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남영동 열정대학에서 '함께 무예 배워볼과' 첫 O.T 모임을 가진 후, 오늘 정식으로 1주차 첫 수업을 진행했다. 


'함께 무예 배워볼과'는 열정대학 2016년도 3학기 학생선택과목으로 처음 개설된 과목이다. 바로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무예24기'를 수련하는 과목인데, 이 과목을 개설한 이가 누구냐... 바로 나다.


내가 배우고 싶은 과목을 만드는 열정대학


참고로 열정대학은 기존의 대학교육이 해결해주지 못한 '진로 문제'에 대한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공존학교'로, 다양한 개성과 취미를 가진 학생들이 모여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뭔지, 또 잘하는 일이 뭔지 파악하고, 진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체다. 그러다보니 열정대학 본부 차원에서 다양한 전문가를 초빙해 전공 과목을 개설하기도 하고, 일반 학생들끼리도 자기가 해보고 싶은 분야를 과목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전문가를 초빙해 수업을 듣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진: 열정대학의 교육방향)


나 역시도 진로 문제에 대해 계속 고민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전역하고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마냥 노느니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에 덜컥 등록금 20만원을 지불하고 23기 신입생으로 입학했었더랬다. 하지만 막상 수강신청 기간이 되고보니, 내 구미를 당기는 과목들은 별로 없었다. 몇 개 전공 과목이 있었지만, 그것도 선발되지 못해 줄줄이 탈락... 그러다보니 나중엔 짜증까지 나더라.


그런데, 열정대학 측에선 나에게 "직접 선택과목을 만들어보라"며 권유하는 것이 아닌가.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음... 그럼 무슨 주제로 과목을 만들지? 고민하다가 국궁(활쏘기) 과목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도 전역하고 국궁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고, 기왕이면 열정대학에서 초보자들을 줄줄이 모아다가 사부님 밑에서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정대학 측에서는 "직접 국궁을 배워 지도하는 건 가능하지만, 외부인을 초빙해 강의하는 건 안된다"고 못 박았다. 타 단체에 대한 홍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무예24기 과목 개설을 결심하다


하지만 열정대학에서 뭔가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기에, 그럼 아예 '무예24기'를 과목으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권법 정도는 지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심스레 사부님께 의견을 타진해봤는데, 사부님도 흔쾌히 허락하셨다. 


사실 열정대학 입학 후 첫 O.T 시간에 작성했던 버킷리스트 중에는 '문파를 세워 제자 양성하기'라는 것도 있었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고 전수관을 열어 무예24기를 후학들에게 지도하는 것이 꿈이기 때문이다.



(사진: 열정대학 홈페이지에 올린 내 버킷리스트)


처음엔 반 농담, 반 진담으로 던진 말이라, 막상 허락을 받았음에도 자신이 없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쳐본 적도 없거니와, 내가 권법을 지도할 정도로 실력은 있는가, 아무리 자문해봐도 자신이 없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사부님께 "제가 정말 권법 지도할 능력이 됩니까?"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봤는데, 사부님은 "너 정도면 훌륭하지. 자신감을 가져라"라고 해주셔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자,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풀렸다.


'함께 무예 배워볼과'의 시작!


과목명은 '함께 무예 배워볼과'로 정했고, 과목소개를 위해 20장이 넘는 PPT를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만들어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과목 개설 버튼 클릭...!


(사진: 열정대학 과목소개에 올린 PPT 중 일부)


첫 과목 개설이다보니 너무 떨리고 궁금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열정대학 홈페이지를 들락날락거리며, 누가 수강신청을 했는지 확인했다. 과목 개설 초기에는 계속 지원자가 0명이길래, '역시 안되는 건가...' 싶어 자조의 한숨도 쉬었지만, 어느 날 들어가보니 누군가 수강신청을 했다! 그때의 감격이란... 그리고 수강신청 기간 종료를 하루 앞두고, 총 6명이 지원했다. 애초에 5명 모집이었는데, 6명이 지원했으니 초과 지원이라는 대성과를 거둔 것이다. 그래서 기존 모집인원보다 1명을 더 선발해서, 나까지 총 7명이 이번 학기 동안 수업을 함께 하게 되었다.


- 2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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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http://omn.kr/k1zq


<오마이뉴스>에 사공이신 최형국 수원시립공연단 상임연출님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경영학도 출신으로 좋아하는 무예와 생업 사이에서 갈등하셨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고민과도 잇닿아 있기 때문에...


나의 욕망을 확인할 수 있는 버킷리스트는 '무예'로 점철되어 있지만, 과연 무예로, 무예24기로 내가 대성할 수 있을지, 그리고 지도자가 되어 전수관을 차릴 수 있을지, 문파를 세우고 발양광대하여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할 수는 있을지... 앞이 캄캄하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취미와 직업, 이상과 현실


요즘 나를 괴롭히고 있는 화두라면 화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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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무예24기 한양류 식구들과 함께 관악산에 다녀왔다.


식구라고 해봐야 사부님과 두희 형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 뿐이었지만... 그래도 제일 수련터에서 제일 체력 좋은 남자 3인방이 산을 타니, 거칠 것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전역하고 이틀 만인 4월 15일에, 관악산 등산을 했었는데... 오늘이 5월 15일이니 딱 한 달만에 또 관악산을 타게 된 셈이다. 물론 그때는 사당역에서부터 연주대를 찍고, 깔딱고개를 지나 서울대입구로 내려오는 코스였다면, 이번에는 정반대로 서울대입구에서부터 시작해 연주대를 찍고 연주암 뒤로 내려가는 완만한 우회코스를 통해 사당역까지 거꾸로 내려가는 코스였다. 한 달 간격으로 관악산의 여러 코스를 찍어서, 이제 '사당-연주대-서울대입구' 구간은 쉽게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자감이 든다.


아무튼 오전 9시 30분에 서울대입구 근처 만남의 광장에 모인 우리는, 설렁설렁 이야기를 하며 등산을 했다. 지난 번에 혼자 산을 탈 때는, 혼자라서 그랬는지 매우 심심하고 지루했는데 오늘은 세 명이서 이야기를 하며 산을 타니 긴 등산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힘들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무예24기 이야기, 십팔기 이야기, 역사학계 이야기...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연주대에 도착.


정오가 되면 관악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사찰 '연주암'에서 점심 공양을 무료로 한다기에, 내려갔더니 줄이 정말 길다. 하필 오늘이 일요일이었던지라 등산객들로 바글바글거렸는데, 생각보다 로테이션이 빨리 돌아서 금세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메뉴는 '비빔밥'. 사찰음식인데다가 다량으로 뽑아내는거라 그렇게 맛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시장이 반찬이고 무료로 밥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맛있게 한 그릇 비워내고 하산길에 올랐다.


하산길에 우리는 '산악 뜀걸음'을 했는데, 천천히 걸어가는 등산객들을 새치기하며 바위를 뛰어넘고, 흙길을 뛰어내려가는 등 험준한 산길을 달려갔다. 사부님 曰 "이게 일반 평지에서 달리기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고 하셔서 나도 사부님 따라 열심히 뛰었지만, 따라잡기가 쉽지가 않았다. 힘들어서라기보다는, 자칫 넘어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던 건데, 사부님은 넘어지지 않고 자유자재로 뛰어다니셨다. (한복 입고 어떻게 저렇게 잘 뛰어다니는지.. 역시 무예를 오래 수련하면 저래 되는건가)


사부님은 "산에서 자연의 지형지물을 이용하며 뛰면 효과가 좋다. 특히, 넘어질까 긴장을 하게 되는데, 긴장을 하면서도 유연하게 몸을 쓸 줄 알아야 고수가 된다. 단, 긴장을 풀면 바로 사고로 이어진다"고 해서, 그 말에 유념하며 열심히 따라 뛰었다. 하지만 사부님은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없어지셨다.




결국 두희 형님과 단 둘이 한참 내려가다보니 하늘이 흐려지는 것이 곧 비가 올 조짐이었다. 그래서 발걸음 속도를 더 빨리 올렸는데, 결국 산을 다 내려가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전수관에 도착해보니 사부님은 비가 오기 시작할 때쯤 이미 전수관에 도착했다고 한다. 21세기 김광택?


아무튼 정신 없이 뛰어다니느라 자연풍광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친한 사람들과 함께 산을 오르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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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의원에 다녀왔다.


원래 장이 좋지 않아, 몇 개월 전부터 꾸준히 한약을 복용하면서 가끔씩 한의원에 가서 침뜸 치료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거 말고도 오른쪽 어깨 문제로 진료를 받기 위해 갔다.


내 증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오른쪽 팔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거나, 횡으로 뻗을 때마다 어깨죽지에서 '뚜둑'하는 소리가 나며, 뼈끼리 부딪치는 느낌이 난다는 것이다. 통증은 전혀 없으나, 칼을 벨 때마다 어깨에서 나는 마찰음과 뚜둑거리는 불쾌한 느낌이 계속 신경에 거슬렸다.


처음에는 하도 수련을 안 해서 근육이 굳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오히려 더 열심히 수련을 했는데, 나중에 휴가 나와서 사부님께 여쭤보니 빠르게 베는 수련을 당장 중단하고, 천천히 베면서 그 증상을 고칠 것을 주문받았다. 그 상태에서 무리하게 수련하면, 장기적으로 평생 칼을 못쓸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들었다. 이게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인 줄 나 자신도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내 오른쪽 어깨의 문제는 꽤 오래 전부터 그랬다. 입대 전에도 그랬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고, 하여간 군대 갔다와서 심해진 건 사실이다. 추정컨대 삽질을 하도 많이 해서 악화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삽질할 때마다 어깨가 너무 아팠는데, 아프다고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고통을 묵묵히 참다보니 결국 이 지경까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요근래 칼 수련을 하고는 있었지만, 빠르게 베는 수련은 전혀 안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배운 검법들도 이젠 가물가물하고, 타법이나 격법도 중단하고, 오로지 들어올려서 멀리 뻗어 베어내리는 동작을 아주 천천히 반복할 따름이었다. 


이러고 있자니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게다가 내 성격은 또 얼마나 조급하고. 지금이야 이 상황에 순응하고 그저 천천히 베는 데 집중하고는 있지만, 처음에는 답답한 나머지 얼마나 더 이래야 되냐고 사부님께 여쭤보기도 했다. 그러자 사부님은 "니가 지금 1년을 그렇게 한 것도 아니고, 고작 한두 달 천천히 수련해놓고선 벌써부터 조급해하면 어떡하느냐. 오히려 이번 기회에 나쁜 버릇도 고치고, 왼 팔로만 베는 수련도 할 수 있지 않느냐. 이 시간이 훗날 너에게 큰 도움이 될 거다"라고 나무라셨다. 그 덕분에 조급한 마음을 덜 수 있었다.


하여간 천천히 베는 수련을 하고 있음에도, 오른쪽 어깨의 뚜둑거리는 증상이 좀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답답하기도 하고 왜 이런가 궁금하기도 해서 오늘 위장치료차 한의원에 간 김에 진료를 받았다.


양방처럼 엑스레이 촬영하고 그런 건 없었고, 그냥 문진만 하고 바로 치료에 들어갔다. 한의사 선생님 말로는 "지금은 통증이 없지만 나중에 염증이 생길 수도 있다"고... (근데 엑스레이 한 번 안 찍어보고, 어떻게 환자의 설명만 듣고서 바로 치료를 할 수 있는 걸까. 원래 한방치료가 다 그런건가...)



(사진: 내 등 뒤에 부항자국. 목욕탕 가면 아저씨들 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흔적.. 으 징그럽다)


아무튼 별의별 치료를 다 받았던 것 같다. 침 맞고, 패치 붙인 상태에서 전기자극 치료 받고, 부항 뜨고 마지막엔 봉침(벌의 독을 주입하는 침)까지 맞았다. 한의사 선생님 말로는 당분간 너무 무리해서 운동하지 말고, 치료도 몇 번 더 받아야 한단다. 기존 위장 치료에 어깨 치료까지 더 받아야되서 이제 치료 비용도 배 이상으로 늘었다. 영수증에 찍힌 금액을 볼 때마다 한숨만... 돈 못 버는 입장에선 그저 모든 게 죄스럽다.


돈도 돈이지만, 당분간 무리하지 말라고 하니 좌절감이 느껴진다. 요근래 곤방을 새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봉을 휘두르는 맛이 제법 쏠쏠했는데, 수련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뭐 별 수 있는가. 일단 어깨에 무리를 줄 수밖에 없는 장병기 수련은 모두 중단하기로 했다.


그리고 사부님의 말씀대로 당분간은 왼팔을 단련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오늘부터 수련을 다르게 진행해봤다. 상체 자체를 가급적 안 쓰는 게 나을 것 같아, 권법 수련이나 주먹지르기도 일단 중지하고, 발차기, 보법, 허공의자와 같은 하체 단련 위주로 수련을 했다. 그리고 칼 수련은 하되 왼팔로만 칼을 잡고 베는 수련을 했다. 오른팔을 아예 뒷짐지고 왼팔로만 칼을 쓰려니, 중국무협영화 <돌아온 외팔이>가 계속 생각났다.


아무튼 사부님 말씀마따나 이번 기회를 통해 왼 팔을 단련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긍정의 힘! 그나저나 왼팔로만 수련하려고보니 왼쪽 어깨죽지에서도 뚜둑거리는 소리가 좀 들리는 것 같은데... 제발 아니라고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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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곤방(봉)을 배우고 있다. 


곤방이란 곧 봉술을 말함이다. <무예도보통지>에는 봉술 투로가 '곤방'이라는 이름으로 실려있는데, 일반적인 중국 무술유파들과는 달리 독련투로가 없고, 2인이서 함께 주고받는 대련투로만 실려있다. 그래서 혼자 수련할 수 없다는 난점이 있다. 하지만 다른 기예와는 달리 처음부터 서로 봉을 부딪치다보니 '딱', '딱' 봉 부딪칠 때마다 손에 느껴지는 타격감에 남다른 재미를 느낀다.



(그림: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곤방 보譜)


그렇다고 혼자 수련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무예의 권법이란 것 자체가, 상대방이 있다고 가정하고 혼자서 공방을 펼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가. 따라서 곤방 투로도 대인투로이지만, 상대방이 있다고 가정하고 독련투로로 전환하여 수련하면 된다. 또 꼭 투로 수련이 아니더라도, 봉술 기본기 수련은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다.


곤방을 배우기 시작한 후로, 웬만해선 봉을 구입해서 개인수련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중에서 <무예도보통지>에 기록된 제원의 봉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게 함정. 할 수 없이 수련터에서 쓰는 공용 곤방을 하나 빌려다가 사용하고 있다.


이후 시간 날 때마다 보라매공원에 가서 '원그리기', '반원그리기(반월)', '상단-중단-하단치기', '음양수' 등 곤방 기초를 연습하고 있다. 기초 동작들도 해야할 것이 많고, 사실상 이 기초 동작으로부터 모든 기술이 나오는 것이므로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투로는 사실상 뒷전이고, 기초 동작만 연습하고 있다. 사실, 이 기초 동작만 해도 너무 재밌다. 하다보면 어깨가 너무 아프긴 하지만, 봉의 매력은 치명적이다. 영화 <황비홍>이나 <엽문>에서 주인공이 긴 봉으로 다수의 적들을 제압하는 장면을 생각하며 수련하다보면, 어느새 나도 중국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마냥 힘껏 봉을 휘두르고 있다.



(사진: 영화 <엽문>에서 육점반곤을 시전하는 견자단의 모습 - 출처: 네이버 영화)


다만 아직은 봉을 다루는 것이 어색해서, 부자연스러운 자세가 연출되기도 하지만 꾸준히 수련하다보면 익숙해지겠거니... 하고 수련하고 있다.


그런데 곤방의 매력에 빠져버리는 바람에, 권법이나 칼 수련을 소홀히 하게 되는 또다른 문제점이 발생해버리는 것 같다. 배운 기예를 모두 수련하면 좋겠지만, 새로 배운 것부터 안 잊어먹고, 완벽하게 내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 맹렬히 연습하다보면, 다른 기예를 연마하기엔 체력적-시간적으로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뭐 사실 하려면 다 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수련에 대한 의지나 열정이 많이 부족한 것일테지... 아무튼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수련하는 기예의 가짓수가 늘어날텐데, 어떻게 하면 적절하게 안배해서, 수련을 해나가야할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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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들어 무예를 수련하며 '대인수련'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우선, 실전성을 살리기 위해서 대인수련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나도 알음알음 여러 무술을 배워본 기억이 있는데, 특히 중국무술 도장에서는 유난히 대인수련의 비중이 매우 적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나마 태극권 도장에서는 '추수'라는 독특한 형식의 대인수련이 존재하지만, 그것도 비중이 크지는 않았고 내가 겪어본 많은 중국무술 유파들이 대부분 도장에 나가서 각자 투로 몇 번 돌고 사부님으로부터 자세 교정을 받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실전성이 좀 있다고 입소문 좀 탄 유파들의 공통점은 '대인수련'의 비중이 독련(獨練)의 비중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영춘권 같은 경우는 개인수련보다는 대인수련의 비중이 더 큰 유파 중 하나다. 대인수련을 많이 하다보니, 내가 배운 기법들이 실전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자연스레 용법을 체득할 수 있게 되고, 상대방과의 지속적인 반복 수련으로 나중에는 극한 상황에 처해져서도 몸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6년 전에, 고작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영춘권을 수련한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몇 년 동안 전혀 영춘권 수련을 하지 않았음에도, 지금도 가끔 상대와 겨루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영춘권의 자세와 기법으로 공방을 펼치려고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기간 동안 다양한 수련생들과 팔을 맞대고 하는 대인수련을 무수히 많이 반복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볼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지금에 와서는 대인수련의 비중이 형편없이 부족하거나, 아예 체계가 없는 무술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인 입장이다.


두 번째, 혼자 하면 재미가 없다. 


이건 개인수련을 많이 하다보면 느끼는 건데, 사실 우리는 매일 매일 수많은 유혹과 싸우면서 살고 있다. 특히 무예수련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꼭 수련할 시간만 되면, 몸이 무거워지고 다른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스스로 수련을 거를 핑계를 만들어낸다. 


'오늘은 몸이 좀 찌뿌둥하니까 하루쯤 쉬어도 괜찮겠지', '오늘은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하니까 좀 쉬어야겠지' 등등 수련할 때만 되면 이런 유혹에 시달린다. 결국 의지가 좀 약한 사람들은 이런 유혹에 굴복해 그날도 수련을 거르고, 자기합리화를 하곤 한다. 그리고 '오늘 안 했으니까 내일은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하지만, 그때 뿐이다. 다음 날도 또 같은 유혹에 굴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중국의 유명한 노사들은 '매일 하루 30분씩만 수련해도 훌륭하다'는 말을 했다던가.


이렇게 개인수련을 거르게 되는 것도 결국 혼자 하는 수련이 지겨워서일 수도 있다. 물론 수련을 '지루함과의 싸움'이라고 정의짓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가 모두 절정고수가 될 것도 아니고 단순히 취미로 즐기면서 하려는 사람들에게, 지루함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가 아닐까 싶다.


여하간 개인수련을 하다보면 이런 식으로 수련을 게을리하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대인수련을 하게 되면 어쨌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정말 급한 일이 있거나 몸이 아프지 않은 이상 수련시간에 맞춰 수련터에 나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련터에 나가서도 다같이 수련을 하므로 나 혼자서 대충 수련할 수가 없고, 다같이 모여서 즐겁게 얘기하며 수련하다보면 어느새 재밌게 수련에 집중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 내가 수련하고 있는 무예24기는 현재 어떨까?


무예24기에도 대인수련은 존재한다. 우선 <무예도보통지>에도 왜검 교전, 권법 교전 등 교전(交戰)이라는 이름 아래 갑(甲)과 을(乙)로 나누어 2인이 서로 약속대련하는 형식의 수련이 존재한다. 이외에도 무예24기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다른 유파의 대인수련 형식을 많이 차용해왔는데, '수벽'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고 있는 태극권의 추수가 대표적이다. 또 현재 내가 소속된 한양류에서는 자체적으로 상대방과 손과 무기를 맞대고 다양한 수련을 전개해오고 있긴 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교전이라는 이름 아래 행하는 약속대련도 너무 형식화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그리고 수벽만으로는 다양한 상황에서 응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현재 내가 구상하는 방안으로는 각 기술들을 별도로 뽑아서, 상대방과 계속 주고받는 '단식 응용 수련'을 도입하는 것이다. 일단 얼마 전부터, 우리 한양류에서도 권법 동작들을 뽑아 실험적으로 해오고 있는데,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단식을 주고받으면서 용법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뒤에는 약속대련을 거쳐 자유대련까지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자유대련의 형식은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어쨌거나 저마다 실전에서 강하다고 주장하는 여러 무술 유파들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 무술이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생존능력을 기를 수밖에 없다. 그 생존능력이란 결국 무술의 본질인 '실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전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다양한 방법의 대인수련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본다. 적어도 나는 내가 수련하는 무예24기가 공연용으로 화석화된 무예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내 몸을 보호하는 호신의 수단으로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까지 계속 고민하고 수련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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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무예24기 뮤지컬 '관무재' 공연포스터 - 출처: http://www.muye24ki.com/)


2016년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맞이하여, 오는 29일 수원 화성행궁 신풍루 앞에서 무예24기 뮤지컬인 '관무재(觀武才)'를 공연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관무재란 무엇일까요? 한자를 풀어보면, '볼 관(觀)+무재(武才: 무예 재주)'가 되는데 말그대로 '무예 재주를 본다'라는 뜻이 됩니다. 즉, 관무재란 조선시대에 최고 통수권자였던 임금이 친림한 가운데 시행했던 무과시험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관무재는 임금의 명령으로 열리는 특별한 무과시험이었으며, 이때는 전국 팔도에서 날고 기는 한량이나 이미 관직에 있는 무관들까지도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두 참여했다고 합니다. 평소 얼굴도 보기 힘든 임금님 앞에서 열리는 시험이었으니, 이번 참에 자신의 기량을 맘껏 뽐내어 임금님 눈에 들어, 좋은 자리 한 번 꿰차보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지 않았을까요?



(사진: 2013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무예24기 시범 공연 당시 촬영한 사진)


하여간 조선시대 무과시험인 관무재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번 뮤지컬 공연은 수원시립공연단 소속 무예24기시범단이 직접 준비한 공연으로, 수원 화성행궁 신풍루 앞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관무재라는 소재로 스토리텔링을 하여 개최되는 공연이기에, 실제 배우들이 정조 임금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아 열연하고, 꾸준한 무예24기 시범으로 실력을 쌓은 무예24기 시범단 소속 단원들이 장용영 군사로 분하여, 다채로운 무예 솜씨를 뽐내게 될 예정이라는군요.


수원시립공연단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작품인 만큼, 평소 열리던 무예24기 시범공연보다 더 재밌고 알찬 공연이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저 역시 캐나다에서 잠깐 휴가차 한국에 놀러 온 오랜 친구와 이날 공연을 보러 갈 예정입니다. 개인적으로 무예24기 시범공연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그동안 열리는 시범공연은 말그대로 무예만 보여주고 끝나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스토리도 있고, 무엇보다 뮤지컬 형식이라고 하니 재미도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아 참,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사전에 신청할 필요도 없이, 그냥 시간 맞춰 신풍루 앞으로 가면 된다고 합니다.


PS. 공연이 열리는 이날 4월 29일은, 음력으로 정조대왕께서 <무예도보통지>를 반포하신 날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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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하기 전까지는 수련할 때마다 꼬박 꼬박 수련일기를 써서 블로그에 올리곤 했는데, 이젠 그 프레임을 좀 바꿔볼까 한다. 


매일 수련하더라도, 그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면 수련일기를 쓰는 재미가 있겠는데, 원체 아둔한 몸인지라 수련일기를 쓰다보면 형식적인 일기('오늘은 뭐 했다'와 같은...)에 그치는 것 같아 늘 아쉽기도 했고 그런 식으로 일기를 쓰는 것 자체가 굉장히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더욱이 수련일기에 가끔 사부님의 말씀이나, 수련하며 느낀 깨달음 내지는 생각을 정리해놨는데, 매일 수련일기를 쓰다보니 그 얘기를 다시 찾으려고 했을 때, 방대한 일기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찾아야할지 헤맨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제는 매일 수련일기를 쓰는 게 아니라, 수련하다가 기록으로 남겨두어야겠다 싶은 새로운 깨달음 내지는 단상들이 있을 때나, 혹은 사부님의 중요한 말씀이 있을 때만 일기를 쓸 생각이다.


오늘은 그 첫 번째 단상이다.


오늘은 전역한 지 꼭 1주일 되는 날이다. 전역하고서 며칠 동안은 제대로 수련을 안 했는데, 사람 만나서 놀고 먹느라 바쁜 탓도 있었고, 전역한 뒤 찾아온 공허함과 무기력함에 수련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일요일 정규전수에 다시 참여하기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요며칠 동안은 다시 정신 차리고 무예 수련에 매진하고 있다.


어제는 보라매공원에 가서 수련도 좀 하고, 뜀걸음도 하면서 체력 단련도 했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할 수 없이 집에서 수련을 했다. 실내에서 기본 주먹지르기와 주먹지르기를 응용한 장(掌) 지르기, 손끝 지르기, 끄집어치기 등을 하고, 발차기는 등각과 부인각, 선풍각(내파)을 수련했다. 


수련하다보니 비가 계속 오는 것 같지는 않기에 옥상에 올라가 보법(진보, 체보)을 수련하고, 칼로 천천히 들어베는 수련을 했는데, 비가 강아지 오줌 싸는 것마냥 찔끔찔끔 오다 말다 했다. 덕분에 옥상 바닥이 미끄러워져 체보 수련 시에 불편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거야말로 실전 보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적을 만나서 싸울 때는, 그 장소가 미끄러운 빙판길일지 울퉁불퉁한 돌다리 위에서일지 아무도 모른다. 항상 평평한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적을 만나란 법이 없으니, 이 기회를 이용해 언제 어디서든 흔들림 없는 보법을 연마하기에 딱 좋은 조건이었다.


오늘은 특히 보법 수련에 힘을 쏟았는데, 얼마 전에 권법을 하는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니, 상체가 앞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꼬리뼈(미추)를 안으로 말고, 상체를 쭉 펴니 보기도 좋고, 무엇보다 뒷다리에 힘이 실려 자세가 안정적으로 잡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요즘 보법 수련을 하며 꼬리뼈 마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확실히 진/퇴보를 할 시에 뒷다리에 힘이 실려서 자세가 안정적이다.


보법 수련을 하고서는 단수 훈련의 일종으로 요란주세와 순란주세를 수련하고 비가 계속 오길래 실내로 다시 들어와, 마무리로 팔굽혀펴기(주먹쥐고 넓게, 삼각형으로 좁게)와 허공의자 10분, 입선(참장) 10분을 하고 오늘 수련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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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간만에 무예 수련으로 땀을 흘린 것 같다. 6월 이후로 정말 지금까지 내 인생에 있어서 이번만큼이나 열심히 수련한 적이 있었을까 되돌아보게 만들 정도로 열심히 수련을 했었던 것 같은데 요근래 들어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체력적으로 지치다는 핑계로 수련을 게을리한 것이 사실이다. 매일 같이 무예 수련에 관한 중요한 격언을 되새기며, "최소한 하루에 30분이라도 수련을 하자"는 결심을 한 것이 엊그제인데 작심삼일이 되고 말았으니 나의 지조가 고작 이 정도라는 사실이 못내 불편하고 화도 난다.


여하간에 계속 수련을 안 하다간 정말 그간 쌓은 공력이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될까 두려워 오늘은 기어코 수련을 했다. 확실히 그간 수련을 쉬었더니 몸이 무거운 것이 여간 찝찝한 것이 아니었다. 매번 수십, 수백 번 반복해온 동작들도 며칠 쉬면 마치 처음 하는 동작마냥 어색하고 예전과는 느낌이 다르다. 동작에 힘도 실리지 않고, 숨은 평소보다 벅차며, 집중력도 흐트러진다.


정말 이래서는 안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띄엄띄엄 수련해봐야 쌓이는 것도 없고, 남는 것도 없을 터. 정말 최소 하루 30분만이라도 꾸준히, 꼬박꼬박, 매일매일 수련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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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무예 수련의 화두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목표 설정'이다.


사실, 무예를 수련하는 목적 내지는 목표를 물어본다면 몇 가지 댈 수는 있겠으나 근본적인 최상위 목표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옛날에는 막연하게 '고수가 되기 위해', '내가 수련하는 문파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라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무예를 수련해왔는데, 사실 요즘 들어서는 그런 목표에 대해 많은 회의가 든다. 


과연 고수, 최고라는 호칭은 누가 부여하는 것이며, 그 호칭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 실체를 결정하는 기준(잣대)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설사 누군가로부터 고수, 최고라는 찬사를 받게 된다 하더라도, 그게 나에게 있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고수가 되면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가, 밥이 떨어지는가. 그리고 비상 시 5분이면 경찰이 출동하는 철저한 치안국가에서, 검술을 배우지 않고서는 내 한 몸을 지킬 수 없는 그런 위험한 상황을 겪는다면 또 얼마나 겪겠는가.


이런 생각이 깊어지면 자칫 아예 무예 수련 자체에 대한 회의로 이어져 무예 수련을 관둘 위험도 있겠지만, 다행히도 나는 오히려 무예 수련을 옛날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다. 천하제일 초절정 고수가 되겠다는 유치하고 판타지적인 목표 자체에 대해서는 회의를 느끼지만, 목표를 떠나서 일단 무예가 좋기 때문이다. 그저 검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무예 수련으로 땀을 흘리는 것이 나이 든 어르신들이 사우나로 땀 빼고서 개운하다고 하는 것마냥 개운하기 때문에 무예 수련을 꾸준히 하고 있다.


다만, 그래도 무예 수련을 함에 있어 보다 근본적이고 확고한 목표를 갖고 있는 것이 마음 속 잡념을 지우는 데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고민 중이다. 목표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수련의 양과 질을 결정한다. 만약 내가 초절정 고수가 되어 모든 검술 유파를 다 깨고 다니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치자. 그럼 죽기 살기로 수련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 목표가 있기에, 다른 유파에서 2시간 수련할 때 나는 3시간을 수련하고, 다른 유파에서 머리치기 100회를 할 때, 나는 200회를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수련은 불가능에 가깝다. 먹고 살 걱정이 해결되어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이나 가능하지, 당장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예비 취준생인 나로서는 수련에만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간 알거지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왜 수련을 하는가', '내 수련의 근본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에 따라 어떻게 수련을 해야할 지도 깔끔하게 정리가 될 것 같기 때에, 계속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다.


이런 고민 자체가 이미 내가 현실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기도 하다. 현실보다는 이상에 젖어서 기분 내키는대로 살아왔던 군 입대 전과는 달리, 이제 전역을 앞둔 시점에서 이상보다는 점점 현실과 타협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다소 슬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게 잘못된 건 아니라고 본다. 당장 먹고 살 길이 해결되어야 여가가 보장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이든, 공부든, 무예든... 목표 설정이 참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는 '현실'이라는 엄혹한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지금 현재 나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어려운 줄타기를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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