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수원시립공연단 소속 무예24기시범단이 수원화성 창룡문 앞에서 '마상무예 특별공연'을 펼친다고 한다.


평소 수원 화성행궁 신풍루 앞에서 정기적인 '무예24기' 시범공연이 열리고는 있지만, 장소가 장소인만큼 지상무예 18기에 대한 공연만 열리는 실정이고, 마상무예 6기에 대해서는 현충일, 광복절과 같은 특별한 날에만 특별시범 형식으로 열려왔다.


고로, 평소에는 보기 힘든 공연이란 점!


나 역시도 마상무예를 직접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시간을 내 가보려고 한다. 마상무예의 꽃인 마상재를 비롯해서 마상쌍검, 마상월도 등 정말 다채로운 마상무예 6기에 대한 시범이 있을 예정이라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공연을 보실 분들은 오후 세 시까지 수원화성 창룡문 앞으로 오시면 된다.

Posted by 가베치
,

「무예도보통지」,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기록유산에 등재되다!


지난 5월 18일부터 19일 양 일간 열렸던 제7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태지역 총회에서 10개국 14개의 아태기록유산 등재가 확정되었는데요, 「무예도보통지」 역시 등재 목록에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아태지역총회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사업의 일환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기록유산에 대한 인식제고 및 보존, 보호 관련 활동을 장려하고자 1997년 설립된 지역위원회로서, 아태기록유산을 지정해오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하네요)


1790년(정조 14년) 왕명에 의해 만들어진 종합군사무예교범인 「무예도보통지」는 그 기록의 우수성과 역사성을 인정 받아, 이번 총회에서 기록유산으로 등재 결정이 났다고 하는데요, 「무예도보통지」의 기예 24기를 복원하여 수련하는 입장에서도 매우 기쁜 일이고, 좀 더 거국적으로는 한국인으로서도 정말 기쁜 일이네요.



(사진: 「무예도보통지」 중 권법 편)

하지만 이번에 등재된 「무예도보통지」는 '북한'의 기록유산으로 등재가 되었고, 우리나라 역시 '한국'의 기록유산으로 '편액'이 따로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한민족의 문화유산인데, 북한의 문화유산과 남한의 문화유산이 구분되어 등재됐다는 사실이 매우 서글프게만 느껴집니다.


언제고 통일이 되어 하나 된 한국의 이름으로 「무예도보통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를 기원합니다.

Posted by 가베치
,

- 1부에 이어 계속 -


그렇게 나까지 총 7명으로 시작하게 된 '함께 무예 배워볼과'.


참 신기하게도... 나 빼고 전부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남자들이야 당연히 지원할 거라 생각했고, 여자 분들도 한두 분 있으면 수련 분위기가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는데, 남자는 한 명도 없고 오로지 여성들만 지원해서 솔직히 지금도 어안이 벙벙하다. (노린 것 절대 아님!)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과목 개설이 확정되고, 수강생들과 단톡방까지 만들어서 O.T 모임 날짜까지 잡았음에도, 마음 한 구석은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 그때 내 마음 속을 지배하고 있던 단 한 가지 생각.


'내가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두려움 반, 설렘 반이 함께 했던 첫 만남


그러나 주사위는 던져졌고, 마침내 지난 5월 28일 토요일 오후 7시, 남영동 열정대학 건물 3층 '즐거움'에서 '함께 무예 배워볼과' O.T 모임이 있었다.


사전에 미리 준비해 간 프린트물을 통해 먼저 과목 개설 배경과, 목표, 커리큘럼 그리고 과목에 대한 규정을 설명하고, 우리가 한 학기 동안 배워야 할 '무예24기', '권법', '무예도보통지' 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 열정대학 홈페이지 내에 개설한 커뮤니티)


수강생들이 자기소개하는 시간도 있었는데, 다들 지원동기가 제각각이었다. 실제로 태권도 검은띠까지 딸 정도로 무술 자체에 관심이 많은 분도 있었고, 뭔가 운동을 하긴 해야겠는데 남들과는 다른 색다른 운동을 해보고 싶어서 지원한 분도 있었다. 무엇보다 다들 얼마 전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인해 '내 몸은 내가 지켜야한다'고 생각하고 호신술을 배우고 싶어 지원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실 과목소개 때 이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서 소개했는데, 적절한 마케팅 효과였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달았던 시간


그러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 옥상에 올라가 간단하게 몸풀이와 입선(참장)을 지도했는데, 다들 수업에 열심히 참여해서 내심 안도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 내 자신이 여전히 많이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간단한 몸풀이와 입선 하나 가르쳤음에도, 내가 혼자 수련할 때와 달리 그 이론과 자세를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하니 계속 버벅거리는 부분이 있었다. 특히 수강생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질문들을 받을 때마다, 계속 입이 턱 막혔다. '내가 그동안 열심히 수련해왔는데, 따로 수업준비를 할 필요가 있나'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내 자신의 무지함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날 수업을 통해 절실하게 느낀 것은,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새삼 사부님을 비롯해 '스승'이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이리도 진이 빠지는 일일 줄이야... 수업 내내 정말 사부님을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티가 끝난 뒤, 근처 맥줏집에서 뒤풀이를 하며 "저를 사부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저도 지금 배우고 있는 학생의 입장이고, 모르는 것도 많기 때문에 감히 사부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릴 순 없어요", "미리 양해를 구하자면, 제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 대해서는 저도 사부님께 여쭤보고 대신 가르쳐드릴게요. 제가 책임질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함부로 언급하는 게 아닌 거 같아요. 대신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최선을 다해 지도할게요"라고 미리 못을 박아두었다.



(사진: 함께 무예배워볼과 수강생들의 뜨거운 반응. 흐뭇하다)


교학상장의 의미


오티 모임을 통해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정말 나부터 철저하게 수련을 하고,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며칠은 평소와는 달리 더 긴장한 상태에서 수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동작 하나 하나를 수련하더라도, 입으로는 계속 누군가에게 설명하듯 말하는 연습을 했다. 그러면서 내 자세를 돌아보게 되고, 의문 나는 점은 즉각 사부님께 여쭤봐서 나부터 이해하려 노력하게 된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을 이럴 때 쓰는 걸까? 정말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화요일 수련반 1주차 첫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평소 내가 무예를 연마하던 보라매공원에서 다른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 무예를 수련하고 있으려니, 감개가 무량했다. 그리고 오티 모임 때의 각성을 계기로 나름 철저하게 준비하고 수업에 임했던지라, 지난 번보다는 더 술술 설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스스로가 여전히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수강생들이 언제 어디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지 모르기 때문에, 매 시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더욱이 다들 수련의지가 대단해서, 그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다. 그래서인지 지도자의 입장이 되고보니, 수련생일 때보다 더 열심히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각성도 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수업을 마친 뒤에도 혼자 남아서, 보충 수련을 하다가 왔다.


과목 개강을 하게 되면서...


앞으로 한 학기 동안 이 과목을 이끌어가게 될텐데, 일단 초기 반응이 좋아서 개설자 입장에서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설자이자 무예를 지도하는 입장에서 제일 바라는 것은 역시 '초심을 잃지 않는 것'과 '화목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다. 지금은 다들 화기애애하게 수련에 임하고 있는데, 앞으로 종강까지 다들 이렇게 열심히 해주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 '무예 지도자'라는 꿈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된 것 같아 뿌듯하고, 더 열심히 수련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끝)


Posted by 가베치
,

지난 주 토요일, 남영동 열정대학에서 '함께 무예 배워볼과' 첫 O.T 모임을 가진 후, 오늘 정식으로 1주차 첫 수업을 진행했다. 


'함께 무예 배워볼과'는 열정대학 2016년도 3학기 학생선택과목으로 처음 개설된 과목이다. 바로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무예24기'를 수련하는 과목인데, 이 과목을 개설한 이가 누구냐... 바로 나다.


내가 배우고 싶은 과목을 만드는 열정대학


참고로 열정대학은 기존의 대학교육이 해결해주지 못한 '진로 문제'에 대한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공존학교'로, 다양한 개성과 취미를 가진 학생들이 모여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뭔지, 또 잘하는 일이 뭔지 파악하고, 진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체다. 그러다보니 열정대학 본부 차원에서 다양한 전문가를 초빙해 전공 과목을 개설하기도 하고, 일반 학생들끼리도 자기가 해보고 싶은 분야를 과목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전문가를 초빙해 수업을 듣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진: 열정대학의 교육방향)


나 역시도 진로 문제에 대해 계속 고민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전역하고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마냥 노느니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에 덜컥 등록금 20만원을 지불하고 23기 신입생으로 입학했었더랬다. 하지만 막상 수강신청 기간이 되고보니, 내 구미를 당기는 과목들은 별로 없었다. 몇 개 전공 과목이 있었지만, 그것도 선발되지 못해 줄줄이 탈락... 그러다보니 나중엔 짜증까지 나더라.


그런데, 열정대학 측에선 나에게 "직접 선택과목을 만들어보라"며 권유하는 것이 아닌가.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음... 그럼 무슨 주제로 과목을 만들지? 고민하다가 국궁(활쏘기) 과목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도 전역하고 국궁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고, 기왕이면 열정대학에서 초보자들을 줄줄이 모아다가 사부님 밑에서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정대학 측에서는 "직접 국궁을 배워 지도하는 건 가능하지만, 외부인을 초빙해 강의하는 건 안된다"고 못 박았다. 타 단체에 대한 홍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무예24기 과목 개설을 결심하다


하지만 열정대학에서 뭔가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기에, 그럼 아예 '무예24기'를 과목으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권법 정도는 지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심스레 사부님께 의견을 타진해봤는데, 사부님도 흔쾌히 허락하셨다. 


사실 열정대학 입학 후 첫 O.T 시간에 작성했던 버킷리스트 중에는 '문파를 세워 제자 양성하기'라는 것도 있었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고 전수관을 열어 무예24기를 후학들에게 지도하는 것이 꿈이기 때문이다.



(사진: 열정대학 홈페이지에 올린 내 버킷리스트)


처음엔 반 농담, 반 진담으로 던진 말이라, 막상 허락을 받았음에도 자신이 없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쳐본 적도 없거니와, 내가 권법을 지도할 정도로 실력은 있는가, 아무리 자문해봐도 자신이 없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사부님께 "제가 정말 권법 지도할 능력이 됩니까?"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봤는데, 사부님은 "너 정도면 훌륭하지. 자신감을 가져라"라고 해주셔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자,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풀렸다.


'함께 무예 배워볼과'의 시작!


과목명은 '함께 무예 배워볼과'로 정했고, 과목소개를 위해 20장이 넘는 PPT를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만들어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과목 개설 버튼 클릭...!


(사진: 열정대학 과목소개에 올린 PPT 중 일부)


첫 과목 개설이다보니 너무 떨리고 궁금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열정대학 홈페이지를 들락날락거리며, 누가 수강신청을 했는지 확인했다. 과목 개설 초기에는 계속 지원자가 0명이길래, '역시 안되는 건가...' 싶어 자조의 한숨도 쉬었지만, 어느 날 들어가보니 누군가 수강신청을 했다! 그때의 감격이란... 그리고 수강신청 기간 종료를 하루 앞두고, 총 6명이 지원했다. 애초에 5명 모집이었는데, 6명이 지원했으니 초과 지원이라는 대성과를 거둔 것이다. 그래서 기존 모집인원보다 1명을 더 선발해서, 나까지 총 7명이 이번 학기 동안 수업을 함께 하게 되었다.


- 2부에서 계속 -


Posted by 가베치
,

링크: http://omn.kr/k1zq


<오마이뉴스>에 사공이신 최형국 수원시립공연단 상임연출님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경영학도 출신으로 좋아하는 무예와 생업 사이에서 갈등하셨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고민과도 잇닿아 있기 때문에...


나의 욕망을 확인할 수 있는 버킷리스트는 '무예'로 점철되어 있지만, 과연 무예로, 무예24기로 내가 대성할 수 있을지, 그리고 지도자가 되어 전수관을 차릴 수 있을지, 문파를 세우고 발양광대하여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할 수는 있을지... 앞이 캄캄하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취미와 직업, 이상과 현실


요즘 나를 괴롭히고 있는 화두라면 화두겠다.

Posted by 가베치
,

얼마 전부터 곤방(봉)을 배우고 있다. 


곤방이란 곧 봉술을 말함이다. <무예도보통지>에는 봉술 투로가 '곤방'이라는 이름으로 실려있는데, 일반적인 중국 무술유파들과는 달리 독련투로가 없고, 2인이서 함께 주고받는 대련투로만 실려있다. 그래서 혼자 수련할 수 없다는 난점이 있다. 하지만 다른 기예와는 달리 처음부터 서로 봉을 부딪치다보니 '딱', '딱' 봉 부딪칠 때마다 손에 느껴지는 타격감에 남다른 재미를 느낀다.



(그림: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곤방 보譜)


그렇다고 혼자 수련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무예의 권법이란 것 자체가, 상대방이 있다고 가정하고 혼자서 공방을 펼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가. 따라서 곤방 투로도 대인투로이지만, 상대방이 있다고 가정하고 독련투로로 전환하여 수련하면 된다. 또 꼭 투로 수련이 아니더라도, 봉술 기본기 수련은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다.


곤방을 배우기 시작한 후로, 웬만해선 봉을 구입해서 개인수련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중에서 <무예도보통지>에 기록된 제원의 봉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게 함정. 할 수 없이 수련터에서 쓰는 공용 곤방을 하나 빌려다가 사용하고 있다.


이후 시간 날 때마다 보라매공원에 가서 '원그리기', '반원그리기(반월)', '상단-중단-하단치기', '음양수' 등 곤방 기초를 연습하고 있다. 기초 동작들도 해야할 것이 많고, 사실상 이 기초 동작으로부터 모든 기술이 나오는 것이므로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투로는 사실상 뒷전이고, 기초 동작만 연습하고 있다. 사실, 이 기초 동작만 해도 너무 재밌다. 하다보면 어깨가 너무 아프긴 하지만, 봉의 매력은 치명적이다. 영화 <황비홍>이나 <엽문>에서 주인공이 긴 봉으로 다수의 적들을 제압하는 장면을 생각하며 수련하다보면, 어느새 나도 중국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마냥 힘껏 봉을 휘두르고 있다.



(사진: 영화 <엽문>에서 육점반곤을 시전하는 견자단의 모습 - 출처: 네이버 영화)


다만 아직은 봉을 다루는 것이 어색해서, 부자연스러운 자세가 연출되기도 하지만 꾸준히 수련하다보면 익숙해지겠거니... 하고 수련하고 있다.


그런데 곤방의 매력에 빠져버리는 바람에, 권법이나 칼 수련을 소홀히 하게 되는 또다른 문제점이 발생해버리는 것 같다. 배운 기예를 모두 수련하면 좋겠지만, 새로 배운 것부터 안 잊어먹고, 완벽하게 내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 맹렬히 연습하다보면, 다른 기예를 연마하기엔 체력적-시간적으로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뭐 사실 하려면 다 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수련에 대한 의지나 열정이 많이 부족한 것일테지... 아무튼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수련하는 기예의 가짓수가 늘어날텐데, 어떻게 하면 적절하게 안배해서, 수련을 해나가야할지 고민이다.


Posted by 가베치
,

요즈음 들어 무예를 수련하며 '대인수련'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우선, 실전성을 살리기 위해서 대인수련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나도 알음알음 여러 무술을 배워본 기억이 있는데, 특히 중국무술 도장에서는 유난히 대인수련의 비중이 매우 적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나마 태극권 도장에서는 '추수'라는 독특한 형식의 대인수련이 존재하지만, 그것도 비중이 크지는 않았고 내가 겪어본 많은 중국무술 유파들이 대부분 도장에 나가서 각자 투로 몇 번 돌고 사부님으로부터 자세 교정을 받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실전성이 좀 있다고 입소문 좀 탄 유파들의 공통점은 '대인수련'의 비중이 독련(獨練)의 비중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영춘권 같은 경우는 개인수련보다는 대인수련의 비중이 더 큰 유파 중 하나다. 대인수련을 많이 하다보니, 내가 배운 기법들이 실전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자연스레 용법을 체득할 수 있게 되고, 상대방과의 지속적인 반복 수련으로 나중에는 극한 상황에 처해져서도 몸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6년 전에, 고작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영춘권을 수련한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몇 년 동안 전혀 영춘권 수련을 하지 않았음에도, 지금도 가끔 상대와 겨루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영춘권의 자세와 기법으로 공방을 펼치려고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기간 동안 다양한 수련생들과 팔을 맞대고 하는 대인수련을 무수히 많이 반복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볼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지금에 와서는 대인수련의 비중이 형편없이 부족하거나, 아예 체계가 없는 무술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인 입장이다.


두 번째, 혼자 하면 재미가 없다. 


이건 개인수련을 많이 하다보면 느끼는 건데, 사실 우리는 매일 매일 수많은 유혹과 싸우면서 살고 있다. 특히 무예수련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꼭 수련할 시간만 되면, 몸이 무거워지고 다른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스스로 수련을 거를 핑계를 만들어낸다. 


'오늘은 몸이 좀 찌뿌둥하니까 하루쯤 쉬어도 괜찮겠지', '오늘은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하니까 좀 쉬어야겠지' 등등 수련할 때만 되면 이런 유혹에 시달린다. 결국 의지가 좀 약한 사람들은 이런 유혹에 굴복해 그날도 수련을 거르고, 자기합리화를 하곤 한다. 그리고 '오늘 안 했으니까 내일은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하지만, 그때 뿐이다. 다음 날도 또 같은 유혹에 굴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중국의 유명한 노사들은 '매일 하루 30분씩만 수련해도 훌륭하다'는 말을 했다던가.


이렇게 개인수련을 거르게 되는 것도 결국 혼자 하는 수련이 지겨워서일 수도 있다. 물론 수련을 '지루함과의 싸움'이라고 정의짓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가 모두 절정고수가 될 것도 아니고 단순히 취미로 즐기면서 하려는 사람들에게, 지루함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가 아닐까 싶다.


여하간 개인수련을 하다보면 이런 식으로 수련을 게을리하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대인수련을 하게 되면 어쨌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정말 급한 일이 있거나 몸이 아프지 않은 이상 수련시간에 맞춰 수련터에 나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련터에 나가서도 다같이 수련을 하므로 나 혼자서 대충 수련할 수가 없고, 다같이 모여서 즐겁게 얘기하며 수련하다보면 어느새 재밌게 수련에 집중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 내가 수련하고 있는 무예24기는 현재 어떨까?


무예24기에도 대인수련은 존재한다. 우선 <무예도보통지>에도 왜검 교전, 권법 교전 등 교전(交戰)이라는 이름 아래 갑(甲)과 을(乙)로 나누어 2인이 서로 약속대련하는 형식의 수련이 존재한다. 이외에도 무예24기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다른 유파의 대인수련 형식을 많이 차용해왔는데, '수벽'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고 있는 태극권의 추수가 대표적이다. 또 현재 내가 소속된 한양류에서는 자체적으로 상대방과 손과 무기를 맞대고 다양한 수련을 전개해오고 있긴 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교전이라는 이름 아래 행하는 약속대련도 너무 형식화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그리고 수벽만으로는 다양한 상황에서 응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현재 내가 구상하는 방안으로는 각 기술들을 별도로 뽑아서, 상대방과 계속 주고받는 '단식 응용 수련'을 도입하는 것이다. 일단 얼마 전부터, 우리 한양류에서도 권법 동작들을 뽑아 실험적으로 해오고 있는데,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단식을 주고받으면서 용법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뒤에는 약속대련을 거쳐 자유대련까지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자유대련의 형식은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어쨌거나 저마다 실전에서 강하다고 주장하는 여러 무술 유파들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 무술이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생존능력을 기를 수밖에 없다. 그 생존능력이란 결국 무술의 본질인 '실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전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다양한 방법의 대인수련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본다. 적어도 나는 내가 수련하는 무예24기가 공연용으로 화석화된 무예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내 몸을 보호하는 호신의 수단으로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까지 계속 고민하고 수련해나갈 것이다. 

Posted by 가베치
,



(사진: 무예24기 뮤지컬 '관무재' 공연포스터 - 출처: http://www.muye24ki.com/)


2016년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맞이하여, 오는 29일 수원 화성행궁 신풍루 앞에서 무예24기 뮤지컬인 '관무재(觀武才)'를 공연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관무재란 무엇일까요? 한자를 풀어보면, '볼 관(觀)+무재(武才: 무예 재주)'가 되는데 말그대로 '무예 재주를 본다'라는 뜻이 됩니다. 즉, 관무재란 조선시대에 최고 통수권자였던 임금이 친림한 가운데 시행했던 무과시험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관무재는 임금의 명령으로 열리는 특별한 무과시험이었으며, 이때는 전국 팔도에서 날고 기는 한량이나 이미 관직에 있는 무관들까지도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두 참여했다고 합니다. 평소 얼굴도 보기 힘든 임금님 앞에서 열리는 시험이었으니, 이번 참에 자신의 기량을 맘껏 뽐내어 임금님 눈에 들어, 좋은 자리 한 번 꿰차보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지 않았을까요?



(사진: 2013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무예24기 시범 공연 당시 촬영한 사진)


하여간 조선시대 무과시험인 관무재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번 뮤지컬 공연은 수원시립공연단 소속 무예24기시범단이 직접 준비한 공연으로, 수원 화성행궁 신풍루 앞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관무재라는 소재로 스토리텔링을 하여 개최되는 공연이기에, 실제 배우들이 정조 임금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아 열연하고, 꾸준한 무예24기 시범으로 실력을 쌓은 무예24기 시범단 소속 단원들이 장용영 군사로 분하여, 다채로운 무예 솜씨를 뽐내게 될 예정이라는군요.


수원시립공연단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작품인 만큼, 평소 열리던 무예24기 시범공연보다 더 재밌고 알찬 공연이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저 역시 캐나다에서 잠깐 휴가차 한국에 놀러 온 오랜 친구와 이날 공연을 보러 갈 예정입니다. 개인적으로 무예24기 시범공연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그동안 열리는 시범공연은 말그대로 무예만 보여주고 끝나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스토리도 있고, 무엇보다 뮤지컬 형식이라고 하니 재미도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아 참,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사전에 신청할 필요도 없이, 그냥 시간 맞춰 신풍루 앞으로 가면 된다고 합니다.


PS. 공연이 열리는 이날 4월 29일은, 음력으로 정조대왕께서 <무예도보통지>를 반포하신 날이라고 합니다.

Posted by 가베치
,

입대하기 전까지는 수련할 때마다 꼬박 꼬박 수련일기를 써서 블로그에 올리곤 했는데, 이젠 그 프레임을 좀 바꿔볼까 한다. 


매일 수련하더라도, 그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면 수련일기를 쓰는 재미가 있겠는데, 원체 아둔한 몸인지라 수련일기를 쓰다보면 형식적인 일기('오늘은 뭐 했다'와 같은...)에 그치는 것 같아 늘 아쉽기도 했고 그런 식으로 일기를 쓰는 것 자체가 굉장히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더욱이 수련일기에 가끔 사부님의 말씀이나, 수련하며 느낀 깨달음 내지는 생각을 정리해놨는데, 매일 수련일기를 쓰다보니 그 얘기를 다시 찾으려고 했을 때, 방대한 일기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찾아야할지 헤맨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제는 매일 수련일기를 쓰는 게 아니라, 수련하다가 기록으로 남겨두어야겠다 싶은 새로운 깨달음 내지는 단상들이 있을 때나, 혹은 사부님의 중요한 말씀이 있을 때만 일기를 쓸 생각이다.


오늘은 그 첫 번째 단상이다.


오늘은 전역한 지 꼭 1주일 되는 날이다. 전역하고서 며칠 동안은 제대로 수련을 안 했는데, 사람 만나서 놀고 먹느라 바쁜 탓도 있었고, 전역한 뒤 찾아온 공허함과 무기력함에 수련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일요일 정규전수에 다시 참여하기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요며칠 동안은 다시 정신 차리고 무예 수련에 매진하고 있다.


어제는 보라매공원에 가서 수련도 좀 하고, 뜀걸음도 하면서 체력 단련도 했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할 수 없이 집에서 수련을 했다. 실내에서 기본 주먹지르기와 주먹지르기를 응용한 장(掌) 지르기, 손끝 지르기, 끄집어치기 등을 하고, 발차기는 등각과 부인각, 선풍각(내파)을 수련했다. 


수련하다보니 비가 계속 오는 것 같지는 않기에 옥상에 올라가 보법(진보, 체보)을 수련하고, 칼로 천천히 들어베는 수련을 했는데, 비가 강아지 오줌 싸는 것마냥 찔끔찔끔 오다 말다 했다. 덕분에 옥상 바닥이 미끄러워져 체보 수련 시에 불편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거야말로 실전 보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적을 만나서 싸울 때는, 그 장소가 미끄러운 빙판길일지 울퉁불퉁한 돌다리 위에서일지 아무도 모른다. 항상 평평한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적을 만나란 법이 없으니, 이 기회를 이용해 언제 어디서든 흔들림 없는 보법을 연마하기에 딱 좋은 조건이었다.


오늘은 특히 보법 수련에 힘을 쏟았는데, 얼마 전에 권법을 하는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니, 상체가 앞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꼬리뼈(미추)를 안으로 말고, 상체를 쭉 펴니 보기도 좋고, 무엇보다 뒷다리에 힘이 실려 자세가 안정적으로 잡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요즘 보법 수련을 하며 꼬리뼈 마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확실히 진/퇴보를 할 시에 뒷다리에 힘이 실려서 자세가 안정적이다.


보법 수련을 하고서는 단수 훈련의 일종으로 요란주세와 순란주세를 수련하고 비가 계속 오길래 실내로 다시 들어와, 마무리로 팔굽혀펴기(주먹쥐고 넓게, 삼각형으로 좁게)와 허공의자 10분, 입선(참장) 10분을 하고 오늘 수련을 마무리했다.

Posted by 가베치
,

얼마 전부터 중대장님의 허락을 받아, 부대 안으로 목검(木劍)을 반입하여 검 기본기 수련에 매진해오고 있다. 


1년 6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휴가 나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전혀 칼을 잡을 수 없는 처지였기에, 그동안은 오로지 맨손무예 권법 수련만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입대 전에 배웠던 검술을 모두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제대 후에 완전 쌩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는 건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그동안 수련해왔던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검 수련에 대한 갈망은 심해졌다. (물론 덕분에 권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기본기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는 되었지만...


여하간 검 수련을 너무 하고 싶어, 이젠 아무 것도 무서울 게 없는 병장의 파워로, 중대장님께 '목검 반입'을 요청했고, 중대장님도 '절대 후임에게 장난치거나 때리는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조건으로 반입을 허락해주셔서, 이제 부대 안에서 검 수련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목검 반입이 승인되니 너무 기뻤고, 매일 매일 전투체육(체력단련) 시간만 기다려졌다.


그래서 매일 전투체육 시간만 되면 목검을 들고 막사 옥상에 올라가 신나게 휘둘러댔고, 확실히 손에 무언가를 잡고 휘두르는 맛(?)이 있어, 권법 수련을 할 때보다 지루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수련하지 못했던 기본기(들어베기, 갈겨베기, 허리베기, 걸쳐베기)부터 해서, 각종 검법들(본국검, 제독검, 쌍수도, 왜검)을 열심히 땀 흘리며 수련했다.


그동안 수련을 하고 싶어도 못 해왔기에, 수련에 대한 욕구 불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입대 전보다도 더 열심히 수련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매일 매일 혼자서 수련하다보니 자연스레 '의문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사부님으로부터 정기적인 교정을 받지 못하고, 매일 독련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의문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매일 매일 새로운 의문점들이 켜켜이 쌓여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게 너무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당장 수련에 대한 욕구에 불타오르고 있는데, 이 의문점들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으니 오죽 답답하겠는가. 괜히 그릇된 자세로 수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그 의문점들은 휴가를 이용해 사부님께 여쭤볼 요량으로, 매일 매일 텍스트로 정리하고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현재 그 의문점들은 24개까지 늘어났다)


편으로, 뭔가 대달한 깨달음을 얻은 마냥 평소와 다른 느낌을 받는 기현상도 일어났다. 평소와 다름 없이 허공에 칼질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베기의 느낌이 달라진 것이다. 순간 뭔가 득도라도 한 느낌마저 들어 묘한 전율까지 일었다. 그래서 그날은 삘(?)이 붙어 계속 베기를 했다. 진짜 손바닥에 피물집이 잡히는 줄도 모르고 신나서 계속 휘둘러대다가 나중에서야 손을 들여다보니 피물집이 잡혀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던 것도 이때였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느낌을 사부님한테 보여드리고, 과연 제대로 하는 게 맞는 것인지 교정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길이 맞다면 몰라도, 틀린 길이라면 내 자세가 완전히 엉망으로 뒤틀려버릴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의문도 들긴 했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뭔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에만 집착해서 이미 뭐라도 된 마냥 설레고 흥분한 상태였다. '어서 이걸 사부님께 보여드려서 사부님을 깜짝 놀래켜드려야겠다', '사부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싶다' 하는 생각이 머릿 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동안 나는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한 것이다. 그게 잘못된 길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때마침 평소 무술에 대해 좋은 격언을 자주 올려주시는 <한국형의권연구회> 형의권사님의 블로그에서 새로 올라온 글을 하나 읽다가, 그 글이 내게 해당되는 글이라 그러한 흥분을 잠시 가라앉히고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긴 했다. (해당 글 링크: http://blog.naver.com/k_rabbit/220618298924)


그리고 마침내 지난 휴가 때 설레는 마음으로 전수관을 찾아가 사부님 앞에서 베기를 했는데, 이게 웬걸... 오히려 칼 수련을 전혀 안 하다가 오래간만에 칼을 잡고 베기를 했던 한 달 전보다 자세가 더 이상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래도 "오, 그래도 죽지는 않았네"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번엔 사부님이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거야"라며 아예 수련을 중단시켰다.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인지 감도 오질 않아 답답했다. 사부님께 그간의 경과를 설명드리니,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교정 받지 않고 혼자 판단하게 되면 그게 결국 사도(邪道: 그릇된 길)로 빠지는 것"이라며 주의를 주셨다. 나로서는 '설마...'했던 일이 진짜가 된 것이었다.


결국 사부님은 빠르게 베는 것도 중단시키고,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 천천히 베면서 '베려하지 말고 그림을 그리라'고 주문하셨다. 당분간은 절대 칼을 빠르게 휘두르지 말라고 해서, 체념하고 지금은 계속 천천히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동시에 오른 어깨가 계속 뚜둑거리는 것도, 이걸 통해 교정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다. 예전에는 그냥 어깨가 덜 풀려서 그런 거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막 휘둘렀는데, 잘못하면 어깨가 고장이 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다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교정을 하는 중이다.


아무튼 지난 번 휴가 때의 교정을 통해 또 한 번 새롭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뭔가 혼자서 득도한 마음으로 설레여 하다가 그게 잘못된 길이란 걸 깨닫게 되니 날개가 꺾인 새마냥 기운도 빠지고, 심지어 우울한 마음까지 들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한다. 무려 1년 6개월이란 시간을 칼을 놓고 살았다. 그런데 단 2주란 시간 동안 혼자서 열심히 휘둘렀다고 무슨 고수의 경지에 오른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또한 무예란 사부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이라면 평생 교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어차피 평생 무예 수련할 건데, 이런 일로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스스로 누누이 다짐해오지 않았던가.


이제 다시 휴가를 나왔고, 며칠 뒤에 전수관에 가서 사부님께 교정을 받으려고 하는데 얼마나 진전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실 딱히 한 것도 없어서 진전이랄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저 지금 하고 있는 것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이번 일을 통해 '조급한 마음을 버리자', '일희일비하지 말자'라는 교훈을 되새겼다. 군 생활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한창 어리바리해서 힘들었던 이등병 때, "조급해하지 말라"던 간부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군 생활이든, 무예든, 인생이든... 결국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Posted by 가베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