립하는 내 자신을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커피의 품종에 대한 설명도 들었는데, 전세계적으로 생산되는 커피의 품종은 크게 '아라비카', '로브스타'로 나뉘며, 아라비카가 질 좋은 원두라고 한다. 로브스타는 저렴한 보급형으로, 카누와 맥심, 칸타타 등 대부분의 인스턴트 커피의 품종으로 사용된단다. 그리고 콜롬비아의 경우 커피의 생산량은 적지만, 질이 좋고 브라질은 질은 떨어지지면 생산량은 세계 제일이란다. (요즘은 베트남이 치고 올라온다고 함)



서로 내린 커피를 음미하다보니, 어느새 강좌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강의가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강사 분이 "젊으니까 일단 취미반으로 시작해서, 천천히 생각해보고 계속 하고 싶으면 그때 혼자서 필기 준비하고 자격증반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해서 취미반을 계속 수강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어차피 환불하면 수수료도 떼고 해야해서... 취미반으로 커피에 대한 감각을 기른 뒤에, 자격증은 천천히 따야지. 어차피 꿈이 있다면 언젠가는 이루게 되는 법이니 결코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당장 이번에 따지 못하면 평생 못 따는 것도 아니니까!


이로써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이라는 꿈을 달성하는 길에, 한 발짝 다가선 것 같아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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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몽양 여운형 역사탐방>이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역사유적지 탐방행사에 다녀왔다. <몽양 여운형 역사탐방>은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탐방 프로그램인데, 이번이 18회째라고 한다. 


2014년 7월 6일이었던가. 군 입대를 딱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는데, 그때도 탐방 행사가 있었다. 그때는 또 1박 2일로 경남 밀양까지 다녀오는 꽤 큰 행사였다. 당시 나는 군 입대를 앞두고, 좀 의미있는 활동을 해보고 싶었기도 하고, 그간 친하게 지냈던 기념관 관계자 분들께 입대 인사도 드릴 겸해서 참가했었더랬다. 그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전역하고 다시 탐방에 참여하려니 감회가 어찌 남다르지 않을손가. (그때는 12회 행사였다)



(사진: 2014년 7월 5일, 제12회 몽양 여운형 역사탐방 당시 밀양 박차정 선생 묘소에서)


어쨌건 이번 행사는 당일치기로, 그것도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짧게 진행하는 답사여서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


오후 1시가 다 되어, 집결지인 삼양교통 종점 앞으로 가니 이미 많은 회원들이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나도 재빨리 대열에 합류하여, 가장 먼저 기념관의 장원석 학예사님과 강대운 시설팀장님께 오래간만에 인사를 드렸다. 입대 전 청년백범 답사단의 일원으로 함께 중국을 다녀오면서 첫 인연을 맺었고, 입대 후에도 휴가 나와 연락드렸을 때, 지체없이 달려나와 소주 한 잔 사주시며 군 생활을 위로해주던 매우 고마운 인연들이다.


일행이 다 모이자 첫 답사지인 '봉황각'으로 향했다. 그런데 봉황각 앞에 도착하니, 장 학예사님이 갑자기 내 소개를 하시며 "전역한 지 얼마 안 됐으니 경준씨가 오늘 몸풀이 겸 모두 앞에서 국군도수체조를 지도해보라"고 즉석 주문을 하셔서 무척 당황스러웠다. 



(사진: 봉황각으로 가는 입구)



(사진: 봉황각 입구에 모인 탐방 회원들)


할 수 없이 맨 앞에서 국군도수체조를 하긴 했는데, 사실 말년이 되고서부터는 점호 때마다 생각없이 대충 체조하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체조를 하긴 처음이라 동작들도 중간 중간 까먹고, 구령과 동작이 안 맞아서 애를 먹기도 했다. 


체조를 마치고 나니, 이미 군대를 다녀온 군필자 회원들은 "나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네"라는 말로 군 생활을 추억하기도 하고, "아까 동작이 틀렸다"며 지적하기도 했다. 심지어 "빠졌네"라고 한 마디 툭 던지는 분도 계시던데... ㅎ 얼마 전까지 말년 병장이었던 예비역한테 뭘 더 바라십니까...


한바탕 체조 소동(?)을 겪은 뒤에, 봉황각에 올라가 가이드 선생님으로부터 봉황각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사진: 봉황각 전경과 설명해주시는 가이드 선생님)


봉황각은 경술국치 이후인 1912년에 천도교(동학)의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의암 손병희 선생이 세운 목조건물이다. 손병희 선생은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천도교 정신으로 무장한 투사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투사들을 양성하기 위해 일제의 감시망이 소홀한 서울 변두리에 이 봉황각을 지었던 것이다. 실제로 손병희 선생의 3.1혁명 구상도 이곳에서 이루어졌으며, 이곳을 거쳐간 많은 지도자들이 3.1혁명의 주체세력으로 활약했다고 한다. 민족대표 33인 중 15명이 이곳에서 배출되었다고 하니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참고로 봉황각의 현판은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였던 위창 오세창 선생이 썼다고 하며, 건물의 양식은 경복궁의 건청궁을 본따 만들었다고 한다.


봉황각에서 좀 떨어진 곳에 오르막길이 있는데, 그 길을 오르면 봉황각의 설립자인 의암 손병희 선생의 묘소가 있다. 우리는 묘소를 참배한 후에 다음 코스로 이동하기 위해, 북한산 둘레길을 따라 15분 정도 걸어 몽양 여운형 선생의 묘소로 향했다.



(사진: 의암 손병희 선생 묘소)


몽양 여운형 선생의 묘소는 강북구 변두리의 한 주택가에 조촐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인가 나도 입대 전에 이곳에 혼자 찾아왔을 때, 도저히 위치를 파악할 수 없어 기념관에 전화해 계속 위치를 물어보고, 여기저기 발품을 파는 등 한바탕 소동을 벌인 끝에야 간신히 찾을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분의 묘소야말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잘 모셔져야 할 터인데, 유족들이 그건 또 원치 않았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긴 하다.




(사진: 몽양 여운형 선생 묘소로 가는 북한산 둘레길의 와중에서... 꽃이 참 예뻤다)


여운형 선생의 묘소를 참배한 후에, 우리는 백설기 떡과 막걸리로 음복을 하며 잠깐 휴식 시간을 가졌다. 휴식 시간에 잠깐 여운형 선생 묘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여운형 선생의 서거 후 미군정 사령관 하지 중장은 미국에서 특별히 제작해 공수해온 관에 선생의 시신을 안치하도록 배려했고, 포르말린 용액으로 방부처리를 하여 미라 상태로 입관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향후 3~40년 내로 통일이 되면 이장하기 위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사진: 몽양 여운형 선생 묘소에서 참배하는 탐방단 회원들)


장 학예사님은 "이런 조치들을 했던 것을 보면,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3~40년 내로 우리가 분명 통일이 될 거란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오늘까지도 우리가 통일이 되지 못한 상황이니 참 부끄럽고, 여운형 선생님 앞에 반성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서게 된다"라며 말끝을 흐리셨다. 여운형 선생의 시신이 미라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는 것은 나도 처음 듣기에 신기하기도 했거니와, 장 학예사님의 부연설명에 가슴이 숙연해지기도 했다. 



(사진: 매번 역사탐방 때마다 고생해주시는 장원석 학예사님)


딴지는 아니지만 아마 여운형 선생의 시신이 현재까지도 미라 상태일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이다. 미라 상태로 보존 중인 김일성-김정일 시신 같은 경우도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수 억원의 비용이 투입된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조금씩 시신이 쪼그라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포르말린 용액으로 한 번 방부처리한 여운형 선생의 시신이 여전히 원형 그대로일지는 의문이다. 물론, 묘를 쓸 때 조선시대처럼 회곽묘(석회로 석실을 만들어 공기가 안 통하게 안치하는 방식)를 썼다면 몰라도... 근데 그렇게까지 묘를 썼을 것 같지는 않고. 논지에서 조금 벗어났는데,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여운형 선생의 장사가 제대로 치뤄지길 고대해 볼 따름이다.


여운형 선생의 묘소를 나온 후에, 우리는 버스를 타고 인근 '국립 4.19 민주묘지'로 향했다. 이곳은 1960년 4.19혁명 당시 순국했던 호국영령들과, 혁명 당시 부상을 입었던 분들의 묘역이 위치한 국립묘지다. 불과 며칠 전이 4.19 혁명 56주기이기도 해서 더욱 의미 있는 코스였던 것 같다.



(사진: 국립 4.19민주묘지의 기념탑)


우리는 이곳에서도 가이드 선생님을 따라 설명을 들으며 이동했다. 맨 먼저 기념탑 아래서 4.19혁명 당시 순국한 호국영령들을 위해 묵념을 올렸다. 그리고 묘역을 이동하며 설명을 듣기 시작했는데, 참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분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일단 대부분 학생이었던 점이 가장 가슴이 아팠다. 미처 피워보지도 못한 꽃다운 청춘들이었기에... 한편으로, 나와 비슷한 나이에, 아니 나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에도 자유와 민주를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하다 돌아가신 그 용기와 신념이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사진: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 열사 최루탄 사건'의 주인공, 김주열 열사의 가묘)


묘역을 둘러본 후에, 유영봉안소에 올라가 또 한 번 참배하고, 마지막으로 기념관에 들렀다. 기념관에서는 4.19혁명의 역사적 배경과 경과, 결과, 의의를 자세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일전에 한 번 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기념관 관람은 좀 띄엄띄엄 보고, 2층 영상관에 올라가 10분 정도 되는 영상물을 시청했다. 4.19 혁명 전후의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촬영한 흑백영상들을 보고 있자니, 또 한 번 가슴이 저미어왔다.


기념관 전시관람을 끝으로, 오늘의 <몽양 여운형 역사탐방>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탐방의 여운은 뒤풀이를 위해 이동한 인근 식당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여운형 선생을 추모하는 노래를 직접 지었다는 어느 어르신은 흥에 겨워 즉석에서 직접 노래 열창도 하시고, 각자 자기소개를 하며 오늘의 탐방소감을 발표하는 시간도 가졌다.


어제 사람들에게 말하진 못했지만, 개인 블로그를 빌어 내 개인적인 소감도 말하고 싶다. 


전역한 지 열흘째... 딱히 할 일도 없어 집에서 빈둥거리기만 하다가 오래간만에 사람 많은 곳에 나오니,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아 즐거운 시간이었다. 정말 송구스러운 말이지만, 사실 어제 탐방 같은 경우는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보다는 그저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전역인사도 하고, 오랜만에 사람 많은 곳에 나가서 사람 향기를 맡고 싶다는 목적이 컸다. 그래서인지 어제는 북한산 둘레길을 걸으며 맡았던 꽃향기가 더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도 사실이다. 


한편으로, 어제 탐방을 계기로 계속 집에만 있을 게 아니라 더 자주 사람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역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지만, 계속 집에만 있다보니 여전히 사고방식과 언어습관이 군대식이어서, 사람들을 만나도 말투도 그렇고, 대하는 것도 어색하기만 하다. 


매일 매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하루 빨리 민간인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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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전역한 지 이틀째.


이미 말년 휴가 때부터 '나가서 뭐 먹고 살아야하지?'하는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전역하고 나니 심사가 더 울적하고 불안해진다. 전역하면 마냥 즐겁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군 생활 2년 동안 남들보다 뒤쳐진데다가 나이도 있고 하니 정말 빨리 뭐라도 해야한다는 중압감에 마음이 무겁다.


이제 전역도 했으니 공식적인 '백수'가 된 셈인데, 특별히 할 일이 없다고 마냥 집 안에 틀어박혀서 잠만 자는 것도 원하지 않는 일이라 오늘은 근처 관악산을 등산하기로 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 중 하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친구 어머니 따라 가본 것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전역하기 전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휴가 때만 되면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 결국 전역하고서야 오게 됐다.


특별히 준비랄 것도 없이, 그저 김밥 두 줄과 시원한 생수 한 병만 챙겼다. 물론 복장은 나름대로 완벽하게 갖추었다. 군 생활하며 입었던 발굴피복으로 완전 무장하고, 우리 단 캡모자까지 착용한 뒤에 전투화(발굴화)까지 신고보니 영락없는 발굴병의 모습이다. 사실 나한텐 이 복장이 가장 편할 수밖에 없다. 늘 산을 탈 때마다 이 옷과 신발을 착용하고 산을 탔으니... 오랜만에 추억이나 느낄 겸, 일부러 발굴복으로 갖춰입고 집을 나섰다.




(사진: 오늘의 내 등산복장! 완전 발굴병 코스프레가 따로 없다)


사당역에서 관악산을 오르는 코스가 있다고 하여, 무작정 사당역으로 향했다. 내 손엔 지도도 없었다. 그저 주말에 사당역에 가보면 등산객들이 많이 몰려있었던 것만 생각하며, '어떻게든 길이 나오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평일 오전임에도 드문드문 등산객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 길이 맞나 싶을 때는 그 사람들을 이정표 삼아 따라갔다. 주택가를 따라 올라가다보니 어느새 관악산 등산로 초입이 등장! 제대로 길을 찾았구나 싶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올라가지 않았음에도 뒤돌아보니 경치가 아름다웠다. 저 멀리 내가 군 생활한 현충원도 보이고, 우리 집도 보이고, 63빌딩이며 한강이며 서울시내 한복판이 다 내려다보였다. 그러고도 한참을 올라갔던 것 같다.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지만, 목적지인 연주대까지 가는 시간은 정말 길어서 지루했다. 이정표 상으로는 소요시간이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나와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일하러 가는 산이 아니어서 그런지 딱히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코스가 힘든 코스도 아니었고. 다만 목적지인 연주대에 다다르니 마지막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험한 암벽이었다. 






(사진: 관악산 등산 중 내려다 본 서울시내)


사실 중학생 때 처음 관악산을 탔던 기억은 내게 '악몽'으로 남아있다. 연주대를 코앞에 두고서 암벽이 무서워 한사코 안 가겠다고 버텼던 기억이 난다. 결국 일행들은 나를 두고, 자기들끼리 다녀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한심하다고 생각했을까. 부끄러운 일이다.


그때 당시의 기억은 약간은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기억이라, 굳이 관악산을 다시 찾은 것도, 나름 산 좀 탄다고 자부하는 국유단 발굴병 출신으로, 다시 한 번 정복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내가 너무 관악산을 무시한 건지,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 오만방자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다시 타도 산이 험하긴 험해 겁이 났다.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길이니 우회하여 돌아가라는 경고문도 군데군데 있었다. 근데 애석하게도 우회로를 찾지 못해서, 결국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뒤를 돌아보거나, 아래를 내려다보면 앞으로 못 갈 것 같아서, 일부러 앞만 보고 전진했다. 암벽에 찰싹 달라붙어, 밧줄과 쇠사슬을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으로 기어올라갔다. 끝 없는 암벽을 타고 올라서니 마침내 관악산 정상 도착!




(사진: 관악산 정상 도착!)


일단 무사 도착에 안도의 한숨을 푹 한 번 내쉬어주고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며 둘러보니, 평일임에도 등산객들은 꽤 있는 편이었다. 평일에도 이 정도인데, 주말엔 얼마나 사람이 많을까. 산은 역시 사람이 드문 평일에 타야 그 운치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연주대는 신라 문무왕 때, 승려 의상이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초기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따서 '의상대'였다고 한다. 이후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권유를 듣고,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 이곳을 중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작은 암자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연주대다.




(사진: 연주대를 배경으로 한 장 찰칵! 뒤에 보이는 암자가 연주대)


연주대에 가보니, 이미 많은 등산객들이 무릎 꿇고 저마다 각자의 소원을 부처님께 빌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나도 소원 하나 빌어야겠다 싶어 합장을 하고 작은 소원(?)을 빌었다.


연주대에서 기도를 드린 뒤에, 연주대에서 조금 아래에 떨어져 있는 사찰 '연주암'에 들러 사찰 구경을 하고, 그곳에서도 부처님께 절과 기도를 드리고서, 점심을 먹은 뒤에 반대 방향으로 하산길에 올랐다. 






(사진: 관악산 연주대 근방에 위치한 사찰, 연주암)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면 서울대학교가 나온다고 하는데, 그 길은 악명 높은 '깔딱고개'였다. 계단이 워낙 많아서 등산객들에게 정말 힘든 구간이라고 하는데, 나야 내려가는 입장이라서 힘든 줄 몰랐지만, 이쪽으로 올라왔으면 좀 힘들긴 했을 것 같다. (계단하면 또 악명 높은 화천의 무명 943고지를 잊을 수 없다)


그래도 사당역에서 정상으로 올라갈 때는 길이 너무 길어서 지루했는데, 이쪽 길은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졌다. 사실 올라가면서도, 어떻게 다시 반대로 내려가야하나 고민이었다. 그래도 이 길은 상대적으로 짧아서,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내려가다보니 어느새 서울대 캠퍼스가 나왔다. 물론 캠퍼스가 워낙 넓은지라,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까지 내려가는 데 또 많은 시간이 소요되긴 했다. 등산로를 따라 호수공원을 지나, 계속 걷다보니 어느새 서울대를 벗어나 삼성고등학교 앞까지 왔다. 마침 그곳에 정류장이 있어 버스를 타고 집에 올 수 있었다.




(사진: 연주대를 배경으로 한 장)


관악산 연주대를 정복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내려오고 나니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좀만 더 천천히 오르고 내려가며 경치를 즐겼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랄까. 이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일 수 있겠다. 발굴지에서 등산을 하면, 사브작사브작 천천히 오르는 게 아니라, 간부와 선임들의 눈치 때문에 죽기 살기로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게 습관이 되어버려서, 짬이 차면 천천히 타고 싶어도, 어느새 나도 모르게 빠르게 타고 있다. 덕분에 후임들은 나 따라오느라 죽을 맛이었다.


사실 난 타고난 성격도 급해서, 등산을 통해 '사브작사브작' 걸으며, 성격을 좀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싶었는데, 경치를 즐길 것도 없이 그저 빠르게 타다보니 이게 잘 안되는 것 같다. 등산모임이라도 나가야 할까봐. 다른 사람들하고 얘기도 하면서 천천히 타다보면 좀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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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이용해 서촌(경복궁 서쪽 일대에 자리잡은 마을) 나들이를 다녀왔다. 통인시장에서 엽전으로 기름떡볶이도 사먹고, 옛 한옥의 흔적이 남은 골목길을 걸으며 잠시나마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서촌의 명소인 '통인한약국'을 방문했는데, 여기에서 참 좋은 시간을 보냈기에 소개해보려 한다.


통인한약국은 말그대로 '한약'을 전문적으로 제조해서 파는 약국이다.


통인시장에서 남쪽 방향으로 내려오다보면 대오서점 맞은 편에 작은 샛길이 하나 있는데, 그 샛길 바로 앞에 '통인한약국'이라는 간판이 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난 이 약국이 어딨는지 몰라 빙 돌아 한참을 헤매다 뒤늦게서야 가까운 데 있었다는 걸 알고 찾아갔다.



(사진: 통인한약국 외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서촌의 명소라고 소문이 나 있기도 하고 요새 내가 한의학에 부쩍 관심이 많아져서이다. 실제로 얼마 전부터 장이 안 좋아 휴가 때마다 틈틈이 한의원에 가서 침, 뜸치료를 받고 한약도 3개월째 복용 중이다. 군 병원인 서울지구병원에도 한의학과가 있어 부대에서도 매주 1회씩 외진을 가 침을 맞기도 했다.


그래서 과연 '한약국은 어떤 곳일까' 하는 궁금증에 이곳을 찾았다. 사실 서촌 나들이를 계획할 때부터 이미 내 마음은 여기에 쏠려있었다. 


이곳은 한옥 건물로 이루어진 한약국이었는데, 처음에 어떻게 들어가야 하나 입구에서 괜히 쭈뼛거리며 망설이고 있었다. 때마침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기에 용기를 내서 입구에 들어서니 마침 문이 열리면서 안에 있던 약국 실장님이 어서 오라고 반겨주셨다. 해맑게 웃으시면서 자리를 안내해주셔서 처음의 긴장은 풀리고 나도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다.


이곳은 약국이기도 하지만 몸에 좋은 한방차와 허브차를 파는 카페이기도 했는데, 뭘 먹을까 고민할 새도 없이 "장이 안 좋아서 한약을 먹고 있다"고 하니, 실장님이 십전대보차를 추천하셔서 그걸로 주문했다. 이곳에서는 갖가지 약재를 넣어 쌍화차와 십전대보차를 직접 가마솥에 넣고 끓이는데, 다량으로 끓인 뒤에 팩에 보관하고 있다가 이렇게 데워서 내준다고 한다. 확실히 한약 맛이 진하게 나는 것이 몸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사진: 통인한약국 입구의 돼지 모형과 내부 전경)


개인적으로 한약의 매력에 푹 빠진 것도 바로 이 향과 맛 때문이다. 알약 혹은 가루 형태인 양약은 냄새에서부터 특유의 병원냄새(?)가 나고, 맛은 당연히 없다. 맛을 느낄 새도 없이 물 한 모금에 꿀떡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한약은 은은하게 퍼지는 구수한 향이 있고, 한 모금 마시면 입 안에 향이 퍼지는 것이 느낌만으로도 이미 몸이 좋아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약은 갖가지 약재를 넣고 오랜 시간 달여야 하기 때문에, 달이는 사람의 정성이 들어간다. 형이상학적인 이야기일 수는 있지만, 달이는 사람의 기(氣)도 담기기 때문에 더 몸에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전에 읽었던 <식탁의 영성>이란 책에서도 한 그릇의 쌀밥을 먹더라도, 그 쌀밥에는 쌀을 자라게 하는 하늘과 땅의 기운, 쌀을 수확해서 탈곡하는 농부의 정성, 짓는 어머니의 정성이 담겨 내 몸에 조화를 가져다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본론에서 너무 벗어났는데, 여하간 고풍스러운 한옥에서 차를 마시고 있자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때마침 완연한 봄 날씨여서 그랬는지 창 밖으로 비치는 햇살도 따사로웠다. 거기에 실장님께서 입가심하라며 허브차까지 내주셔서 입이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환자가 한약사님과 상담하는 모습을 슬쩍 봤는데, 맥도 짚고 한의사가 하는 웬만한 진찰은 똑같이 하시길래 신기했다. 침만 안 놓는다 뿐이지 한의원과 크게 다를 것도 없어 보였다.


아무튼 차를 마시며 실장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내가 현역 군인이란 이야기도 나오게 되고, 진로 문제로 고민이 많다고 하니 실장님도 당신의 아들이 나와 같은 말년 병장이라며 전문하사로 말뚝을 박는다고... 나에게도 말뚝 박는 게 어떻냐는 권유를 하셨다... ^^;;; 그리고 직접 간부 모집 관련 연락처까지 주셨다.... ^^;;;;;; 


(사진: 메밀과 귤피를 혼합해서 제조했다는 허브차)


'찻잔이 비워지면 일어서야지' 했는데 찻잔이 비워질 때마다 계속해서 차를 채워주시는 데다가, 이렇듯 서로 간에 이야기를 주고받다보니 어느새 3~40분이 훌쩍 흘러버렸다. 나중에는 한약사님도 올라오셔서 간단한 상담을 받았는데, 평소 다니고 있던 한의원보다도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셔서 진찰 받으러 온 건지, 카페에 차 마시러 온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5천원짜리 차를 마신 것치고는 너무나 과분한 대접을 받은 느낌이었다. 


차를 다 마시고 나가려고 하니, 실장님이 악수를 청하며 "나중에 또 와서 한약사님하고 더 얘기 많이 해봐라. 한약사도 괜찮은 직업이다"라고 또 새로운 진로를 소개시켜주셔서 솔깃했다. (귀가 너무 얇아서....) 아무튼 관심 속에서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어 훈훈한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여기 단골이 될 것만 같다. 가끔씩 사람이 그립고, 정이 그립고, 한약의 향기가 그리워질 때면 이곳을 찾아 몸과 마음을 치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소개시켜주고 싶다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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