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입대 전 날인 2014년 7월 1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사진이다.


드디어 입대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입대가 실감이 나질 않는다. 책상 정리를 하면서 2012년부터 쓰기 시작했던 일기장들을 모아보니 노트 6권 분량이 나왔다. 중간에 갑자기 게을러져서 일기 쓰기를 중단하고 뛰어넘은 시간도 있었지만 하여간 생각보다 많은 양이다. 이 노트 6권 분량의 세월을 이제 군대라는 곳에서 보내야 한다니... 참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입대를 하루 앞둔 지금 내 심정은 딱 설렘 반 걱정 반. 대한민국의 건강한 장정이라면 누구나 다녀오는 곳이니 유난 떨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24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군대에 가게 되어 부담이 배가 되는 것도 사실. 아무튼 남들 다 다녀오는 군대이니 더 이상 유난 떠는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다.

입대일이 너무 갑작스럽게 잡혀서 모든 분들께 인사드리지 못하고 가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아울러 입대를 앞두고 축하, 격려, 위로해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21개월 동안 성실히 군 복무하고 보다 성숙해진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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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편에서 이어집니다


이렇듯 기본기에 대한 관점이 바뀌니,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권법에 대한 시각도 차츰 바뀐다.


사실 지금까지 권법에 대한 내 생각은 그냥 몸풀이용에 불과했다. 어릴 적부터 중국무술에 심취해 각종 권법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알음알음 접해본 나로서는 중국의 상급 권법에 비해 기술의 가짓수도 적고, 그나마 있는 기술들도 표면적으로 봤을 때 효용성이 그닥 있어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무예24기의 권법 자체가 초창기 형태의 중국 권법을 가져온 것이라, 이미 여러 중국 권법을 본 내 눈엔 성이 안 찬듯 싶다. 사실 무예24기 중 권법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고, 무예24기를 수련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권법의 가치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사람을 많이 보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본기부터 다시 제대로 정립하자는 생각을 갖고, 권법에 접근하니 생각이 확 바뀐다. 생각해보면 기술이 적은 것은 그만큼 적은 기술을 더 많이 반복-숙달 수련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리고 태극권 역시 초창기 형태는 10가지도 채 안되는 초식들로 구성된 단순 권법이었으나, 후대에 갈수록 점점 동작들이 추가되어 오늘의 형태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기에, 어쩌면 초창기 형태의 권법이야말로 그 당시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용성 높은 동작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나는 권법에서 그나마 효용성 높다고 생각하는 동작들을 뽑아 단수 훈련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그냥 몸에 익을 때까지 계속 반복 연습하면서 동시에 앞에 가상의 적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것이다. 이 모양으로 한동안 계속 수련을 해오다가, 점차로 모든 권법의 동작들을 분석하고, 그 나름의 효용성을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이 싹 트기 시작했다.


그래서 권법 수련을 하면서 '과연 이 동작은 어디에 쓰일까' 고민을 하며 나름의 용법들을 생각해 노트에 필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런 동작들이 과연 실전에서 쓰일까 의문이었지만, 그동안 알음알음 배웠던 중국 권법의 기술들을 생각하니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용법을 만드는 데 큰 참고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수련을 하다보니 무예를 바라보는 시각 전체가 확 바뀐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전역하면 어떤 무술을 배울까', '어떤 무술이 가장 강할까' 고민하며, 배우고 싶은 무술들의 목록을 정리하고, 사지방(군 PC방)에서 여러 무술들을 검색해보았는데, 이제 그런 생각은 모두 헛된 망상이요, 부질 없는 욕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무예24기에서 가장 단순하다고 할 수 있는 '주먹지르기'조차 제대로 하질 못해 끙끙 앓는 놈이 뭘 더 배우겠다고 이 기술, 저 기술을 탐낸단 말인가. 무엇보다 무술에 하급 기술, 상급 기술이 어디 있단 말인가. 단순 기술도 내가 반복 숙달하여 실전에서 써먹으면 그게 나에겐 필살기이고 실전무예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굳어지면서 차츰 기본기를 수련하는 재미가 생기고, 권법의 용법을 분석하고 반복 수련하는 맛이 있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더 수련 내용을 강화하고 보충해 아래와 같이 수련하고 있다.


<현재 수련 커리큘럼>


- 주먹지르기

- 끄집어치기

- 발차기(앞차기/현각허이세/순란주세)

- 단수 훈련(탐마세-요란주세)

- 권법

- 죔죔이

- 무릎 들어올리기

- 팔굽혀펴기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련을 할 수 없다는 것. 혼자 가상으로 용법 연습을 해봐야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 하여 용법 연습에는 나와 공방을 주고 받을 상대방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상대방과 공방을 주고받으며 용법을 테스트해봐야, 내가 생각한 용법의 효용성을 검증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중에 전역하면 수련터에 가서 수련생들과 함께 내가 연구한 용법들을 함께 머리 맞대고 실험해보고 싶지만, 어리석은 초짜가 설치는 꼴은 아닐까 심히 두렵다.


요즘 다시 고민하는 부분은 '전역 후 어떻게 수련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기본기의 중요성을 깨닫고나니 그동안 수련해온 바가 '모래 위의 성'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부분은 차후 사부님과의 상담을 통해 답을 구할 생각이다.


<후기>


아무튼 엊그제부터 장마로 인해 수련을 못 하고 있어 몸이 매우 근지럽던 차에, 그동안 수련했던 바를 정리해 수련생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장문의 글을 3편으로 나누어 올려보았다.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보니 나의 무예관(武藝觀)은 군 입대 전/후로 나뉘지 싶다. 군 입대 전까지만 해도 강한 무술, 강한 기술에 대한 헛된 망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군 입대 후 꾸준한 기본기 수련 덕분에 헛된 욕심을 버리고, 무예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정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평생 수련할 무예를 찾은 느낌이다. 별로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어찌보면 군 입대 덕분에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어 고마운(?) 점도 없지 않아 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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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에서 이어집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수련을 할 차례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었다. 바로 '장비'가 없다는 것. 사실 무예24기 기예의 대부분은 병기술인데 병기를 구할 방도가 전혀 없질 않은가. 이건 뭐... 스키 타려고 스키장에 갔는데 스키가 없고, 볼링 치러 볼링장에 갔는데 볼링공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천만다행으로, 우리 선조들께서 무기가 없을 때 적과의 백병전에서 대항할 수 있도록 '권법'을 무예도보통지에 수록해주신 덕분에, 병기 없이도 수련할 수 있는 종목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24가지의 기예 중 그래도 검술이 제일 재밌고, 멋있다고 생각했기에(또 매우 어렵기에 꾸준히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검술 수련을 못 한다는 점이 너무 아쉬웠지만, 아쉬운대로 맨손무예나 열심히 수련하자는 생각으로 기본기부터 다시 시작했다. 처음 수련은 아래와 같이 지극히 간단한 기본기들로 시작했다.

<초기 수련 커리큘럼>

- 주먹지르기
- 끄집어치기
- 발차기
- 죔죔이
- 무릎 들어올리기
- 권법

그런데 기본기 수련을 며칠 꾸준히 하다보니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냥 뭐라도 수련을 해야겠다는 강박관념 내지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군대 있을 동안 기본기를 완벽하게 마스터하자"는 목표가 생긴 것이다. 이런 목표를 가지게 된 데에는 무예24기연구소장 최형국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느낀 바가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기본기가 필살기이고, 一法이 萬法이라는 문구에 느끼는 바가 컸다)

사실 밖에 있을 때는 각종 검법과 병기술(월도, 기창 등)을 수련하느라 맨손무예 기본기를 제대로 수련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짬이 없었다. 기본기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성도 못 느꼈고, 그냥 대충 횟수만 맞추자는 생각으로 100회씩만 하고 화려하고 멋진 검법 수련에 매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병기가 없는 지금, 온전히 기본기에만 충실해서 수련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기본기에 힘과 속도가 실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가장 단순하고 밋밋하다고 생각했던 동작들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가 지금 기본기를 제대로 하고 있긴 한 것인지 스스로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장 단순해서 별 거 없다고 생각한 주먹지르기조차 수련을 하면 할수록 떠오르는 의문으로 머릿 속이 복잡해졌다. (호흡부터 시작해서, 주먹을 지를 때 골반을 틀어줘야하나, 팔은 얼마나 뻗어야하나 등등) 그런 의문이 들 때마다 내가 제대로 된 수련을 하고 있긴 한 것인지 몰라서 수련의욕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수련터 카페를 통해 사부님께 답을 구했고, 내가 잘못된 방식으로 수련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마다 '왜 진작에 기본기 수련에 충실하지 않았을까'하며 가슴을 치게 된다.

- 3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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